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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 출간 책 서평77

도무지 믿음의 걸음이 뭔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좋은 글을 읽는 것은 저자가 걸은 사유의 길을 따라 걷는 것과 같지요.  애쓰며 걸은 걸음, 때로는 어디로 내디뎌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 장소들, 어떤 경우에는 비틀거리며 걷느라 깊이 패인 자국들로 다양하지만 뒤따라 걷는 이는 그저 여유로울 수밖에 없지요. 그이의 수고 덕분입니다. 오랜 사유의 흔적들에는 알맞이 이정표들이 있고 넉넉히 쉬며 목축일 수 있는 샘이 적당한 간격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길 잃을 염려는 없고 세워진 이정표들을 들여다보면 걸음에 담겨진 다짐과 시간의 무게를 뭉근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멈추지 않을 듯 했던 여름이 슬며시 물러나며 가을이 시작되는 때에 마치 저자와 산책하듯  《그대는 한송이 꽃》을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은 지인들과 대화하거나 편지를 나누며 그때그때 사유를.. 2024. 9. 8.
김기석 읽기에서 배운 가장 큰 미덕 김기석 목사는 숫자에 어두운 저같은 사람이 세기를 포기할 만큼 많은 책을 냈습니다. 만나 잠시 대화를 하거나 쓰신 책을 읽은 덕에 어떤 강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김기석의 신간이 나오면 얼른 읽어야 한다는 조바심에서 꽤 자유로워졌습니다. 쓰신 책을 다 찾아 읽지 않아도 저자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책이라면 모를까, 김기석을 읽을 때 저는 더이상 지식이나 정보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새로운 정보로 차고 넘치지만 거기에 현혹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김기석의 책을 읽으며 정보와 지식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매우 애석한 일입니다. 저는 김기석 읽기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회복했습니다. 느리게 가도, 소리가 작아도 그런 불편이 더 좋은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김기석 읽.. 2024. 9. 7.
시대의 예언자가 부르는 아리랑 성경은 악보와도 같다. 악보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일종의 암호다. 작곡가가 음표 하나하나에 새겨넣은 곡진한 마음 그리고 음표와 음표 사이에 심어놓은 살가운 이야기를 누군가 해독해야 한다. 그 역할을 맡은 이가 연주자다.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에 따라 달리 들리는 만큼, 연주자의 해석은 무척 중요하다.설교자 역시 연주자다. 단순히 독자이기만 하다면 홀로 성경을 읽고 깨달아 실천하면 그뿐이지만, 설교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말씀의 신비를 풀어헤쳐 청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설교자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이자 설교자에게 현장이 중요한 이유다. 내가 20대에 처음 만난 ‘김민웅’은 설교자의 전형이었다. 미국 뉴저지 길벗교회가 그의 현장이었고, 거기서 전한 말씀이 《물 위에 던진떡》(한국신학연구소, 1995)으로 .. 2024. 5. 8.
김민웅 목사의 언어, 말, 소리, 메시지 소리 없이 퍼지는 메시지> 시편 19편 시인은 우주에 가득 찬 언어와 말과 소리를 두고서 다음과 같이 읊는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개역/개정 ‘선포하고’, 공역 ‘속삭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간다.”(《새번역》 시편 19:1-4a)  피조물인 하늘과 창공이 말한다. 피조물인 시간(낮과 밤)도 말로 정보를 전달한다. 시인의 역설(逆說)이 나온다. 이 우주에 언어가, 말이, 가득 차 있어도 들리는 소리가 없단다.(안 들려!) 다음 행에서 이 역설이 한번 더 뒤집힌다.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2024. 4. 25.
결국은 믿음으로? 답답한 시절이다. 한 줄기 빛과 한 뼘의 위로조차 절실한 시절이다. 세상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고, 새로운 전망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과거와 비교하며 현실을 이야기하기에 젊은 세대는 저 멀리 떨어져 있다. 지난 몇 십년간 우리 세대와 사회가 이룩한 성취들은 다 어디로 갔나? 기나긴 여정 끝에 도달한 곳이 고작 여기란 말인가? 많은 이들의 낙담과 한탄도 이제는 지겹다. 과연 역사에는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인가? 인간의 머리와 가슴으로 쉽게 가늠이 안 된다. 이런 자괴와 혼돈의 시간들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이렇게 현재의 조건만을 주목할 때 납득이 가지 않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조건에 의존하는 해결이라면 그것은 굳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에 의존할 이유.. 2024. 4. 22.
더 나은 세상의 실현을 위한 성서 읽기 《하늘은 나를 얻고》 설교집에서 발견되는 김민웅 목사는 최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민주 운동의 기수 김민웅 투사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목사로서의 김민웅이 민주화 투쟁의 기수 김민웅이 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온것일까?그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성서의 말씀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아 성찰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면”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응시해 나가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한다. 성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더 깊은 뜻을 알게 될 때 ‘우리 인생을 사는 일에 근본이 되는 원칙’을 깨닫게 된 다고도 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를 읽고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을 이전의 흔적은 찾아낼 수 없이 새롭게 만들어 낸” 기적을 볼 수 있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이야기를 읽고 .. 2024. 4. 15.
성서에 충실한 설교자, 그 말씀을 실존 그리고 역사와 만나게 하다 김민웅 목사님과의 인연은 오래 전 그가 낸 《물 위에 던진 떡》이다. 설교전문 잡지 「그말씀」 편집장으로 일했던 시절, 마감을 하면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나가 설교와 관련된 신간들을 살펴보곤 했다. 책들을 둘러보던 중 《물 위에 던진 떡》이 눈에 들어왔다. 신학서적을 내는 곳이지 설교집은 내지 않는 한국신학연구소의 출판물이라 우선 눈이 갔다.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펼쳐 들고는 놀라웠다. 전혀 다른 성서읽기와 해석의 보고(寶庫)였다. 그의 설교를 직접 들으면 그 역동적인 말씀의 선포는 더욱 강렬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그걸 직접 듣지 못해 아쉬워하고만 있을 일은 아니다. 글로 기록된 내용은 그 감동을 최대한 담아내고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늘은 나를 얻고》, 이 책의 원본이 되는 《사랑.. 2024. 4. 5.
누군가의 가슴에 사랑의 불씨가 되기를 김민웅 목사하면 박람강기(博覽强記)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떤 주제가 나오든 그는 마치 오랫동안 그 주제를 천착해 온 것처럼 거침없이 말한다. 허풍이 아니다. 그의 사유는 깊고 넓다. 학자이면서도 광장을 떠나지 못하는 그는 달변가이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그의 언어는 섬세하다. 그는 사람들을 깊은 인식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강의를 하고, 연극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선포자이다. 뉴저지주에 위치한 길벗 교회의 담임자로 살면서 선포했던 설교를 묶은 이 책은 그의 삶을 관통하는 밑절미가 하나님에 대한 열정임을 보여준다. 그는 언제나 우리가 처한 삶의 현장에 눈길을 준다. 절망과 어둠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의 삶의 자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땅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차마 외면하지 못.. 2024. 4. 4.
패배의 승리 장기려는 부산모임에서 후지이 다케시를 가장 많이 소개했다. “나의 존경하는 후지이 다케시 선생”이란 글이 대표적이다. 후지이 의 요한계시록과 누가복음 강해와 단테의 『신곡』, 구약성서의 창세기와 시편, 예수의 부활, 사도 바울의 사랑의 철학 같은 글들도 번역 해 《부산모임》에 실었다. 1970년대 중반에 복음병원 내의 분규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낼 때는 후지이 다케시가 쓴 “패배의 승리”를 읽고 또 읽었다. 그 글이 후지이 사상의 핵심이고, 살아오면서 자신이 어려운 순간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붙들었던 해결책이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제자나 후배 교수들은 패배의 승리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듯하다. 1970년대나 지금이나 이 짧은 글은 개신교 신학을 잘 모른다면 이해가 쉽지 않다. 다음은 “패배의 승.. 2023.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