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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교회5

설산을 그리워하는 까닭 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5) 설산을 그리워하는 까닭 그 동안 잘 지내고 계셨는지요? 대한大寒이 지났는데도 겨울답지 않게 날이 포근합니다. 몸을 옹송그리지 않아도 되니 좋기는 하지만, 마치 누군가에게 겨울을 빼앗긴 것 같은 이상한 상실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나날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안나푸르나를 떠올리는 것은 후텁지근한 일상에 지쳤기 때문일 겁니다. 눈이 내리면 산에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흰 눈에 덮인 산정은 시원의 신비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계곡에서 맞이하는 찬 바람은 제 느른한 일상을 내리치는 죽비입니다. 추위를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겨울 산을 참 좋아합니다. 잎을 떨 군 채 겨울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나무의 허허로움과 그 차가운 바위에.. 2015. 1. 25.
오르페우스의 노래 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4) 오르페우스의 노래 소한 추위가 지나더니 날이 제법 푸근합니다. 건물 사이로 히뜩히뜩 머리에 눈을 이고 있는 산이 보입니다. 마치 시원의 그리움처럼 내 속에서 뭔가가 꿈틀합니다.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고향 같습니다. 겨울, 따뜻한 실내에 오래 머물러 몸과 마음이 느른할 때면 눈 덮인 평원을 헤매던 닥터 지바고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바리키노에 있던 얼음집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을까요? 라라와 머물던 그 집에서 유리 지바고는 시를 썼지요. 창 밖에는 늑대 무리가 우우 울고, 유리창에는 성에가 낀 그 집에서 그는 촛불을 밝혀놓고 언 손을 호호 불어 녹이며 라라에 대한 사랑 노래를 지었습니다. 젊은 날 그 장면 하나가 제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런.. 2015. 1. 19.
해 저문 빛이라도 있으니 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3) 해 저문 빛이라도 있으니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참을 찾기 위해 늘 고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느슨해졌던 제 마음을 바루곤 합니다. 평안함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을 자꾸 도스르지 않으면 수도자들의 ‘아케디아’(懶怠)에 빠지게 마련이니 말입니다. 조금 나이가 든 탓일까요? 요즘처럼 추워 몸을 웅크리고 지낼 때면 어린 시절 쩡쩡 소리를 내며 갈라지던 얼음의 울음소리가 떠오릅니다. 그 소리의 부추김으로 생각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년 시절에 당도하기도 합니다. 채워놓은 논물이 얼면 그곳은 아이들의 운동장이 되었습니다. 얼음판 위에서 팽이도 돌리고, 앉은뱅이 썰매도 지치고, 조금 커서는 외발 썰매로 멋을 부리곤 하던 벗들이 떠오릅니다. 얇은 얼음이 꺼져 빠지기도 했는데, .. 2015. 1. 11.
빛의 어루만짐 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2) 빛의 어루만짐 새해가 되더니 기온이 제법 차갑습니다. 찬바람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기침을 달고 사는지라 목도리로 목을 잔뜩 감싸지 않으면 그 바람을 반기지도 못하는 신세입니다. 눈길에 다리를 삐끗하여 원단 산행도 거른 채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잘 걷고 계신지요? 눈빛 맑으신 분이니 세상에 가득 찬 신비에 오늘도 놀라고 계시겠지요? 저는 아내가 오디오에 걸어놓은 ‘냉정과 열정 사이’ 음반을 들으며 피렌체나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 서서 광장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우피치 회랑에 서 있던 동상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생각이 나네요. 정신적 거인들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자아의 한계를 끊임없이 돌파하면서 인간의 정.. 2015. 1. 4.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1) ‘세상에 희망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평안하신지요?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사위가 고요합니다. 건너편 아파트를 바라보니 불이 밝혀진 집이 많지 않습니다. 혼곤한 잠에 빠져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왠지 가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 알기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착한 잠을 자고 나면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웃으시겠지만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은 김기택 시인의 ‘아기는 있는 힘을 다하여 잔다’라는 시를 읽은 후부터입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잔다니요? 늦장가를 간 시인은 선물처럼 자기 가정에 찾아온 아기를 보면서 신비가가 된 것일까요? 시인은 달게 자고 난 아기가 마치 하룻밤에 이 세상을 다 살아버리고 .. 2015.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