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목욕, 공정 거래

신동숙의 글밭(287)


엄마와 목욕, 공정 거래



이른 아침 목욕탕에서 나오면 머리카락에 얼음이 꽁꽁 얼었습니다. 언제가부터 목욕탕에 헤어 드라이기가 생긴 것은 훨씬 뒷일입니다. 그 옛날엔 1~2주에 한 번 일요일 새벽이면, 참새처럼 목욕탕에 가는 일이 엄마와 딸의 월례 행사가 되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목욕탕 굴뚝의 하얀 연기가 펄럭이는 깃발처럼, 우람한 나무처럼 새벽 하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졸린 두 눈을 뜨기도, 작은 몸을 일으키기도 제겐 힘에 겨웠던 일요일 새벽,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는 일보다 더 싫었던 건 목욕탕 입구에서 엄마의 거짓말이었습니다. 또래보다 몸집이 작았던 저는 여러 해 동안 목욕탕 입구에서 만큼은 일곱 살입니다. 엄마가 제 나이를 한두 살 깎으면 목욕탕 주인은 일이백원을 깎아주었습니다. 


지금 같아선 어림도 없는 거짓말이지만, 그때는 엄마의 말씀을 거역할 생각도 못했을 뿐더러, 목욕탕 입구에만 서면 제 몸과 마음은 꽁꽁 얼음 눈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딸이 얼음이 된 줄 엄마는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외면한 채 엄마의 일념은 오로지 어린 딸의 몸에서 때를 벗겨내는 일이었습니다. 


비누칠을 한 후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턱 밑까지 푹 몸을 담그고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했던 일이, 지금까지도 샘솟는 제 인내심의 원천인지도 모릅니다. 왠만큼 때를 불렸다 싶으면, 엄마와 나란히 앉은 저에게도 이태리 타올을 주십니다. 조막만한 손을 이태리 타올에 넣고서 트실한 왼손부터 때를 밀면 돌돌돌 때가 말려서 나오는 모습을 보시고서야 엄마의 얼굴엔 푸른 새순이 돋습니다. 


그렇게 딸아이의 팔과 다리에서 때가 툭툭툭 떨어지는 걸 보시고서야, 엄마는 때를 미시다 말고 손에 끼고 계시던 이태리 타올을 세숫대야에 툭 던지시곤, 이때다 싶으셨는지 벌떡 몸을 일으키셔서, 제 등과 어깨와 뒷목과 팔과 다리와 온 몸을, 겨울 미역을 빨듯이 빨래를 하듯이 신나게 미셨습니다.


엄마는 제 얼굴과 손바닥, 발바닥까지 그 이태리 타올 하나로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일이 끝나면, 엄마는 어린 딸에게 등을 밀어 달라며 등을 내미셨습니다. "조금 더 세게 밀어라." 하는 말씀에 두 손에는 더 힘을 주어 체중까지 실어서 밀면 그제서야, "어, 시원하다." 하시고, 그렇게 등에서부터 시작해서 어깨와 팔과 허리까지 밀어 드릴려고 하면, 엄마는 몸을 벌떡 일으키시며, "거기는 손이 가니까 놔둬라." 하십니다. 


엄마가 제 몸을 다 씻겨 주신 것처럼, 저도 조금씩 몸이 자라면서 가끔은 엄마의 팔과 다리까지 밀어 드릴려고 들면, 못 이기는 척 몸을 맡기시다가도 이내 엄마는 놔둬라 하시며, 금세 몸을 돌리곤 하셨습니다. 엄마와의 때밀기는 언제나 불공정 거래였습니다. 



지나간 일요일 저녁 때만 해도, 다음날 아침에 있을 토마스 머튼 강론 수업 때마다 늘 지각생이라는 제 말에 엄마는 순댓국을 드시다 말고, 설거지 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어김없이 혼자 나서신 새벽 산책길에 사정없이 뒤로 쿵 넘어지셨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후로는, 모든 일상 생활에도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머튼 신부님의 관상의 기도와 예수님의 사랑의 빛이 더욱 비추어야 할 땅으로, 이제껏 가장 그늘진 곳 엄마에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워 계실 병실창문으로도 이제 머지않아 아침해가 밝아올 테지요. 


늘 새벽 목욕을 가시던 엄마, 깨끗하고 맑은 새벽 목욕탕이 아니곤 몸을 담그지 않으시려던 엄마, 이제는 어린 날의 저처럼, 딸에게 몸을 다 맡기시는 엄마가 두 번째 목욕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이제는 딸보다 몸집이 더 작으신 엄마의 몸은 배만 커다랗지 팔다리는 삐쩍 마른 제 어릴 적 몸 같습니다. 


이제는 겨울에 목욕을 해도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얼지 않는 참 좋은 시절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뜨거운 온탕에 몸을 푹 담그길 좋아하시는 엄마를 위해선 오후의 햇살이 언제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마음에 얼룩으로 남아 있는, 목욕탕 입구 엄마의 거짓말처럼 저도 엄마의 나이를 깎아봅니다. 세월에 쌓인 이자 만큼 한두 살이 아닌 열 살, 스무 살도 더 넘게 깎아 내려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의 몸이 영 살이 될 때까지 언제나 그 빛을 거두지 않으시는 햇살처럼 그렇게.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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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의 방

신동숙의 글밭(286)


할머니들의 방



어제 밭에서 뽑은 노란 알배추 속 서너 장, 늦가을엔 귀한 상추 두 장, 푸릇한 아삭 오이 고추 한 개, 빨간 대추 방울 토마토 두 알, 주황 귤 한 알이 침대 사이를 오고가는 할머니들의 방은 콩 한 쪽도 서로 나누어 먹는 방입니다. 


아침이면 작은 보온 국통에 오늘은 무슨 따끈한 국물을 담아 갈까 하고 궁리를 합니다. 옛날 학창 시절에 부모님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뼈가 잘 붙으려면 사골국이 좋다 하시며 구포장에서 버스를 타고 장을 보아 오시던 아버지 생각도 납니다. 


넘어지시기 전날, 아이들이 국물만 먹고 남긴 순대국을 맛있게 드시던 엄마 모습이 힌트를 줍니다. 냉동실에 마저 한 팩 남은 순대국을 따끈하게 데워서 보온 국통에 담습니다. 평소보다 열 배 저속으로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신 엄마가 침대에 앉아서 순대국을 드십니다. 뭐든 쉬엄쉬엄 천천히 드시고 천천히 다니시고 천천히 하시라는 딸의 잔소리가 당분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국물은, 불국사의 애기 단풍이 붉던 날, 맑은 벗님과 맛있게 먹었던 맑은 아구탕이 생각납니다. 남해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난 엄마는 탕국과 비빔밥도 하얗게 드시는 걸 좋아하십니다. 한 사발 덜어 놓고, 식구들이 저녁과 아침으로 먹었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잔가시도 다 발라낸 후 따끈하게 데운 아구탕으로 보온 국통을 채웁니다. 곁들여 엄마의 입맛을 돋구는 음식은,  팔만 뻗으면 닿는 옆 침대 밀양 할머니가 건네주신 알배추를 전어 젖갈 쌈장에 찍어 먹는 맛입니다. 


엄마네 냉장고와 우리집 냉장고에도 한 봉지씩 있는 늦가을 배추가 지나가는 동네 마트 앞에 널려 수북이 쌓여 있는 걸 보니, 김장철입니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서도 김치를 담궈야 하는데 하십니다. 김치라면 물김치, 묵은지, 총각 김치, 돌아서면 담궈 둔 김치들이 이미 냉장고마다 가득합니다. 


저녁 나절 돌아오는 집 앞에서 짧은 인사를 드렸더니, 대문 앞 공터에 손바닥만한 텃밭을 가꾸시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손수 농사 지으신 배추 한 통을 돌담으로 무겁게 넘겨 주시며 맛이라도 보라고 하십니다. 




    ( 그림 : < 할머니 혼자 사는 집>, 황간역의 강병규 화가 )


하늘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강변 가로수의 나뭇잎들도 다 떨어진 초겨울이지만, 땅에는 여기저기 푸릇한 배추가 풍성합니다. 이 많은 배추들로 무슨 음식을 할까 싶어 궁리를 하였습니다. 눈으로만 보고 귀로만 들은 적이 있는 딸아이가 좋아하는 샤브 국물처럼 야채가 많은 밀푀유나베가 집에 있는 재료에 두어 가지만 더 준비하면 간단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그릇 덜어 두고 저녁밥으로 차려주니 아이들이 기뻐합니다. 딸아이는 "어, 사 먹는 그 맛이랑 똑같아."며 좋아합니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부터 아들이 어제랑 똑같이 또 해달라는 말에 이른 아침부터 남편은 깻잎과 소고기 심부름을 다녀옵니다. 


가을 배추와 깻잎과 버섯과 고기가 겹겹이 푹 익은 구수한 국물을 시원하게 드시는 엄마가 고맙습니다. 말끔히 다 비운 보온통은 점심으로 나온 미역국으로 채웁니다. 엄마는 마당에 있는 복순이를 주려고 챙겨 두신 찬밥이 저기 있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십니다. 옆에서 들으시고는 맞은 편 할머니의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냉동실에 넣어둔 찬밥 덩이를 꺼내 챙겨주십니다. 


그러고 보니 밥을 좋아하는 우리 복순이와 탄이가 한 동안 먹고도 남을 만큼 밥덩이가 많이 모였습니다. 수술 후 금식을 하느라 드시지 못한 밥, 가족들이 싸온 음식을 먼저 잡수시느라 드시지 못한 밥, 끼니 때면 꼬박꼬박 나오는 밥이 많아서 덜어둔 밥덩이들이 겨울 눈처럼 쌓여 가는 할머니들 방의 냉동실, 이제는 점점 겨울로 접어 드는지 불어오는 강바람이 제법 쌀쌀한 초겨울 아침입니다.


엄마의 등뼈 하나가 금이 가듯 곱게 부러져 그 자리에 그 모양 그대로 있어서 따로 손을 쓰지 않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많이 누워 계시면서도 끼니 때면 침대에 앉아서 식사를 드신 후 한 시간 정도 화장실도 다녀오시고 아주 천천히 걸으시면서 소화를 시키기로 하였습니다. 병실 복도끝 창문으로 들어오는 정오의 햇살이 반갑습니다.


엄마는 등이 가렵다며 봐 달라 하십니다. 햇살이 가득한 창으로 등을 대고 돌아서서 옷을 돌돌 말아 올려서 등을 내 드리니, 엄마는 그 옛날 푸른 멍이 든 아빠의 등 이야기를 또 꺼내십니다. 로션을 가져와서 발라 드리니 참 좋아하십니다. 뼈를 생성하는 비타민 D는 이 지구상에 음식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햇살 밖엔 없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해드리니 창문 앞에서 꼼짝도 안하시며, "아! 참 좋다. 뼈가 다 붙겠다." 하십니다.


방에 계신 할머니들 생각이 납니다.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마루를 내려오다가 그만 옆으로 넘어져 넙적 다리뼈가 부러져 수술 후 누워 계신 밀양 할머니, 발목뼈 수술 후 조금씩 스스로 걸으시는 할머니, 담석증 수술로 금식 후 그토록 원하시던 삼계탕을 맛있게 드시곤 배탈이 나서 오늘은 흰죽을 드셔야 하는 할머니, 혼자 있어야 하는 집에는 가기 싫고 여기에 계속 있으면 좋겠다 하시며, 가끔 어린 아이가 되기도 하시는 할머니, 아침해가 넘어간 방에 계신 할머니들이 생각납니다. 


이 겨울날 창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햇살의 은총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노란 알배추 속 한 장도 서로 나누어 먹으려는 할머니들의 마음이 이 공평한 햇살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따스한 마음이 이 겨울날 저녁 어둑해진 우리집 마당에 있는 복순이와 탄이에게도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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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주신 땅에게

신동숙의 글밭(284)


키워주신 땅에게




키워주신 땅에게 얼만큼 고맙냐구요? 마지막 잎새까지 떨구어, 다 주고도 모자랄 만큼 고맙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잎새까지 다 내어주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춥고 시린 마음보다는 저 잎들의 초연함 앞에 이제는 가슴 뭉클한 뜨거움이 올라옵니다. 


땅으로 돌아가는 가을잎들이 왜 하필이면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빛깔의 옷들로 갈아입었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헤아리다 보면, 여전히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추운 늦가을 밤에도 가슴이 따스하게 환해져옵니다.


때를 따라서 돌아가는 가을잎의 발걸음을 괜스레 재촉하고 있는 가을비와 가을 바람이 마냥 야속하기보다는, 이제는 길벗이 되었다가 재잘거리며 속을 나누는 도반인지도 모릅니다.


가을 바람이 아무리 차가워도, 황금빛 햇살을 걸쳐 입은 나목이 조금은 쓸쓸해 보여도, 수도승처럼 홀가분한 그 모습이 내심 부럽기도 합니다. 


키워주신 땅으로 돌아가는 가을잎들의 발걸음이 마치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는 마른풀들의 행진처럼, 불어오는 가을 바람을 따라서 경쾌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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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달빛을 닮은 눈길로

신동숙의 글밭(283)


가을 달빛을 닮은 눈길로



며칠 동안 간간히 가을비가 내리더니,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어둑한 밤하늘을 환하게 밝혀주던 가로수의 노란 은행잎이 이제는 땅 위에 수북합니다. 그 노란 은행잎 융단을 밟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일으키는 작은 파동이 가을바람의 빗자루질 같습니다.


지난 시월의 어느날 해인사 원당암 달마선원 참선방에서 철야 참선을 마친 후 일찍 나서던 길에, 잠시 보았던 스님들의 분주한 빗자루질 풍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날 느즈막히 길을 나설 때면, 말끔하게 쓸어놓은 공원 산책길과 훤한 절 마당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어쩌다가 떨어진 단풍잎 하나를 발견하고는, 가을 소식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줍기도 하고, 곁에 선 나무 아래로 돌려보내주기도 하던 적이 지금은 옛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덤덤히 낙엽을 밟으며 길을 걸어도, 바라보는 눈길 만큼은 가을햇살처럼,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나온 한 해 동안의 고마운 마음을 담은, 따뜻한 시선을 땅에서 끝까지 거두지 않으리라는 한 마음을 내어봅니다. 


그리고 점점 드러나는 빈 나뭇가지를 바라보면서, 그 앙상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어디에다 제 푸른 마음을 두어야 할 지, 마음이 가을바람처럼 제자리를 찾으려 맴돕니다.


이제는 떠날 채비를 다 끝내가는 이 가을과 어떻게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 할 지, 비우고 털어낸 앙상한 가지를 볼 때면 허전한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 지, 그럴 수록 빈 하늘을 더 자주 바라보게 되는 11월의 끝자락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비우고 털어내고 있는 이 가을날, 이른 새벽부터 가로수길과 공원 산책길과 절 마당을 쓰는 사람들의 수고롭고 고마운 손길을 생각합니다. 낙엽을 쓸어놓으면 또 금새 땅을 뒤덮으려는 11월의 가을잎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는 마음은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제가 사는 집에도 일찌기 마당에 가지치기를 끝낸 터라 친정 엄마는 올 가을엔 빗자루질을 안해서 좋다며 홀가분해 하시는데, 그런 마음은 아닌지.


법정 스님은 마당에 떨어지는 낙엽을 일부러 때마다 쓸지 않으시고, 마당에 떨어진 모습 그대로 오래 두고 보기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그 넉넉하고 고즈넉한 마음이 어둔밤 마당에 내려앉는 가을 달빛을 닮았습니다. 그럴 때면, 함께 생각나는 한시가 있습니다.


竹影掃階塵不動 죽영소계진부동

月輪穿沼水無痕 월륜천소수무흔


대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빛이 연못에 들어도 물에는 흔적 없네


(金剛經五家解 금강경오가해)


떠나는 이 가을날, 떨군 잎들과 빈 가지와 빈 하늘을 바라보는 눈길에도, 온 땅을 덮어주는 낙엽들의 넉넉한 마음이 깃들기를. 


땅에 뒹구는 잎들에 난 구멍과 찢긴 상처를 보며 제 허물과 상처를 본 듯 바라보기를. 때론 그 모습이 마치 주어진 생을 살아오느라 무릎과 허리가 성할 날 없이 견디어낸, 몸이 부서져라 애쓴 정직함과 제 몸을 내어주고 욕심을 비우느라 구멍 뚫린 가슴의 진실함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이 가을날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따스히 은은하게 비추는 온유한 가을 달빛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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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흐르는 강물처럼

신동숙의 글밭(281)


더불어 흐르는 강물처럼


세상엔 매듭 짓지 못하고, 풀리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작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제게 주어진 이 하루도 더불어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게 할 뿐입니다.


유약(柔弱)한 가슴에 어떠한 원망이나 분노의 씨앗도 뿌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쩌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노가 내 살과 뼈를 녹이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단속하려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닐 것입니다.


분노를 품고서도, 몸을 움직이며 그럭저럭 일상을 살아갈 때에는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습니다. 멈추어 바라본 순간에 비로소 자각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분노를 제 가슴에 품고서 새벽 기도를 드리던 고요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엄습하던 온몸의 느낌을 차마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몸이 멈춘 그 순간에 분노 속의 기도란, 내 몸의 세포 하나 하나가 마치 핵분열을 일으키는 발열체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 폭발할 듯한 열이 제 몸의 세포를 녹이고, 파괴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얼른 기도를 멈추었던 자각의 순간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그 후로 저에게 분노란 씨앗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하지만 가끔은 무기력한 스스로를 끓어올릴 화력으로 전환하여 사용하기도 하는 장작불 에너지원이 되기도 합니다. 평소 게을러서 하지 못하던 일을 그 화력을 사용해서 움직이게 할 뿐, 그 화력이 나와 타인에게로 무심코 흐르게 방치하지 않도록 깨어 있으려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 싸움과 갈등은 늘상 흐르는 강물의 한 줄기가 되어 우리의 일상 가운데 유유히 섞이어 흘러가고 있습니다. 


제게로 오는 방해물 또는 장애물을 애써 지우려거나 막으려 들지 않고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일입니다. 저항하지 않으려는 일입니다. 강물의 넉넉한 흐름 속에 섞이어 흐르도록, 단지 깨어서 바라보는 시선의 고요함만이 있을 뿐입니다. 


스스로 만든 둑을 세우고 저항하던 힘이 한계 수위를 넘어서고는, 욱하며 터져서 약한 보다 약한 어린 자녀에게로 흘러 가는 경험을 많이도 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끝이 없습니다. 단지 방해물과 장애물이란 끊이지 않는 호흡처럼 평생토록, 흐르는 강물 속에 섞이어 흐르는 하나의 물줄기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선택을 하는 일은 저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의 영역입니다. 불교에선 이번 생을 살아가는 동안 풀어야 할 업장이 될 테고, 기독교에선 제 몫의 십자가가 될 테지요. 



감사하게도 저에겐 가슴에 품은 맑은 샘이 있습니다. 예수. 그곳으로부터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흘러 나와 흐르게 하는 일입니다. 눈물로, 기쁨으로, 감사와 감격의 모습으로 샘솟아 나를 적시우고, 흘러 넘쳐서 물길을 내어 세상 밖으로 흐르도록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흐름이 작은 생명을 살리우는 물길이 되기를 소망하는 일. 유약한 저 자신이 스스로 저항하며, 버티려는 제 힘만으로는 이 한 몸이 숨을 쉬기도 버겁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알아차리게 됩니다. 저항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더불어 함께 흐르게 하는 편이 한결 마음을 더 넉넉하게 하고, 나와 우리와 자연의 생명을 조화롭게 살리우는 쪽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는 마음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탁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샘솟는 샘물을 가슴에 품지 못함일 테지요. 가슴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흘러 넘쳐서 흐를 수 있다면, 한 줄기의 장애물과 한 줄기의 혼탁함도 넉넉히 품어 더불어 흐르는 강물처럼 흐를 수 있을 테지요. 제 가슴에 품은 샘물은, 사랑과 진리의 몸이 되신 예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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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떨구어 주시는 씨앗

신동숙의 글밭(280)


소망은 떨구어 주시는 씨앗


저는 바라고 원하는 기도 앞에 언제나 떨며, 두렵고 머뭇머뭇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장소, 어느 종교, 어느 누가 드리는, 어떠한 형태의 기도라고 해도 기도에는 힘이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제가 드린 기도대로 이루어질까 싶어서 기도 앞에 언제나 머뭇거리며 주저하게 되는 마음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특정 종교 생활에 꾸준히 성실히 몸 담을 수 있는 배경이 되는 뒷심은, 기도의 힘을 맛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주위에 여러 종교인들의 얘기를 통해 종종 듣게 되면서 그러리라 짐작해봅니다.


하지만 그 기도란 우리네 어머니들이 장독 위에 정안수를 떠 놓으시고 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홀로 두 손으로 빌던 소박한 기도가 예배당에서 드리는 새벽 기도와 다르지 않다는 점 또한 엄연한 사실입니다. 


우주의 하늘은 이미 모든 생명에게 두루 공평하게 열린 하늘입니다. 기도란 장소와 형식보다는 마음의 간절함에 달린 영역입니다.


물론 혼자서 태우는 한 개비의 장작불보다는 함께 여럿이 어울려 태우는 모닥불이 아울러 받게 되는 커다란 상생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새벽이면 예배당이나 성당 또는 조용한 사찰이나 안전한 숲을 찾아서, 제 자신이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고요히 말없이 앉아 있고픈 적적한 마음이 늘 하늘 같습니다.


바라고 원하는 기도 앞에 떨며, 스스로가 머뭇머뭇 주저하며 스르르 내려놓다 보면 어느덧 제게 있어 기도란, 그저 머물러 앉아 있는 고요한 시간으로 흐를 뿐입니다. 시간을 잊은 그곳은 생산성과 효율성과 경제성이라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논리와 가치는 발붙일 수 없는 성역이 됩니다. 


저의 이런 한 생각은 이십대 초반부터 생긴,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는 기도의 힘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늘 머뭇머뭇 엉성하게나마 흘러오는 내면의 풍경입니다. 




만약에 기도의 자리든 마음 한 구석에라도, 나의 요구와 필요를 채우려는 육신의 안일과 분노와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채운 무거운 기도를 잔뜩 입으로 꺼내었거나 설령 마음에 품었다가, 그것이 나중에 어느날 현실이 되고 난 후의 뒷일을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그때 가서 '이게 아닌데!' 하는, 그제서야 온전치 못한 바램을 저 혼자서 원을 세워 집중해서 살아오느라 아까운 인생을 낭비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면, 얼마나 애석할까 싶은 그런 마음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도의 힘에 대한 믿음이, 주신 씨앗처럼 제 가슴에 떨어지고부터는, 기도란 부족한 제 자신을 채우려는 원하고 바라는 기도가 아닌, 보다 바르고 온전한 기도를 찾아야겠다는 구도의 길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루어진 후에도 후회의 얼룩을 덜 남기도록.


바르고 온전한 소망의 기도를 찾기 위해선 바르고 온전한 법, 곧 진리를 바라보며 따르는 구도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한 마음을 먹는 일에 있어서도 조심스러움과 한 생각을 일으키는 일에 있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생명을 낳는 것은 씨앗같은 한 마음과 한 생각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가 걸어온 진리를 찾는 여정이란, 더욱 더 부족한 제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바를 날숨마다 지우고 또 지우는 길이었음을 어렴풋이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의 제 자신이 그 구도의 선상에 있는지 스스로를 거듭 호흡처럼 감찰하며 되돌아보는 일이 어느덧 버릇이 되었습니다. 


내면의 땅을 고르고 넓히는 일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지난한 작업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을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양심이 가리키는 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원하거나 바라지 않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기도가 소망이 없는 허망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망의 의미가 보다 더 온전해지는 일입니다. 모자란 나의 소망이 아닌 보다 온전한 진리의 소망에 더 가까워지는 일입니다. 


기도란 나를 내어맡기는 시간이 됩니다. 모자라고 틀어진 나를 온전한 품에 안기우듯 맡기는, 위로와 치유와 안식을 누리는 고요함과 침묵 속에서 비로소 내면이 충만한 사랑방이 바로 기도의 자리가 됩니다.


척박한 자갈밭 같은 나의 아집과 나의 욕심과 나의 의지를 내려놓고 비운 빈 마음밭에 눈물로 비를 뿌리다 보면, 어느날 문득 떨구어 주시는 씨앗 한 알이 바로 진리의 성령이 떨구어 주시는 소망이 아닌가 하고요. 성경에서도 언제나 우리에게 소망의 씨앗 주시기를 원하나, 문제를 삼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밭입니다.


그렇게 받은 온전한 소망의 씨앗이란, 처음엔 미세하지만 분명하여서 세월의 흐름 속에 믿음의 싹이 트고, 진리의 땅에 더욱 뿌리를 내리며,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바람에 꺾이거나 매 순간 흔들린다 하여도 해맑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삶으로 꽃 피울 수 있는 참된 소망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처럼 온전한 진리의 영이 떨구어 주신 진리의 온전한 소망이란, 애써 욕심껏 채우려는 모자란 나의 욕망이 아님을, 날숨을 따라서 나를 비우고 내려놓으려는 고요함 속에, 토마스 머튼 신부님이 표현한 갈망의 침묵으로 그저 머물러 앉아 날숨마다 나를 비운 빈 마음밭에, 진리의 성령이 떨구어 주고 가시는 씨앗 한 알이 참된 소망이 아닌가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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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도의 응답도 [사랑]입니다

신동숙의 글밭(277)


제 기도의 응답도 [사랑]입니다


"엄마, 울어요?"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마술 카드 사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엄마, 왜 울어요?"


늦은 밤에 책상에서 울다가 아들한테 들키고 말았습니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도 눈물보다는 지인 목사님을 모셔서 천국 천도의 예배를 드리고 챙기느라 제겐 눈물을 흘릴 경황이 없었습니다.


 "아빠, 예수님 손 잡고 가세요."를 삼일장 내내 호흡처럼 주문처럼 기도처럼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곁에서 어쩔줄 몰라하시던 친정 엄마께도 그 한 문장만 가르쳐드렸습니다. 그냥 지금까지도 혼자 있을 때면, 운전을 하다가도 아버지가 생각 나서 울컥할 뿐입니다. 


가족들 앞에서 좀체 보인 적이 없던 엄마의 눈물은 아들의 눈에는 놀라움이었을 겁니다. 자정이 다 된 무렵 아빠로부터 약속 받은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 자랑을 하려고, 엄마의 방으로 무심코 들어왔던 아들이 보게 된 엄마의 눈물은, (고)이태석 신부님의 <묵상>이라는 시와 곡을 편곡하여 시노래 가수 박경하님의 음성으로 듣다가 일어난 일입니다. 


어제 함께한 이태석 신부님 기념관에서 첫 발표를 하던 이 노래의 첫 소절부터 터진 눈물이 온종일 눈에서 가슴 밑에서 흐릅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묵상>이라는 시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묵상>


이태석 詩.曲 \ 박경하 시노래

...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오~ 오


추위와 굶주림에서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님 말씀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략 이 <묵상>이라는 시가 지어진 시점은 이태석 신부님의 중학생 시절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중학생이던 이태석 신부님이 바치던 묵상의 기도 중에서 세상의 가장 큰 아픔들을 토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옛날 어린 신부님의 눈으로 보신 세상의 추위와 굶주림, 전쟁, 죄인들, 인간의 고통들은, 오늘의 뉴스에서 제가 본 현 실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세상은 아픔과 고통, 어둠과 혼돈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세상은 아픔과 고통, 어둠과 혼돈 속에 허덕이고 있으며, 앞으로도 세상은 아픔과 고통, 어둠과 혼돈 속을 유영할 것임을, 과거에 비추어 조심스레 미래를 짐작해봅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드렸던 같은 기도를, 하느님이 계시다면 세상이 왜 이토록 아픔과 고통, 어둠과 혼돈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지, 저 역시도 혼자서 몸살을 앓으며 그것이 기도인 줄도 모르고 몇 날 며칠을 녹초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 나이 스물 한 두 살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제겐 의지하고 찾을만한 절과 교회도 스승이나 사람 하나도 제 곁에 없었습니다. 마땅히 찾아야 하는 줄도 몰랐기에, 제 방에서 폐인처럼 곧 죽기까지 아파했었습니다. 그것이 기도인 줄도 모르고, 마음 속 가득한 어둠과 혼돈을 침묵 속에서 토로하던 몸부림이었습니다. 


성인이 되고서 보이기 시작하던 세상의 악과 모순들을 보면서 왜 이 지경인지, 자녀가 부모를 부모가 자녀를 헤치는 폐륜 범죄, 돈 때문에 사람이 사람다움을 져버리는 일들, 정의가 뭍히고 거짓이 뒤섞인 이 모든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제겐 고스란히 세상의 아픔과 고통, 어둠과 혼돈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 속에서 헤매이던 일들이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만약에 태초에 어둠과 혼돈이 있었다면, 제겐 태초의 어둠과 혼돈과 같았던 경험입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그때 제 안엔 온통 태초의 어둠과 공허와 혼돈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치 기도에 응답인 듯 선명히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보인 것은 무채색의 작은 낱말 카드에 쓰인 두 글자. [사랑]입니다. 화려한 빛도 아니고 아름다운 형상도 아니고 문장도 음성도 아닌 지극히 단순한 두 글자 [사랑]입니다. 멋 모르는 저의 스타일에 맞춘 눈높이 응답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저를 에워싸던 세상의 모든 어둠과 혼돈이 비로소 질서를 잡아가면서, 어디서 온 줄도 모르는 그 두 글자 앞에 그만 주저앉아 엎드려 제 모든 걸 내려놓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두 글자가 하염없이 고마웠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제게 [사랑]이라는 글자는 앞으로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과 뜻이 되고, 사명과 이유가 되고, 세상에 전하고 나누어야 할 책임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온전히 사랑한 자가 누구인지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진리를 찾아나선 순례길은 그때 응답 받은 [사랑]이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밤이 아무리 어둡고 침침해도 문득 보인 두 글자처럼, 어딘가에 별 하나 쯤은 있는 법이라는 사실을 그때의 경험으로인해 마음으로 믿는 구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오늘의 안타까운 뉴스에서, 잠시 탐욕으로 첫 마음이 가리워진 스타 스님이 입고 있는 가사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모태 신앙과 가족을 떠나 출가를 한다는 결심은 죽음을 각오할 만큼의 결심과 다르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질과 자본의 부유함은 영혼을 병들게 하기에 선현들은 그토록 가난함을 예찬하며 사랑하기까지 했으리라는 선견지명 앞에 어둔 밤하늘에 별을 본 듯 가난은 구도의 지향점이 됩니다.


마치 터져버린 분노와 정신적 분열로 첫 마음이 가리워진 푸른 눈의 스님을 보면서, 뼈가 아픕니다. 모국과 가족을 떠나 타국에서 진리의 구도자로 살아가려던 결심 또한 죽음을 각오한 굳은 의지가 아니고선 나설 수 없는 나그네길이었을 것입니다.


하버드대와 서양인이라면 벌떼처럼 달려드는 한국의 자본주의와 성공주의로부터 그들이 수행자로써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내면의 힘 또한 잠시 가리운 탐욕의 구름과 터트린 분노 속에 이미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본향으로 나아가는 운수납자의 나그네길에 탐진치, 삼독을 경계하라 하시던 성인들, 성철 스님, 무소유의 법정 스님, 권정생 선생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둔 세상에 빛나고 있는 별입니다. 


어둠과 혼돈은 지금도 제게 오랜 벗처럼 찾아옵니다. 매일 매 순간 찾아옵니다. 호흡처럼 찾아오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도 매일 찾아오는 어둔 밤과 혼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존재하는 그 어둔 밤하늘만 바라보며 세상 한탄만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속에 빛나는 한 점 별빛을 바라볼 것인지 하는 선택의 문제는 우리의 자유 의지에 달렸습니다. 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세상이 아무리 혼돈스럽고 부조리하고 괴롭고 이해되지 않아 보여도, 어딘가에 별 하나는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아픈 유년기를 보냈다고 하더래도 한 순간 스친 따뜻한 기억 하나만 있다면, 그것은 밤하늘에 뜬 별이 됩니다. 거기서부터 생명의 호흡은 다시 시작됩니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점점 커져 밝은 하늘이 되기도 하고, 또 상대적으로 어둠이 커지면 밤하늘의 작은 별로 남기도 합니다. 하지만 윤동주의 별처럼 바람에 스치우더래도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어둠과 혼돈 속에 응답처럼 보여주신 '사랑'이라는 두 글자는 지금도 제 안에서 별빛처럼 때론 환한 대낮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제가 이태석 신부님의 <묵상>이라는 시노래를 들으며, 제 기도의 응답과 하나로 겹쳐지면서 늦은밤 아들을 의식하지도 못하고서 눈물을 보였지만, '사랑'이라는 기도의 응답을 사명처럼 받은 뒤로는 제 삶은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 비틀거리면서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환영이었다면 쉬 사라졌을 텐데 말이지요. 가슴 깊이 박힌 두 글자는 이미 가슴에 심겨져 뿌리를 내리며 자라오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제게 주신 첫 마음을 잃지 않도록 이정표가 되어준 진리의 말씀 또한 빛나고 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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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커튼 바느질

신동숙의 글밭(274)


찢어진 커튼 바느질


거실창 커튼이 찢어지기 시작한 것은 우리집에 탄이가 오면서부터입니다. 탄이는 털이 새까맣고 작고 귀여운 강아지 포메라니안입니다. 이제는 몸집이 다 자랐는데도 원체 작다 보니 탄이는 계속 강아지로만 보입니다. 


새로 산 핸드폰 충전기 줄을 세 개나 물어서 끊어 놓고, 유선 케이블 연결선을 세 차례나 끊어 놓아 통신사 기사님을 성가시게 한 적도 많고, 아무리 미운 짓을 거듭해도, 탄이의 까만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미운 마음이 스르르 녹아서 사라지게 되는, 탄이의 얼굴은 이미 현묘지도(玄妙之道)를 지닌 듯도 합니다.


제 어릴 적 기억에, 겨울이 다가오는 이 무렵이면 부모님에겐 월동 준비로 연탄 100장을 장만하시는 일이 큰 숙제였습니다. 키다리 연탄집 아저씨가 연탄을 지게에 지고서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오셔서 우리집 창고에 쌓아두시던, 새까만 연탄처럼 털이 깜다고 해서 고민 없이 탄이라고 이름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딸아이는 탄이가 BTS의 애완견과 똑같이 생겼다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서, 쉬는 날이면 가끔 딸아이의 친구들이 와서 심심해 하던 탄이와 놀아주기도 합니다. 처음에 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첫눈에 반했다는 아들은 '김연탄'이라고 부릅니다.


탄이의 보금자리로 거실창 앞에 노란색의 낮은 울타리를 두르고 둥지처럼 작은 집을 마련해 주었더니, 제 집 옆에 있는 커튼 뒤로 숨기도 하고, 집에 아무도 없는 낮에는 커튼을 물고 당기고 놀면서 지내기도 했던가봅니다. 그냥 예사로이 보아 넘겼는데, 어느 날 보니 아예 커튼 밑둥이 갈기갈기 뜯겨져 있었습니다. 눈에 드러날 정도는 아니어서 따로 손을 쓰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데, 문제는 커튼 중간 부분에 작은 구멍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거실 커튼이 제법 오래되기도 하였습니다. 전망이 좋은 남향 아파트에서 살 적에 밀려오던 공허감, 불현듯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땅을 밟을 수 있고, 머리에 하늘을 이고 잠들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점점 자라 하늘 만큼 커지면서, 어디 시골 촌집이라도 좋으니 마당이 있는 집을 알아보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낡은 커튼은 이곳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오면서 처음으로 달았던 커튼입니다. 어느덧 우리 가족들과 함께 십여 년의 세월을 넘어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 집주인이 심어놓은 감나무, 매화 나무, 목련 나무, 쥐똥 나무, 석류 나무, 은행 나무들이 처음에 만났을 땐 키가 나즈막하니 지붕의 처마를 넘지 않았는데, 해마다 1~2미터씩 키가 웃자라다 보니, 가지를 쳐주는 일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숙제가 되었습니다. 올해는 옆집에서 소나무 전지를 하던 날 덩달아서 일찌기 가지치기를 하는 바람에 온 마당을 뒤덮는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 융단을 볼 수 없게 되어 내심 안타깝지만, 친정 엄마는  마당에 빗자루질하던 한 짐을 덜었다며 속시원해 하십니다.


거실 마루에 앉아서 나무와 돌담과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거실창은 투명한 유리창입니다. 집 안에서  사계절의 빛깔을 다 볼 수 있는 거실이라서,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이는데 거스르지 않을만한 색감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어떤 잎사귀의 색을 커튼 색으로 정할지 마음에 대어보고 또 대어보던 초보 살림꾼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선택한 색이 제가 좋아하는 신록의 계절 5~6월의 잎사귀를 닮은 초록 색감의 워시면입니다. 새 것이지만 새 것 같지 않은 이미 한 번쯤 빨아서 말린 듯한 느낌이 드는 천이 워시면이라고 해서 마음에 들어 선택을 한 것입니다. 새로 샀지만 처음부터 새 것 같지 않았던 거실 커튼과 그동안 함께 흐른 세월이 15년이 다 되어간다고 하니 버려도 아깝지 않을 물건이지만, 물건의 가치와 효용을 세월만으로 따지기엔 '그게 다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햇살과 바람에 커튼은 색이 바래고 천은 삭아서 작은 탄이의 입질에도 맥없이 뜯기고 찢겨져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 낡고 삭고 볼품 없어진 커튼을 한동안 그냥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이참에 새 커튼으로 바꿀까 싶은 마음도 사이 사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자면 또 성철 스님이 손수 기워 입으시던 누더기옷이 바람처럼 말을 걸어옵니다. 그러다 보면 새 커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다가 또 하루가 지나면 구멍 난 커튼은 잊고서 몇 날을 지내기도 합니다. 낮에는 커튼을 걷어 두니 사실 누가 일부러 펼쳐서 들추어 보기 전에는 표가 잘 나지 않기에 그럭저럭 찢어지고 구멍 뚫린 커튼과도 공생해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밤입니다. 밤이 되면 커튼을 펼쳐서 집 안에서 생활을 해야하는데, 그 커다란 구멍이 또 하나의 창이 되어서 까만 바깥 세상이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집 앞을 지나는 이웃들에겐 집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 되겠지요. 당장이라도 새 커튼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또 다시 일어나려는 생각을 다시금 내려놓게 하는 것은 어릴 적 아버지의 재봉틀입니다. 


손재주가 좋으셨던 아버지는 마당에 남동생과 저를 앉혀 놓으시고 보자기를 어깨에 둘러 빨래집게로 고정을 시키신 후 남동생과 제 머리를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놓으신 후 알밤을 보듯 흐뭇해 하곤 하셨습니다. 일명 바가지 머리를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 그 바가지 머리를 해오면서도 단 한 번도 안하겠다고 반항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6학년이 되고서야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뒤늦게 깨친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아버지의 손길이 남긴 흔적으로, 아버지가 꼬매주신 엄마의 양말이 있습니다. 혹시나 깔끔한 성미의 남동생이 고민도 않고 버릴까 싶어서 얼른 챙겨서 저희집 반짓고리함에 모셔두었습니다. 남동생의 집은 모델 하우스처럼 보일 정도지만, 저희집에 있는 살림살이들이라 해야 탐낼만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는 낡은 통나무 탁자, 이제는 빛바랜 통나무 거실 낮은 탁자, 이제는 손떼 뭍은 통나무 책상, 이제는 향이 그윽한 나무 책꽂이와 선반 등 세련된 것이라곤 하나도 없지만, 우리집에 찾아오는 어느 누구에게도 위협적이거나 탐심과 소비심을 자극하지 않을만한 살림살이들이라서 착하고, 그럭저럭 스스로 만족해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정 엄마는 아이들이 크면 그때 가서 가구를 다 바꾸면 되겠지 하고 말씀하시지만, 제 속을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애초에 나무를 선택하고 주문 제작을 할 때부터 나무 가구는 저에겐 평생의 동반자이자 도반이라 여기는 마음입니다. 법정 스님의 의자와 소로우의 소박한 책상을 닮은 소박하고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요.


우리 어릴 적 아버지가 쉬시는 날이면, 재봉틀로 바짓단을 줄여 주시기도 하고 늘려 주시기도 하셨던 추억이 있습니다. 재봉틀은 기름칠을 주기적으로 해주지 않으면 녹이 난다 하시며 언제나 반질반질 윤기가 돌도록 하셨는데, 그때의 재봉틀 주변에서 풍기던 기름 냄새와 대못에 감긴 실 내음이 아련합니다. 


이사할 적마다 따라다니던 재봉틀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게 된 시기는 새로 이층집을 지어서 살게 된 다음입니다. 가끔 빈티지 카페나 샾에서 아버지의 재봉틀과 닮은 오래된 재봉틀을 볼 때면 그리운 마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때 저에게 이만큼의 안목이라도 있었더라면, 아마도 저희집 한 켠엔 아버지의 재봉틀이 지금껏 함께 살아오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의자에 앉아서 무쇠 발판에 두 발을 나란히 올려 놓고 발끝과 뒤꿈치를 앞뒤로 굴리며, 동시에 오른손으로 무쇠 손잡이를 돌리면서도 시선은 바늘끝을 향해 있어야 하던 아버지의 재봉틀. 실타래가 빙빙빙 돌아가면서 감기기도 하고 반대로 풀리기도 하던, 바늘 끝에 난 구멍을 통과한 윗실과 아랫실이 천과 천을 호아주던 한 땀 한 땀을 떠올리며, 오늘 아침엔 거실창 커튼 곁에 서서 손바느질로 흉내내보기로 하였습니다. 


지나고 보면 아쉬운 일, 아쉬운 순간, 아쉬운 만남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는 묵은 마음들이 새물결처럼 일렁일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사람이 후회를  안하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 후회를 줄여 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누군가 법정 스님에게 물었던 물음에 대한 스님의 답변이 늘 제 가슴에 맑은 바람처럼 맴돕니다.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그러한 맑은 흐름을 따라서, 저 역시도 물건과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바른 안목을 일찌감치 젊었을 적부터 기를 수 있다면 좋겠다는 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순례길입니다. 지구와 생명을 사랑하는 소박하면서도 아주 단순한 방법은 소비를 줄여 아껴 쓰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물론 늘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삶이지만, 늘 하늘의 호흡처럼 동행하는 마음입니다.


재봉틀을 버리시던 그 옛날 아버지의 생각에는,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하시고, 자녀들의 키도 거의 다 자라서 재봉틀로 옷수선 할 일이 크게 없다고 여기셨을까요. 아니면 새집에는 낡은 재봉틀이 어울리지 않다고 여기셨을까요. 저도 나이가 들어서 이제야 문득 아버지의 그 마음이 궁금해지지만, 이제는 물어도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가슴 속에 일렁이는 질문들은 흘러 넘쳐서 세상 사람들에게로 그리움의 물길을 냅니다. 



오늘 아침 햇살이 좋은 가을볕에 한결 더 빛이 바래고 삭아가는 낡은 커튼이지만 제게는 평온함을 주는 이유는, 그 옛날 커튼을 고를 때의 첫 마음 만큼은 변치 않고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정오까지 계획했던 일들을 접어두기로 하고, 이불을 깁는 대바늘 귀에 연초록색 실을 두겹으로 꿰었습니다. 높이만 2미터가 넘는 거실 커튼을 걷어내서 혼자 힘으로 또 다시 거는 일이 힘에 부칠 것 같아서, 그냥 서서 깁기로 하였습니다. 세로로 찢어진 곳은 내려가면 되니 비교적 한 땀 한 땀이 수월하지만, 가로로 찢어진 곳은 중력의 힘에 의해 아래로 늘어져 맥없이 마저 주저앉으려는 환자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듯 힘에 겹습니다. 


커튼 천은 삭아서 조금만 힘을 주어 당겨도 쉬 찢어지려고 합니다. 초여름의 신록빛이었다가 이제는 가을 목련잎의 노란 빛깔을 닮아가는 커튼이 앞으로 얼마만큼의 세월을 더 이겨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며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일 만큼은 한결같으리라는 한 마음을 저 혼자서 속으로 약속할 수는 있을 듯합니다. 처음 커튼을 고를 때의 그 신록빛의 첫마음은 여전히 변치 않았기에.


오랜 세월에 빛이 바래고 낡고 삭고 주저앉으려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은, 이제는 햇살과 바람과 하늘의 일로 넘겨두기로 하면서, 땅의 일들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는 자유로운 길이 있습니다. 넓다란 천이 한 조각이 되기까지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다보면, 마지막 한 점까지 이 땅을 사랑으로 채우기를 원하는 하늘을 닮은 마음. 어쩌면 그것이 하느님이 명령하신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는 일에 순명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따뜻하게 한 땀 한 땀 이어져 흐르는 오후의 한나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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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레몬 홍차

신동숙의 글밭(273)


가을은 레몬 홍차




차 한 잔이 주는 여유와 여백을 좋아합니다. 가을빛이 짙어갈 수록 도로변에 서 있는 가로수들도 저처럼 여유와 여백을 좋아하는지, 여름내 푸른 잎들로 무성하던 나무들이 이제는 자신의 둘레를 비우고 덜어낸 자리마다 하늘의 여유와 여백으로 채워가고 있는 11월의 가을입니다.


사람에게도 자신이 살아가는 물질적인 삶의 둘레를 비운 만큼 마음의 하늘이 차지하는 공간은 넓어지리라 여겨집니다. 


해 뜨기 전부터 시작하여 해가 져도 그칠 줄 모르는 분주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 멈춤이란 얼음땡 놀이에서 구하는 멈춤의 순간 만큼이나 몸과 마음과 숨을 부자유하게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숨을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생명들에겐 왠지 부자유스러운 멈춤을 물 흐르듯이 자유로이 흐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차(茶)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만약에 곁에 차(茶)가 없다면 수차(水茶), 맑은 물 한 잔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스무살의 가을날 학교 밑 카페에서 처음으로 주문한 차 음료는 레몬 홍차였습니다. 홍차 티백에 붙은 하얀 실을 홍찻잔 손잡이에 돌려서 걸어 놓던 모습과 맑고 투명하던 붉은 홍차 빛깔이 떠오릅니다. 


가끔은 레몬 조각을 띄워주는 찻집을 만나기도 하고, 인심이 좋은 주인은 두 개의 티백을 작은 찻잔에 넣어준 적도 있는데, 그때는 적당히 우려내고 건져내어야 하는 다법을 몰라서 쓰고 떫은 차맛을 나름 견뎌내기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춤의 여유와 여백의 숨돌림을 주는 차 한 잔이 저에게는 친한 벗이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홀짝 홀짝 조금씩 마시는 물과 차가 늘 곁에 있으니 하루가 왠지 모르게 편안하게 흐릅니다. 


요즘처럼 추운 가을에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마음속까지 따뜻하게 데워주기도 하고요. 생각이 막힐 때에는 풀리기도 하고, 차와 하루에 대해서 이렇게 사색을 하다보면, 차를 벗으로 삼았던 옛 선비와 선사들과 선현들의 이야기가 두런두런 물소리처럼 들려오는 듯합니다.



핸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을 읽다가, 자연과 차에 대한 명쾌하고 아름다운 구절을 보아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자연의 산책가라는 직업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소로우가 숲 속을 산책하면서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짙어가는 이 가을빛이 레몬 홍차의 빛깔과 향과 맛처럼 더욱 선명히 그윽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제 늪지대에 가면 건강에 좋은 약초 즙을 얻을 수 있다. 잎사귀들이 부식될 때 나는 약 냄새는 정말 향긋하다. 갓 지거나 떨어진 풀잎과 낙엽 위에 비가 내리거나, 깨끗한 낙엽들이 떨어진 물웅덩이나 도랑에 비가 내려 물이 가득 차면 이 낙엽들은 차(茶)로 변한다. 


녹색과 흑색, 갈색과 황색의 다양한 빛깔에다 진하기도 가지각색이다. 온 자연이 마시고 수다를 떨기에 부족하지 않은 충분한 양이다. 그 차는 아직은 충분히 달여지지 않았다. 우리가 그것을 마시든 안 마시든 간에, 자연의 위대한 솥 속에서 건조된 이 찻잎들은 너무나 다양하고 정교한 빛깔을 띄고 있기 때문에 저 유명한 동양의 차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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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신동숙의 글밭(272)



빈방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빈방은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빈방은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볼 때의 푸른 설레임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텅 비었지만, 바라보는 마음은 비우면 비울 수록 충만해져 오는 이치입니다. 


빈방은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즉 순수한 본성을 닮았습니다. 우리의 순수한 본성은 또한 맑은 가을 하늘을 닮아 있는 크고 밝은 하늘의 무진장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빈방을 본 것은 언양 석남사 한 비구님 스님의 방이었습니다. 요즘처럼 단풍이 아름다운 어느 가을날 스물 한 살의 나이에 친구가 구했다는 흑백 필름 사진기로 추억 여행 사진을 담으려 둘이서 버스를 타고서 친구의 이모 스님이 출가한 곳이라는 언양 석남사를 처음으로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학창시절 함께 한 행복한 추억이 많은 박정민 친구는 그때부터도 영상에 관심이 많았는지 졸업 후 PD가 되었습니다. 요즘도 '우리말 겨루기' 방송을 담당하고 있는지 소식이 궁금해집니다.


낯설어 하는 우리더러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는 비구니 스님의 안내로 들어선 이모 스님의 빈방에는 벽장문이 하나, 낮은 탁자 하나, 방석 하나가 놓여진 단정한 모습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보는 빈방이 주는 그 홀가분함이 제 마음에는 얼마나 좋았던지 점잖게 앉아 있는 친구 곁에서 저 혼자서 마구 좋아라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빈방을 처음 본 그때 그 시절 추억의 한 장면을 떠올리려니 그때의 설레임과 충만감이 그대로 되살아나려고 합니다.


관상의 기도를 해오면서 겹쳐지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빈방과 하늘은 우리의 순수한 마음을 닮았다는 점입니다. 마음의 방에서는 침대도 책상도 옷장도 옷가지들도 숟가락 하나도 필요 없는 물건일 뿐입니다. 


흔히 어른들이 얘기하시는 다음 세상으로 건너갈 때에는 이곳에서 일군 재산과 사람과 그 어떠한 물질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 우리네 인생인 것처럼, 관상의 기도 속에서 만나는 제 마음의 빈방에는 언제나 아무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빈방을 대할 때면 알 수 없는 설레임으로 충만해져 오던 이유가 우리 본래의 마음을 대하여 바라보는 일과 닮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빈방과 함께 생각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성 프란치스코, 월든 오두막의 핸리 데이비드 소로우, 다석 류영모 선생님, 법정 스님, 그리고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둘레를 보다 소박하고 간소하고 단순하게 비우고 덜어냄으로 누구보다 풍요롭고 충만한 내면의 뜰을 가진 이들입니다. 


어쩌면 그 만큼 내면이 충만했기에 저절로 눈에 보이는 삶의 둘레와 살림의 가짓 수를 줄여 나가며, 간소함과 단순함으로도 얼마든지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커다란 하늘과 광활한 땅, 그 커다란 하늘 품에 안기어 언제나 말없이 귀를 기울이는 일이 제가 드리는 관상의 기도입니다. 언제나 온유한 그 커다랗고 밝은, 빈방을 닮은 하늘은 하느님이 살짝 보여주시는 하느님 얼굴의 일부분인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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