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8)
생계형 목회자의 비애를 넘어
대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총신대 신학과외에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자기도 믿지 않는 것을 설교하시는 목사님을 통해 생계형 목회자의 비애를 목격한 터라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시간이 지나면 졸업을 하겠지, 그리고 목사안수를 받겠지,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자식도 놓고, 그래서 결국 먹고 살기 위해 믿지도 않는 것을 정말 잘 믿는 것처럼 연극을 하고 설교를 해야 하나, 이 고민을 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초대교회는 안 되는 걸까?’ 분명히 사도행전 2장과 4장을 보게 되면, 아름다운 초대교회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데, 왜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되지 라는 질문도 던져보았습니다. 오늘날 성경을 읽는 교인들에게 ‘옛날에는 이런 멋진 공동체가 있었는데 지금은 안 된다. 약 오르지 메롱’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때 역사하셨던 성령님께서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시고,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백성들이 동일하게 존재한다면 그때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 초대교회가 지금 이 땅에서 구현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라는 곳까지 생각이 이르렀습니다.
결국, 두 고민의 갈림길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가 안 된다고 하신 것은 목사님의 생각이고,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그 귀한 결단을 도우셔서 반드시 초대교회와 같은 가슴 떨리는 공동체를 세워주실거야.’ 설령 오늘 이 시대에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가 안 된다고 하더라도 목사님의 말씀만 듣고 지레 포기하기 보다는 스스로 한 번 노력해보고 나서 그때 가서 안 된다고 판단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드디어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학교 교정을 밟았던 그 첫 걸음을 기억하니 지금도 가슴이 떨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는 신학교를 에덴 동산과 같은 환희와 기쁨의 동산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 그곳은 분명 이 지상에 존재하는 천국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날이 못 되어서 이런 기대는 산산조각 났습니다. 신학교는 자신이 하나님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인간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신비를 다 아는 것처럼 떠벌리는 오만한 인간들의 집합소였습니다. 부끄럽게도, 그 선봉에 제가 있었습니다.
강압적인 채플 문화, 진부하고도 뻔 한 설교, 교회 성경공부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교수들의 강의, 역사와 시대 앞에 무책임한 신앙 등으로 인해 신학교와 교권, 무엇보다 엄혹한 시절을 만들어낸 이 땅 통치자들에 대한 반항심이 절정에 달한 순간, 이 시대의 중심 죄악과 치열하게 맞서 싸우며 일상의 삶속에서 신앙의 공동체를 일구고자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탄식가운데 드렸던 저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소중한 동지들을 만나게 하심으로 제 마음의 소망을 현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공동체를 처음 시작하고자 할 때, 학교의 선배와 친구들 모두 그것은 이상에 불과하다고, 현실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런 우려 속에서 공동체는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고,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꿈꾸던 모든 것들을 현실로 살아내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공동체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참 좋기는 한데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우리의 상상과 소망 속에서만 꽃필 수 있는 이상이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는 이상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어떤 실천적 걸음도 내딛지 않게 되고, 공동체로 살지 않는 자신도 변호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상이라는 말을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상이라 말하는 그것을 단 한사람이라도 현실로 살아내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바로 그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이라고 말한 그것을 오늘날에도 전세계적으로 현실로 살아내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는 이상인 것이 어떻게 누군가에게는 현실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간절함의 차이입니다. 이상을 현실로 살아내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존재를 다해 투신한 자에게 이상은 어느 순간 현실이 됩니다. 머릿속에서만 상상하고, 마음속으로만 소망하면 이상은 영원히 이상일 뿐입니다. 몸을 움직여 실천하고, 한 걸음씩 신실하게 길 걸어갈 때 어느덧 이상은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오게 됩니다.
25년간, 공동체로 살아오면서 제 마음속에 든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삶이 불순종하는 삶보다 휠씬 더 행복하고 유쾌하며 생명의 기운 넘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보다 인간적인 삶이며, 시대와 맞서 이길 수 있는 삶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올곧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이며, 성경 속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로 살아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소망하는 것 정도로는 안 됩니다. 간절히 소망해야 합니다. 존재를 다해 소망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소망은 현실이 됩니다. 그 은혜를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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