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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밥 먹자는 평범한 약속을 했습니다

by 한종호 2020. 2. 29.

신동숙의 글밭(95)

 

밥 먹자는 평범한 약속을 했습니다

 

집 안에서만 생활한 지 6일 째입니다. 올리신 글들을 보다가 점잖거나 믿을만한 분들의 글을 눈 여겨 보기도 하고, 보내오는 정보를 문자로 받기도 합니다. 어제 언론 매체에 올린 기사가 오늘은 사실이 아니라며 정정 기사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팩트 체크"입니다.

 

제 경우에도 페북에 두 차례 다소 편협된 정보를 올렸다가, 이어서 부족한 부분에 보완이 되거나 서로 상반되는 새로운 정보를 다시 중복해서 올리기도 했습니다. 말에 대한 책임감 때문입니다. 이미 카톡으로 보내드린 경우에도 보완 또는 상반되는 새로운 정보를 일일히 한 분도 빠짐없이 다시 보내드리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한 마음을 먹는 일도 마음 무거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일은 그보다 더한 책임감이 따르는 일임을 가슴이 선들해질 만큼 느끼는 이틀 간의 시간이었습니다.

 

혹시나 제가 전달한 정보로 인해서 마음에 공포심이나 두려움을 끼쳐서 평정심이 흔들렸다면 이 지면을 통해서 죄송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악인은 상대의 내면에 두려움을 심어주고, 예수는 사랑을 심어주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점이니까요. 사람을 움직이는 내면의 힘이 두려움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심어주신 것이 아님을 예수의 복음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순례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걷는 길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던', 예수의 그 온전한 사랑의 마음 때문에, 그 빛을 가슴에 품고서 걷는 순례길입니다.

 

하나의 정보를 올린 후 거기에 보완 또는 상반되는 새로운 정보를 올리면서, 귀 얇게 괜한 짓을 해서 사서 고생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럴 시간에 책을 한 줄 더 읽거나, 글을 한 줄 더 쓰거나, 기도와 사색을 하거나, 집 청소라도 좀 할 껄.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평소에 소소하게 세워둔 스스로의 작은 원칙들을 허물어 가면서, 내가 왜 이런 괜한 짓을 했는가를 두고 잠시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유는 혹시나 모르는, 만에 하나입니다. 사소한 정보 하나를 몰라서 어느 누군가 위험에 노출되면 어떡하나, 라는 안쓰러움 때문입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팩트 체크도 하기 전에 부지런히 정보를 나르는 분들의 마음도 제 마음과 조금은 비슷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편협되거나 공포심만을 심어주는 정보는 좋은 정보는 아닌 것입니다.

 

처음 해보는 이런 지난한 과정 중에 작은 배움을 얻기도 했습니다. 정보는 어디까지나 사실에 입각하되 사회 전체의 여러 입장들을 고려한 조화와 균형을 잘 갖춘 정보가 바른 정보의 기본틀이라는 점입니다. 제약협회 측에선 신약개발과 출시와 복용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할 테고요. 정치색을 가진 언론들은 정치색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도 합니다. 한의사협회 측에선 면역력을 올려주는 한약재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체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각계 각층의 분분한 정보들이 처음엔 작은 사실로부터 태어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의 사실은 하나의 씨앗일 뿐. 사회 현상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편협성과 상호 모순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란 현실에 대한 경각심은 일으키되,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하면서, 최선의 적절한 심리적 물리적 대안까지도 제시하면서, 마음에는 평정심과 씨앗같은 현실적 희망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정보가 사실에 기반한 좋은 정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또는 소식이 뜸했던 지인들께도 안부차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보내드리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이어서 편협된 정보에 대해서, 보완이 되거나 상반된 입장의 정보를 다시 보내드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수차례 오고 간 문자 대화 중에 우리가 나눈 것은 서로 간에 따뜻한 마음들입니다.

 

이 지난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밥 먹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자체 격리에 들어가기 전날 만났던 어린 조카들이 고모가 사다준 쫄면이 맛있었다고 해옵니다. 잠잠해지면 어린 조카들에게 쫄면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언젠가 카페라떼가 맛있는 카페가 있다며 저를 데리고 간 아들의 친구맘과 잠잠해지면 그 카페라떼를 마시러 가자며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아들은 박 선생님과 양산에서 먹었던 식당 음식이 맛있었다고 합니다. 잠잠해지면 또 그곳으로 밥 먹으러 가자며 박 선생님과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한참 전부터 싸인 음반을 주시려고 준비하신 선생님과는 북콘서트 차 오시면 주십사 하고 서로 만남의 약속을 했습니다. 1차 원고 교정(의뢰인이 토론토에서 출간하시기로 계획을 변경하셔서 무산된) 후 작은 사례를 하시려는 신부님께는 다시 뵙는 모임날, 새로 출간 예정인 책에 싸인을 해서 주시면 사례로 충분하다며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게 말에는 언제나 책임감이 따릅니다. 어쩌면 책임감이라는 한 마음먹기는 말하기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글 한 줄에 감동이 된다고 해서 쉽게 가져다가 사용하는 일에 대한 무게감이 곧 책임감입니다. 자기 내면에서 길어 올린 한 줄의 말을 글로 적은 이는 상황이 불리하다고 해서 그 말을 버리지는 않으니까요. 책임이 따르지 않는 말은 뿌리 뽑힌 꽃과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무책임하게 옮겨다 놓은 말에는 생명력이 없으니까요. 무책임은 탐욕을 키울 뿐이고, 책임감은 사랑을 키우는 것 같습니다. 약속은 지키려는 마음이 책임감일 테고요. 많은 무거운 약속들을 그렇게 가벼운 말로 씨앗처럼 가슴에 심었습니다.

 

 

 

 

만나서 밥 먹자며, 차 마시자며, 얼굴 보며 얘기하자는 평범한 약속들입니다. 그 약속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집 안에서 자체 격리 중에도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면서 이 시국을 잘 견뎌내야 하는 것입니다. 순간마다 흔들리며 가라앉으려는 스스로를 그렇게라도 추스려봅니다. 첼로의 낮고 느리고 긴 호흡에 가만히 마음을 기대어봅니다. 몸과 마음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평정심이 건강한 상태일 테니까요. 어느 목사님의 한 말씀처럼 이번 코로나19 현상을 계기로 저부터 그리고 모두가 조금은 더 겸손해지는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자연과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너와 우리에 대해서. 그렇게 움푹 낮아진 마음 자리에는 감사가 머물고, 행복이 고이고, 따뜻한 사랑과 평화가 담길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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