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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4

유대인의 기도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4) 유대인의 기도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큰 보자기 모양의 숄을 머리에서 어깨까지 두른다. 잘 살펴보면 보자기 아래 끝 부분에 술이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술을 가리켜 히브리어로 ‘찌찌트’라 하며, 찌찌트가 달린 보자기 모양의 숄을 가리켜 ‘탈릿’(기도보)이라고 한다. 정통파 유대인의 경우 결혼한 남자만 사용할 수 있으나, 보수파나 개혁파에서는 성인식을 마친 모든 유대인 성인에게 사용을 허락한다. 여자의 경우 기도할 때 탈릿을 반드시 사용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명문화시켜 금하지도 않는다. 정통파 유대인 여자들은 법으로 금하지는 않으나 탈릿 사용을 꺼리는 편이고, 그 외의 보수파나 개혁파에서는 여자용 탈릿을 따로 개발하여 사용하며 남자용에 비하여 그 모양이나 색상.. 2015. 8. 16.
유대인의 장막절(2)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3) 유대인의 장막절(2) 구약에 나타난 장막절 모세는 그의 고별설교에서 매 7년 마지막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놓고 율법을 선포하라고 명하였다(신명기 31:1-13). 솔로몬의 성전이 봉헌된 후 성전에서 제일 처음 지킨 절기는 다름 아닌 장막절이었다. 이때 이스라엘 모든 족속의 족장들이 소집되었고 엄청난 규모의 축제가 벌어졌다. 다음으로 성경에 기록된 장막절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느헤미야 시대에 있었던 축제를 들 수 있다. 바벨론의 포로생활 끝에 고국 땅에 돌아온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유대인의 재건을 위해 전 국민적인 장막절 운동을 일으켰다. 느헤미야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 2015. 6. 22.
유대인의 장막절(1)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2) 유대인의 장막절(1) 우리 식구는 이스라엘 유학 시절의 대부분을 ‘길로’라는 동네에서 보냈다. ‘길로’는 예루살렘 남부, 해발 800미터의 구릉지대에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이루고 있다. 특이한 것은 어느 집이든 네 평 정도의 정사각형 형태의 베란다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던 3층 아파트에도 베란다가 있었는데, 가끔 고기를 구워 먹기에 좋았다. 모든 아파트는 아래층이 위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게 설계되어 있었다. 1층이 가장 넓고, 2층은 3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고, 3층은 또 4층보다 베란다 공간만큼 넓게 건축되어 있었다. 베란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설계에 철저하게 적용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아파트의 베란다이든 그곳에 누우면 탁.. 2015. 6. 9.
예수님 당시의 유월절(2)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1) 예수님 당시의 유월절(2) 그리심 산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월절 주후 70년 로마에 의하여 제2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 유대인들은 성전에 모여 희생제물을 바치며 매년 유월절을 축하하였다. 그러나 성전이 파괴되자 제일 먼저 불가능해진 것은 유대 종교의 핵심적 자리를 차지했던 희생 제사였다. 그 후 유대 종교는 희생제사 없는 새로운 종교로 발전되어 갔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성전의 희생제사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2000년 전에 사라진 유대인의 유월절 희생제사 의식을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름 아닌 그리심 산의 사마리아 유대인들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성경 시대에는 일 년 내내 항상 희생양을 제물로 바쳤으나, 오늘날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일 년 중 .. 2015. 5. 4.
예수님 당시의 유월절(1)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10) 예수님 당시의 유월절(1) 제2 성전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기 전,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은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순례객들, 전 세계의 디아스포아라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의 성지 순례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요셰푸스에 의하면, 주후 65년경에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적어도 삼백만 명의 순례객들이 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셰푸스의 이 기록을 신빙성 있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인구를 십만 명 정도로 추정하여, 유월절에는 그 두 배에 가까운 이십만 명 정도의 인구가 몰려들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당시 예루살렘의 크기를 오늘날의 옛 성 전체의 크기로 본다고 해도 이십만 명이면 이미 포화상태.. 2015. 4. 20.
유대인의 유월절(2) 최명덕의 유대인 이야기(8) 유대인의 유월절(2) 당시 우리 가족은 예루살렘 선지자 거리에 있는 유대인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아내는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돕고 있었는데, 그 교회의 골드베르그(Goldberg) 장로님이 우리를 유월절 식사에 초대하였다. 우리 옆 동에 살던 그는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특히 열정적인 설교가 인상적인 분이셨다. 그의 집에 도착하니 모든 식구들이 모여 잔치 분위기였다. 식사 전에 그는 나에게 키파를 쓰게 했다. 이 유월절 식사를 ‘쌔데르’ 또는 ‘하가다’라고 부르며, 유월절 명절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다. 그날 경험했던 유월절 식사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유월절 식사 유월절 식사는 보통 가장이 인도한다. 유월절에는 여섯 가지의 특별한 음식들이 준비된다. 정강이 뼈,.. 2015.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