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신에게 바치는 꽃

신동숙의 글밭(179)


상처, 신에게 바치는 꽃


먼 나라에 저녁답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강물에 꽃을 띄우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꽃을 바치는 이들에게 신이 말하기를,


"아이야~ 이 꽃은 내가 너에게 보내준 꽃이잖니?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너에게 받고 싶은 꽃은 이 꽃이 아니란다. 해와 비와 바람으로 내가 피워낸 꽃이 아니란다. 아이야~ 네가 피운 꽃을 나에게 다오."


아이가 대답하기를,


"내가 피운 꽃이요? 아무리 고운 꽃잎도 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면 상처가 있고, 속에는 잔벌레들이 잔뜩 기어다녀요. 가까이 다가가서 꽃나무를 한바퀴 빙 둘러 낱낱이 살펴 보아도 상처 없는 꽃잎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는 걸요. 사람의 손이 조화를 만들면야 모를까. 조화를 생화처럼 보이도록 상처와 얼룩을 일부러 점 찍는다지요. 이처럼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는 다 자기만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하니까요. 신에게 바칠 만한 완벽한 꽃이 나에게는 없는 걸요."


신이 말하기를,


"내가 원하는 꽃은 너의 아픈 상처란다. 세월이 가도 어둔 가슴에 박혀 쉬 빠지지 않는 별 같은 상처. 그때와 비슷한 순간을 만나면 가시처럼 돋아나는 말 못할 너만의 아픔이 네가 피워낸 가장 아름다운 꽃이란다."




상처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하는 선택은 언제나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의 영역입니다.


누군가는 가슴 속 상처로 인해 밤이면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나의 상처를 알아줄 만한 이를 찾아 세상을 검색하기도 합니다. 좀 더 승화시켜서 말과 글, 그림으로, 음악으로, 춤으로, 섬김으로 좀 달리 때론 타인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표현하기도 하고요.


저녁답이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혼자 쓸쓸해 하기도 하고, 문득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이다가도, 대부분은 일상에 뭍혀 그것이 아픔인 줄도 의식하지 못하다가, 그냥 가슴 속에 차곡차곡 뭍어 두기만 하는, 때로는 그립기까지한 당신의 아픔.


신이 인간에게 바라는 꽃이란? 신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인간의 아픔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가 방실거리며 잘 놀다가도 넘어져, 무릎이 까여서 피가 나는 무릎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가던 길 되돌려 엄마에게 달려가는 순간처럼, 그 순간이 함께 아프지만 돌이켜 왔기에 다행이다 싶은 순간.


우리는 매일 넘어지고 늘 아픕니다. 어려서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넘어지고, 나이가 들어서는 제 마음을 가누지 못해 매 순간 넘어지고, 또 일어남에 무디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속을 들추어 보면 여전히 아픈.


우리의 마음도 하루를 살아가며, 그 넘어짐과 부딪힘의 모든 미세한 순간마다, 우리의 감각과 삶 사이에는 미세한 염증반응이 일어나고, 그 때 일어나는 모든 희노애락과 아픔들, 한치 앞도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무지로 인한 괴로움.


희노애락과 아픔과 무지와 그 모든 살아 있음에 대한 자각들, 살아 있기에 깨어 있기에 느낄 수 있는, 단지 바람을 바람으로 느낄 수 있는 그 평범하고도 보편적인,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모든 살아 있는 감각들이 피워내는 삶의 꽃. 바로 인간이 피워내는 인생의 꽃. 


내가 피운 꽃은 다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 그것이 신이 우리 인간에게 바라는 꽃, 재물이 아닐까 하고, 이 저녁 박꽃을 보며 고요히 생각에 잠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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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사 계곡,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신동숙의 글밭(178)


밀양 표충사 계곡,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소리가 맑은 벗님이랑 찾아간 곳은 맑은 물이 흐르는 밀양 표충사 계곡입니다. 높은 듯 낮은 산능선이 감싸 도는 재약산 자락은 골짜기마다, 어디서 시작한 산물인지 모르지만, 계곡물이 매 순간 맑게 씻기어 흐르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주말이라 그런지, 표충사에 가까워질수록 휴일을 즐기러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이런 날, 어디 한 곳 우리가 앉을 만한 한적한 물가가 남아 있을까 싶어 내심 걱정도 되었습니다. 


해가 어디쯤 있나, 서쪽으로 보이는 바로 저 앞산 산능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기 전에, 하늘이 어둑해지기 전에는 산을 내려와야 하는 여정입니다. 널찍하게 누워서 흐르는 계곡물 옆에는, 줄지어 선 펜션과 식당과 편의점과 널찍한 놀이터가 있어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북적이고 있는 산놀이 물놀이 풍경을 보니, 몇 해 전 교회 수련회 때 교인들과 함께 한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우리는 계곡물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누웠던 계곡물이 비스듬히 몸을 조금 일으킨, 산 속 오솔길을 따라서 오르는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집니다. 맑은 산새 소리에 귀가 밝은 벗님은 금새 얼굴빛이 어린 아이가 되었습니다. 벗님은 커다란 짐을 말없이 제 빈 손에 들려주고는, 작은 가방을 손에 들고 묵묵히 앞서 걷습니다. 


제가 건네 받은 커다란 짐은 분홍색 돗자리입니다. 새의 날개처럼 가벼운 돗자리를 손에 들고서 가볍게 천천히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그 옛날 돗자리를 손에 들고, 김밥과 과자로 꽉꽉 채운 배낭 가방을, 산등선처럼 불룩해진 모양으로 어깨에 짊어지고서, 학교 뒷산 구덕산으로 참새처럼 신나게 소풍을 가던 초등학생 시절.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마냥 괜히 웃음이 납니다.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서, 벗의 가방 안을 넌지시 보니까, 무언가를 딛고 올라선 작은 생수병 파란 뚜껑이, 작은 얼굴을 내밀고서 저를 보고 있습니다. 산에선 소용 없을 지갑과 자잘한 소품들을 비운 제 천가방 자리가 헐렁해, 생수병 뚜껑 머리를 쥐고, 제 천가방 넓은 방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벗은 보고도 못 본 척 해줍니다. 그러는 제 입에선 실없는 한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나한테는 커다란 짐을 주고, 자기는 작은 가방을 들고 간다며...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벗의 작고도 무거운 가방을 읊조리며, 괜스레 무거운 마음을 계곡물로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가까이 보이던 높고 낮은 산능선은, 눈 앞에 우뚝우뚝 하늘 높이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다가 안보이다가, 어느새 숲 속입니다. 계곡물은 잠시 누웠는가 싶으면 이내 커다란 바윗돌을 만나 다시금 일어나서 흐르기를 쉼이 없습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한 번 담근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이치를 오늘도 계곡물은 말없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매 순간을 새롭게, 그렇게 물은 쉼없이 흐르기에 맑은 것인지, 제 안에 쉼없이 떠오르는 생각도 계곡물처럼 쉼이 없어서, 머무르는가 싶으면 또 맑게 맑게 그렇게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흐릅니다. 잠시 머무르는가 싶다가도 세차게 달리기 하는 물살을 보며, 땟국물 낀 어릴 적 얼굴을 뽀독뽀독 씻겨 주시던 엄마의 손길 같아서 잠시 아찔해져 정신을 잃기도 합니다.


분홍 돗자리를 넓게 펼만한 곳을 찾아서, 우리의 발걸음은 자꾸만 계곡물을 따라서 오솔길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 갈수록 물길은 좁아지고 사람의 모습도 보기 드문 풍경이 됩니다. 그곳엔 장사를 하는 식당도 펜션도 없습니다. 물가에서 어른들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한낮의 휴식을 즐기고, 물 속에선 튜브를 탄 아이들이 첨방거리는 모습도 점점 멀어져 어느새 그리운 풍경이 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계곡물가엔 나무 그늘이 있어서 한낮의 더운 해를 가려주고, 분홍 돗자리를 뭉게 구름처럼 펼쳐도 툭 튀어나온 돌멩이에 엉덩이가 베기지 않을 자리를 찾아서, 나무 그늘 울창한 산 속 오솔길을 오르는 고즈넉한 산책길입니다. 오르는 날숨이 가쁘지 않고, 들숨이 차지도 않아 고요한 산책길, 홀가분한 걸음입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러다가 문득 먼저 본, 저 먼 산 능선을 좀 보라며 멈추어 서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난 청솔모 기척에 놀라기도 하며, 청빛이 도는 자그맣게 핀 산수국에 똑같이 눈길이 머물기도 합니다.


그리고 표충사 우측으로 완만하게 일어선 계곡을 따라서 거슬러 오르며 한 생각을 이어갑니다. 우리가 지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던 풍경이 마치 한국의 대형 사찰과 대형 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반면에 계곡을 오를 수록 한적해지는 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어느 산 속 암자나 외진 천주교 은둔자들의 성지가 자리 잡고 있을만한 곳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 속에서 첨방거리며 신나는 아이들과 걱정스러운 듯 지척에서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하늘에 울리던, 널찍하게 누운 계곡물가의 풍경이, 마치 강물처럼 넓게 흐르는 대형·중형 교회에서 보았던 풍경처럼 그려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눈 밝은 목회자와 성도가  있어 뿌연 흙탕물 같은 강물 속에도, 쉼없이 먼 길을 흘러온 맑은 계곡물이 끊임없이 섞이어 함께 흐르고 있다는 생각에 미칩니다.


계곡물을 거슬러 오르듯, '무리를 떠나 산으로 가시더라.'의 예수처럼, 홀로 고독과 침묵의 산으로 오르는 이 땅의 모든 신앙인들. 홀로 관상 기도의 안식처로 들어가시는 목회자와 성도와 모든 종교인과 신앙인들과 구도인들이 향하는 그 좁은 오름길. 그  뒷모습은 어디를 보나 예수를 닮아 있습니다. 


저는 그 홀로 걷는 좁고 맑은 길, 진리의 원천을 찾아서 걷는 관상 기도의 길, 그 호젓한 산책길을 걷고 있을 어느 기독교인들의 모습에서 석간수를 그려봅니다. 이 땅에 흐르는 모든 물에는 원천인 샘이 있듯, 늘 머리속을 흐르는 생각에도 원천인 샘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땅으로 뿌리를 내리듯 하늘로 가지를 뻗습니다.


인적이 드문 좁게 일어선 계곡물의 그 홀가분한 오름길을 걸으며, 결혼도 하지 않고 구도의 길을 걸으시는 스님, 신부님, 수녀님의 그 쓸쓸한 듯 호젓한 걸음을 생각합니다. 반면에 같은 구도의 길을 걷지만 결혼과 가정이라는 축복 선물까지 어깨에 짊어지고서, 더러는 안고 가셔야 하는 개신교 목회자의 녹록치 않은 그 삶이 저는 늘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요?


맑은 벗과 나란히 앉아서 쉴만한 곳, 돗자리를 펼칠만한 호젓하고 맑은 계곡물가를 찾아서 오르는 걸음이, 마치 오늘 저에게 주어진 하루치 구도의 길 같습니다. 밀양 재약산 표충사 계곡물은 어디메서 샘솟기에 자꾸만 흘러 내려오는지, 비가 그쳐도 계곡물은 마르지도 않는지, 그 산물이 이어져 오늘도 강물은 세상 한 복판을 아무렇지도 않게 흐르고 있는 것인지, 


이 궁금증은 산을 다 내려오면서도 씻기지가 않아, 제 방 안에까지 길게 흘러 제 안으로 물길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머물러 제 자신이 그 물길 어디메쯤 걷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지만, 이제는 이 생각의 원천을 저 먼 산 너머가 아닌, 제 가슴 한 복판에 가만히 품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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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샘

  • 아직까지도 술맛을 모르지만
    멋진 우정을 나누는 자리에서
    와인 한두잔정도의 취기를 느껴보고싶어지는군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기쁨지기 2020.06.28 09:57
    •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은총의 詩에 취해서 살아간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

      신동숙 2020.06.28 22:55 DEL

신동숙의 글밭(174)


술샘 


술을 마시고 글을 쓴 적이 없다. 글을 쓴 후에도 마신 적이 없고, 먼 데서 찾아온 반가운 남동생이나 남편이 바로 옆에서 막걸리나 맥주를 한 잔 기울일 때도,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니, 평소에 술을 아예 먹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가족 모임과 벗들의 모임에서도 그저 물잔에 물을 따라서 함께 하는 자리를 즐기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일이나 술을 마시지 않는 일이나 모두가 한 마음 먹기에 달린 일이지만, 나의 선택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것이다. 술 기운에 의지하지 않기로 결심을 한 것이 대학 신입생 시절 학과 동기, 선배들과 함께한 뒤풀이 자리였다. 


어려선 종종 아빠의 술 심부름을 하곤 했었다. 아빠의 "소주 한 병, 콜라 한 통 사와라." 돈을 받으면 신나게 계단을 뛰어 올라가 슈퍼마켓에서 산 술과 과자가 든 비닐봉지를 흔들며 계단을 내려오곤 했었다. 요즘은 청소년들에게 술 심부름을 시키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초등학생이던 그 시절에는 술 심부름이 또 하나의 효도였다. 


요즘 종종 벗들에게서 처음 술을 마신 이야기를 듣고는 웃기도 한다. 아빠의 막걸리 심부름을 간 얘기, 막걸리를 주전자에 받아서 오다가 출렁출렁 땅에 흘린 막걸리가 아까워 그대로 자기 입으로 흘려 보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그러면서 그 처음의 술 경험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까지도 술을 마신다고 하면, 나는 술병 마개가 너무 꽉 닫혀 있어서 어려선 술맛을 못 봤다며 그러면서 웃기도 한다. 


밥상 앞에 앉으신 아빠는 투명 유리잔에 소주를 반쯤 부으시고, 나머지를 콜라로 채워서 반주로 드시곤 하셨다. 나는 소주와 콜라가 섞이는 그 투명한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곤 했었다. 그리고 아빠는 술을 드시기 전에 반드시 고시레를 하셨다. 거실 밥상 앞에 앉아서 술잔을 채우신 후 굳이 딱딱한 몸을 일으키셔서 주방 싱크대까지 가셔서, 아무도 없는 그곳에 술 한 모금을 흘려 보내시며, "고시레"를 하신 후 그 투명한 술을 드시는 것이었다. 술잔과 함께 뒤로 젖혔던 고개를 바로 세우시며, "아~ 맛있다!"


아빠의 술 고시레는 늘 한결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어린 마음에도 눈에 보이는 술보다는, 입에 가져 가시기 전에 꼭 고시레를 하시던 아빠의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이 더 궁금했었다. 아빠의 마음은 무슨 마음이었기에 그렇게 한 모금의 고시레를 한결같이 지켜오셨는지 지금도 그 마음이 궁금하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아빠에게선 술주정을 본 적이 없다. 잠은 언제나 안방 잠자리에만 몸을 누이셨다. 일생을 마루에도 누우시는 법이 없으셨다. 아빠의 머리맡에는 코 푸는 휴지, 안티푸라민, 등긁게가 늘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저녁 밥상 앞에 앉으신 아빠의 고된 몸으로 흘러 들어가던 술은 어쩌면 술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4살 무렵 아빠가 장기려 박사님의 복음병원에서 8시간의 척추 수술을 하시고, 철심이 박힌 그 등에 짊어지신 삶의 무게를 감당하시기까지, 밥상에 놓인 한 잔의 술은 그냥 술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내가 초등학생 때도 그랬고, 시집을 와서도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아빠가 술을 사오라고 하시면 내겐 효도를 한다는 거룩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시집 간 딸아이 집에 오신 아버지께 과실주를 작은 잔에 채워 드리니, 기력이 쇠약해지신 아버지가 내게 술잔을 주시며, 싱크대에 가서 대신 "고시레"를 하고 오라며 고시레 심부름을 시키시던 모습이 최근 3~4년 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다.





내 어린 시절엔 친지들이 모이면 어느 집이든 술상이 참 흔했다. 같은 술을 마셔도 그 술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모습들은 참 달랐다. 중요한 건 술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수학 여행을 가면, 가방에 몰래 맥주캔을 넣어 오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방문을 잠그고 커다란 방에 둘러 앉아서 한 모금씩 맥주캔을 돌려가며 마시는 모습을 보기도 했었다. 내 차례가 되어 한 모금을 권하면 나는 고개를 흔들었고, 친구들도 내게는 두 번 권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서 처음 술을 마시게 된 것이다. 선배들은 국문과를 술문과라고 이름하기도 한다고 했다.


다행히 고3 한문 선생님의 한 말씀이 좋은 길이 되었다. "너희들 대학 가면 남자들한테 함부로 술 따라주면 안된다. 남자 중에는 세 명한테만 술을 따라줄 수 있다. 아버지, 남편, 스승". 이 말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6시 학과 수업이 모두 마치면, 선배들과 동기들이 우르르 식당이 아닌 술집으로 모였다. 주점, 맥주집, 소주집이 그때는 유행이었다. 선배고 동기고 술병을 돌려가면서 서로가 서로의 빈 잔을 채워주는 것이, 젊은 날의 빈 가슴을 채워주며 우정을 나누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쁘게 채워지던 술잔들도 내 바로 앞에 놓인 남자 동기나 선배들의 술잔은 잠깐씩 비어 있었다. 우정의 흐름이 끊기듯 내가 술을 따라주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놀리는 이도 있었다. "앞에 앉은 사람 술잔이 비었는데도 술잔을 안채워주면 시집을 못간다는데..." 웃으며 말하곤 했다. 그러면 나도 따라 같이 웃으며 신념을 지키곤 했었다.


4월 신입생 시절 인문대 건물 뒷편 벙커, 대선배님(복학생)이 둘러 앉은 신입생들에게 한 명씩 이름들을 물으며 첫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공평하게 나누어준 종이컵에 대선배님이 돌아가며 따라준 소주. 내 생애 처음 받은 술은 투명한 소주 1센티. 그때 내 입 속에는 새우깡 세 개가 반쯤 씹혀 있었다. 다 함께 건배를 하고 정말로 소주를 찔끔 입에 머금었을 뿐이다. 그런데 소주를 마신 것은 내가 아닌 부서진 새우깡들이었다. 새우깡 맛이 바뀐 것이다. 십 여 명이 넘는 무리들 앞에서 뱉을 수도 없고, 잘 삼켜지지도 않는 그 쓴맛 새우깡을 겨우 겨우 겨우 삼키며 속으로 결심을 했었다. "절대로 술보다 안주를 먼저 입에 머금지 않는다!"


그날 술 한 모금을 마신 후의 몸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머릿속이 핑 돌고, 몸을 가누는 일이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어울리게 된 선배와 동기들은 낮에는 배움의 벗이었고, 저녁이면 술벗이 되었다. 1학년의 봄, 그날도 술집을 나와서 열 명이 넘는 술무리들이 우르르 들어간 곳은 노래방이었다. 그때 내게도 약간의 취기가 있었다. 선배 언니가 노래를 부르고, 나는 맞은 편에 앉아서 노래방 기기에서 나오는 가사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마음이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마음의 기운이었다. 가만히 마음을 보고 있었기에 알아볼 수 있었던, 술기운에서 온 마음이었다. 술기운에 가슴이 열리고 따뜻해지고 느긋해지는 느낌을 본 것이다. 순간 "아! 이래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구나." 아빠가 반주로 드시던 술도, 학교 수업을 마친 술무리들이 이렇게들 술을 마시며 우정을 나누는 이유도 바로 이 느낌이구나! 이 좋은 느낌을 위해서 술을 마시는구나 하는 깨달음은 감동이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방에 혼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술이 주는 유익인 마음이 열리고 따뜻해지고 느긋해지는 이 좋은 느낌을 계속 가져갈 수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 좋은 느낌을 위해서 매번 술을 찾는다는 것은 술에 의지를 하게 되는 일이다. 왠지 술에 의지하려는 마음이 마음에서 꺼려지는 것이었다. 그러면 술에 의지하지 않고, 이 좋은 느낌만 가져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생각이 닿았다. 그때 재생 기능을 생각했다.


리차드 막스의 팝송을 듣고, 정태춘과 박은옥, 시인과 촌장, 김광석, 유제하, 김현식, 사랑의 기쁨,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재생시키는 기계, 카세트가 생각이 났다. 기계가 재생을 하는데, 그보다 더 뛰어난 감각 기관이 바로 사람의 몸이 아니던가! 몸이 지닌 재생 기능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내겐 술이 필요치 않게 된 것이다. 그때 일으킨 한 생각으로 인해서 나는 술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술이 없어도 좋은 술기운을 몸에서 재생시키면 그만인 것이다. 그날 술무리들이 술집을 나와서 들어간 노래방에 앉아서, 마음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꼈던 그 술기운을 이미 가슴에 저장을 시켜둔 것이다.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재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21살에 먹은 한 마음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지만, 얼마전 벗한테서 조금씩 받은 투명한 와인 두 잔의 추억이 따뜻하고 맑은 산기운으로 남아 있다.


나의 어린 시절에 몇 안되는 따뜻한 기억들도 사실은 몸의 무한 반복 재생 기능으로 재생을 해와서 오늘이 되고 있는 것이니까. 하나의 별이 별무리가 되는 것처럼, 작은 별빛이 점점 자라서 태양빛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기억을 왜곡하진 않는다. 단 한 순간의 눈빛, 한 순간의 따뜻한 모습도 내 기억 속 하늘에선 잊혀지지 않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상처를 입히는 세공과 자본의 손길을 거친 다이아몬드보다 한 방울로 맺힌 이슬이 더 아름다운 이유를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혼자서 고요히 내 어둔 마음 속에 한 점 별빛처럼 또는 한 순간의 추억이나 한 마음을 알처럼 품고 있으면, 빈 마음이 충만해지곤 한다.


어느 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을 읽다가, 술에 대한 아름다운 글을 보았다.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곳에 싣는다.


" 당신이 담근 술을 마시지 말고 자연의 여신이 담궈주는 술을 마시라. 그 술은 염소가죽이나 돼지가죽 부대에 담겨 있지 않고 수많은 아름다운 산딸기 속에 담겨 있다. 


술을 담고 음식을 절이고 보관하는 일은 자연의 여신으로 하여금 하도록 하라. 왜냐하면 매 순간 온 자연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 외에 다른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의 경관에서는 우리가 감상할 마음의 준비가 된 만큼의 아름다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 외에는 눈꼽 만큼도 더 볼 수 없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 중에서..


한 마음을 먹으며, 한 순간 가슴 속 아름다운 기억들을 재생시킨다. 그래서 때때로 내 가슴은 샘물이 흘러 나오는 샘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아픔이 흘러 나와서 눈물로 흐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 물길이 나만을 위한 좁은 물길이 아닌, 밖으로도 흐르는 공평한 강물이 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때론 술이 없어도 마음이 열리고 따뜻해지고 너그러운 가슴이 되는 술샘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갈수록 넓어지고 깊어지는 샘이다. 그 마음은 또한 자연과 진리에 취해서 무르익은 마음의 취기 같기도 하다.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하늘과 흙과 풀 냄새가 나는 사람 앞에서, 글로 만난 아름다운 마음 앞에서, 자연과 진리와 자유의 향기가 나는 사람의 마음 앞에서, 나는 종종 취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특이한 사람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누구든 자기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일상을 살아가다가 문득 자기 안에 흐르는 마음을 가만히 보거나, 일어나는 생각을 이어서 곰곰이 생각을 더 이어간다면, 같은 걸음을 걷게 되는 것이다. 한 뿌리에서 나온 사람의 마음은 다를 수 없는 이치다. 나는 그 단순하지만 명료한 일을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걸어 들어가는 마음의 호젓한 산책길을 오늘도 걷는다. 문득 아빠의 "~오늘도 걷는다마는~"이 재생이 된다. 나는 그 마음의 산책길 언저리 어디쯤을 걸어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글을 쓸 때는 언제나 맑은 정신으로 쓰려고 한다. 그러다가 종종 잠에 들었다가 깨었다가 할 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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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신동숙의 글밭(172)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살아오면서 가끔씩 좋은 벗, 좋은 사람,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잠시 제 곁에 머물러 있는가 싶으면, 어느덧 혼자 있게 됩니다. 


제게는 늘 함께 있어 좋은 벗, 좋은 사우(師友)가 있습니다.


밤하늘에 뜬 몇 안되는 별이라도, 먼 별을 바라보는 내가 좋습니다. 밤이면 매일 변하는 밤하늘의 달이 오늘은 어디에 떴는지, 건물들 사이로 두리번거리며 찾는 그런 내 모습이 신기합니다. 아침이면 하늘 낯빛을 수시로 살피어 마음의 결을 고르는 내가 괜찮습니다.


나무 아래를 지나며, 가슴 설레어 하는 내 모습에, 혼자서 어쩔줄 몰라 하고, 여름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환하게 꽃을 피우는 박꽃을 보며,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순합니다. 


말이 되지 못한 일들로 한밤 중에 깨어서 소리없이 떨구는 혼자만의 눈물이 이제는 저만의 것이 아닌,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세상의 어느 한 구석 외딴 곳으로 흘러가기를 원하는 한 생각이 오롯이, 가슴에서 샘솟는 샘물 같습니다.


책 속에서 만난 벗들이지만, 그 어렴풋한 마음을 어둔 가슴에 별처럼 품다가 그만 취해버리는 내가 아름답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가만히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이제는 싫지가 않습니다. '내가 내가' 하다 보니 지나치단 생각도 들지만 또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의 생김새와 언어가 달라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으로, 서로를 생각함으로, 고독과 침묵의 기도 속에서 서로가 통할 수 있다는, 보이지 않지만 그 엄연한 사실이 참 좋습니다. 맑게 깨어 있고 싶은 이유가 됩니다. 기도하면서 한 사람을 품은 즈음에 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온다면 또한 기쁜 것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어느 한 사람에게 첫눈에 반한다는 현상은, 어쩌면 상대에게 비친, 이미 내 안에 있는 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 또는 내가 그리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상대를 통해 비추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내 안에 없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일이, 도리어 현상계에서 과연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은 궁금증이 있는 것입니다. 서로를 알아본다는 안목도, 그처럼 이미 내 안에 있는 모습이 상대를 통해 비추어 드러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벗이란, 내 안에서 부르는 메아리이기에 찾아오는 벗이 반가운 것입니다. 이처럼 보이는 모든 대상은 이미 내 안에 있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보이지 않는 대상을 보려고 가만히 눈을 감기도 합니다.


저의 살며 나아감은, 모든 생명이 나의 또 다른 모습임을 자각하고, 여러모로 상관 있다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일입니다. 여러 생명들이 나와 상관 없다 여기려는 한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 의식은 퇴보하고, 어떻게든 죄를 지을 수 있는 싹을 틔울 악의 씨앗을 심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일이 서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점에서 나오는 같은 마음의 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 순간 만나는 이들 속에서 이미 내 안 있는 모습들을 비추어 보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오늘처럼 넌지시 웃으며 할 수 있는 말은,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너와 함께 있는 내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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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도올, 머튼, <시편 사색>을 주워서 소꿉놀이

신동숙의 글밭(168)


다석, 도올, 머튼, <시편 사색>을 주워서 소꿉놀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심심해진다. 한때 바깥 일도 해보았지만, 제 스스로가 이 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사람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자본과 경제 논리로 형성된 이 사회구조 안에선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물론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이 사회 안에서 있음직한 성공에 대한 꿈을 꾸어본 적 없이, 몸만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서로가 아쉬울 것도 없는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혼자 놀기로 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종종 쪽창으로 창밖을 본다. 마당 위에 하늘을 보고, 나무도 보고, 풀꽃도 보고, 새소리에 귀가 맑아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본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이 세상은, 자연은 참! 신기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바라보며 숨을 쉬며 사색을 한다. 사색을 하듯이, 몸을 움직여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일상을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틈틈이 찾아오는 심심한 마음이 내겐 가장 반갑고 정겨운 벗이다. 어려서부터 늘 바라본 빈 하늘을 닮은 심심한 마음. 이 심심한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고, 늘 아쉬웠다. 예전엔 문득문득 찾아오는 심심한 마음이 불청객 같았고, 가슴 쓸쓸한 고통으로 느껴졌지만, 이제는 오히려 찾아와주기를 고대하기도 하고, 늘 먼저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평소에도 누군가와의 약속 시간에 상대방이 늦어서 생기는 공백의 시간을 스스로가 즐기기도 한다. 내 천가방 안에는 언제나 책 한 권이 들어 있으니까. 그러니 어느 누구든 나와의 약속 장소에 다소 늦더래도 너무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미리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거꾸로 입장이 바뀐 경우도 생각해본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나와 같지는 않기에 약속 시간보다는 일 분이래도 먼저 도착하려고 노력하지만 가끔 늦을 때도 있다.


하지만 심심한 마음은 시도 때도 없다. 자유다. 그렇게 놀러오는 반갑고 정겨운 벗인 심심한 마음과 같이 놀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것이다. 이 심심한 마음과 같이 놀기 위해선, 어릴 적 소꿉놀이처럼 뭔가 손에 만지작거릴만한 것이 필요했다. 땅에 뒹구는 돌멩이도 줍고, 내 몸 둘레에 흙도 슬어 모으고, 발길에 채이는 나뭇가지도 줍고, 찌그러진 깡통에 고인 빗물도 고이 받아서, 소꿉 살림을 모은 후 가만히 앉아서 심심한 마음과 같이 놀기로 하는 것이다. 




그동안 혼자인 줄 알았던 호젓한 산책길에 주워 모아둔 소꿉 살림으로는 성경, 불경, 논어, 중용 등이 있다. 그냥 바람에 스치듯 겉만 스쳐왔다. 동양의 경전은 암호처럼 쓰인 한자에서 길이 막힌 것이다. 이제 막내까지 학교와 학원에 가고, 나는 이 경제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앞으로 몇 십 년을 더 살아도 경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스스로가 잘 알기에, 이왕 앉아서 놀기로 한 김에 소꿉 동무도 여럿 두었다. 다석 류영모, 도올 김용옥, 토머스 머튼, <시편 사색>과 좋은 책들, 그리고 언제나 자연이 매일 만나는 소꿉 동무다.


이렇게 혼자인 듯 심심한 마음과 놀다 보면, 때가 되어 어느 지기가 함께 놀자고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마음 한 구석에 씨앗처럼 품고서, 안으로만 향하려는 양쪽 귀를 바깥으로도 간간히 열어두기로 한다.


참! 재밌다. 가장 기뻐하는 건 심령이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심층수처럼 한 줄기의 기쁨이 소롯이 올라온다. 배우는 기쁨, 알아가는 기쁨, 깨치는 기쁨이 빈 하늘을 채운다. 산동네 마을의 작은 모래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 옆 좁은 풀숲 사이로 작은 몸집이 쪼그리고 기어 들어가 헤매이며 주운 돌멩이와 흙과 나뭇가지를 주워서 놀던 어린 날의 소꿉놀이처럼, 아무것도 없는 성공이랄 것도 이룰 것도 없는 소꿉놀이라 자유롭고 홀가분하다. 


자유로워서 어디로든 깊이 궁리해서 들어갈 수 있는 자유로운 여행길이다. 그 길엔 언제나 좋은 거울과 등불이 되어 주는 길벗이 있기에. 어느 날엔 길을 잃어도 좋은 것이다. 어둠에 갇힌다 해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혼돈과 어둠의 밤을 지나서 아침이 오면 언제나 새로운 길과 빛이 나타남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소꿉놀이는 햇살이 찬란히 비추는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인 놀이였다. 엄마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손으로 돌멩이를 줍고, 흙을 조물거려서 매일 흙구슬을 만들어도 지겹지 않고, 흙을 돋우어 새로운 길을 내고, 한 줌의 물까지 흘려 보내면, 마른 길이 냇물이 되던 소꿉놀이. 자연스러운 놀이가 되고 깨우침의 공부로 저절로 나아가는 신나는 놀이, 매번 새로운 길이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걸어가는 길. 뚜벅이 걸음이다. 아무리 갈 길이 멀어도 지금은 뛰어서 가지는 않으려 한다. 매 순간이, 매 순간의 들숨날숨이, 매 순간의 마음이, 그렇게 깨어 있는 매 순간이 오롯이 살아 있는 소중한 순간인 것이다. 어차피 북극성에 닿을 수 없지만, 북극성이 거기 있기에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수 있는 더디지만 꾸준하기를 바라는 글숲 산책길이다. 


쪼그리고 앉아서 놀다가 쉬엄쉬엄 걷다가 허물고 다시 짓는 모래성이다. 느리고 더딘 필사는 걸어가는 도보 여행, 지구별 산책길이다. 배움이 놀이가 되고, 재미가 그림자처럼 저절로 따라오는 의미의 길, 의미를 따르는 인생의 즐거운 놀이다. 의미를 채우는 일은 영혼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선현의 말이 달빛같다.


아침 설거지를 일찍 끝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미루기도 하면서, <도올의 대학>을 들으며 받아쓰기를 한다. 아침 겸 점심밥을 라면과 먹다 남은 오이와 수박과 식은밥으로 간단히 떼우기도 한다. 얼마전까지 정독한 다석 류영모의 <다석 전기>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필사를 해오고 있다. 


오늘도 오른쪽 어깨 속에 작은 돌멩이가 생겼다. 평소 글을 쓸 때 손에 불필요한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습관이 있는가 싶어서, 필사하는 내내 어깨와 팔과 손과 손가락과 팬의 힘을 요리조리 조율하며 지켜보면서 적는다. 아무리 글을 적어도 팔과 어깨가 아프지 않은 비결을 아는 분이 있다면 가르쳐 주시면 참 좋겠다. 


하지만 제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그 재미마저도 움켜 잡으려는 순간의 욕심이 들면, 마음이 금새 돌처럼 단단해질까봐. 이해인 수녀님의 시 대여섯 편을 필사하면서 마음을 구름처럼 순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틈틈이 크게 누워서 기지개도 시원하게 켠다. 눈은 벌써 창가에 가 있다. 눈을 감아도 빈 하늘이다. 


하루해는 짧아서, 박꽃이 하얗게 꽃을 피우는 저녁답이면, 모래성이 허물어지듯 오른쪽 어깨를 작은 돌덩이처럼 만들어 놓은 하루치의 소꿉놀이성도 저녁이면 허물어진다. 밤이면 달이 이지러지듯 스스로가 그렇게 허물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틈틈이 앉아서 침묵으로, 관상 기도의 진짜 성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언제나 심심한 빈 하늘 뿐이다. 그래도 내일이면 또 소꿉 동무들을 모아서 소꿉놀이를 해야지 하는 기대감을 품고서 잠에 든다. 다음 날 다시 놀아도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심심한 마음 뿐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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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 작가님의 글이 내겐 유월의 푸른 잎사귀 같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심민호 2020.06.17 07:32

신동숙의 글밭(166)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반바지에 반팔 셔츠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학교에 갑니다. 등에는 가방을 메고 누구나 얼굴엔 마스크를 쓰고서, 학교에 가는 중·고등학생들이 유월의 푸른 잎사귀 같습니다. 교실 안에서는 제 책상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저 푸릇한 귀를 열고서 선생님들의 말씀에 잔잔히 귀를 기울이겠지요. 특히 교실에서도 온종일 쓰고 있어야 하는 마스크에,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한지 안타깝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함은 다름 아닌,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일과 거듭 새기는 일이 됩니다. 옛어른들은 머리에 새기라고 하였지만, 그보다 더 앞선 옛어른들은 마음에 새겨 자신의 참마음과 세상의 참이치를 밝히는 공부를 참공부라 하였습니다. 참을 밝혀서 참된 도리를 지니며 살아가라는 공부. 마음을 챙기는 공부가 일생을 두고서 이루어가야 하는 선비의 참공부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자녀들의 이름자에도 밝을 예(叡)자를 두었습니다. 밝음은 깨달음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15세, 중학생이 되면 입지(立志)라 하여 뜻을 세우고, 자신이 태어난 뜻을 깊이 헤아려, 참된 삶을 살고자 배움을 꾸준히 이어가며,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길을 가기 위해선 먼저 심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극히 안타까운 점은 그 심심함의 빈 자리를 핸드폰이 온통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영화와 웹툰과 친구들과의 소통 문자와 쏟아지는 정보들...


심심함의 여백은 하늘로 통하고 비로소 우주로 통하는 길이 됨을 핸드폰족인 포노 사피엔스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를 두고서 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내면으로부터 그러한 삶을 지향하고 있듯이, 자녀들에게도 넌지시 알려준 말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이치가 변함이 없듯이 참된 진리도 동서고금 변함이 없으니까요. 단지 구름에 가리워졌을 뿐, 하늘은 변함이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언제나 머리에 인 하늘처럼 늘 생각해야 하는 것은 참된 진리인 것입니다.



최근 부쩍 더워진 날씨에 저녁밥을 준비하다가 자녀들과 에어컨을 두고 언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 안 일엔 게으름을 피워도 작은 생각은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엄마입니다. 씨앗이 거목이 되듯이 모든 일의 시작은 작은 한 생각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치를 떠올리게 됩니다. 재미보다는 의미를 먼저 생각하는 엄마가 때론 개구쟁이 자녀들에겐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엄마보다 커진 키로 내려다 보며 아직은 모른다는 듯 눈을 끔뻑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엄마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자녀들 주위를 감도는 온갖 가치관들이 장마철에 하늘이 구름으로 다 가리듯 가리더래도 언뜻 보이는 맑은 하늘처럼 그렇게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입니다.


비교적 선선한 저녁과 밤에도 에어컨을 틀자는 남편과 자녀들의 세 목소리는 단단한 세겹줄로 한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그에 반대해서 방마다 창문을 열고 샤워 후 선풍기만 틀어도 충분히 시원하다는 엄마의 한 목소리도 홀로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에어컨의 문제는 단순히 소비전력만의 문제가 아님을 얘기하였습니다. 지구 환경 보호 차원까지 헤아려 보는 인생 가치관 전반의 문제로까지 설명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 식구들은 엄마의 바른말을 잔소리로 여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입으로 굽은 소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럴땐 엄마도 유순한 소리가 그립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딸아이는 날벌레가 들어올까봐 창문을 여는 것이 싫다고 합니다. 엄마는 방충망 보조 테이프로 창틀의 물구멍까지 막아두었으니 더 이상 벌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딸아이는 그냥 창문을 열고 있는 게 싫다고 합니다. 중학생인 것입니다. 하지만 흔히 요즘 말로 아무리 제 멋대로 중학생이라 해도, 입지(立志)를 세우기에 충분한 나이인 만큼 중학생의 온전한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청소년기의 혼돈스러운 터널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면서도 한 줄기의 빛, 바른 길을 보여 주어야 하는 시기인 것입니다. 


강 옆에 있는 우리 마을의 저녁 공기는 시원한 편입니다. 오뉴월이 되고부터 오존주의보와 해제 문자 서비스를 간간히 받고 있는 엄마도 물러설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엄마를 제외한 세 식구는 새벽이고 저녁이고 에어컨을 틀자는 의견을 굽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대안으로, 아빠가 퇴근하고 오시면 에어컨을 틀어주겠다는 엄마의 뜻을 얘기하였습니다. 땀이 많은 아들도 거기에는 더 이상 이견을 달지 않습니다. 


아들은 운동을 다녀와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 샤워를 하고 과일을 먹고 선풍기를 틀고 있으니 덥다는 말은 쑥 들어갔습니다. 이번에 에어컨 논쟁의 말이 나오기 전에는 집에 오자마자 덥다며 쇼파에 앉아서 샤워도 미루고 에어컨부터 틀고서, 운동으로 흘린 땀을 에어컨 바람에 말리고 있는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이참에 땀이 많은 아들은 하루에도 샤워를 서너 번은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물이 좋은지 귀찮아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목욕 가운을 입고서 거실과 주방을 팽팽 날아다니기도 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 보면 다시 콧등에 땀이 송글 맺히기도 합니다. 땀이 난다고 투덜거릴라치면, 여름엔 땀이 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주고는 엄마는 저녁밥을 합니다. 


코로나19로 5월 말부터 등교를 시작한 중학교에서도 중간 고사를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에어컨 논쟁을 하다가 끝에 가서, 시험 공부에 열을 올리는 딸아이에게 공부를 하는 이유를 넌지시 물었습니다. 딸아이는 좋지 않은 기분에 곰곰이 생각치도 않고서, "돈 벌려고"라는 말이 입에서 툭 튀어나온 것입니다. 그 말이 화근이 될 줄은 저도 몰랐을 것입니다. 입지(立志), 뜻을 세워서 공부에 정진해야 하는 중학생 시절에 단지 돈벌이가 공부의 목적이라는 답변은 충분치 않은 것입니다. 엄마의 불편해진 심기는 딸아이의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 수밖에 없습니다.


작년 무렵 새해를 맞이하여, 초등학교 교실의 인터뷰에서, 꿈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건물주', '연예인'이라는 대답을 하던 어린 학생들의 말에, '그게 아닌데', '그게 삶의 온전한 모습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은 듯 마음이 무거워지고,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하는지, 생각이 불어난 강물처럼 많아졌습니다. 


딸아이에게 단지 돈벌이가 공부의 목적이 된다면, 영·수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이 세상에 태어난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기 위해선, 성경, 불경, 논어, 중용 등의 경전부터 고전을 두루 읽고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거듭 뿌리는 씨앗처럼 말해 주었습니다. 엄마에게 듣는 말로는 그처럼 억울한 말도 없을 것입니다. 엄마가 공부하란 말은 안하고, 공부에 열심인 자녀에게 오히려 공부를 하지 말고 학원도 안보내준다는 말을 하는 속뜻은, 현재의 열심을 멈추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공부의 의미를 거듭 깊이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어제는 제주도에서 장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지, 간밤에는 굵은 빗소리가 잠결에 들려오기도 하였습니다. 아침엔 딸아이에게 우산을 챙겨 가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비는 잠시 그쳤지만 젖은 마당을 보더니 초록색 우산을 챙겨 들고 나갑니다. 이제는 언제 갑자기 비가 올지 모르니 대비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장마철인 것입니다. 비가 오는 저녁에도 그믐밤에도 박꽃은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다정한 벗입니다. 새벽녘에 잦아진 빗소리에도 뒷산 뻐꾸기 소리는 맑게 이어져 낮에도 간간히 들려옵니다. 학생들이 걸어가는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떠올리면, 마음으로 푸른 바람이 불어옵니다. 


녹음이 짙은 나무의 잎사귀들과 거미줄에 맺힌 이슬을 보고 있으면, 돈벌이가 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벌이가 주된 삶의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선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말과 생각을 지닌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진리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틈틈이 잠시 잠깐 세 끼니의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지만, 머리를 하늘에 두고 매 순간을 들숨날숨 하늘의 숨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머릿 속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생각이 또한 흐르는 강물과 다르지 않음을, 고요히 깊어진 작은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한 줄기 맑은 마음이 또한 외진 산골의 석간수와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솟아오르는 해를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참마음, 진리의 힘을 도저히 막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선조들의 맑은 흐름이 어린 자녀들의 가슴으로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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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거친 숨으로, 그리고 언제나 평화로운 숨으로

신동숙의 글밭(158)


때론 거친 숨으로, 그리고 언제나 평화로운 숨으로


숨을 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나의 숨을 스스로 쉴 수 있다는 것은 바람의 흐름처럼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영역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숨쉬는 일에 타의적으로 침해를 받아 숨이 끊어진 타살로 이어진 일이 최근에 일어났습니다.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와 한국의 9살 남자 아이가 죽어가던 고통은 마음껏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이 끊어져 가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오던 말은 "I can't breathe."였습니다. "나는 숨을 쉴 수 없다.", 계모의 학대로 9살 남자 아이의 몸이 갖힌 곳은 나중엔 더 작은 44cm·60cm의 여행 가방이었습니다. 아무도 아이의 마지막 말을 들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매 순간이 고통의 걸음입니다. 그들의 숨이 끊어져 가던 순간은 도저히 평범한 숨으로는 상상해 볼 수 없는 고통입니다. 



남해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신 엄마에겐 천식이 있었습니다. 세 살 때 홍역에 걸렸었는데, 열을 풀지 못하여 천식이 되었다는 얘기를 엄마는 종종 하셨습니다. 엄마에게 숨은 가슴보다는 목구멍에 더 가까이 붙어있었습니다. 들숨날숨마다 쌕쌕거리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좁다란 길을 빠져나올 때 들려오는 한 오라기 바람의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실오라기의 비명소리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 하염없는 갑갑함을 헤아리기엔 저의 숨은 아무렇지도 않아서, 살아서 숨을 쉰다는 일이 곧 죄를 짓는 일처럼 여겨지던 10대와 20대를 보냈습니다. 숨쉬는 일이 죄가 되는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몸부림은, 재미가 아닌 삶의 의미를 찾는 일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엄마의 천식 발작이 심하게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이 숨을 마음껏 쉴 수 없는 고통이라 하여 하늘의 숨, 하늘에 달린 목숨, 천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밤새 엄마는 눕지도 일어서지도 못하시고, 아지랑이 같은 몸짓으로 이불을 고아 작은 언덕을 만드시는 모습을 숨 죽이고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어린 저는 감기는 눈이 무거워 잠에 들었다가 깨었다가 그렇게 밤을 하얗게 새었습니다. 그 이불 언덕에 맥없이 기대신 몸에선, 들숨날숨이 실처럼 가느다란 길을 지나며 생사의 경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불만 들썩여도 거미줄처럼 곧 숨줄이 끊어질 것만 같았던 엄마의 고통스러워 하던 모습을 밤새 곁에서 말없이 지켜보며, 초3이었던 동생은 소리없이 방바닥으로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입에서 새어나온 말이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저에게는 바로 눈 앞에 있으면서도 함께 할 수 없는 엄마의 고통 앞에서 밀려드는 무력감이 깊은 사유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살아서 숨쉬는 이유와 의미를 찾는 일이 제가 붙든 생의 끈이 되었습니다. 숨줄을 붙드는 것보다 숨줄을 놓는 일이 더 평안했을 엄마의 멈춘 시간 동안에, 평안의 줄보다 고통의 줄을 붙들 수 있었던 안간힘은 어린 자식들이었습니다. 


어렵게 숨줄을 붙들고 살아오신 엄마에겐 살아오신 한 걸음 한 걸음이 기도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행여나 자식에게 누가될까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선한 마음을 내셨습니다. 마음으로 죄를 지으면 죄를 짓는다는 그런 순전한 마음이셨습니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남동생이 중학교 교실에서 키우다가 가져온 작은 화분의 식물을 30년 가까이 지금까지도 아파트 창가에서 살려 오시며 해마다 꽃을 피우시는 정성으로 한결같은, 무릇 마음을 지키며 살아오신 삶입니다. 달항아리와 막사발과 수묵화에 깃든 여백의 미를 하늘처럼 우러러보았던, 우리네 선조들의 삶은 이미 말과 글과 종교와 경전이 있기 이전부터 그러하였음을 봅니다. 유구한 역사의 강물 가장 밑바닥으로 유유히 흘러온 순전한 하나의 마음입니다.


기도의 엄마가 자녀들에게 했던 말은,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넘의 자식도 소중하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는 원리와 삶의 원칙을 스스로 지니며 살아오셨습니다. 선한 양심입니다. 숨쉬는 일처럼 양심은 우리 안에 이미 있는 하나님이 주신 공평한 자유의 영역인 것입니다. 글을 아는 이나 모르는 이나, 이방인이나 누구에게든지 선물처럼 주어진 공평한 자연의 영역인 것입니다.

살아서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은 평범하지만, 어찌 보면 숨쉬는 매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든 가장 좋은 숨쉬기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숨쉬기일 것입니다. 숨이 거칠어지면 몸의 근육도 거칠어집니다. 이어서 마음의 결도 거칠어지게 됩니다. 경직되고 거칠어진 숨으로 마음이 휘몰아치면 그건 폭풍의 눈처럼, 폭력성으로 이어질 소지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찰관과 한국의 계모가 평화의 낮은 숨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었다면, 순간의 화를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쩌면 세계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자 가장 온전한 개인의 모습은, 제 자신의 숨을 평화롭게 쉬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타인의 숨을 조정할 수는 없지만, 나의 숨을 평화롭게 조절할 수는 있는 일입니다. 저 한 사람의 숨이 평화로울 수 있다면, 그 평화의 숨은 가까운 사람에게로 이어지고 점점 이어져 번져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평소에 늘 생각하는 세계 평화의 첫 걸음은 이처럼 저 한 사람의 평화로운 숨쉬기가 됩니다. 하지만 때로는 억압과 거짓과 거친 폭력 앞에 분노하여, 돌풍이 휘몰아치듯 거친 숨을 다함께 쉬어야 하는 일도 우리네 삶 속에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소식에 들끓은 미국 시민들의 분노는 거리로 모여들게 하였습니다. 한국의 촛불집회를 보는 듯한 미국 시민들의 자유와 정의를 향한 흐름은 거대한 강줄기였습니다. 몰려 드는 시민들과 그에 대치된 군인과 경찰의 권력은 자칫 거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악에 분노한 시민들 앞에 깊은 사죄와 애도의 마음으로 무릎을 꿇은 군인과 경찰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용기와 강물처럼 낮아진 마음 앞에 들끓어 휘몰아치던 시민들의 숨은 그들과 더불어 낮아지고 비로소 눈물처럼 흐르는 평화의 숨이 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군중의 시민들을 향한 군인의 "한 번 안아봐도 될까요?"는 비로소 깊어진 평화와 가장 작아짐으로 가장 크고 거룩해진 사랑의 울림입니다.


저 역시 하루에도 틈틈이 자녀들과 대치되는 상황 앞에서 거칠어지려는 숨을 토해내기도 하고, 뒤늦게 밀려드는 후회의 물결에 숨결을 가다듬기도 하면서,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릴 적 텔레비젼에 나오던 프로그램인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주제곡이 문득 떠오릅니다. 


우- 와-
지구는 숨을 쉰다!
그 모든 생명이 살아 있다.
눈빛이 가지 못한 세계로
살아서 숨쉬는 신비의 세계로


지구는 숨을 쉽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살아 있습니다. 언제나 바람의 자유와 자연이 숨쉬며 살아가고 있는 살아 있는 땅입니다. 아름다운 세계로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운 숨쉬기로 모든 생명에게 자유로운 마음과 자유로운 사상이 꽃이 피어나고 흐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태초의 하나님이 사람의 몸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던 맨 처음의 숨과 예수가 주고 가신 성령의 숨으로, 오늘도 매 순간 평화로운 숨을 쉴 수 있다면, 의식이 깨어서 그 바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의 바람으로 느낄 수 있다면, 허공처럼 빈탕한 마음도 비로소 충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매 순간을 깊이 바라보며 사유하면서, 이유와 의미를 지닌 하나님의 뜻으로 다가오는 신비를 기도 안에서 보기를 원합니다. 저에겐 기도의 줄을 붙드는 일이 영혼의 숨줄을 붙드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숨쉬는 일이 죄를 짓는 일 같았던 20대의 터널을 지나올 수 있었던 마음 하나는, 윤동주 시인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의 마음입니다. 까마득한 그 옛날의 공자와 맹자와 석가와 예수의이 그 마음입니다. 자비와 긍휼의 마음입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아픔에 함께 아파할 수 있고, 기쁨에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 하나는 자유와 자연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살아가는 이유와 의미가 됩니다. 하늘의 평화로운 숨으로, 때론 거친 숨으로, 그리고 언제나 평화로운 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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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기쁨

신동숙의 글밭(155)


안목,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기쁨


스승을 찾던 20대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가를 배우다가, 요가를 가르치다가, 몸의 움직임이 곧 의식의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에도 혼자서 관련된 서적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순한 요가로부터 시작된 책의 관심 분야는 점차 확장이 되었습니다. 


인체, 근육과 골격, 운동과 춤, 자연식 섭생법, 한의학, 인도의 아유르베다, 심리와 마음에 관련된 수도승들의 체험 수필, 명상 서적, 명상 음악과 클래식, 국악, 동서고금의 철학과 고전으로 이어지며 자연히 관심 분야가 넓어졌습니다. 한 사람을 구성하는 세상의 모든 유형과 무형의 대상이 공부의 범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명상으로 집중이 되었습니다. 결국은 밖으로 드러난 몸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 그 원인이 됨을 알게 되면서 마음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혼자서 책으로만 하는 공부가 힘에 겨웠습니다. 마치 허공 속에 홀로 있는 듯,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하여 떠나야만 한다는 마음이 제 안에선 바람처럼 불었습니다. 길이 없는 길을 가야 한다는 막막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때부터 책 속이 아닌 사람을, 비로소 스승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를 진리의 길로 인도해줄 바른 스승은 어디에 있는지, 지푸라기 한 올처럼 붙든 것은 스승과의 만남이라는 간절한 염원 하나였습니다.


책 속에서 보면 누군가는 때에 따라서 스승이 내게 왔다고도 하는데, 제 삶을 되돌아 보면 요원하기만 하였습니다. 결국 스승을 찾아서 26세에 인도를 가게 되었습니다. 스승과의 인연이 닿을 만한 아쉬람이나 요가 과정이 있는 대학원에서 요가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인도 전역을 한 바퀴 돌게 되었습니다. 뭄바이, 방갈로르, 뿌네, 첸나이, 캘커타, 비하르, 델리, 요가의 본고장 리쉬케쉬, 달라이 라마가 있는 북인도의 다람살라까지. 


익스프레스 기차는 한국의 통일호처럼 덜컹이는 창문입니다.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던 인도의 시외버스는 몸집이 작은 제 무릎이 닿을 정도로 의자 간격이 좁았습니다. 게스트 하우스와 여관에선 이불을 덮고 잠을 자 본 적이 없습니다. 가지고 간 얇은 침낭이 이불이 되었습니다. 뭄바이의 향신료인 마살라는 땀 냄새 같았고, 저녁답에 내린 뿌네의 기차역에선 코리엔더(고수) 냄새가 공기 중에 풍겼습니다. 한국인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던 서양인들의 말이 남의 말 같지 않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육식을 꺼리고, 빵과 과일을 좋아하는 저에겐 인도의 먹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청포도를 알알이 따 씻어서 빈 패트병에 넣고 마시듯이 들고 다녔습니다. 라임 오렌지는 보일 때마다 사 먹었습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수박 조각엔 소금을 쳐서 주었는데, 한국의 수박바를 닮았습니다. 밀가루를 얇게 밀어서 화덕에 구운 차파티와 난, 기름에 튀긴 푸리와 요거트가 흔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인도 사람들은 한국인인 저에게 참 친절했습니다. 2004년 인도인들의 정서는 한국의 70~80년대의 정서와 닮아 있어서 제겐 익숙하고 친근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반대되는 점은 한 가지, 승낙의 표시로 그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는 점입니다. 도리도리를 하면서 "no problem."


대부분의 도시를 잠시 머물다가 떠나왔습니다. 주로 지역의 대학이나 도서관과 서점과 아쉬람을 둘러보았습니다.  요가의 본고장 리쉬케쉬에서는 숙소를 잡고 한 달 넘게 머물면서 시간대 별로 아쉬람에서 요가 수행도 하고, 저녁이면 강변에서 뿌자를 드렸습니다. 요가의 본고장답게 모든 수련원들이 저녁 어스름이면 모두 강변으로 나와서 뿌자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뭇잎 접시에 촛불을 띄우기도 하고, 꽃을 띄워 강물에 흘려 보내며 기도를 드리는 경건한 의식이 자연스러운 마을입니다. 


히말라야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강물이 되어 마을 한 가운데를 흐르던 리쉬케쉬에선, 다리를 건널 때면, 아이들이 밀가루를 콩알처럼 굴려서 작은 봉지씩 손에 들고서 내밀기도 합니다. 가끔 물고기밥을 사서 건너곤 하였습니다. 다리 한 가운데 서서 물고기밥을 강물에 던지면 팔뚝만한 물고기가 바글바글 몰려듭니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을의 모든 식당에서도 고기를 팔지 않는 요가의 마을이 리쉬케쉬입니다. 그 옛날 비틀즈가 방문해서 서양인들에게도 유명세를 탄 돌로 된 아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머물 당시에도 많은 나라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 전역을 돌면서도 저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 스승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스승과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있는 티벳의 임시 수도 다람살라는 북인도에 있습니다. 제가 여행하던 그 당시에는 달라이 라마가 해외에 순방을 갔던 시기였습니다. 대신 후계자인 까르마파가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두 명의 까르마파가 있다고 하는데, 그들은 한 명의 달라이 라마승이 두 명으로 분화되어 환생을 한 경우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의 까르마파와 친견을 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고, 꼭 한 가지의 질문을 하면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부귀 영화는 제 소원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오로지 하나 스승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친견을 하게 된 까르마파는 20대 초반의 어깨가 건장한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머리를 까까머리로 밀었고, 이마는 높은 산마루 같았고, 눈에선 맑고 깊은 고요가 느껴졌습니다. 질문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 질문은 아시다시피, "저의 스승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돌아온 답변은 "때가 되면 만납니다."였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답변이었습니다. 때가 되면 만난다는 말이 사심없는 마음에, 사심없는 길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조심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그때에도 기도라는 것은 기도한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른 법을 알기 전에는 기도도 함부로 드리면 안되는 것이라는 자각이 있을 때였습니다. 온전치 못한 기도를 섣불리 드렸다가 나중에 기도가 이루어진 후, 이게 아닌데 하며 후회할 일이 생긴다면 그 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어둡고, 혼돈스럽고, 세상에 혼자 있는 듯한 시절, 그때에도 언제나 붙드는 것이라곤 어둠 속에 한 점 빛나는 별빛 하나였습니다. 극히 작아서 어둠에 묻혀버릴세라, 보고 또 보며 늘 바라보던 작은 별빛 한 점은 진리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사람에게도 이처럼 자연스레 아름다운 길 곧 진리가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거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스승은 때가 되면 만난다'는 까르마파의 말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오늘의 말 같습니다. 그 말은 씨앗이 되어서 많은 말들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내 앞에 스승이 나타나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없다면 결코 만나지 못할 거라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승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습니다. 내 어둔 눈을 밝히고, 어둔 마음을 밝혀서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기 전에는 예수와 석가가 내 앞에 나타나도 결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마음 공부가 더 넓어지고 깊어져야 하는, 마음이 몸이 되듯이 실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허황된 꿈을 쫓거나 모호한 비진리 속에서 재미를 찾는 일들은 제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것입니다. 재미보다는 의미를 찾는 삶. 매일 매 순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로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하루라는 선물은 습관을 만들어 가기에 아주 좋은 완벽한 시스템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연과 진리 안에 거하며 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는 이치입니다.


안목을 가르기 위해선, 세상의 모든 종교와 모든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만 하는 일. 흐르는 물처럼 매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을 깜빡여서 스스로를 밝히고 맑혀야 하는 일. 숨이 붙어 있는 한 끊이지 않을 마음과 생각의 일어남 앞에 비로소 마음을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마음을 비우기로 한 것입니다. 어디를 찾아가서 찾고 구하려는 모든 의지 조차도 내려놓기로 한 것입니다. 한 자리에 머물러 매 순간을 깨어 있는 삶으로. 물처럼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자연과 진리의 흐름을 믿고 제 자신을 맡기기로 한 것입니다. 


열린 개방성과 깨어 있음으로 스승을 알아 볼 수 있을 거라는 자연스런 이치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류시화 시인이 인도를 십 년이 넘도록 안방 드나들 듯이 하며 수많은 스승을 만났고, 그 중에 대여섯분으로 추려서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누가 나의 스승입니까?'라고, 저와 같은 질문을 그도 궁금해 했던가 봅니다.


스승들의 한결같은 답변은, 진리를 사랑하고, 모든 생명에게 친절하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가 그대의 스승입니다. 마음의 평화는 모든 곳에서 등불이 됩니다. 사람을 만날에서도, 꿈을 선택할 때에도, 진리 안에 머무는 순간의 첫 느낌이 바로 마음의 평화와 자유인 것입니다. 태초의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운행하시던 모습도 저에겐 평화로운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책과 음악과 만나는 사람과 사소한 모든 것들을 선택할 때에도 자연과 진리와 마음의 편안함은 기준이 됩니다. 스승을 만나기 위해, 진리와 제 자신을 등불 삼아서 홀로 걸어온 길이,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매일 새로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선한 동력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영적 스승은 늘 원합니다.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영적 순례의 여정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바로 제 자신인 것입니다. 거듭 얘기하는 것은,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 사실을 떠올릴 수록 밖으로 떠도는 여행보다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제자리에 머물러 홀로 고독과 침묵 속으로 깊어지는 길로 더 나아가게 됩니다. 


함석헌 선생의 말처럼 얼굴 하나를 만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그리고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운문사에 방문한 신부님들이 운문사의 주지 스님에게 여쭈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깨달으셨습니까?", 스님으로선 난처한 질문이자 궁한 답변일 것 같습니다. 그러자 현명한 주지 스님의 답변은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사람을 알아봅니다."


안목, 서로를 알아본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나 또한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은 기적입니다. 사람 뿐만이 아닙니다. 꽃과 나무와 물건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무소유의 존재 그 자체로도 충만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소유에 끄달리지 않아도 되는 존재만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는 좋은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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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신동숙의 글밭(154)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하루의 생활이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뻐꾸기 소리에 눈을 뜨는 아침에도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바로 움직이기보다는 이부자리에 그대로 앉습니다. 말로 드리는 기도보다는 침묵 속에 머무르는 고요한 시간입니다. 


고요한 아침을 그렇게 맞이하기로 하는 것입니다. 앉았는 자리가 먼 동이 트는 산안개가 고요한 어느 산기슭이면 보다 더 좋겠지만, 골방에서도 가슴엔 밝은 하늘이 펼쳐집니다. 밤새 어두웠을 가슴으로 숨을 불어 넣으며 더 내려놓으며 새날 새아침을 맞이합니다.



20년 전쯤에 요가를 배우며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12가지 기본 동작을 아사나라고 하는데, 요가 수행자들의 몸수행의 방편이었던 아사나는, 앉아 있기 위하여 움직이는 조화로운 몸동작인 것입니다. 보다 더 오래 앉아 있기 위하여 보다 더 깊은 수행으로 나아갑니다. 


몸을 앞으로 뒤로, 왼편으로 오른편으로, 앉았다 일어났다 업드리고 누웠다가, 때론 비틀기도 하면서 온몸의 근육을 다양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온몸 구석구석 빈틈 없이 숨을 불어넣기 위함입니다. 막힌 곳 없이 숨을 불어 넣으니 저절로 피 돌기가 잘 되는 것입니다. 건강은 저절로 따라오는 그림자처럼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런 몸으로 앉아 있는 것입니다. 더 오랜 동안 앉아 있기 위함입니다.


숲의 인디언들은 나무를 보며 서 있는 사람이라고 했고, 사람을 보며 걸어다니는 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살아갈 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한 가지의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이 나무처럼 꽃처럼 제자리에 머무를 수 있다면, 일상을 살아가다가 틈틈이 머물러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지구별 이 땅에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결코 과장된 말도 허황된 말도 아닙니다.


한 가지의 예로 요가 동작 중 다들 힘겨워 하던 동작이 있습니다. 상체를 앞으로 구부려 손끝으로 발끝을 잡고, 상체와 하체를 반으로 접는 동작입니다. 예전에 쓰던 일명 폴더 폰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하다 보면 몸은 접히지 않고 등은 산처럼 솟아 오르고 저도 모르게 숨은 턱턱 걸리며 몸도 마음도 턱 걸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대로 멈춤 동작을 지속하는 일은 온몸에 진땀이 나는 일이 됩니다. 내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순간입니다. 이때에도 흐르는 물같은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먼저 들숨 날숨의 호흡이 거칠에 지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호흡의 평온함은 그대로 마음의 평온함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순간의 호흡을 편안하게 유지하는 일입니다. 호흡의 숨결은 그대로 몸의 근육결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몸이 더 나아가지 않을 때 숨을 들이 쉬고, 몸의 굳은 부분을 알아차리며, 숨을 내쉬면서 그 부분에 힘을 푸는 일입니다. 숨과 몸과 의식, 그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지속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5분 이상 지속할 수 있다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내 몸이 폴더 폰이 되는.


그러기 위해선 내 몸을 바라보는 의식이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움직임의 삶에 익숙한 우리들에겐 한 순간 깨어 있지 못하고, 의식이 무의식이 되는 순간, 숨은 턱 막히려 하고, 마음 따로 몸 따로 낑낑거리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깨어서 숨을 편안하게 유지하며, 숨을 내쉴 때 조금씩 굳은 부분에 힘을 풀면서 한 동작을 지속하는 일. 몸이 멈추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고요한 시간입니다. 깨어 있는 것은 바라보는 의식입니다.


이렇게 한 동작을 5분 이상 지속할 수 있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도 그랬고, 1분의 시간도 길게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요가를 예로 드는 이유는 머물러 앉아 있기 위함입니다. 예전에 제 자신이 요가를 배우며, 또 저보다 뒤에 배우려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지금껏 앉아 있는 일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다가 깨어서 홀로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사람도 나무와 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내내 떠나지 않고 제 곁을 맴도는 생각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이 주변을 바람처럼 서성이고 맴도는 마음의 부름 같습니다.



앉아 있는 일은 비로소 내면으로 들어가는 일, 스스로 깊어지는 일입니다. 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산책길이 됩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은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태초의 혼돈과 어둠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속에서 한 점 별빛을 많이도 더듬어 찾았습니다. 


지금도 늘 낮과 밤처럼, 도로 위에 터널처럼 지금도 아무렇지도 않게 어둠은 찾아오고 아침 해는 돌고 돌아서 찾아옵니다. 오르내림처럼 들나듦처럼 들숨 날숨처럼. 그렇게 제가 움직이는 것이겠지요. 바람처럼 흐르는 물처럼 한 순간도 잠자는 순간에도 쉼없이 움직이는 제 생각과 마음에 안식을 주기를 원합니다. 앉아 있음은 안식이 됩니다. 토머스 머튼의 말처럼 태초의 에덴 동산이 되고, 살아서 미리 체험하는 천국이 됩니다. 비로소 머물러 앉아 고요한 안식을 누리기를 원하며, 오늘 하루도 틈틈이 더 앉아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린 나무의 싹이 굵은 나무가 되고, 꽃씨가 꽃이 되는 그 보이지 않는 선명한 길이, 단지 제자리에 머물러 앉아 있기 때문은 아닌지 거꾸로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푸른 나무가 되고, 아름다운 꽃이 되는 길을, 말없이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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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 걸려 온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재모집 전화

신동숙의 글밭(151)


5.18에 걸려 온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재모집 전화


5·18에 극동방송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예전에 극동방송에 전파 선교비를 후원하셨는데, 다시 하실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기 너머에서 점잖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편에선, 왜 하필 5·18에 전화를 하셨느냐며 못마땅한 듯 반문을 하였다. 


두 자녀 이름으로 두 구좌를 후원했었다. 교회를 다니는 동안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가 자동이체가 되었으니까 4년이 넘는 기간인 것 같다. 당시에 극동방송 측으로부터 선물이 배송된 적이 있다. 책 한 권이었는데 창업자이자 현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의 자서전이다. 그 안에 전두환 대통령이 김장환 목사의 집에 방문한 일화가 나온다. 김장환 목사는 스스로의 행동을 자랑삼아 들려준다. 대통령이 내 집에 방문했는데, 여느 사람들을 대하듯 소박한 밥상이여서 대통령이 오히려 마음에 들어했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친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기 목사가 집에 들렀다가 슬쩍 100만원이 든 봉투를 주고 가더라는 이야기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는 한창 민중들이 어려움과 고통에 처해 있던 국가 고난의 시기였다. 


극동방송 홈페이지


전화 너머 극동 방송국의 점잖은 목소리에게 말했다. 목사님이 있을 자리는 예수가 있었던 자리가 아니냐고. 그랬더니 오히려 최근 감옥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김장환 목사가 면회를 간 일화까지 들려준다. 김장환 목사의 말씀으로는, 내가 아니면 누가 가겠냐고. 목사가 누군 만나고 누군 안만나고 차별하면 되냐고, 누구에게든 평등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반문을 하였다. 예수가 언제 바리세인들하고 벗하였느냐고, 소외되고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낮은 자리에 있지 않았느냐며 점잖게 반문을 하였다. 그랬더니 점잖은 목소리가 하도 들어서 귀에 굳은살이 박힌 소리를 한다. 


사람은 다 나약한 것 아니냐고,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 아니겠냐고. 예수님 시대에는 그런 환경이여서 그랬던 거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도 성전이 있었고, 성전에서 장사를 하다가 혼이 난 적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였다. 언제 예수님이 바리세인들하고 나란히 같은 길을 걸었느냐며. 하지만 내 귀는 굳은살이 박힐 만큼 딱딱한 귀가 아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살아 있으려 발버둥 치는 귀다. 


후원하던 당시에 라디오를 틀기만 하면 하루에도 수 십 번씩 흘러 나오던 김장환 목사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극동 방송국 사옥 건축 헌금 모금 광고. 건축은 잘 하셨느냐고 물으니, 점잖은 목소리가, 홍대 쪽에 건물을 올렸다는 얘기를 한다. 평수를 물으니 400평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극동 방송은 광고비 없이 김장환 목사의 뜻에 따라서 100% 후원금으로만 운영되는 곳이라는 자부심을 얘기한다. 예전부터 궁금했었는데, 선교비는 어디에 쓰이는지 뒤늦게 물었다. 방송국 운영비에 쓰이고 직원들 월급도 주고. 그 외에 어려운 이웃들을 후원을 하지는 않느냐고 물으니, 방송에서 들리는 내용이 곧 선교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번 대구 코로나를 위한 후원금 모집을 한 것은 100% 지원금으로 나갔다는 얘기를 해온다. 


극동방송 전파 선교비 자동이체를 끊으면서 극동방송은 일체 듣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려 주었다. 다시 극동방송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들어달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그래서 대답을 했다. 극동방송이 가난한 곳이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가난한 게 뭐가 좋은 거냐며 반문을 해온다. 건물도 있어야지 방문자들과 차도 한 잔 마실 수 있고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당연하다는 듯 얘기를 해온다. 그래서 말해주었다. 나는 극동방송국의 번듯한 건물을 보고 후원을 한 게 아니라고,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나오는 곳이라 마음을 기울인 것이라고. 김장환 목사의 자서전을 훑어볼 때도 잿더미 속에서 진리의 불씨를 발견하고 싶어서 꼼꼼히 읽었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적어도 최근까지의 여정에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극동 방송으로부터 잿더미 속에 불씨처럼 진리의 불씨가 보이는 날, 다시 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 불씨는 한 사람으로부터 피어날 수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진리의 양심이 밝은 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불씨는 감출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꿈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마저의 희망의 불씨라도 꿈꾸지 않고선 스스로가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


그리고 하필 5·18에 전파 선교 후원금을 재모집하는 전화는 좀 그런 것 같다는 얘기를 다시 해주었다. 방송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통화할 기회가 주어졌기에 제 편에서도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김장환 목사의 지나온 여정을 아는 눈 밝은 이들이 많다고. 스스로가 자서전에서 얘기했던 내용이기도 하고. 다만 말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침묵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리고 까마득한 옛날의 예수라고 하지 말고, 오늘도 가슴에 살아 있는 예수의 여정을 따라가면 좋겠다고 했다. 기득권과 권력과 건물이 아닌 작고 소외된 이들과 동행하는 극동 방송이기를 바란다고 작은 소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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