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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생각의 기쁨

by 한종호 2020. 5. 16.

신동숙의 글밭(149)


생각의 기쁨


모든 생명에게 친절하되 벗과 책은 가려서 사귀어라는 옛말이 언제나 길이 됩니다. 하지만 제 어린 시절에는 이러한 말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학급 문고를 만드신다며, 집에 있는 책 중에서 두 권만 가져 오라는 과제를 내주셨습니다. 제 어릴 적 살던 집에는 교과서 외에는 책이 없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동대신동 시장 입구 모퉁이에 작은 서점이 떠올랐습니다. 그 앞을 지나다니며 투명한 유리창 안으로 슬쩍 보아 오긴 했어도, 들어가 본 적은 없던 작은 서점입니다. 


서점에 들어섰을 때의 막막함은 빈탕한 하늘을 대하는 듯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가늠해야 하는 순간 같기도 했습니다. 책을 고르려면 뭔가 좋은 책을 고를만한 지침이라도 있어야 하지만, 제가 자라온 환경과 곁에는 지침을 줄만한 그 흔한 언니 오빠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담임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를 안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배가 좀 나오신 서점 주인 아저씨께 인사만 드리고는 책장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는 어쩐지 서점 주인에게 물어볼 생각도 용기도 내지 못하였습니다. 지금이라면 중학생용 추천책이라도 있는지 여쭈어볼 수 있을 텐데, 그때는 수줍음이 많기도 했지만, 그런 새근머리도 없었습니다. 


미련하다시피 서점 안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의 제목을 눈으로 읽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는 작가라는 개념을 모르던 때입니다. 그저 단서는 제목 하나 뿐이었습니다. 제목을 마음에 일일이 대보며 맞추어 고를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판매대에 누워 있는 책들의 제목도 눈으로 마음으로 다 읽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미련하고, 느리고, 지루한, 시간이 멈춘 듯한 시간 너머의 시간입니다. 




중학교 학급 문고용 책 두 권을 고르던 그 막막함은 세상에 홀로 서 있는 그런 기분입니다. 책 선택의 기준은 오로지 제 자신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어오는 제목을 찾기까지, 고마운 것은 배가 둥글게 나오신 서점 주인 아저씨가 기다려 주었다는 점입니다. 책 한 권을 고르는데 뭐가 그렇게 까다롭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중학교 입학 전까지 교과서 외에는 책 한 권 제대로 읽은 적 없던 저에겐 마음이 무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책이나 고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집에선 아빠가 금지했던 게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지마라. 쓸데 없는 책 읽지 마라. 그래서 그 흔한 만화방 안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때는 일하러 가시며 던져 주고 가시던 부모님의 말씀이 씨앗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놀이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뛰어 놀다가도 혼자가 되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하늘을 많이도 보았습니다. 고생하시던 부모님의 땡글땡글한 말의 씨앗을 심어둘 곳은 하늘밭 밖엔 없었습니다.


중학교 교실의 학급 문고에 꽂힐 두 권의 책을 고르기까지 책 제목을 무수히 마음에 대보았습니다. 그때 고른 책 두 권은 지금도 표지 사진과 제목이 생생합니다.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과 <도올 김용옥의 중·고생을 위한 철학 강의>, 비로소 마음에 드는 책 두 권을 스스로 고른 것입니다. 


그렇게 책의 세계에 첫걸음을 뗀 역사적인 날입니다. 그 두 권의 책은 요즘 말로 신의 한 수였습니다. 법정 스님의 책 속에서 만난 이름들이 지금까지도 제 삶 속에서 강물처럼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별이 되었고, 별자리가 되었고, 제 어둔 밤을 밝혀준 별무리가 되었습니다. 스님이 좋아하셨고, 길이 되었던 선각자들의 이름은 동서고금과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 있습니다. 어둡고 무디고 성글던 저로 하여금 자연과 생명과 진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법정 스님은 평생을 사색과 겸손으로 하루를 사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별처럼 빛나는 말입니다.


석가, 화엄경, 조주 선사, 랄프 왈도 에머슨, 핸리 데이비드 소로우, 사막의 교부들, 본회퍼, 토머스 머튼, 성 프란치스코, 도연명, 옛 한시들, 선시들, 성철 스님, 효봉 스님, 어린 왕자, 권정생, 초의 선사, 간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정약용, 허균, 류시화 시인, 이해인 수녀님 등. 법정 스님이 좋아했던 책의 순례길을 따라가는 걸음은 진리의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0년 대 법정스님과 함께 <씨알의 소리>에 글을 올리셨던 함석헌 선생으로 이어지면서, 아슬아슬 신기한 사실은 함석헌 선생의 책을 읽으려고 찾다 보면, 언제나 그의 스승인 다석 류영모 선생의 책을 먼저 읽게 된다는 점입니다. 옛날에도 그랬고, 근래에도 그랬습니다. 박영호 선생은 <다석 전기>에서 빛의 그림자처럼 다석 류영모 선생의 영성의 삶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 투명한 하늘이 되어서 하늘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제자입니다. 류영모 선생이 먼저 그러하였고, 그의 제자 박영호 선생이 그 맑은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이 없던 시절에 제 속을 채운 건 빈탕한 하늘입니다. 낮은 강아지풀, 토끼풀, 분꽃은 언제나 다정한 벗이었습니다. 책을 많이 못 읽고 배움이 깊지 못하여 선택한 국문과와 시작업 동아리방에서 처음 시를 쓰려고 했을 때, 마음을 보려고 했을 땐 또 다시 어둠과 혼돈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둠과 혼돈 앞에서 길을 잃고 무수히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영성의 순례길에 좋은 스승과 벗이 되어준 책이 있었기에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고마운 점은 예나 지금이나 쓸데 없는 책은 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취학 전 큰 아이에게 너무 많은 책을 읽게 한 것이 잘 한 일이기도 하고, 뒤늦게 아쉬운 점이기도 합니다. 자녀가 살아갈 긴 인생의 여정을 두고서 조망할 때, 책으로 채우기 전에 먼저 커다란 하늘과 작은 풀꽃으로 채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못내 남아 있습니다. 자녀가 평생토록 하늘을 우러러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제는 허전하고 외롭고 막막하던 하늘이 다정한 하늘이 되었습니다. 골방이든 나무 아래든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충만하고 다정한 시간인 것입니다. 류영모 선생의 말로 오늘의 글을 맺으려고 합니다. 


'생각은 기쁨입니다. 진리로 사는 것은 기쁜 것입니다. 진리를 생각하는 것은 기쁨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올라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뜻을 좇아 하느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은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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