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3)

 

한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한창 피었던 난 꽃이 졌다. 붉고 진한 향기를 전하더니 이제는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언제 향기를 전했냐고 시치미를 떼듯이 누렇게 말라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더 마를 것이 있다는 듯이 꽃의 형체로만 남았다. 시든 꽃에서는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는다.

 

묵중하면서도 코끝을 찌르던 향기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향기의 근원을 찾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들었던 향기이기도 했다. 누군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열정의 탱고 춤을 추듯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 어둠 속에서 세월을 잊고 포도주 빛깔을 익히듯이 향기는 그렇게 은은히 전해졌다.

 

 

 

 

분명 지는 꽃과 함께 향기는 사라졌다. 시든 꽃에서는 어떤 향기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향기는 마음 끝에 남아 있다. 향기는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니다. 꽃이 피어있는 동안 전해주었던 향기는 남아 있다. 그 때 그 향기를 떠올리면 향기는 기억을 일깨우며 살아온다. 사라져서도 남는, 복된 향기!  

 

향기의 근원을 찾아서 만나게 되는 존재가 있다는 것, 한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것, 잠깐 피었다 사라진 난향이 전해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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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2)

 

 골 빠지는 일

 

오랜만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였다. 무엇 그리 바쁘다고 자주 연락도 못 드리며 산다. 이런 저런 안부를 묻고 대답을 하는데, 어머니가 물으신다.


“한 목사님, 요즘도 교차로에 원고 써요?”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도 말을 높이신다. 세월의 고개 아흔이 넘자 모두가 고맙고, 모두를 존중하고 싶으신 것 같다. 요즘에도 쓰고 있다고 대답을 하자 무슨 요일에 실리는지, 몇 년째 쓰고 있는지를 다시 물으신다.


“수요일에 실리고요, 원고 쓴 지는 23년쯤 된 것 같은데요.”

 

 


 

길을 가다 만나게 되는 생활정보지 중에 <교차로>가 있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란에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을 쓴다. 전국적으로 발행이 되고, 한국인이 많이 사는 외국의 대도시에도 발행이 되는 정보지로, 일주일에 한 번씩 원고를 쓴지 20년이 넘었다.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신앙과 세상 사이에 다리 하나를 놓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고 이어온 일이었다. 23년이라는 말을 듣고는 어머니는 푸우, 한숨부터 내쉬신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보태신다.


“글 쓰는 게 골 빠지는 일인데...”


아흔이 넘은 어머니에게는 자식들이 하는 모든 일이 다 안쓰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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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1)

 

 더는 못 볼지도 몰라

 

심방을 하며 교우들의 삶의 자리를 찾아간다. 어찌 삶이 평온하기만 할까, 고되고 험한 삶도 적지가 않다. 높은 곳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뜻에서 붙여졌다는, 달동네라는 말은 낭만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실상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사전에서는 달동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허가 주택과 노후 불량 주택이 밀집된 도시 저소득층 밀집 지역을 말하며, 산동네라고도 한다. 6 · 25 전쟁에 따른 이재민들에게 무허가 건축 지대의 지정을 시작으로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이농으로 생긴 도시 저소득층을 도시 외곽의 구릉 지대에 집단으로 이주시킴으로써 만들어졌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 있는 언덕 위 긴 골목 끝에 있는 권사님 집도 그랬다. 세상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작은 방에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연로하신 권사님은 눈과 귀가 어두운데, 그나마 한쪽 눈에 안대를 댔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하늘의 위로, 예배를 드리는 마음은 간절해진다.

예배 후 권사님이 준비한 음료를 마시는데, 바라보니 벽에 웬 글씨가 붙어 있다. 읽어보니 찬송가 가사였다. 달력 뒷장에 권사님이 써서 붙여놓은 것이었다.


“찬송가를 적으셨네요?”


권사님께 여쭸을 때 권사님이 대답했다.


“눈이 점점 나빠져서 더는 못 보겠다 싶기에 그래도 눈이 보일 때 적었어요.”  

 

눈이 흐려져 더는 못 볼지도 모르는 시간을 앞두고 적은 찬송가 가사는 “험한 산길 헤맷때 주의 손 굿끼잡고 찬송하며 가리”였다. 주님은 바로 읽으시리라, 바로 들으시리라, 그리고 권사님 손 굳게 잡아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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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0)

 

 사람이 소로 보일 때

 

전해져 오는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옛적 사람이 이따금씩 소로 보일 때가 있었다. 분명 소로 알고 때려 잡아먹고 보면 제 아비일 때도 있고 어미일 때도 있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한 번은 한 사람이 밭을 갈다가 비가 쏟아져 처마 밑으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는데, 웬 송아지가 따라 들어오더란다. 돌로 때려 잡아먹고 보니까 웬걸, 자기 아우였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엉엉 울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괴로운 마음에 보따리를 싸들고 길을 떠났다. 사람이 소로 보이지 않고 사람으로만 보이는 곳을 찾아 길을 나선 것이다. 넓은 세상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느라 강물에 떠내려가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고,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어 호랑이의 밥이 될 뻔도 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잡히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어느 날 파란 바람이 부는 한 마을에 이르렀는데 그곳 사람들은 사람을 소로 보아 잡아먹는 일 없이 너무나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바로 마을을 만난 것이었다.


 

 

나그네는 마을 어귀에서 만난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 사람들은 사람을 소로 알고 잡아먹는 일이 없으니 희한하군요.” 그러자 그 노인은 껄껄 웃으며 “웬걸요. 우리도 옛날에는 사람을 소로 알고 잡아먹는 일이 이따금 있었는데, 사람들이 파를 먹으면서 눈이 맑아져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소가 소로 보여서 그런 일이 없어졌답니다.” 하는 게 아닌가. 나그네는 파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노인은 그를 데리고 파밭으로 가서 파를 보여주었는데, 파 씨를 얻은 나그네는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자기 집 텃밭에 파 씨를 심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그를 만나려고 이웃의 친구들이 찾아오자 반가운 마음에 “어서들 오시게. 내가 보고 온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지.” 일어서서 맞이하려는데 친구들 눈에는 그가 소로 보였다. “웬 소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군!” 하면서 도끼를 번쩍 드니 “아니야, 나는 소가 아니라 자네들의 친구일세.” 소리를 쳤지만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친구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얼마 후 텃밭에서는 파란 싹이 돋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향기에 이끌려 파를 뜯어먹었다. 그런데 파를 먹은 사람들은 눈이 맑아져서 더 이상 사람을 소로 보는 일이 없어졌고, 그 후로는 아무도 사람을 소로 알고 잡아먹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게 하는 힘이 어찌 채소 파에 있을까, 필시 파를 먹고 눈물을 흘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을 소로 보고 서로를 잡아먹는 끔찍한 시간을 끝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서로 뜨거운 눈물을 흘릴 때이다. 잃어버린 눈물을 되찾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사람으로 존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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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9)

 

 

잊을 수 없는 만남  
 

그날 밤 그 만남은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남아 있다. 먼 곳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차에서 급한 전화를 받았다. 권사님의 아들이 다쳐 수술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오는 대신 병원으로 달려갔다. 권사님을 만난 것은 수술실 앞이었다. 순대 만드는 일을 하는 아들이 기계를 청소하던 중에 손이 기계에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기계를 멈췄을 때는 이미 손이 많이 으스러진 상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듣는 내가 그러니 어머니 마음은 어떠실까, 수술실 앞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더디 무겁게 흘러갔다. 어느 순간 중 권사님이 당신 살아오신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 했다. 참으로 신산(辛酸)했던 삶, 권사님은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당신이 살아오신 지난 시간을 모두 이야기했다. 얼굴이 고우셔서 누가 보아도 이 분께 무슨 근심걱정이 있을까 싶은데, 권사님의 인생은 굽이굽이 눈물어린 가시밭길이자 험곡(險谷)이었다. 권사님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눈물에 젖은 내용들이었다.

 

 

 

 

아들이 수술을 받는 동안 수술실 앞에서 담임 목사에게 털어놓는 지난날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나는 권사님께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드렸다.


“부족한 사람을 믿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제 마음에만 담아 둘게요. 그리고 권사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오늘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권사님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권사님은 제게 여전히 소중한 분입니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이어진 이야기,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내게는 화인처럼 남아 있다. 권사님도 그러시지 않으실까 싶다. 이야기 속에는 슬픔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는 법, 이야기를 나눈 그 시간이 부디 상처와 아픔과 회한을 덮는 따뜻한 위로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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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8)

 

 다만 당신께로 갈 뿐입니다
  


Equal-Time Point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서진교 장로님을 통해서였다. 창천감리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였다. 숙소에서 교회까지, 교회에서 숙소까지 나를 태워다 주신 분이 서장로님이었다. 장로님은 새벽에도 정한 시간에 맞춰 숙소로 찾아와 교회로 가는 수고를 해주셨다. 더없이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는데, 덕분에 장로님과 차를 타고 오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장로님은 비행기를 모는 항공기 조종사 출신이었다. 삶의 경험이 전혀 다른 분들을 만나면 귀담아 들을 이야기가 많다. 장로님이 들려주는 비행기 혹은 비행에 관한 이야기는 신선했고 재미있었다.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가 ‘불환귀점’이었다. 언젠가 읽은 글에 불환귀점이라는 말이 있었다. 청년부 수련회에서는 그 말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그런 말이 맞는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사전에서 찾을 수가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글에서는 ‘불환귀점’을 비행기가 일정한 지역을 지나가면 남아 있는 연료의 양 때문에 출발지로 귀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목적지로만 날아갈 수밖에 없는 한 지점을 의미한다고 되어 있었다. 신앙적으로도 의미 있다 여겨져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날 장로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이 EPT였다.

장로님 대답에 의하면 ‘불환귀점’에 해당하는 전문 용어가 있었는데, 바로 EPT였다. Equal-Time Point의 약자였는데, 이 말을 직역하여 ‘등시점’이라 옮긴 곳도 있었다. EPT는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과 출발지로 회항하는 시간이 같은 지점’을 의미하는 말로, 유사시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하여 운항을 결정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된다. ETP를 확인하여 출발지로 돌아갈 것인지, 목적지 또는 대체 비행장에 착륙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향을 어디로 정할지 결정하는 기준이 거리가 아니라 시간인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비행기 연료의 소모량은 거리를 기준해서가 아니라 시간에 의해 결정이 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신앙이란 Equal-Time Point를 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는 이전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다만 당신께로 갈 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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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7)

 

 

 오덴세와 조탑리  
  

독일에서 살 때 몇 분 손님들과 함께 덴마크를 다녀온 적이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9시간 정도를 달리자 덴마크 땅이었다. 동행한 분들은 아무런 검문이나 검색 없이 국경을 통과하는 것을 너무나도 신기하게 생각했다. 


덴마크를 찾은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오덴세 방문이었다. 오덴세는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고향이다. 클림트와 모차르트를 빼고 비엔나를 생각하기가 어렵듯이, 오덴세 또한 안데르센을 빼고는 말할 수가 없는 도시였다. 골목 구석구석까지 안데르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데르센이 죽었을 때 덴마크의 모든 국민들이 상복을 입고 애도했을 만큼 그를 아끼고 사랑했다니 당연한 일이겠다 싶기도 하다. 


안데르센 기념관에는 안데르센에 관한 온갖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가 그렸던 그림들과 종이를 오리는데 사용한 가위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밧줄도 있었는데, 사연이 재미있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안데르센은 언제라도 화재가 나면 밧줄을 타고 탈출하려고 늘 밧줄을 챙겨 다녔다는 것이다. 


넓은 잔디밭에 조성된 야외공연장에서는 안데르센의 동화가 뮤지컬로 공연되고 있었다. 세계 각처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물론 주변에 사는 이들이 아기들을 데리고 나와 잔디밭에 편히 앉아 안데르센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날 나는 전시관에 놓인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이야기 속에는 꿈이 있네요. 사랑도 있고요. 왜일까요, 이곳에서 권정생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건요.”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는 작은 흙벽돌집이 있다. 창고라 해도 허름해 보이는, 지극히 작고 낡은 흙벽돌집이다. 그 집의 주인은 지금 집에 없다. 방에 들어온 생쥐한테도 먹을 것을 나눠주는 삶을 살다가 하늘나라로 떠났기 때문이다. 시골교회 예배당 종지기로 살면서 자기처럼 가난하고 불쌍한 것들을 눈물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며 빛나는 동화를 썼던, 바로 권정생이 살던 집이다. 


 


 

이번에 경북북지방 연합성회를 인도하기 위해 영주를 다녀오며 그곳 목회자들로부터 권정생 이야기를 들었다. 권정생은 정말로 비렁뱅이였다고 한다. 폐병이 든 거지여서 지금도 권정생을 만났던 사람들은 그를 문전걸식을 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종을 치는 조건으로 일직교회 구석방 하나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마음 아픈 이야기도 있었다. 권정생이 남긴 전 재산과 그 앞으로 나오는 인세 모두를 북한 어린이를 돕는 일에 쓰도록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일을 못마땅하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반대를 하는 바람에 결국은 권정생 기념관이 조탑리에 세워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오덴세와 조탑리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극과 극처럼 다르다. 권정생에겐 차라리 덩그마니 버려진 듯 남아 있는 조탑리 흙집이 잘 어울린다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프고 슬프다. 외롭고 불쌍한 것들 품고 살더니, 끝까지 외롭고 불쌍한 권정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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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6)

 

 심방  


  
심방을 시작했다. 이른바 ‘대심방’이다. (그렇다고 ‘소심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심방을 흔히 대심방이라 부른다) 요즘은 세태가 바뀌어 가정으로 찾아가는 심방이 갈수록 줄어드는 형국이다. 새로 등록하는 교우 중에서도 가정 심방을 받기 원하는 이들은 소수가 되었다.


생각하다가 가정심방을 하기로 했다. 시간은 오래 걸리고 피곤도 하겠지만, 가정 심방을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싶었다. 정릉교회에 부임해서 처음으로 하는 심방, 각 가정을 찾아 예배를 드리는 것만큼 서로를 잘 이해하는 길도 드물겠다 싶었다.


 

                                 사진/송진규

 

최소 인원으로 찾아간다. 나와 아내, 그리고 심방 전도사가 동행을 한다. 부목사와 속장 등도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각 가정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기 전에 이야기를 나눈다. 미리 적은 기도카드를 앞에 두고 형편과 사정 등을 이야기하며 기도 제목이 무엇인지를 나누는 것이다. 어디 이야기가 따로 있고 예배가 따로 있겠는가, 이야기는 이미 예배의 소중한 일부가 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눈물짓는 이야기들이 있다. 응어리로 가라앉아 있는 아픔이 있고, 생채기로 엉겨 있는 일들이 있다. 남에게 내보이기 싫고 부끄러운 모습이 누구에게 없을까. 부끄러움까지 내려놓고 나누는 이야기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우리가 함께 믿음의 길을 걷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얼마 전부터 불청객처럼 찾아온 전정 신경염으로 어지럼증이 이어지고 있다. 하루 심방을 마치고 나면 몸과 마음과 목소리가 젖은 솜처럼 가라앉는다. 하지만 나는 목사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심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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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5)

 

향기로 존재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목양실에 올라와 앉으면 세상이 고요하다. 아직 만물이 깨어나지 않은 시간, 시간도 마음도 고요해진다. 설교를 준비하기에도 좋고, 글을 쓰기에도 좋고, 책을 읽기에도 좋은, 가히 아낄만한 시간이다. 때로는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고요함을 깨트린다 싶으면 얼마든지 삼간다. 

며칠 전이었다. 그날도 새벽기도회를 마치고는 목양실로 올라와 책상에 앉아 원고를 쓰기 시작을 했는데, 어디선가 알 수 없는 향기가 전해졌다. 모르던 향기였다. 흔한 향기가 아니었다. 애써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그러느라 무심결에 드러났다 잠깐 사이 사라지는 향기였다. 내가 맡은 것은 그런 향기의 뒷모습이지 싶었다. 그럴수록 향기는 예사롭지가 않았다. 마음을 베는 듯 뭔가 날카롭고 깊은 느낌이었는데, 무디고 마른 감각을 일깨우는 향기였다. 

내 방에 들어온 낯선 향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향기의 근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향기의 근원을 찾다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싶었다. 처음 맡은 향기였고 짐작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향기였지만 의외로 금방 향기의 근원을 찾아냈다. 

 

 

 


목양실 창가 쪽에는 화분이 몇 개 있는데, 못 보던 화분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창 꽃을 피운 난이었다. 유난히 키가 작은 화분에서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웠는데, 꽃의 빛깔도 범상치 않았다. 검은 빛을 머금은 진한 적색이었다. 현란한 탱고 춤사위를 떠올리게 하는, 방금 맡은 향기와 그럴 듯이 어울리는 빛깔이었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맡으니 방금 전에 맡았던, 바로 그 향기였다.

알고 보니 권사님 한 분이 전한 것을 사무 간사가 올려다 놓은 것이었다. 며칠간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와 화분을 전했다는 것도, 창가 쪽에 놓아두었다는 것도 몰랐던 일이었다. 

향기만큼이나 나를 즐겁게 한 것이 있다.
숨겨진 자신의 존재를 향기로 알리는 것이 세상에 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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