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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뿔 솟은 모세?

by 한종호 2019. 5. 9.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9)

 

 

뿔 솟은 모세?

 

 

로마에 있는 일명 쇠사슬교회라 불리는 산 피에트르 인빈콜리 성당 안에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모세상이 있다. 의자에 걸터앉아 고개를 들고 왼쪽 위를 쳐다보는 모습이다. 힘줄이 튀어나온 팔과 다리의 근육, 긴 수염에 곱슬머리. 그런데 머리에 뿔 두 개가 솟아 잇는 것이 처음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것이 미켈란젤로의 저 유명한 <뿔 솟은 모세>다. 조각가가 모세의 머리에 뿔을 조각해 넣은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그가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역의 출애굽기 34장 29절을 읽었기 때문이라고들 설명한다.

 

 

 

 

우리말 번역의 <개역>, <개역개정>과 <공동번역>은 모세가 증거판 돌을 가지고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났다”(개역),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개역개정), “얼굴의 살결이 빛나게 되었다”(공동번역)라고 번역하엿다. 그러나 불가탁역에는 모세의 얼굴에 “뿔이 솟았다”라고 하였다.

 

히브리어 명사 ‘케렌’(뿔)에서 나온 동사의 뜻은 “광채가 나다”(출애굽기 34:29), “뿔이 솟다”(시편 69:32)인데, 불가탁역은 “광채가 나다”로 번역해야 할 곳에서 “뿔이 솟다”로 번역한 것이다. 같은 식의 오역은 영어흠정역 하박국 3장 4절에서도 볼 수 있다. 야훼의 손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뿔이 났다”고 번역하였다.

 

“뿔이 솟다, 뿔이 나다, 뿔이 자라다”라는 말마저도 그렇게 쉬운 말은 아니다. 뿔이 동물의 머리나 얼굴에 딱딱하게 튀어나온 물질이라는 것은 우리말이나 히브리어나 같다. 그러나 동사로 쓰여 “뿔이 나다” 혹은 “뿔이 솟다”는 우리말은 화를 내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말에서 “뿔나다”는 곧 “화가 나다”, “골이 나다”를 뜻한다. 그러나 히브리어에서 뿔은 힘과 존엄을 상징하기 때문에 “야훼께서 아무개의 뿔을 높이신다”거나 아무개의 “뿔이 높아지다”, “뿔이 높이 들리다”라고 하는 말은 우리말의 “뿔나다”와는 뜻이 전혀 다르다.

 

히브리어의 뜻은 차라리 뿔 달린 짐승이 약한 짐승을 성공적으로 제압하고 난 뒤에 머리를 높이 쳐들고 제 힘을 과시하는 가시적 모습에 가깝다. “높음” 혹은 “정상” 등괴도 관련된다.

 

“뿔”은 구약에서 자식들을 보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헤만에게 자식들 곧 아들 열 넷과 딸 셋을 허락하신다. 이것은 헤만의 뿔을 높이 들어 주시겠다던 약속의 성취였다(역대상 25:5). 한나가 사무엘을 낳아 하나님께 바치면서 드린 기도에서 야훼 때문에 자기의 뿔이 높아졌다고(사무엘상 2:1) 고백한다. 이것은 돌계집의 부끄러움에서 벗어난 기쁨, 자식을 얻은 기쁨, 이제는 떳떳이 얼굴을 들 수 있게 된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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