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103 도취를 경계하라 도취를 경계하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에베소서 5:15-20) 가장 열심히, 가장 분주하게 교회생활을 하는 이들도 영적인 잠에 빠지기 쉽다. 분별력 없는 열심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2023. 10. 7. 아낌만한 것이 없다 아낌만한 것이 없다 이군, 새벽빛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아침입니다. 불기 없는 사무실에 앉아 아침을 맞는 일이 조금씩 힘들어지네요. 하지만 밤과 낮의 경계선이 무너지며 아침 햇살이 조금씩 비쳐드는 이 시간, 새로운 삶을 살라고 주신 이 복된 순간이 흔감(欣感)할 따름입니다. 주위가 참 고요합니다.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충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습니다. 정겨운 얼굴들을 머릿속에 그리다가 문득 이군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하고많은 얼굴 중에 왜 이군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모딜리아니의 목이 긴 사람들처럼 목마른 표정으로 나를 찾아오는 이군이 나를 부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잔뿌리만으로 버티기엔 일상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2023. 7. 18.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 어제 모임을 마친 후 잘 들어가셨는지요? 모처럼의 만남이 참 반가웠습니다. 더 깊은 대화의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영 아쉬웠습니다. 요즘 저를 사로잡고 있는 통증 때문에 잠을 자꾸 설치다 보니 몸에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컨디션 조절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찬 바람에 연신 옷깃을 여미면서도 젊은 시절을 반추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대학원 시절에 만났으니 벌써 30년도 더 되었네요. 생각해보면 미숙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참 치열했습니다. 진실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열망과 시대가 빚어내는 우울이 미묘하게 뒤섞여 우리는 비틀거리곤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사는 모습도 자리도 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같은 중심을 향해.. 2023. 7. 3. 무거운 삶 가볍게 살기 무거운 삶 가볍게 살기 잘 지내고 계시지요? 이제 장마철이 되어서인지 대기가 축축한 게 후텁지근해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몸은 나른해져요.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가 마당가에 심겨진 여러 식물들과 눈맞춤을 하지요. 요즘은 나리꽃과 백합화가 한창입니다. 키 작은 옥매(玉梅)나무에는 오종종 붉은 열매가 매달려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포도도 많이 맺혔습니다. 초가을이 되어 보라색으로 익어갈 것을 생각만 해도 흐뭇해집니다. 매실은 따지 않고 두었더니 하나 둘씩 저절로 떨어지더군요. 가을에 알밤을 줍듯 화초 사이에서 매실을 줍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매실을 손에 쥐어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아보고 그 오묘한 빛깔과 모양에 눈길을 주다가 가만히 베어물기도 합니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 2023. 6. 27. 돈의 전능성을 해체하라 돈의 전능성을 해체하라 독서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까?” 답답해서 던진 질문이겠지만 그 질문 속에 담긴 쓸쓸한 비애를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돈에 포획된 교회의 현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교회를 사고파는 사람들, 목사 선정 과정에서 후임자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지요? ‘저마다 절박한 사정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쉽게 정죄하지 않으려고 애써 보지만 결국 도리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의 원리가 의의 원리 혹은 신앙의 원리를 대체할 때 거룩함은 가뭇없이 스러지게 마련입니다. 부끄러움조차 없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종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부끄러움은 자기 평가적 감정입니다... 2023. 6. 19. 이디오테스(idiotes) 이디오테스(idiotes) 평안하신지요? 가장 빛나는 계절인 봄을 우리는 늘 고통의 기억과 더불어 지내게 됩니다. 접동새 우는 4월에는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간 세월호 참사자들이 떠오르고, 5월이면 1980년 광주에서 죽어간 넋들을 떠올리게 되고, 6월에는 이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전쟁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뜬금없이 유치환의 ‘깃발’이 떠오릅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아마도 저 광장과 길가에서 나부끼고 있는 노란 리본과 배너 때문일 것입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형용 모순의 표현 때문에 어떤 절절한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옵니다. 언제쯤 되면 우리는 이 봄을 한껏 경축할 수 있을까요? 노루처럼, 사슴처럼 .. 2023. 6. 18. 옹송그리며 쓰는 반성문 옹송그리며 쓰는 반성문 평안하신지요? 집에서 사무실로 나오다 보니 숙대 뒤뜰에 있는 산딸나무가 희고 정갈한 꽃을 피워냈더군요. 몇 해 전에 고려대학교에 계신 어느 교수님이 네 갈래로 피어나는 꽃잎이 십자가를 닮았다며 교회 마당에 심어보라 일러주던 꽃이기에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이집 저집 담장을 흘낏거리며 걸었습니다. 탐스럽게 핀 장미꽃들이 싱그러웠습니다. 문득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했던 릴케가 떠올랐고, 곧 마음속에서 이미 상투어로 변해버린 그 문장을 떨치려고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루 살로메가 떠올랐고, 그 매혹적인 여인을 향한 릴케의 연정이 되짚어졌습니다.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 2023. 6. 17. 꽃씨를 뿌리는 사람들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오랜만에 편지를 통해 인사 드립니다. 벌써 6월 중순입니다. 해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새벽 5시만 되면 창밖으로 환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이미 보리를 다 베고 모내기를 하고 있습니다. 토마토 순지르기도 거를 수 없지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밭에 들어가 토마토 곁순을 잘라주던 일이 떠오르네요. 약쑥을 베어다가 효소를 담그는 분들도 계십니다. 열매를 맺는 남새에 버팀대를 세워주는 것도 이맘때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봄 푸성귀로 여름 김장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굳이 많은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삶을 누릴 줄 아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신다지요? 때를 분별할 수만 있어도 삶은 제법 풍성해집니다. 안달복달하지 말고 흐.. 2022. 6. 16. 참 고맙습니다, 잘 견뎌주셔서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하박국 3:17-19)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코로나 단계적 완화 조치가 시행된 첫 주입니다. 뭔가 선물을 받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만, 마냥 즐거워할 수만도 없습니다. 여전히 코로나 확진자는 줄어들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저는 코로나19가 몰락을 향해 가는 우리 문명을 향해 하나님이 보내신 멈춤신호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더 큰 세계를 .. 2021. 11. 4. 이전 1 2 3 4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