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방

신동숙의 글밭(255)


고독의 방




가슴으로 쓸쓸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못 견디게 시리도록 

때론 아프도록


바로 이때가 고독의 방이 부르는

영혼의 신호


사람을 찾지 않고 

홀로 침잠하는


날숨마다 날 지우며

시공간(時空間)을 잊은 無의 춤


처음엔 온통 어둠이었고 

언제나 냉냉하던 골방입니다


홀로 우두커니 선 듯 앉은 듯 

추위에 떨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저 멀리 반짝이는 한 점 별빛

그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그 먼 별이 살풋 짓는 여린 미소에 

가슴 속 얼음이 녹아 눈물로 흐르면


흘러가기를 

목마른 곳으로


골방에 나보다 먼저 다녀간 이가 있었는지

아궁이에 군불이라도 지폈는지 훈훈한 온기가 감돕니다


문득 나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아.. 이제는 고독의 방으로 드는 일이 견딜만합니다


고요히 머무는 평온한 침묵의 방에서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의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는 기도의 골방


내가 사랑하는 고독의 방은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即是)


지금 이 순간, 있는 모습 그대로 꽃 피울

꽃자리의 사랑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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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주세요

신동숙의 글밭(254)


풀어주세요




천장의 눈부신 조명 위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도록


창문틀 너머로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시멘트 바닥 아래 

흙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벽돌 우리에 갇혀 매여 있는 

나를 풀어주세요


안락이라는 족쇄에 묶여 꼼짝 못하는

천국이라는 재갈을 입에 물고 말 못하는


몸 속에 갇힌 나를 

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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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

신동숙의 글밭(253)


달개비




인파人波에 떠밀려 오르내리느라


바닷가 달개비가 들려주는


경전經典을 한 줄도 못 읽고


말 한마디 못 붙이고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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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신동숙의 글밭(252)



알고 보면




허리 굽혀 


폐지 주우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알고 보면


어느 독립운동가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더욱 허리 굽혀 


인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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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걸음이지 않도록 누군가

신동숙의 글밭(251)


헛걸음이지 않도록 누군가




가을날 산길을 걷는 걸음이

헛걸음이지 않도록 

누군가


떨어진 잎 사이로

도토리 알밤이 반질반질 


땅바닥을 보며 걷는 걸음이

헛걸음이지 않도록

누군가


집안에 뒹구는 

종이 조각들 차곡차곡


하늘을 보며 걷는 걸음이

헛걸음이지 않도록

누군가


까맣게 태우는 밤

별들을 흩어 놓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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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신동숙의 글밭(250)


환승




친정 엄마가 

아침 햇살처럼 들어오시더니


가방도 안 내려놓으시고

서서 물 한 잔 드시고 


"이제 가야지" 하신다

무슨 일이시냐며 불러 세우니


"버스 환승했다" 하시며

떠날 채비라 할 것도 없이


부지런히 걸어도 10분이 넘는 거리를

저녁 햇살처럼 걸어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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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물방울 하나

신동숙의 글밭(249)


떠도는 물방울 하나




망망대해(茫茫大海) 

망망대천(茫茫大天)

떠도는 물방울 하나


깜깜한 밤이래도 걱정 없어요

돌고 돌아서 제자리

길 잃을 염려 없어요


연약하여 부서진대도 상관 없어요

부서지면 더 작은 물방울

더 가벼울 터이니


언제든 고개 들면

해와 달과 별이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지켜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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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숲

신동숙의 글밭(248)


글숲




글숲에서 길을 찾기도 하지만

종종 길을 잃기도 하지요


키 큰 나무와 무성한 수풀 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으면


가만히 눈을 감지요

달과 별이 어디 있나 하고요


고요히 눈을 떴을 때 

나뭇잎 사이로 해가 빛나면

맘껏 해를 마주보기도 하고


햇살에 춤추는 

먼지 한 톨에 기뻐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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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신동숙의 글밭(246)


순간




가까이 다가갈수록 향기 짙은

고요히 깊어질수록 아름다운


매 순간이 꽃이더라

모든 순간이 사랑이더라


슬픔은 눈물꽃으로 피우고

아픔은 앓음앓음 한숨꽃으로 피우고


어린아이의 눈물웃음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햇살 머금은 아침이슬의 웃음꽃으로 빛나는


그러한 순간이 되는 길을

고독과 침묵의 귀 기울임 말고는 

나는 알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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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사랑법

신동숙의 글밭(245)


하늘의 사랑법




오늘도 하늘을 바라봅니다

유년의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말을 배운 기억보다 

하늘은 더 앞선 풍경입니다


배고픔보다 더 커다란 허기를 

하늘은 언제나 든든히 채워주었지요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하늘을 닮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바라보는 곳으로

저의 눈길도 따라서 바라봅니다

하늘로부터 햇살이 내려오는 길을

빗물이 내려오는 길을


하늘이 걸어가는 길은

땅으로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어린날에 산길을 내려오다가 만난 다정한 벗

강아지풀 토끼풀 꺾어 제 팔목에 매듭짓다 보면

뭉친 마음이 어느새 풀처럼 풀리던 기억처럼


하늘의 발걸음은 낮아져

가장 낮은 땅으로

작고 작은 생명에겐 단비로

가난한 집 눅눅함을 말려주는 햇살과 바람으로


하늘은 세상의 모든 생명을 

그 둥그런 품에 가득 안고서

몸속까지 스며든 살갑고 고마운

보이지 않는 사랑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많은 시간을 침묵 속에 있었으나

때때로 몸과 마음의 교만이 고개 들려는 저에게 

하늘은 더 낮아지라 

더 작고 작아지라


비운 마음까지도 다 내려놓으라시며

그것이 하늘의 사랑법이라며

한 알의 물방울처럼 나를 비워

언제든 햇살이 손 내밀면

사뿐히 오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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