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요금

한희철의 얘기마을(17)


전기 요금


1070원, 지난 달 유치화 씨가 낸 전기 요금이다. 단칸방에 늙으신 홀어머니 모시고 살아가는 치화 씨, 1070원이라는 금액 속엔 가난하고 적막한 삶이 담겨있다.


지난주엔 한여름 내내 열심히 일한 치화 씨가 그동안 번 돈을 아껴 텔레비전을 샀다. 흑백 중고로 안테나 설치까지 4만원이 들었다 한다. 잘 나온다고, 이젠 다른 집으로 TV보러 안 가도 된다며 흐뭇해한다. 




이번 달부터는 전기요금이 올라가겠지만, 그깟 전기요금이 문제일까. 저녁 밥상 물리고 나란히 앉아 함께 웃는 시간이며, 일하러 갔다 늦게 돌아오는 아들 기다리며 막막하기 그지없었던 어머니 시간 보내기도 좋고, 내일은 비 올 거라며 남의 말 듣기 전에 말할 수 있어 좋고, 난생 처음 예금한 돈 30만원이 통장에 있는데 까짓 몇 푼 전기요금 더 나와야 그게 문제일까. 치화 씨 웃음이 모처럼 넉넉하다.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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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잡을 손

한희철의 얘기마을(16)


마주 잡을 손


얼마 전 원주지방 남녀선교회 지회장들이 모여 교육받는 모임이 있었다. 공문을 받고 여선교회장인 이음천 속장님에게 알렸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속장님은 한사코 안 가겠다고 한다. 손이 이래갖고 어딜 가겠냐며 손을 내민다. 형편없이 갈라지고 터진 틈새를 따라 풀물 흙물이 밸대로 배었다. 어떠냐고, 그 손이 가장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손 아니냐며 얼마를 더 권했지만, 속장님은 막무가내였다.




일찍 남편과 사별한 이음천 속장님, 혼자되어 자식 키우며 농사 지어온 지난 세월을 어찌 말로 다 할까. 속장님은 지금도 무섭게 일을 한다. ‘소 갈 데 말 갈 데 없이’ 일한다고 스스로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위기감에, 어쩌면 쉬 찾아들곤 하는 남편 없는 허전함을 일에 몰두함으로 잊기 위한 자구책으로 일에 자신을 내던져 온 삶이 흰머리 늘어난 오늘까지 계속 되어온 것이다.


흙물 풀물 밴 손, 갈라지고 터진 손을 떳떳하게 잡아 줄, 그렇게 건강하고 따뜻한 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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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믿음

한희철의 얘기마을(15)


할머니의 믿음




아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물녘 올라가 뵌 허석분 할머니는 자리에 누워 있다가 괴로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양 손으로 허리를 짚으신다. 허리가 아파서 잠시 저녁을 끓여먹곤 설거지를 미루신 채 일찍 누운 것이었다. 


할머니는 혼자 살고 계시다. 전에도 허리가 아파 병원을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는데, 병명을 기억하고 계시진 못했지만, 디스크 증세라는 판정을 받은 것 같았다. 한동안 괜찮았는데 다시 도진 것 같다고 했다. 일을 안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지만, 할머니는 당장 쌓인 일거리를 걱정했다.


주일 저녁예배. 재종을 치기 위해 조금 일찍 나갔는데, 허석분 할머니가 천천한 걸음으로 교회 마당에 들어서신다. 


“할머니, 허리 아프시면서요.”


그런 할머니 걸음으로라면 할머니 사시는 작실로부터 한 시간은 족히 걸리셨으리라. 


“그래도 하나님께 나와야 하나님이 고쳐 주시지요.”


그날 이후 할머니는 전보다도 더 꾸준히 예배에 참석하신다. 뵐 때 마다 “좀 어떠세요?” 여쭈면, “하나님 믿고 겅중겅중 뛰어 다니지요.” 하신다.


그러다가 더 도지면 어떡하나 걱정되는데, 할머니는 아예 모든 걸 하나님께 맡겼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가 젊은 전도사보다도 믿음이 더 좋으시다. 


 <얘기마을>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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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

한희철의 얘기마을(14)


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



오늘도 해는 쉽게 서산을 넘었다.

말은 멍석 펴지듯 노을도 없는 어둠

산 그림자 앞서며 익숙하게 밀려왔다.


밤은 커다란 솜이불

모두를 덮고 모두를 집으로 돌린다.


몇 번 개들이 짖고 나면 그냥 어둠 뿐,

빛도 소리도 잠이 든다.


하나 둘 별들이 돋고

대답하듯 번져가는 고만고만한 불빛들

저마다의 창 저마다의 불빛 속엔

저마다의 슬픔이 잠깐씩 빛나고

그것도 잠깐 검은 바다 흐른다.


그렇다.

밤은 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

날마다

살아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일으킨다.


검은 바다를 홀로 지난 것들을.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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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 할아버지

한희철의 얘기마을(13)


왜가리 할아버지




느긋한 날갯짓으로 내려앉아 어정어정 논가를 거니는 

한 마리 왜가리인 줄 알았어요.

널따란 논 한복판 한 점 흰 빛깔.

흔한 일이니까요.

허리 기역자로 굽은 동네 할아버지 피 뽑는 거였어요.

난닝구 하나 걸친 굽은 등이 새처럼 불쑥 오른 것이었지요.

내려앉은 새처럼 일하시다 언젠지 모르게 

새처럼 날아가고 말 변관수 할아버지. 


<얘기마을>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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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사람들

한희철의 얘기마을(12)


무심한 사람들




어스름을 밟으며 동네 아주머니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지나가던 자가용 한 대가 서더니만 창밖으로 고갤 내밀며 한 아주머니한테 묻더란다.


“저런 아주머니들도 집에 가면 남편이 있나요?”


“지들이 우리가 농사 안 지면 무얼 먹고 살려고?”


한낮 방앗간 그늘에 앉아 쉬던 아주머니들이 그 이야기를 하며 어이없어 한다. 무슨 마음으로 물었던 것일까, 아무리 지나가는 길이기로서니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가뜩이나 서러운 삶을 그런 식으로 받다니. 무식한 사람들, 무심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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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한희철의 얘기마을(12)


해바라기


교회 마당 주변에 해바라기들이 서 있다. 키 자랑 하듯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다. 너무 바투 자라 제법 솎아냈지만, 크는 키와 함께 잎 또한 크게 자라 교회를 빙 둘러 해바라기가 손에 손을 잡았다. 이파리 하나 뚝 따서 얼굴 가리면 웬만한 비엔 우산 되겠다 싶다. 기다랗게 목 빼어든 노란 얼굴들이 해를 바랄 올 가을은 더 멋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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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비 오던 날, 승혜 할머니가 심어주신 몇 포기 해바라기가 이렇게 불어난 것이다. 가을이 되어 까맣게 익은 해바라기 씨를 따로 따지 않고 그냥 두었다. 새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남은 것이 땅에 떨어진 것이었는데, 그 씨들이 겨울을 견디고 봄이 되어 싹을 낸 것이다.


작은 시작, 큰 결과. 언제나 씨 뿌리는 일은 그러하건만, 사람은 어리석다. 때론 조급하고, 때론 그 힘을 믿지 않는다.


올 해 또한 지난해처럼 보내면 내년쯤엔 동네 길가마다 해바라기가 아우성이리라.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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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극복하는 길

한희철의 얘기마을(11)


슬픔을 극복하는 길




박종구 씨가 맞은 환갑은 쓸쓸했다. 늘 궁벽한 삶, 음식 넉넉히 차리고 부를 사람 모두 불러 즐거움을 나누는 여느 잔치와는 달리 조촐하게 환갑을 맞았다. 친척 집에서 준비한 자리엔 가까운 친척 몇 명이 모여 아침식사를 했을 뿐이다. 별 차이는 없었겠지만, 환갑 맞기 얼마 전 부인마저 먼저 보낸 환갑이었기에 쓸쓸함은 더했다. 식사를 마치고 건너편 응달말 언덕배기 박종구 씨 집으로 건너가 식구들과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마침 그 날이 주일, 예배 시간 우리는 박수로써 환갑을 맞는 박종구 씨를 축하했다. 예배를 마쳤을 때, 여선교회장인 이음천 속장은 교회에서 떡을 준비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그 얼마나 좋은 생각이냐며, 우리는 서둘러 서로에게 연락을 했다.


저녁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빙 둘러 앉아 떡을 떼며 즐거움을 나눴다. 고맙다 인사하러 나온 박종구 씨는 울먹이며 찬송을 불렀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떡과 음료수, 그 역시 작고 조촐한 것이었지만 아마도 그 시간은 그중 정 깊은 시간이었지 싶다. 슬픔을 극복하는 길은 그런 곳에 있었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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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내

한희철의 얘기마을(10)


땅내



‘땅내를 맡았다’고 한다.

논에 모를 심고 모의 색깔이 검푸른 빛으로 변해 뿌리를 내린 걸 두고 모가 땅내를 맡았다고 한다.

땅 냄새를 맡았다는 말이 귀하다.

내 삶은 얼마나 땅내를 맡은 것일까.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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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풀이

한희철의 얘기마을(9)


뒤풀이 


은진이 아버지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전에 본 적이 없다. 한 동네서 6년을 같이 살아오면서도 말 한마디 속 시원히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터에 노래라니. 은진이 아버지의 노래는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게다가 흥이 더하자 덩실덩실 청하지도 않은 춤마저 추는 것이 아닌가. 이거 내가 꿈을 꾸나 싶었다. 


박수와 웃음소리, 그리고 환호소리가 노래와 춤을 덮었다. 일주일 동안의 농촌봉사활동을 마치고 마지막 날 저녁 예배당 마당에서 열린 '마을주민잔치', 이른바 뒤풀이 시간이다. 자리를 깔고 천막을 치고 푸짐한 상을 차리고, 그야말로 신명나는 잔치가 열렸다. 


모르는 대학생들이 일주일 동안이나 단강을 찾아 귀한 땀을 흘리다니, 농약을 치다 어지럼증을 느끼면서도, 풀독이 뻘겋게 오르면서도, 거머리에 물리면서도,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아가면서도, 일마치고 밤늦게 찾아와도 싫은 표정 없이 아픈 곳 어루만져 주면서 일주일을, 꿈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이젠 정리하는 시간, 마음에서 비롯된 서로에 대한 고마움이 진하게 풀려나와 하나로 엉기고 있었다. 이처럼 고마울 데가 있냐며 더 할 말을 모르겠다던 반장님의 인사, 여러분들이 흘린 땀으로 더 좋은 세상 왔으면 좋겠다고 두 내외가 큰 정성으로 준비한 기념 수건을 전하며 울먹였던 유보비 집사님, 정보인 교수님의 예쁜 노래, 새댁 아주머니의 ‘쪼루쪼루’ 노래와 학생들도 못 따라 온 멋진 춤, 노래하며 떨어본 적 없는데 오늘은 왜 이리 떨리냐며 그래도 기꺼이 노래 두 곡을 부른 종대 어머니, 학생들에게 단강을 소개한 유재흥 선생의 힘찬 노래, 광철 씨의 타령, 무엇보다 맘 놓고 기뻐한 학생들, 그들의 어리광스런 즐거움, 아름답고 믿음직한 젊음, 그날 난 '마른 땅, 그대들의 땀방울은 약비로 내리고'란 글을 읽으며 울고 말았다. 애써 마음을 누르고 글을 읽어 나가다 “햇곡식을 찧어 떡도 하고 음식도 차려 함께 흘린 땀의 결실을 기쁨으로 나누고 싶습니다.”를 읽을 때 나도 몰래 뜨거운 눈물이 솟고 말았다.

 

몇 명 왔느냐, 책임자가 누구냐, 누구네 일 갔느냐, 몇 평 일했느냐, 창피한 것도 모르고 감시차 전화나 걸어대는 이들은 전혀 알지도 생각지도 못할 멋진 시간이 강물처럼 깊은 밤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얘기마을>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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