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하늘, 땅, 사람 이야기106 좋구나, 이 말이여!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 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 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한복음 1:14) 영원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자가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셨다. 오랜 기간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만 할 아기의 몸으로 태어났다.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고, 엄마의 눈을 바라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두리 번거리다가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는 아기로 말이다. 그리고 그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곧 칠정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는 우리들과 다를 바 없이 사셨다. 문득 막스 에른 스트의 그림 가 떠오른다. 무슨 일 때문인지 마리아는 몹시 화가나 있다. 그래서 아기 예수를 자기 무릎에 엎드리게 한.. 2025. 4. 8. 참 말이 그리운 시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 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 은 사람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 을 이기지 못하였다."(요한복음1:1-5) 아련한 그리움으로 과거를 돌아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또 때론 터무니없는 자부심으로 우쭐거리기도 하고, 혹은 절치부심하기도 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뿐이리라.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의 뿌리가 과거에 맞닿아 있기에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가다보면 저 아득한 우주의 어둠처럼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기억의 소실점도 있게 마련이다. 탄.. 2025. 4. 7. 프레임에 갇혀 허수아비가 된 사람들 사람은 저마다 세상의 중심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파악한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나와 타자들의 거리가 적정선에서 유지될 때는 편안하지만, 그 거리의 규칙이 무너질 때는 불편해 한다.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이 실은 멀리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서운함에 사로잡히고, 멀다고 생각한 이가 암암리에 세워둔 심리적 경계를 넘어 성큼 다가올 때 불쾌감을 느낀다. 사람은 단독자로 태어났지만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함께 그러나 홀로’ 존재인 인간은 그 묘한 균형을 찾지 못해 흔들리고 시시때때로 감정의 부침을 겪는다. 상대방이 나의 기대대로 움직여 줄 때는 평화롭지만 자율적으로 처신할 때 불화가 빚어진다. 관계에 금이 가는 것이다. 그 금은 .. 2024. 10. 29. “이런 교회는 무너지는 게 순리다” “이런 교회는 무너지는 게 순리다” 폴 틸리히는 신앙이란 궁극적 관심에 사로잡힌 상태라 했다. 사로잡힘은 주체적으로 조장할 수도 없고 물리칠 수도 없다. 불가항력이다. 그래서 사로잡힘은 마치 교통사고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느닷없고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다. 예수에게 사로잡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본다. 사로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일심으로 달리긴 했다. 돌아보면 갈짓자 걸음이었지만, 그래도 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다. 다가섰다 싶은 순간 멀어지고, 멀어졌다 싶은 순간 다가오는 길, 탄생에서 죽음으로 이어진 그 길이 참 힘겹다. 한국교회가 위기다. 아무리 뻔뻔한 사람이라 해도 이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일시적인 위기라면 좋겠는데, 그게.. 2024. 10. 23. 도취를 경계하라 도취를 경계하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에베소서 5:15-20) 가장 열심히, 가장 분주하게 교회생활을 하는 이들도 영적인 잠에 빠지기 쉽다. 분별력 없는 열심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2023. 10. 7. 아낌만한 것이 없다 아낌만한 것이 없다 이군, 새벽빛이 희뿌옇게 밝아오는 아침입니다. 불기 없는 사무실에 앉아 아침을 맞는 일이 조금씩 힘들어지네요. 하지만 밤과 낮의 경계선이 무너지며 아침 햇살이 조금씩 비쳐드는 이 시간, 새로운 삶을 살라고 주신 이 복된 순간이 흔감(欣感)할 따름입니다. 주위가 참 고요합니다.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충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습니다. 정겨운 얼굴들을 머릿속에 그리다가 문득 이군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하고많은 얼굴 중에 왜 이군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모딜리아니의 목이 긴 사람들처럼 목마른 표정으로 나를 찾아오는 이군이 나를 부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잔뿌리만으로 버티기엔 일상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2023. 7. 18.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 어제 모임을 마친 후 잘 들어가셨는지요? 모처럼의 만남이 참 반가웠습니다. 더 깊은 대화의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것이 영 아쉬웠습니다. 요즘 저를 사로잡고 있는 통증 때문에 잠을 자꾸 설치다 보니 몸에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컨디션 조절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찬 바람에 연신 옷깃을 여미면서도 젊은 시절을 반추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대학원 시절에 만났으니 벌써 30년도 더 되었네요. 생각해보면 미숙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참 치열했습니다. 진실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열망과 시대가 빚어내는 우울이 미묘하게 뒤섞여 우리는 비틀거리곤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사는 모습도 자리도 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같은 중심을 향해.. 2023. 7. 3. 무거운 삶 가볍게 살기 무거운 삶 가볍게 살기 잘 지내고 계시지요? 이제 장마철이 되어서인지 대기가 축축한 게 후텁지근해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몸은 나른해져요.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가 마당가에 심겨진 여러 식물들과 눈맞춤을 하지요. 요즘은 나리꽃과 백합화가 한창입니다. 키 작은 옥매(玉梅)나무에는 오종종 붉은 열매가 매달려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포도도 많이 맺혔습니다. 초가을이 되어 보라색으로 익어갈 것을 생각만 해도 흐뭇해집니다. 매실은 따지 않고 두었더니 하나 둘씩 저절로 떨어지더군요. 가을에 알밤을 줍듯 화초 사이에서 매실을 줍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매실을 손에 쥐어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아보고 그 오묘한 빛깔과 모양에 눈길을 주다가 가만히 베어물기도 합니다.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 2023. 6. 27. 돈의 전능성을 해체하라 돈의 전능성을 해체하라 독서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까?” 답답해서 던진 질문이겠지만 그 질문 속에 담긴 쓸쓸한 비애를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돈에 포획된 교회의 현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교회를 사고파는 사람들, 목사 선정 과정에서 후임자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지요? ‘저마다 절박한 사정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쉽게 정죄하지 않으려고 애써 보지만 결국 도리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의 원리가 의의 원리 혹은 신앙의 원리를 대체할 때 거룩함은 가뭇없이 스러지게 마련입니다. 부끄러움조차 없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종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부끄러움은 자기 평가적 감정입니다... 2023. 6. 19. 이전 1 2 3 4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