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200)
기도의 씨앗, 심기 전에 먼저
장맛비가 쏟아지는 저녁답, 잠시 차를 세운다는 게 과일 가게 앞입니다. 환하게 실내등이 켜진 과일 가게 안을 둘러봅니다. 반쯤 익은 바나나가 비닐 포장에 투명하게 쌓여 있고, 붉은 사과는 계절을 초월해 있고, 일찍 나온 포도 송이에 잠시 망설여지고, 토마토는 저도 과일이라 합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과일이 노랗게 잘 익은 황도 복숭아입니다. 황도 복숭아를 좋아하는 아들의 얼굴이 동그랗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요즘은 떠오르는 얼굴이 그 옛날 맑은 밤하늘에 별처럼 별자리처럼 많아서 행복합니다.
과일에는 씨앗이 있듯이 불교, 천주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에는 종교 교리 속에 씨앗 같은 영성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리와 기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나의 달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불성 또는 부처라 하고, 천주교에서는 하느님 또는 천주님이라 부르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라 부르고, 유대인들은 야훼 또는 여호와라 이름합니다. 그리고 동양의 경전인 논어와 중용을 비롯한 철학적인 학문의 영역에선 영성, 참자아, 성性, 본성, 본질적 자아, 근원, 진선미의 온전함을 칭합니다.
가족들이 잠든 새벽 장독대 위에 하얀 사발에 정한수를 떠놓고 "비나이다" 두 손 모아 가슴으로 빌던 우리네 어머니들은 "하늘이시여" 하늘을 우러러 보며,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이지만 아궁이에 불씨를 지키듯 떨리는 마음으로 지키며 한평생을 사셨습니다. 종교를 갖지 않아도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삶 가운데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절대와 영원과 하늘에 대한 믿음을 단지 무속이라 치부해 버리기엔 단군의 홍익인간과 재세이화(在世理化), 그보다 앞선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에 담긴 그 심오하고 깊은 뜻은 성실한 자연을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자연과 더불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있는 참된 이치 또는 인간의 도리, 바른 길, 하늘의 뜻, 천명(天命), 순명(順命), 중도(中道), 중용(中用), 다양한 이름의 하나의 달, 즉 진리가 모든 종교 교리 속에 기도처럼, 과일 속에 씨앗처럼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종교의 영성 씨앗 안에 깃든 보편적 진리의 성령을 봅니다. 동서고금 불고 싶은데로 부는 사랑과 자유의 바람인 성령을 커다란 경전인 자연의 성실함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와 학문을 초월해 인간의 보편적인 의식의 영역에서는 '양심'이라고 이야기 해 주면 시골의 할머니들도 쉽게 이해를 하곤 하십니다. 그리고, 과일을 맛있게 먹느라 생각을 비운 아들에겐 과일 속에 씨앗이라고 얘길 해 줍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장 23절) 요즘 유튜브로 세상을 배워가는 아들에게 이 씨앗 같은 말씀을 얘기해 주면서, 아들의 어린 마음에 어떤 모양의 마음이 들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더불어 우리네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밭 심은데 밭 난다." 이 한 소절을 양념처럼 곁들여 주면 제 아무리 무딘 마음이라도 움찔해지기 마련입니다.
나아가 황도 복숭아를 먹으며 복숭아 나무 과실 농사를 짓던 농부의 손길과 마음을 마음으로 그리다 보면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맑게 흐르는 수돗물에 복숭아를 씻어서 껍질을 돌려 깎으며 조각 조각 사이좋게 나누는 일련의 흐름은 그대로 기도가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값없이 주시는 흙과 햇살과 빗물과 바람과 달과 별 이 모든 자연에 깃든 진리, 섭리를 마음으로 헤아리다 보면 어느새 호젓한 기도의 평온한 산책길을 걸어가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황도 복숭아 한 박스에 2만원의 값을 치뤘지만, 그 값 안에는 자연에게 주는 값은 빠져 있는 줄로 사려됩니다. 자연에게 있어서 돈이란 아무 쓸모도 없을 테니까요. 돈으로는 태양빛 한 줄기도 살 수 없고, 빗물 한 방울도 살 수 없기에, 값없이 내려주시는 자연의 은총에 인간이 줄 수 있는 대가란 오로지 기뻐하며 기도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길 뿐.
하나님이 명령하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18절) 이 말씀이 제 귀에는 마치 사랑하는 이의 말처럼 "꼭 붙어 있자."로 들립니다. 과일 속에 씨앗처럼, 다 먹고 난 후에는 흙 속에 씨앗처럼. 씨앗이란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고, 무언가가 품어야 그 생명이 성장할 수 있는 이치입니다. 그렇게 인간 본연의 첫사랑인 씨앗 같은 하나님은 품어줄 옥토밭을 간절히 찾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에서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의 뜻, 씨앗을 품을 땅은 성전인 우리의 몸, 마음, 중심, 가슴인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스무살에 문득 들어온 한 생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종교에 저마다의 마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새벽 기도를 삶의 중심에까지 놓는 이유를 헤아리다 보니 그 생각의 끝이 기도에 닿았습니다. 기도의 힘. 종교가 없어도, 교리를 몰라도, 진리를 몰라도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으면 그 간절함은 기도가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에는 에너지의 파장과 흐름이 있어서, 간절하고 꾸준히 소원하는 바가 있다면 때가 되어 과일이 열매를 맺듯 이루어진다는 엄연한 사실, 자연의 법입니다.
그리고 그때 덜컥 무거운 한 생각이 든 것입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게 기도라면 그 기도, 함부로 입으로 말해선 안되겠구나, 마음으로도 되뇌어선 안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든 것입니다. 어려서 철 모르고 드린 기도가 만약에 하나 나중에 이루어진 경우, 정작 그때 가서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이 뒤늦은 후회를 남긴다면 그 바램과 기도는 에초에 심지 말았어야 했을 씨앗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랬기에 제게는 기도가 우선이 아니라 바른 법을 찾는 일이 우선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스무살 이후 본격적으로 제 삶은 진리를 구하는 순례길에 오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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