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과 반찬통

카테고리 없음 2020. 7. 31. 06:53

한희철의 얘기마을(42)


도시락과 반찬통


도시락에 대해 물은 건 떠난 민숙이 때문이었다. 그나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학교를 졸업한 민숙이가 도시락을 챙겨줬을 터였지만 민숙이 마저 동네 언니 따라 인천 어느 공장에 취직하러 떠났으니 도시락은 어찌 되었을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일 오후 광철 씨네 심방을 갔다가 봉철이를 만난 것이었다.


“안 싸가요.” 


봉철이의 대단은 간단했다.


“왜?”

“그냥, 싸 가기 싫어요.”

“그럼 점심시간엔 뭘 하니?”

“혼자 놀아요. 혼자 놀다 아이들 다 먹고 나오면 같이 놀아요.”

“도시락은 없니?”

“도시락은 있는데 반찬통이 없어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반찬통이 없다니. 정말 없는 게 어디 반찬통일까. 재작년 엄마 병으로 하늘나라 가시고, 올 봄 누나 공장으로 떠나고, 술기운에 살아가는 아버지, 가뜩이나 일손 모자라는 동네 품 팔기 바쁜 광철, 남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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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봉철이 점심을 챙겨 줄 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걸 몰랐던, 어쩜 알려고 안 했던, 미안한 만큼 꼭꼭 봉철이 손을 잡고 약속을 했다. 도시락 꼭 싸 가기로.


저녁 예배 시간에 내려온 봉철에게 반찬통을 전했다. 반찬통을 전하는 마음이 또 아팠다. 반찬통 없어 못 싸가던 도시락, 반찬통 전한다고 끝난 건 아니잖은가.


엊그제는 원주 중앙시장에 들렀다. 멸치 값이나 오징어 값이나 같았다. 오징어포와 마른 새우를 샀다. 이제 중학교 1학년. 봉철인 한참 배워야 하는데 최소한의 뒷바라진 누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건지.


봉철이의 표정이 그래도 밝은 것이 한편은 다행이면서도, 유난히 작은 키가 꼭 먼저 가신 엄마 닮은 것만은 아니지 싶어서. 봉철이... 


(얘기마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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