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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유철의 '음악정담'26

표절의 시궁창에 핀 장미 지강유철의 음악정담(26) 표절의 시궁창에 핀 장미 - 진회숙, 《음악사를 움직인 100인》- 저는 술을 못합니다. 최근에는 예의 차원에서 맥주 한 잔 정도는 사양하지 않습니다만, 이때까지 살아오며 한 번도 술에 취해 보지 못했습니다. 학창 시절을 불량 청소년 소굴인 밴드부에서 보냈고, 박정희의 피살과 전두환이 12․12 군사반란을 자행한 그 어간에 군에 입대해 최전방 부대에서 만기 제대했지만 누구의 회유나 압력에 굴해 술을 입에 댄 적이 없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내 신앙을 지키는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두들겨 맞든 고문관 취급을 당하든 겁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로 알았고, 그것이 은근한 제 자존심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근본주의 신앙과 결별한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도 .. 2015. 6. 30.
사제가 된 비르투오조 지강유철의 음악정담(25) 사제가 된 비르투오조 - 프란츠 리스트(4) - 리스트는 1865년부터 1886년에 타계할 때까지 검은 수단(soutane)을 입은 가톨릭 성직자로 살았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신기하다” 또는 “뜻밖이다”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서 신기하고 뜻밖인 것은 성직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리스트는 어려서부터 모차르트에 비견될 만큼 피아노 신동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정상을 지켰던 음악가입니다. 그런데 리스트는 가톨릭 성직자가 되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신학교를 보내달라고 반복해 졸랐던 것은 16-17살의 사춘기 때 일이었으니 한 때의 치기로 볼 수 있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흠모하여 .. 2015. 6. 23.
콘서트 나들이 울렁증 지강유철의 음악정담(24) 콘서트 나들이 울렁증 며칠 전 예술의전당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주회에 다녀왔습니다. 티켓을 처음 구매한 분이 갑자기 모 소설가 북 콘서트 사회 일정이 겹쳐 표를 후배에게 넘겼습니다. 저도 아는 그 후배 역시 연주회 당일에 메르스 긴급 대책회의에 투입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제게 왔습니다. 서울시향 연주를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인지 가물거리고, 그날의 레퍼토리 중에 라이브로 쉽게 접할 수 없는 슈만의 ‘2번 교향곡 다장조’가 들어 있어 콘서트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그날의 서울시향 연주를 시청하지 못한 대다수 독자들을 앞에 두고 곡목 해설을 길게 하거나, 전문적인 연주회 비평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실 그럴 능력도 제겐 없습니다. 때문에 지난 6월 10일의.. 2015. 6. 16.
정명훈 선생, 프란츠 리스트는 왜? 지강유철의 음악정담(23) 정명훈 선생, 프란츠 리스트는 왜? - 프란츠 리스트(3) - 프란츠 리스트의 생애와 작품은 많은 부분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왜곡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을 덜 받은 부분은 작가로서의 리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습니다. 물론 그는 19세기 중반의 유럽에서 비교 대상이 거의 없는 피아니스트였고, 로베르트 슈만, 베를리오즈, 바그너처럼 음악 평론을 본격적으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때문에 당시 유럽이 그의 글을 주목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에 대한 21세기의 평가는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가 쓴 몇몇 글들은 지금 여기에서 읽어도 속이 후련하고 배울 바 또한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리스트가 남긴 저서, 에세이.. 2015. 6. 9.
두 명의 프란체스코와 백건우 지강유철의 음악정담(22) 두 명의 프란체스코와 백건우 - 프란츠 리스트(2) 세월호 참사 100일이 되던 지난해 7월 24일,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영혼의 소나타’란 제목으로 제주항 특설무대에서 추모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연주회 10여 일 전에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백건우는, ‘부다페스트 공연을 준비하다가 세월호 소식을 접한 뒤 할 말을 잃었고,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 화가 났었다’고 느리게 말했습니다. 추모 콘서트 제안을 받았을 때 백건우는 자신의 연주회 일정을 변경했고, 파리-서울 왕복 항공료는 물론 출연료까지 포기했습니다. 곁에서 지켜 본 윤정희는 수십 년 연주 생활 중에서 남편이 레퍼토리 선정을 놓고 이번처럼 심혈을 기울인 적은 없었다고 거들었습니다. 백건우는 죽음, 상처, 치유란.. 2015. 5. 31.
음악사에 등장한 원조 ‘오빠 부대’ 지강유철의 음악정담(21) 음악사에 등장한 원조 ‘오빠 부대’ - 프란츠 리스트(1) - 음악가 평전을 쓸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고민하지 않고 프란츠 리스트(1811-1868)를 선 선택하겠습니다. 리스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나 닮고 싶은 음악가가 아닙니다. 그를 좋아하지만 바흐처럼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구스타프 말러처럼 리스트가 제 취향인 건 맞지만 그는 좀처럼 저를 미치게 만들진 않습니다. 그러니 리스트는 제게 최고일 순 없습니다. 미치게 만들지 못하는 음악이라면 2프로 부족하다는 것이 제 생각이니 말입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리스트는 외식에 가깝지 외국에 오래 체류할 때 너무도 먹고 싶은 김치나 쌀밥이나 짜장면 같은 주식(主食)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쓰고 싶은 음악가 평전은 제가 존경하고 사.. 2015.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