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고한 성벽의 균열과 고요한 호수의 파문

강고한 성벽의 균열과 고요한 호수의 파문

 

『일그러진 영웅 vs 만들어진 영웅』은 한신대와 클레어몬트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현재 LA 향린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곽건용 목사가 쓴 사울·다윗 평전이다. 저자는 이미 다윗과 사울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책을 더한 이유가 이 주제에 대한 최근의 학문적 성과를 반영하면서 일반 독자들도 읽을 수 있는 우리말 책을 써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다윗 편향적인 사무엘서의 시각에서 벗어나, 그간 홀대받고 왜곡되었던 사울의 본모습을 발견하고 성경 최고의 영웅인 다윗의 어두운 뒷모습에도 주목하게 되길 기대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내려놓기 힘들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 책은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성실한 학자인 저자의 역량을 잘 보여주며 대중성과 학문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저자의 소망을 이루는 데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사무엘서가 일방적으로 다윗 편을 드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사무엘이나 야훼의 입을 통해 나오는 판단일 뿐 설화자(narrator) 자신은 가급적 두 사람의 언행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를 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평가가 배제된’ 사무엘서 내러티브와 자세히 설명이 생략된 채 남겨진 개별 내러티브의 구멍/갭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신명기사가(史家)의 견해가 반영되어 있는 공식적이고 신학적인 ‘평가’의 심층에 감추어진 사울과 다윗의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본모습’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주로 공시적-문학비평 방법론을 통해 설화자가 어떻게 사울이 버림받고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을 정당화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는지 세밀하게 분석하며, 사울과 다윗의 본모습을 찾는 데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사무엘이나 야훼가 내린 ‘공식적인’ 신학적 판단을 뒤집거나 비판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이 책은 설화자의 사울-다윗 평전인 사무엘서를 저자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해, 새롭게 복원해 낸 사울과 다윗의 모습을 담은 ‘평전에 대한 평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울이 왕이 된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으며, 사사시대에서 군주시대로 이행하는 전환기의 첫 왕이었던 그의 삶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그를 왕으로 세운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종교적 권위를 독점한 채 사울과 나누려 하지 않았으며, 사사시대의 전통질서를 대표했던 사무엘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사울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전쟁의 승리로 얻는 백성의 지지뿐이었다. 사울은 초기에 이 일에 어느 정도 성공함으로서 권력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다윗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다윗이 새로운 왕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으며, 처음부터 강력한 권력의지를 보였던 다윗은 사울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전쟁에 능했다. 점차 주변 사람과 백성들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딸까지 다윗에게로 기울면서, 사울에게는 왕위를 찬탈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한 공황이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다윗을 죽이려 했지만 계속 실패했고, 결국 사람들과 야훼의 버림을 받은 채 전쟁터에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다윗과 달리 철저한 야훼주의자이자 강력한 권력의지의 소유자였던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을 통해 전쟁영웅으로 등극했을 뿐 아니라 신학/이데올로기적으로도 사울을 확실히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곧 사울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쫓기게 되지만 처절한 생존본능으로 숱한 위기를 극복하면서 지역적 기반을 구축한 끝에 마침내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는 그 과정에서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고려로 두 번이나 사울을 살려주었으며, 이는 그를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다. 다윗을 편애한 나머지 어떤 죄를 저질러도 묵인해 준 야훼 역시 이러한 영웅 만들기에 일조했다.

 

왕으로 등극한 다윗은 새로 정복한 예루살렘에 궤를 안치할 성전을 지어 전통가치와 혁신가치의 융합을 꾀했으며, 이스라엘에 왕조신학을 도입해 정치적 안정을 도모했다. 그러나 정치적 위상이 올라감에 따라 다윗의 성품과 행동은 점점 ‘모든 이방나라’의 왕처럼 변해갔으며, 이는 밧세바 사건 이후 강간과 살인과 반역의 피바람을 불러들이며 그의 내리막길을 재촉했다. 노년을 맞은 다윗은 나단의 계책에 속아 솔로몬을 후계자로 옹립했고, 정치적 고려로 제거하지 못했던 요압과 시므이를 죽일 것을 솔로몬에게 당부함으로서 마지막까지 어두운 내면을 드러냈다.

 

사울은 사사시대에서 군주시대로 이행하는 격동기에 등장해 자신의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다윗의 존재 때문에 삶 뿐 아니라 후대에 전해진 기억마저 뒤틀려버린 ‘일그러진 영웅’이었으며, 다윗은 사울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 후세에 영웅으로 기억되는 데도 성공했지만 실제로는 시대적·신학적 필요에 의해 사실 이상으로 부풀려진 ‘만들어진 영웅’이었다. 저자는 ‘일그러진 영웅’이 일그러진 데는 ‘만들어진 영웅’의 역할이 컸으며, ‘만들어진 영웅’은 ‘일그러진 영웅’ 때문에 우리가 아는 대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영웅’은 살아남아 메시아의 조상이 됐지만, ‘일그러진 영웅’은 만들어진 영웅과의 대결에서 패한 채 잊혀져 갔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의 말미에서 일그러진 영웅이 만들어진 영웅과의 대결에서 패한 후 잊히는 역사가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지 반문한다.

 

여성신학자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는 성서전승 속에서 ‘해방의 동전’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해석전통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심의 해석학’을 주창한다. 영문학자 임철규 교수는 위대한 문학이란 망각 속에 묻혀 있는 희생자들을 역사 속으로 불러내 다시 기억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장례를 지내주는 애도의 행위라고 말한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메시아는 억압받은 자들의 전통을 발굴해 기억하고 애도하는 현재의 자리인 ‘지금시간’에 도래하며, 역사가의 과업은 회상과 애도를 통해 과거를 회복하는 힘과 미래를 유토피아적으로 여는 힘이 함께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만들어진 영웅’인 다윗의 어두운 뒷모습을 살피고 ‘일그러진 영웅’으로 낙인찍혀 잊혀져 간 사울을 복권하려는 저자의 시도야말로 의심-기억-애도-혁명으로 이어지는 종말론적인 해방을 꿈꾸는 실천의 몸짓이 아닐까? 이 책이 압살롬과 아도니아가 실패했던 다윗에 대한 ‘반란’과 사울의 ‘복권’에 완전히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다윗이라는 강고한 성벽에 균열을 내고 사울이라는 고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깨우고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길 기대해 본다.

 

정한욱/우리 안과 원장이며 독서 블러그 ‘서음인(書淫人)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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