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리

신동숙의 글밭(316)


새소리




아침에 새소리를 들었다

몇 년만에 듣는 반가운 기척


창문을 시스템 창호로 바꾼 후

새소리 알람시계는 끄고 살았는데


좀 전에 비가 오는가 싶어서

부엌 쪽창을 조금 열어두었더니


겨우 그 한 뼘 틈새로

집 안으로 들어온 새소리가


갈빗대 빗장 틈새로

밤새 닫힌 가슴 쪽문을 연다


새벽 하늘을 깨우며

새날을 알리는 첫소리


새아침을 울리는

새소리는 늘 새 소리


새는 날마다 새로운 길

새 하늘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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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자리 - 정월달 지신밟기

신동숙의 글밭(315)


봄자리 - 정월달 지신밟기




언 땅으로

걸어갈 적에는


춥다고 움추린 손

날개처럼 펼치고


꼭 잡은 손

서로가 풀어놓고


빈 손은 

빈 가지처럼 

빈탕한데서 놀고


두 발은

정직한 땅으로 

뿌리를 내리는 일


언 땅으로 

내딛는 걸음마다


하나 하나 

씨알처럼 발을 심는 일


학이 춤을 추듯이

돌잡이 첫걸음 떼듯이


두 손 모아 기도하듯이

햇살이 언 땅을 품듯이


발걸음마다 

감사를 심으며


발걸음마다 

사랑을 심는 일


정월달 지신밟기 지나간

언 땅 자리마다


새싹이 기지개를 켜며

새로운 눈을 뜨는 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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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

신동숙의 글밭(314)


골방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나의 방으로 간다

마음껏 아파할 수 있는 
나의 방으로 숨는다

일상 뒤에 숨겨온 슬픔과 아픔을 
우는 아기 달래듯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관상의 기도 그 사랑방으로 돌아간다

한밤중에 방바닥으로 몸을 기대면
한몸 기댈 방 한 칸 없는 이웃들이 먼저 떠올라 
밤하늘 별이 되어 글썽이고

마음 한 자락 기댈 내면의 골방도 없이
일상에 떠밀려 살아가는 이웃들이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가

하루 동안 쌓아올린 마음을 허무는 밤
나의 골방은 그대로 하늘로 열린다

이제는 나의 것인지
너의 것인지도 모를 슬픔과 아픔이지만

그렇게 별처럼 미안한 마음까지 더해지면
슬픔과 아픔과 미안한 마음이 한데 뒤섞여 흐른다

숨으로 돌아오는 순간마다 
고마운 마음이 샘솟아 
가슴에는 한 줌 숨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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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 겨울나무

신동숙의 글밭(313)


냉이 - 겨울나무




겨울을 푸르게 견뎌낸 냉이가

뿌리에 단맛을 머금었습니다


흙의 은혜를 저버리는 듯

잔뿌리에 흙을 털어내는 손이


늙은 잎을 거두지 못하고

시든 잎을 개려내는 손이


못내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땅에 납작 엎드려 절하는 냉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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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한 사발

신동숙의 글밭(312)


떡국 한 사발



소고기 조각 구름 걷어내고

계란 지단 구름 걷어내고


흙으로 빚은 조선 막사발로 

투명한 하늘과 바다를 조금만 떠서


두 손 모아 하나 되는 찰라

해를 닮은 흰떡 한 움큼 넣고 팔팔 끓이면


떡국의 가난과 맑음은 얼벗 되어 

다정히 손을 잡고서 놓치 않아


정월달 아침이면 해처럼 떠올라

둥근 입속으로 저문다


새해는 깊고 어둔 가슴에서 떠올라

웃음처럼 나이도 한 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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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자 좋은 날

신동숙의 글밭(311)


지화자 좋은 날




160년 전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월든 숲의 오두막에서 

동양의 주역을 읽던 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산골 오두막 머리맡에 둔 몇 권의 책 중에서

성 프란체스코를 읽던 날의 법정 스님


지리산 자락의 유가댁 자제인 열 다섯살 성철 스님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쌀 한 가마를 바꾸던 날


6·25 동족상잔 그 비극의 흙더미 아래에서

밤이면 책을 읽던 진실의 스승 리영희 선생님


감옥의 쪽창살로 드는 달빛을 등불 삼아

책을 읽고 종이조각에 편지를 쓰던 날의 신영복 선생님


주일 예배 설교단에서 

반야심경의 공사상을 인용하는 날의 목사님


초하루 법문이 있는 대웅전에서

요한복음 3장 8절을 인용하는 큰스님


천주교 식당 벽에 붙은 공양게송 한 줄 읊으며 

창문밖 성모마리아상 한 번 보고

밥 한 숟가락 먹던 날


거실에서 운동 삼아 백십배 절을 하다가

강아지 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더운 여름 갈증이 나는 날

쪼갠 수박 속이 잘 읽었을 때


추운 겨울날 노을빛 귤껍질을 벗기다가 

누군가 속에 껴입힌 하얀 털옷을 본 순간


아침마다 어김없이 해가 뜨고

저녁마다 달이 차고 기울고 사라지고 또다시

올려다본 별이 사람의 눈망울처럼 총총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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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비우면

신동숙의 글밭(310)


반쯤 비우면




마음이 무거운 날

마음 그릇을 들여다 보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나 쌓인

땅의 일들이 수북하다


땅으로 꽉 찬 마음 그릇을

허공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반쯤 비우면

저절로 빈 공간에 하늘이 찬다


가끔은


마음이 날듯 가벼운 날

마음 그릇을 들여다 보면


하늘이 가득 펼쳐진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과 배달의 하늘이


이도저도 아닌 날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으면


오도가도 못하는 날

그저 생각만 해도


반쯤 땅인 몸속으로

반쯤 하늘이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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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보조바퀴

신동숙의 글밭(309)


오토바이 보조바퀴




큰일이다

꽁꽁 싸매고

길거리에 나서면 


꽃보다 먼저 

사람보다 먼저

오토바이 발통이 보인다


앞뒤 두 발통으로 달리는 오토바이가

잘 돌아가던 하루에 브레이크를 건다


썰매가 거추장스럽다면

자전거 보조바퀴라도 달아주고 싶은데

폼이 안 산다며 멀리 달아나려나


뉘집 할아버지인지

뉘집 아버지인지

뉘집 아들인지


앞 발통엔 몸을 싣고

뒷 발통엔 짐을 싣고

하늘만 믿고 달린다


싸운 사람처럼

앞에 가고 뒤에 가고

멀찌감치 떨어져 위태롭게 달린다


하지만 하늘은 

옆으로 나란히 지으신다


스승이자 벗이 되어

나란히 걸으라시며 두 다리를 주시고


혼자 걷다 넘어져도

땅을 딛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생명을 살리는 어진 손길로

보조바퀴처럼 옆으로 나란히


겨울바람에 말갛게 씻긴 내 두 눈엔

오토바이 발통만 보인다

작은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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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린 산

신동숙의 글밭(308)


엎드린 산




산이 

늠름하게 서 있는 줄만 알았는데

엎드려서 온 땅을 끌어안고 있었구나


먼 산등성이

등줄기를 따라서 내려앉은 흰눈이 하얗다


맨 먼저 아침해를 맞이하면서도

맨 나중에 봄이 되는 산꼭대기


별빛이 닿는

하늘 아래 맨 처음 땅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흰눈이 내려앉는 듯 우러르며


내려놓는 숨결마다 엎드려

오체투지하는 산처럼 그 품에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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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본능, 흙구슬 빚기

신동숙의 글밭(307)


둥근 본능, 흙구슬 빚기



밥숟가락 놓고 달려가던 모래 놀이터

좁다란 골목길을 돌면 활짝 나오던 둥근 놀이터


나에게 모래가 황금빛 아침햇살이라면

모래에게 나의 얼굴도 아침햇살 


손끝이 아무리 시려워도

나중엔 손이 시려운 줄도 모르고


거북이 등딱지처럼 튼 피가 맺히던 손등

그런 두 손등을 마주 부비며 문지르던


모래만 보면 가슴에서 살아나는 둥근 본능

흙구슬 빚기


놀이터 구석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서 

온 정성을 기울여 비나이다 비나이다

굴리고 굴리고 굴리던 흙구슬


부스러지지 않도록

누군가 모르고 밟고 지나는 일 없도록


어느모로 보나 둥글도록

두 손바닥 사이에서 태어나던 흙구슬


하지만 이내 으스러지기 일쑤

언제나 아쉬움만 남기던 꿈의 둥근 세상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빚어놓은 투명하게 둥근 이슬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던 날


감탄하며 그 작고 아름다운 둥근 세상에 흠뻑 빠져

지금도 헤어나오지 못하여 오늘을 살아간다


허공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이 세상 눈물 흘리는 곳마다 

두 손 모아


오늘도 투명하게 

둥근 세상을 빚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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