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저를 몰라보셔도 괜찮아요”


오늘은 장애인 목욕봉사가 있는 날인데 아침부터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뭄 후 오랜만에 보는 봄비이니 단비인 것은 확실한데 혼자서 우산을 받쳐 들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단비도 씁쓸한 불편함이 될 수 있다. 목욕탕으로 이동하려니 횡단보도 앞에 휠체어를 잡고 계신 팔십이 넘은 어머니와 육십이 넘은 아들이 우산을 받쳐 든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익히 알던 분들인지라 나는 얼른 늙은 어머니대신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어머니는 봉사하러 온 고등학생의 우산을 같이 쓰고 목욕탕으로 따라오셨고 나는 아들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밀고 봄비 속을 앞서 걸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과 밀어주는 사람이 빗속을 함께 걸으면 한사람은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나는 15분동안 비를 맞았지만 어머니는 20년 세월 아들을 위해 여러 번 비를 맞으며 걸었겠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61세 아들은 마흔 살에 뺑소니 교통사고로 뇌와 척추를 다쳤고, 오랫동안 의식불명이었다가 겨우 깨어났는데 다시 아기가 되어 어머니 품으로 돌아왔다. 치료를 위해 자신이 가진 전 재산과 남은 인생을 쏟아 부은 어머니는 이제 85세 허리 굽은 가난한 노인이 되었지만, 환갑의 아들은 여전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로 살고 있다.

오랫동안 어머니는 아들을 남탕으로 보내고 나면, 본인은 여탕에 들어 오셔서 다른 장애인분들이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아들을 목욕시켜 주셔서 감사하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돕고 싶으셨던게다. 목욕봉사는 항상 봉사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하신 일은 목욕봉사팀에서 딱 필요한 도움이었다. 몇 년 전부터는 팔순이 넘은 어머니도 같이 목욕봉사를 받으시라고 권해드렸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거절하셨다. ‘내가 너무 늙어서 이제는 아들을 목욕시킬 수가 없었는데 우리 아들 목욕시켜 주시는 것도 너무 감사하다고, 나까지 신세질 수 없다’고 말하셨다. 그래도 우리는 어머니를 뵐 때마다 거듭 권해드렸고 어머니는 1년 전부터 목욕탕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목욕봉사를 받기 시작하셨다.  

 


목욕탕에서 내 인기는 연예인 못지 않다. 머리에 타월을 두른 벌거숭이로 이만한 인기를 누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내가 또 해내고 만다. 왜 인기가 좋냐고? 몸매가 비결이냐고? 묻는다면, 물론 난 잦은 산행으로 다져진 근육의 날씬한 몸을 가졌다고 말할수 있다. 하지만 내 인기의 비결은 따로 있다. 이 일도 십 년 넘게 하다보니 나름 요령을 터득해서인지 나는 때를 아프지 않으면서도 아주 시원하게 잘 민다. 한 번 나한테 때를 밀어보신 분들은 내 목욕 서비스를 다시 받길 원하셔서 선착순 대기 번호를 부여할 정도다. 그러니 이날만큼은 팬서비스 차원에서라도 나는 무대위 가수처럼 뜨거운 땀방울을 닦아가며 때를 민다.  

오늘은 세 분의 때를 밀어드렸는데 그 중 한 분으로 어머니의 때도 밀어 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 85세 어머니는 아주 작고 말랐다. 근육이 다 빠져버린 거죽만 남은 마른 몸의 때를 밀어 드리면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마른 몸의 어디에서 아들과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나오는지  의문스러웠다. 어머니와 나는 때를 밀면서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었는데 그 대화가 내 마음에 묵직한 울림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목욕을 받으면서도 “내가 이런 귀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는데 너무 감사하다”고 하셔서 나는 어머니의 볼에 내 볼을 맞댄 채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이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세요. 천국에 가시면 하나님이 이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을거예요.” 

어머니는 “내가 글도 모르는 바보라 하나님 말씀을 읽지 못해서 항상 아버지께 죄인이야. 그래도 ‘아버지는 내 마음 아시죠’하며 기도를 하고 또 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목사님 말씀 들은 거 마음에 잘 새겨 기억하고 또 기도하는거 밖에 없다”라고 고백하셨다.


난 어머님의 고백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수많은 목사님의 설교에 너무 쉽게 비평의 칼날을 들이대며 취향대로 골라 듣는 나는 설교 한편을 어머니의 반만큼이라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었던가?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원 없이 성경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 적이 있던가?  내가 누린 배움의 기회와 지식에 대해 나는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어머니는 “때밀어 주느라 힘들어서 어쩌냐! 내가 때가 많을 것인데... 내가 집사님을 너무 고생시키고 있네”라고 말하시며 자꾸 미안해 하셨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 지금 제가 때 밀어드리는 거 아니예요. 지금 ... ”하고 다음 말을 하려는데 어머니가 나보다 먼저 다음 말을 이으셨다.

“지금 나 때밀어 주는 거 하나님이 하고 계신거 알아요. 그분이 자꾸 나를 살게 해.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으면 나는 진작에 어찌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분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가 없어.”라고 고백하셨다. 난 그 순각 울컥 목이 메이면서 왈칵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어머니의 마른 몸의 때를 밀어드리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었다. 


“주님, 지금 제 몸을 당신께 내 드릴테니 지금 이 순간 주께서 12제자들의 발을 닦으신 날처럼 여기 제 앞에 앉아계신 어머니의 마른 몸을 닦아주세요. 제자들은 발만 닦으셨지만 어머니는 온 몸을 닦아주시고 이분의 마음도 닦아주시고 눈물도 닦아주세요.” 

어머니가 나에게 “지금 나 때밀어 주는거 하나님이 하시는거 알아요.”라고 말하시는 순간 나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 주님이 계신 것을 느꼈다. 주님이 여자 목욕탕에 앉아 오늘 어머니의 몸을 닦으시고, 어머니와 나의 눈물을 닦으시는 것을 느꼈다. 목욕탕의 수증기와 얼굴에서 흘러 내리는 땀 때문에 눈물을 감출 수 있어서, 나는 어머니의 때를 밀면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어머니는 목욕을 마치시면서 자신이 기억을 자꾸 놓쳐서 다음 주에 교회에서 나를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귓가에 대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저를 몰라보셔도 괜찮아요. 제가 어머니를 알아볼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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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번째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간다

  • 함께 자라갈 수 있게 귀한 얘기 나눠줘서 너무 감사해요~♡

    에버브라이드 2021.04.28 10:53


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사람에게 많은 빚을 지었다. 내가 머물 곳이 없을 때  어떤 이는 자신의 작은 방에 나를 재워 주었고, 어떤 이들은 얼굴도 모르는 내게 장학금을 주었으며, 학창시절 선생님들은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주셨다. 가난했던 나는 여러 사람들의 돌봄과 배려로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세상을 향해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다. 누군가에게 돈을 빌렸다면 이자를 포함해서 그 돈을 갚으면 그만이지만 나를 도왔던 많은 이들은 내게 돌려받고자 빌려준 것이 아니기에 내가 갚을 수 있는 형편이 되어도 나는 갚을 수가 없다. 그들 중 어떤 분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기에 어떤 식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와 빚이 있다. 나는 갚을 수 없는 많은 빚을 지고 살아왔고, 이제는 가능하면 살면서 조금씩이라도 그 빚을 탕감해 가고 싶다. 그래야 내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질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고 또 지금도 생각한다. 내가 받았던 방식대로 되갚기도 하고, 때론 다른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갚는 방식중 하나로 택한 것이 장애인 목욕봉사였다. 

오래전 내게도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는 소여물을 자르는 작두에 손이 잘려서 오른손이 없는 장애를 가지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떤 경우에도 장애를 핑계 삼지 않으셨다. 왼손 하나로 모든 집안일을 해내셨고, 농한기엔 봇짐장사도 하셨다. 


할머니가 삶의 고통들을 참아내며 그리 억척스럽게 사신 이유는 아버지 없이 자라는 손주들 때문이었다. 손주들을 잘 먹이고 싶어서 한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텃밭을 가꾸셨으며, 손주들 손에 약간의 용돈이라도 쥐어주고 싶어서 봇짐장사를 나가셨을 게다. 나는 그 할머니의 네 번째 손녀였다.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가서 시골집을 떠나던 날 할머니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 앞 골목길에 서서 손을 흔드셨다. 내 나이 20살에 할머니는 78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셨다.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할머니에게 시장에서 파는 꽃무늬 덧버선이나 몸빼가 아닌 고운 빛깔의 좋은 옷을 선물해드리고 싶었는데 할머니는 그날을 기다려 주지 않으셨다. 그 할머니 때문에 나는 손이 없는 분을 만나면 ‘손이 많이 시리시죠? 라고 물으며 잘린 손끝을 만져 보게 되고,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장애인 목욕봉사를 참여했던 첫날, 목욕탕에는 대체로 나이가 많으면서 장애나 기력저하로 인해 혼자서 목욕하기 어려우신 분들이 와 계셨다. 나는 그날 왼손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왼손과 팔을 스스로 닦을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왼팔을 어찌 닦으셨을까?’ 난 한 번도 할머니를 닦아 드린 적이 없었다. 같이 목욕을 한 적도, 때를 밀어 드린 적도 없고 그 왼손을 씻어 드린 적도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처음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할머니의 왼손을 생각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나의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에 대한 나의 미안함과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한 번의 목욕봉사는 열두 번이 되었고, 그 열두 번의 반복이 16년이 되었다. 

목욕봉사는 그냥 맘 편하게 그 시간만 채우면 될 것 같아서 별 생각 없이 시작했던 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달에 한 번 목욕탕에 가서 장애를 가진 분들의 때를 밀어드리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봉사를 하되 어떤 책임도 의무도 가지지 않고 적당히 하다가 그만두고 싶을 때 쉽게 빠져나오고 싶어서 가능한 매달 참석하지만 절대 앞에 나서지 않았고 말없이 맡겨진 일만 했다. 개선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하지 않았다. 그 일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여러 의견을 내놓다 보면 종국엔 일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되는 위치에 있게 된다. 그러면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언제든 맘이 바뀌면 도망칠 수 있게 적당히 한발 뺀  모습이 처음 목욕봉사에  임하는 나의 태도였다. 그 당시 어린 자녀들과 근무시간이 긴 약국은 나의 이런 태도에 대한 적절한 변명거리가 되어주었다. 언제라도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태도는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겉으로 드러난 내 모습은 성실해 보였지만 나만 알고 있는 나의 내면은 언제든 힘들어지면 발 뺄 생각을 하는 불성실함 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나의 마음과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비에 옷이 젖듯 봉사활동을 함께하는 다른 봉사자들을 지켜보면서 내 태도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목욕봉사는 내게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목욕봉사는 봉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대중탕에서 벌거벗은 채 장애를 가진 분들을 씻기고 때를 밀어 드리는 일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다. 몸으로 때우면 되는 봉사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이 일은 결코 몸으로만 때울 수 있는 봉사가 아니었다. 장애인 목욕봉사가 육체적으로 힘든 건 두말할게 없는 사실이다. 밖에서 남녀가 같이 하는 봉사는 힘든 일은 남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여성 목욕탕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온전히 목욕탕 안에 있는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


거기다 장애를 가진 분들은 육체적 장애뿐만 아니라 불편한 몸으로 인한 피해의식과 정신적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분들이 가진 모순적인 면도 함께 겪어야 했으며, 장애인을 전염병을 옮기거나 더러운 사람처럼 생각하는 이들의 따가운 시선과 차가운 말을 들어야 할 때도 있어서 종종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최현진 목사 작품(<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중에서)


나도 피하고 싶은 분이 있었다. 우리는 이분을 투덜이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투덜이 여사님을 뵌 지는 9년 정도 된 것 같다. 긴 머리를 하고 긴 부츠를 신고 전동 휄체어를 타시는 하반신 장애를 가지신 분이다. 처음 뵈었을 때 이분은 다른 분들과 떨어진 곳에서 홀로 목욕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개인용 목욕세트를 갖고 다니셨고, 자신은 몸에 열이 많아 온탕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하시며, 샤워부스 근처에 따로 앉아서 나중에 등이나 밀어달라고 하셨다. 그 뒤로 나는 이분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혼자 씻기를 좋아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혼자 씻기 좋은 자리를 잡아 드린 후, 다른 분들의 때를 미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이 분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비난을 듣게 되었다. 
 
“저것들은 지들 몸 닦으러 목욕탕 왔나? 이렇게 내 팽개쳐두고 지들만 웃고 떠들고 난리야! 봉사하러 왔으면 봉사를 해야지!” 

뭐 대충 이런 불평이었는데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어서 듣는 사람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7-8명 정도 되는 봉사자가 12-3명 정도의 장애인이 목욕하는 것을 도우려면 정말 힘이 든다. 옷을 벗는 것부터 탕으로 옮겨드리고 나중에 때를 밀어드리고 옷을 입는 것까지 도우려면 정수리에서 흘러내리는 짠물이 눈에 들어가고 입에 들어가도 닦을 틈조차 없을 때가 있다. 목욕봉사를 한 날은 정말 온 몸이 노곤해지곤 한다. 나름 그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그 봉사를 받으시는 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나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 뒤로 나는 이분을 더욱 피했다. 다행히 우리 팀엔 이해심 많고 헌신적인 봉사자들이 계셔서 내가 피한 자리를 누군가 항상 채우고 계셨다. 

몇 년쯤 지나 나이를 먹으니 마음이 조금 넓어졌는지 어느 날 나는 투덜이 여사님을 맡아서 최상의 서비스를 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투덜이 여사님을 휄체어로 옮겨서 여사님이 원하시는 목욕자리를 골라 드리고 몸을 비누로 깨끗이 닦아 드렸다. 여사님의 몸에 비누칠을 하면서 나는 여사님의 다리가 얼음처럼 차가운 것에 깜작 놀랐다. “여사님, 다리가 너무 차요. 오늘은 온탕에 들어가서 몸을 좀 따뜻하게 하시면 어떨까요?” 투덜이 여사님은 그러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온탕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하반신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여사님은 상체를 들어 올리셔야 온탕으로 들어 갈수가 있는데 온탕은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나는 “제가 안아서 올려 볼게요. 팔에 힘을 넣어서 엉덩이를 올려보세요!” 라고 말했다. 여사님은 힘들겠다고. 그러다 나도 다친다고 하셨지만 그 망설임에는 따뜻한 온탕에 몸을 담그고 심은 여사님의 마음이 보였다. 나는 다시 힘을 내었고 우리는 온탕으로 진입을 성공했다.  우리가 1초면 들어갈 수 있는 목욕탕 욕조가 이렇게 높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여사님이 그동안 왜 탕에 들어가지 않으셨는지 알았다. 여사님은 온탕이 싫은 게 아니라 탕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신의 장애를 사람들이 보는 게 싫으셨던 거였다. 나는 투덜이 여사님의 얼음처럼 차가운 다리를 만지면서 그분의 차가운 아픔에 마음이 닿았고, 그분과 함께 온탕의 높이를 넘어서면서 그분이 만나는 세상의 벽을 만났다.

 

그제서야 나는 자존심 강한 그분의 투덜거림에 조금은 이해의 마음이 생기면서 온유해지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투덜이 여사님의 목욕이 끝나고 다시 밖으로 모시고 나올 때 여사님은 환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오늘 내가 호강했네! 몸도 마음도 따뜻해. 너무 고마워!” 투덜이 여사님도 차가운 벽 하나를 넘어서 몸에 온기가 스미니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고 감사의 말을 나눌 수 있는 분인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목욕봉사는 서로를 벌거벗고 만난다. 봉사를 받는 사람도 봉사를 하는 사람도 벌거벗은 채 자신의 취약한 몸을 드러낸다. 우리를 꾸미는 화려한 의상도 없고 지위와 이름이 새겨진 가슴팍의 명찰도 없다. 얇은 피부 속에 뼈밖에 남지 않아서 조금만 세게 문지르면 부서질 것 같은 나약한 육체를 만지기도 하고, 작은 발목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거대한 육체를 씻기기도 한다. 그분들의 몸을 구석구석 씻기면서 보게 되는 수술자국과 간신히 아문 욕창자국을 만지게 될 때 그들의 지나온 아픔과 현재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통감하게 된다.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마주한 벽을 같이 넘어보라. 같이 넘으려고 시도하는 순간 그 아픔을 이해할 것이고,  마침내 같이 넘는 순간, 둘은 같이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목욕봉사를 통해 배웠다.

딸이 고등학생이 된 이후, 나는 가끔씩 목욕봉사에 딸을 데려 가곤 했다. 딸이 일에 참여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 일을 하면서 서로 함께 나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 늘어났다.  


우리는 투덜이 여사님과 뚱뚱이 할머니와 시각장애를 가진 복림할머니의 미소에 대해서 애기할 수 있었다. 목욕탕의 욕조가 보행장애를 가진 분들에게는 얼마나 높은 벽인지 애기할 수 있었고  휄체어를 조작하는 법에 대해서 가르치고 배울 수 있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육체와 그로인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목욕봉사는 내게 더 값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배운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느리게 성장한다. 내가 장애를 가진 분들과 목욕탕에 가는 것은 봉사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게 배움의 시간이고 성장의 시간이고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이었으며, 내가 세상에 진 빚을 갚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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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1)

몇 년 전부터 나는 친구와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약국에 매여 있는지라 시간을 자주 낼 순 없지만 그래도 계절마다 걷기 좋은 길을 찾아 종일 걷곤 한다. 올해는 석가탄신일을 이용해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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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fzari.tistory.com/2545?category=977884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

다음날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니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넘나들며 무지개 꽃을 피워낸다. 꽃천사 루루가 찾던 “행복의 무지개꽃”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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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노인의 지구별 여행기fzari.tistory.com/2536

 

화성 노인의 지구별 여행기

14평의 작은 시골약국에는 하루 종일 여러 사람이 다녀간다. 2살배기 아이부터 90세가 넘는 노인까지...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먹고 사는 일도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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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님은 사별 3년 차로 10살에 아버지를, 20살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날에 잃었다. 그리고 47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녀는 47살에 또다시 찾아온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 좌절과 희망이 담긴 글을 써서 사별 카페에 공유했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희망이 담긴 글은 사별 카페의 많은 사별자들에게 공감의 위로와 더불어 희망과 도전을 주었다. 얼마전 사별 카페에서 만난 네 분과 함께 사별 이야기를 담은책 <나는 사별하였다>를 출간하였다. 이제는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사는 날 동안 봄바람의 꽃잎 처럼 삶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화성에서 작은 시골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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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

다음날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니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넘나들며 무지개 꽃을 피워낸다. 꽃천사 루루가 찾던 “행복의 무지개꽃”은 오늘 우리가 만난 햇살을 잠시 바라볼 여유만 있어도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테를링크의 책 ‘파랑새’에서도 주인공 틸틸은 결국 자신의 집에서 파랑새를 찾지 않았던가. 

1코스는 접근성이 좋고 지리산 둘레길의 시작인지라 걷는 이들이 많다. 혼자 걷는 이부터 수십 명의 산악회까지 가족, 연인, 직장동료 등 길을 걷는 이들의 관계도 다양해보인다. 100년도 못사는 인생에서 우리는 참 다양한 인연의 거미줄을 치고 산다. 그 중 대부분은 돌보지 못한 세월에 사라지고, 일부는 크고 작은 풍랑에 끊기고, 남은 몇 가닥 거미줄만이 오가며 엮이어 실타래가 되고 동아줄 인연이 된다. 가끔은 동아줄 인연인줄 알았던 사람이 무심한 세월에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희미한 기억으로 남게 될 때 나는 묘한 허무함과 슬픔을 느낀다. 길이나 사람이나  왕래하는 걸음 없어지면 사라지는 법이다. 그러니 아끼는 사람과 길하나 만들어 두며 살고 싶거들랑 꼭 봐야 할 일 없고 꼭 해야 할 말 없어도 ‘보고 싶다고. 잘 지내느냐’고 속마음 한 걸음이라도 오가는 정성이 필요하다. 그리 대단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닌데 나또한 그 마음 한 걸음 인색한 삶을 살고 있으니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진/김승범

1코스의 반은 숲을 지나 산을 오르는 길이고 구룡폭포를 분기점으로 나머지 반은 시원한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라 중간 중간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쉴 수 있어 조금은 여유를 갖게 하는 길이다. 봄 가뭄에 계곡물이 적다 싶지만 그래도 지리산이라 이만큼 흐르는 물을 볼 수 있지 싶다. 숨을 몰아쉬며 걷는 이, 세상일은 다 잊은 듯 흐르는 물에 발 담그고 노는 이,  구름다리 흔들며 장난을 치는 이, 기억이 되어줄 사진을 찍는 이,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딛는 이. 

 

나의 오감으로 사람을 느끼지만 그것이 시끄러운 소음처럼 와 닿지 않음은 큰 산이 길에 속한 모든 이들의 소리를 품고 그들을 큰 품에 안았음이리라. 큰 산과 큰 사람은 만 가지 세상사를 품고도 시끄럽지가 않다.

1박 2일 동안 6만보가 넘는 산길을 걸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길 위에서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찔레꽃향기 따라, 때죽나무 흰 꽃길 따라 봄의 끝자락을 걸었다. 

 

생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매일을 걷고 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인지라 내 발자국을 따라 선을 그어보면 보수적 테두리의 작은 영역이 만들어진다. 그 안의 내 인생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나는 이 공간에 지루함을 느낀다. 그 안에 아직도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가 있고, 더 열정적으로 노력하며 배워야할 부분들이 있음을 알면서도  어찌해볼 수 없는 권태로움을 느끼며 시들어 갈 때가 있다. 

 

그 지루함과 권태로움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나는 가끔씩 테두리 너머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걷는다. 낯선 길에서 느껴지는 새로운 감각과 생각은 시들어가는 나의 일부에 활력을 준다. 그 힘은 테두리안 내 일상에 새로운 균형감을 주고, 걸음의 방향을 바꾸어 삶의 확장성을 준다.  생의 한가운데... 그래서 나는 더 오래,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1)fzari.tistory.com/2538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1)

몇 년 전부터 나는 친구와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약국에 매여 있는지라 시간을 자주 낼 순 없지만 그래도 계절마다 걷기 좋은 길을 찾아 종일 걷곤 한다. 올해는 석가탄신일을 이용해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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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노인의 지구별 여행기fzari.tistory.com/2536

 

화성 노인의 지구별 여행기

14평의 작은 시골약국에는 하루 종일 여러 사람이 다녀간다. 2살배기 아이부터 90세가 넘는 노인까지...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먹고 사는 일도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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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번째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간다fzari.tistory.com/2550

 

나는 세 번째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간다

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사람에게 많은 빚을 지었다. 내가 머물 곳이 없을 때  어떤 이는 자신의 작은 방에 나를 재워 주었고, 어떤 이들은 얼굴도 모르는 내게 장학금을 주었으며, 학창시절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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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님은 사별 3년 차로 10살에 아버지를, 20살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날에 잃었다. 그리고 47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녀는 47살에 또다시 찾아온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 좌절과 희망이 담긴 글을 써서 사별 카페에 공유했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희망이 담긴 글은 사별 카페의 많은 사별자들에게 공감의 위로와 더불어 희망과 도전을 주었다. 얼마전 사별 카페에서 만난 네 분과 함께 사별 이야기를 담은책 <나는 사별하였다>를 출간하였다. 이제는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사는 날 동안 봄바람의 꽃잎 처럼 삶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화성에서 작은 시골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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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1)

사진/김승범

 

                                                     
몇 년 전부터 나는 친구와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약국에 매여 있는지라 시간을 자주 낼 순 없지만 그래도 계절마다 걷기 좋은 길을 찾아 종일 걷곤 한다. 올해는 석가탄신일을 이용해 1박 2일 코스로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작년에 2박 3일 동안 지리산 둘레길 중 운봉에서 동강구간를 걸었는데 그 느낌이 좋아서 ‘지리산 둘레길 완주’를 나의 버킷리스트에 추가시켰다. 그러니 다리 후들거리기 전에 틈틈이 찾아가야 할 곳이 지리산이 되었다. 5월 21일 새벽 5시 30분 구례구역행 KTX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서두른 덕분에 도시락까지 챙기며 여유롭게 기차에 올랐다. 호남선KTX가 생기고 서울에서 남원까지 2시간이면 가는 세상이 되었다. 


예전엔 고향인 정읍과 서울을 오갈 때 4시간씩 걸리곤 했는데 이젠 1시간 30분이면 갈수 있단다. 참 빠른 세상이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느리게 사는 법>이란 책을 보고 빌릴까 말까 고민했는데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에 느림을 택하고 싶어진다면 난 세상을 역행하거나 뒤쳐지는 사람이 될까?  빠른 세상이 좋으면서도 싫다. 


기차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다보니 금세 구례구역이다. 광명역에서 구례구역까지 1시간 50분이 걸렸는데 우습게도 구례구역에서 둘레길23코스가 시작되는 산동면까지 2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산동면엔 편의점은커녕 허름한 구멍가게조차 없다. 구례구역 슈퍼를 그냥 지나쳐온 것이 못내 아쉽다. 어쩌겠는가! 돌아갈 수 없다면 그냥 가야지. 예상대로라면 오늘 8시간은 족히 걸어야한다. 5월의 해는 길지만 그래도 산길이니 부지런히 걸어야 해지기전에 주천면에 도착할 수 있다. 부디 중간에서 맛있는 밥집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처음 가본 길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솔직히 별 생각은 없다. 그저 오늘 마주할 길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과 설렘! 


누군가는 생각을 하기 위해 길을 걷고 누군가는 생각을 버리기 위해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들이 내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나는 생각을 하기 위함도, 생각을 버리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순간을 호흡하며 걷는 것이 좋을 뿐이다. 지리산은 생각 없이 걷다가 사로잡힌 순간에 잠시 머물러 숨을 들이쉬기에 딱 좋은 길이다. 그것이 내가 지리산을 걷고 있은 이유다. 이것도 흔쾌히 함께 걸어주는 친구가 있어서 가능한 일인데 그러고 보니 나는 참 복된 인생이다. 이 길을 걷기로 작정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런 친구를 가진 복을 깨닫지 못했으리라. 


인생 반을 살고 나서야 겨우 알아지는 것은 ‘용기를 쥐어짜 한걸음 내딛어 삶의 반경을 넓힐수록 깨달아지는 것이 생기고, 그것이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도전과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삶의 매순간 용기를 내야겠다.


한참을 걸어 큰 나무 밑 정자가 있는 현촌마을에 도착했다. 예전엔 이곳에 100가구쯤 살았다는데 지금은 40가구도 안 남았단다. 그것도 요즘 비어가는 시골을 생각하면 나은 형편일지도 모른다. 어느 시골마을엔 청년회장님 나이가 65세라고 하니 어쩌다 아이가 태어나기라도 하면 아이는 온 동네의 웃음이고 꽃이란다.


길 위로 어릴 적 자주 먹던 덜 익은 오디와 산딸기가 보인다. 변변한 구멍가게도 없는 시골마을 아이들은 5-6월이면 들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간식거리를 찾았다. 아카시아꽃, 삐비, 찔레줄기, 오디, 산딸기... 어쩌다 야생하는 딸기밭이라도 발견하면 대박이다. 오디는 6월-7월 최고의 간식이다. 어른이 되어도 오디를 보면 입안에 침이 고인다. 그리 좋아하는 과일도 아니건만 아마도 어린 시절에 새겨진 반사반응인가보다.  


주변으로 산수유나무가 많은 것을 보니 이 길은 산수유 꽃이 피는 3월에 걸으면 멋지겠구나 싶다. 마을길 지나 시냇물이 흐르는 편백나무 숲을 가로지르고 때죽나무 흰 꽃잎이 뿌려진 고운 숲길을 사뿐히 걷는다. 숲을 벗어나니 차 1대 다닐 정도로 닦여진 길이 나오고 넘어야할 밤재 고개가 보인다. 누군가 편히 다니고자 닦아놓은 길인데 땀 씻을 물 한 방울 없고 쉴만한 그늘조차 없는 야박한 그 길이 나에겐 팍팍하다.  

 

오후 2시가 넘도록 우린 밥집을 찾지 못했다. 나이 들수록 밥심이라 했는데 아침을 6시에 먹고 여직 굶으려니 이젠 걸을 힘마저 없다. 밤재를 넘어 내려오니 커다란 아카시아나무아래 양봉통 옆에 선  남자가 “아가씨들 꿀물한잔 하고 가유!”라며 손짓을 한다. 위험한 사람들은 아닐지 살짝 인상을 흝어 내려 보지만 사실 난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볼 심안이 없다. 마흔이 넘어도 나는 아직 사람 속을 모르겠다. 어쨌든 중년의 우리를 아가씨라고 불러주는 그들에게서 진한 꿀물과 컵라면까지 얻어먹으며 꿀벌과 양봉에 대해 한수를 배웠다.

 

역시 세상은 교실보다 넓고 교과서보다 리얼리티가 있다. 우리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교실 밖 세상에서 배우면서도 정작 우리 아이들은 왜 좁은 교실 안에 묶어 두려는 걸까?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해야하는 어른의 책임을 쉽게 하려는 꼼수이자 합리화는 아닐까? 실패와 고통만한 스승이 없건만 겁쟁이 엄마는 자녀를 그 스승 앞으로 보낼 용기가 없다. 정금같은 자식은 두려움을 삼킬 줄 아는 부모의 용기에서 시작될지도 모르는데 자식을 걸고 용기를 내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고개를 넘어 마을로 접어드니 100년쯤 됨직한 옛 기와집과 선이 고운 배롱나무가 있다. 그 품은 사연을 추측하려니 나무 옆 정자에 앉은 할머니가 ‘저것은 문중 제각인디 문중이 기우니께 요세는 관리가 지대로 안 되지. 배롱나무는 천년이 넘은 보호수인디 내가 열여섯에 아랫마을에서 시집 올 때도 키가 저만혔는디 팔십이 넘어도 여적 저만혀’ 라며 마을이 품은 역사 한 자락을 풀어주신다. 팔순노인의 기억은 머지않아 땅에 묻혀 사라지겠지만 배롱나무 천년 나이테는 열여섯 새색시의 연지곤지와 산골 아낙의 거친 손을 기억해주었으면 싶다.


저녁 6시가 넘어 오늘 목적지인 주천면에 도착해 인심 좋은 밥상 앞에 앉아 시원한 맥주한잔을 들이키니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온다. 허름하지만 나그네 하룻밤 머물기엔 그리 나쁘지 않은 잠자리가 있고 허물없는 벗이 함께하니 더없이 좋은 하룻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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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

다음날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니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넘나들며 무지개 꽃을 피워낸다. 꽃천사 루루가 찾던 “행복의 무지개꽃”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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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평의 작은 시골약국에는 하루 종일 여러 사람이 다녀간다. 2살배기 아이부터 90세가 넘는 노인까지...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먹고 사는 일도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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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사람에게 많은 빚을 지었다. 내가 머물 곳이 없을 때  어떤 이는 자신의 작은 방에 나를 재워 주었고, 어떤 이들은 얼굴도 모르는 내게 장학금을 주었으며, 학창시절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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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님은 사별 3년 차로 10살에 아버지를, 20살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날에 잃었다. 그리고 47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녀는 47살에 또다시 찾아온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 좌절과 희망이 담긴 글을 써서 사별 카페에 공유했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희망이 담긴 글은 사별 카페의 많은 사별자들에게 공감의 위로와 더불어 희망과 도전을 주었다. 얼마전 사별 카페에서 만난 네 분과 함께 사별 이야기를 담은책 <나는 사별하였다>를 출간하였다. 이제는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사는 날 동안 봄바람의 꽃잎 처럼 삶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화성에서 작은 시골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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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노인의 지구별 여행기


14평의 작은 시골약국에는 하루 종일 여러 사람이 다녀간다. 2살배기 아이부터 90세가 넘는 노인까지... 나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먹고 사는 일도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른 사람들이 오늘도 약국 문턱을 넘나들며 인사를 나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약국 출입문 옆에 걸어 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약국에 오는 이들이 보게 될 글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많이 읽게 된다.


약국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을 습관처럼 무감각하게 대하거나, 매출을 위한 돈줄로 보게 되는 마음을 경계하고, 또 내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길 바라며 되새겨 읽게 되는 글귀이다. 평소 나는 약국을 찾는 이들에게 여러 질문을 건네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우리는 동네 골목길에서 만난 듯 소탈하게, 어느 집 부엌의 밥 짓는 냄새만큼이나 고소하게, 봄의 들꽃처럼 수수하게, 때로는 100분 토론처럼 진지하고 격렬하게 인사를 건네고 삶에 대한 애기를 나눈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음식처럼 다양한 맛을 낸다. 어느 대화는  달콤하고, 어느 대화는 씁쓸하고 또 어떤 이는 담백하다. 그리고 어느 대화는 길게 여운을 남기는 뒷맛을 지녔다.

 



오늘은 된장에 묻힌 봄나물을 투박하지만 예쁜 분청사기에 담아놓은 듯 한 맛을 내는 안 장로님 애기를 해주고 싶다. 올해 나이 84세, 네 딸의 아버지요 홀로되신지 40년이 지났다. 6.25전쟁 때 북쪽에서 피난 내려오셔서 화성에 살게 되셨는데 가진 것 하나 없어 남의 집 머슴부터 온갖 일을 하셨단다. 배운 것 이라곤 땅을 일구는 것뿐이어서 젊어서부터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고 그렇게 한평생을 농사꾼으로 사셨다. 10년 세월 오며가며 전해들은 애기로 가늠해 짐작컨대 이분 또한 실로 어머 어마한 인생을 살아내신 듯 보인다. 

줄줄이 어린 딸들을 두고 아내가 죽자 어린 딸들과 젖먹이 갓난아이까지 혼자 키울 수가 없어서 막내는 입양을 보냈고, 남은 4명의 딸들을 키우다 보니 그 세월이 하루처럼 가버렸단다.

 

사진/김승범


막내딸 정분씨는 아직 미혼으로 아버지와 살고 있는데 몇 해 전부터 아버지를 모시고 1년에 1-2번씩 가까운 곳으로 해외여행을 간다. 처음엔 싫다 하시던 장로님이 아이처럼 들뜬 모습으로 들려주시는 여행담은 글 좀 쓰는 여행 작가의 베스트셀러 못지않은  재미가 있다.

“내가 말야, 이번에 대만에 다녀왔거든. 근데 거기 바닷가에 요상스런 돌밭이 있는데 구멍이 숭숭 뚫린 돌들이 버섯맹키 생긴것도 있고, 여자얼굴 같은 것도 있고... 근데 고것들이 사람이 맨든게 아니리 바람이 그랬다드만. 대만 바람은 기술도 좋아.  같이 간 사람들이 자꾸 노래를 하라고 해서 내가 또 버스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갔어. 한곡만 할라 했는데 박수를 자꾸 쳐가지고 내가 또 불렀지. 온천을 갔는데 말야 늙은 살가죽도 온천물로 씻으니 보들보들 헌 것이 아적 쓸만허데. ” 


화성 노인의 지구별 여행기는 자꾸 웃음이 난다. 

장로님은 고추농사를 전문으로 하신다. 2월이 되면 비닐하우스에 고추모종을 키워서 내다팔고 1년에 3000-4000개의 고추를 심는다. 이른 봄부터 시작된 고추농사는 10월이 되어야 끝나는데 그 많은 고추를 혼자서 심고 따고 말리고 판매까지 하신다. 나이가 드시면서 조금씩 줄이기는 하셨지만 작년에도 2500개나 심고 거두셨다. 오랫동안 고추농사를 하셨으니 장로님만의 단골고객들이 있어서 그렇게 많이 심고 거두어도 완판을 하신다. 장로님은 가장 좋은 시기에 나온 좋은 고추는 따로 추려서 제일 먼저 교회에 가져가신다. 올해 나이 84세의 노익장은 아직도 동네 최고의 고추농사꾼이다. 

하지만 내가 장로님께 놀라는 것은 노익장의 고추농사 때문만은 아니다. 내게 감동을 주고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은 그분이 내게 수시로 들려주시는 성경구절들과 찬송가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성경구절들을 줄줄이 암송하시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분이 정녕 84세인지 의심스럽다.


일주일동안 암송하고 싶은 성경 한 장을 정해서 일하는 중에... 걷는 중에.. 먹는 중에... 하루 종일 수시로 암송을 한다고 하신다. 장로님은 “주의 말씀이 꿀처럼 달다”고 말씀하시며 어린 아이 같은 표정을 하고 암송한 성경구절을 들려주시곤 한다. 

또 장로님이 불러주시는 찬송가는 정말 압권이다. 장로님만의 스타일로 재편곡된 찬송가는 ‘이 찬송가가 내가 알던 그 곡인가?’싶어 새롭고 우습지만, 찬송가를 부르시는 장로님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 미소를 짓게 된다. 


장로님을 볼 때마다 내 안에 떠오르는 예수님의 한마디는 누가복음 18장 16절이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장로님은 오늘도 내게 성경을 암송해주고 찬송가를 불러주시며 말씀하신다. “어디서...누구앞에서 부르든 찬송가를 대충 부르면 못써! 모르면 다시 배우고 다시 연습해서 지대로 정성껏 불러야제.  하나님은 태진아나 송대관이 노래하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께 찬송가를 잘 불러드리는 걸 더 좋아하신단 말여.”라며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맞다! 나 또한 대한민국의 유명한 아이돌이 불러주는 노래보다 내 아이들이 나를 위해서 정성껏 불러주는 한곡의 노래에 눈물이 나고 웃음이 나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러시리라.


하나님이 84세의 안 장로님과 44세의 이정숙을  함께 보고 계신다면 누구를 더 사랑스럽게 바라보실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나는 장로님보다 40살이나 젊지만 장로님처럼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한다. 그래서 장로님의 그 마음과 그 표정이 부럽다. 장로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그 뜨겁고 순수한 애정 앞에서 나는 매번 기가 죽는다.

오늘도 유리약국엔 사람들이 다녀가고 이야기가 남겨진다.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1)fzari.tistory.com/2538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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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fzari.tistory.com/2545

 

나는 더 먼 길을 걷는 꿈을 꾼다(2)

다음날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들어가니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넘나들며 무지개 꽃을 피워낸다. 꽃천사 루루가 찾던 “행복의 무지개꽃”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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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번째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간다fzari.tistory.com/2550

 

나는 세 번째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간다

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사람에게 많은 빚을 지었다. 내가 머물 곳이 없을 때  어떤 이는 자신의 작은 방에 나를 재워 주었고, 어떤 이들은 얼굴도 모르는 내게 장학금을 주었으며, 학창시절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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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님은 사별 3년 차로 10살에 아버지를, 20살에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한날에 잃었다. 그리고 47살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녀는 47살에 또다시 찾아온 사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 좌절과 희망이 담긴 글을 써서 사별 카페에 공유했고, 그녀의 솔직한 고백과 희망이 담긴 글은 사별 카페의 많은 사별자들에게 공감의 위로와 더불어 희망과 도전을 주었다. 얼마전 사별 카페에서 만난 네 분과 함께 사별 이야기를 담은책 <나는 사별하였다>를 출간하였다. 이제는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사는 날 동안 봄바람의 꽃잎 처럼 삶의 풍경 안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인생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화성에서 작은 시골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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