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眞人, 참된 사람의 우정

by 한종호 2020. 9. 6.

신동숙의 글밭(227)


眞人, 참된 사람의 우정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걸어가는 길이 더 풍요로워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 만남이란 사람과의 만남일 때도 있고, 책이나 다른 인연의 스침으로 만난다고 해도 그 울림이 마음에 깊이 와 닿는다면 한순간이 영원이 되기도 한다. 


개인과의 만남을 넘어 조금 더 크고 넓은 범위에서 보면, 동양과 서양의 만남 만큼 풍요로운 울림도 없는 것 같다. 200년 전 미국의 시인이자 초절주의 자연주의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동양의 <주역>을 만났다. 미국에 유학을 간 인도의 간디는 소로의 책을 읽은 영향으로 비폭력 평화주의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은 간디와 톨스토이를 스승으로 삼아 일평생 존경했으며, 법정스님은 책에서 만난 성 프란치스코의 가난한 영성과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과 나치의 불의에 대항한 본회퍼와 <월든>의 소로를 책으로 만났으나, 일평생 머리맡에 두시며 구도의 도반이자 스승으로 삼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의 영성 작가이자 토마스 머튼 신부는 <장자>에 매료되었고, 스즈키 다이세츠 박사와 맺은 우정으로 일본의 선불교를, 달라이 라마와의 우정으로 티벳 불교를, 그 당시에 평화주의 영성작가인 틱낫한 스님은 직접 머튼의 겟세마니 수도원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 옛날에도 이미 종교와 국경을 초월한 동·서양의 직간접적인 만남들은 아름다운 우정으로 이어졌고, 풍요로운 영성과 사상, 진리를 향한 같은 구도의 지향, 사랑과 평화의 흐름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그런 선현들에게서 좋은 이정표를 보는 것 같다. 어둔 세상에 별이 된 선현들을 하나의 선으로 이으면 어둔 밤하늘 즉 어둔 마음에 빛나는 별자리가 된다.



성무일도를 드리듯 매일의 기도처럼 느긋하게 필사를 하면서 가슴에 새기고 있는 <시편사색>을 더 온전히 읽고 이해하고 싶었다. 시편은 가톨릭 수도승이 매일 드리는 기도문인 성무일도의 본문이기에 그 의미가 깊은 것이다. 그러자면 개역개정, NIV 한·영 성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민순 신부님이 히브리어를 우리말로 잘 살려 번역한 <시편·아가>를 함께 보면서 모호하던 한자어가 우리말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가톨릭 성경 시편이 최민순 신부님의 우리말 번역을 참고하여 개편이 되고 그전에 개신교 성경을 참고하면서도 더욱 현대적인 우리말로 풀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 가톨릭 표준 성경인 NAB까지 다함께 비교하면서 <시편사색>을 읽으니 애매모호하던 의미들이 더욱 또렷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최민순 신부님의 저서와 토마스 머튼을 소개 시켜준 인연도 참된 사람과의 우정이었다.


일편단심이 좋다지만, 한 권의 성경만을 일생 동안 품고서 진리의 바다를 건널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히브리어 성서 번역 작가님이 소개 시켜준 Bible gates에 의하면 전세계에는 50개의 언어로 번역된 150개 버전의 성경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마다 해석과 표현 방식에서도 국가와 문화적인 다양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하기에 성경의 문자적 오류란 언제든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때 조심해야 할 점은 내 손 안에 있는 한 권의 성경만을 절대시 하고 나머지를 배제하려는 독선적이도 이기적인 타성이다. 중요한 점은 성경의 핵심 메시지인 '사랑과 진리'를 등불로 삼으며 아울러 예수가 주신 성령 즉 자기 안에 양심의 등불을 밝히는 것이다. 석가의 自燈明  法燈明(자등명 법등명)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 삼으라는 가르침은 곧 예수가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마음을 가리키던 복음의 말씀과 다르지 않다.


<시편사색>의 저자인 오경웅의 저서 중에서 서양에 처음으로 소개된 선의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선禪의 황금 시대>에 소개글을 써준 토마스 머튼에 대한 오경웅의 말이 내게도 커다란 울림을 준다. 오경웅의 글을 그대로 옮기자면, "토마스 머튼 신부가 쓴 소개글은 선의 본질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다. 다른 글과 마찬가지로 머튼 신부는 이 글에서도 핵심을 건드린다. 머튼 신부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하나이며, 하나의 근원에서 모두 귀하게 태어났다. 본문을 읽기 전에 머튼 신부의 소개글을 먼저 읽어볼 것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머튼 신부가 쓴 소개글에 담긴 심오한 생각에 길게 주석을 달아놓은 것이 이 책의 본문이랄 수도 있다. 귀한 글을 보내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을 펴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머튼 신부님께 감사드린다. 최근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내게 이 '참된 사람 眞人'의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오경웅 저자는 1967년 초판본에 이어 1975년에 5판 본에서 "내 가장 절친한 친구인 토마스 머튼과의 풍요로운 추억에 이 책을 바친다."는 인사를 남겼다. 머튼 신부와 오경웅 저자의 근본적 일치란, '인간은 모두 하나이며, 하나의 근원에서 모두 귀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글을 적고 있는 필자의 근본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인간이란 하나에서 파생된 개체라는 사실이다. 


하나 그리고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구도의 순례길에 참된 사람 眞人과의 우정이란 그야말로 참으로 복된 선물인 것이다. 또한 그러한 우정을 나누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선 자기 자신과 진리를 등불 삼아야 보이는 길이다. 그처럼 아름다운 우정은 별과 별 사이에 거리 만큼 풍요로운 울림으로 온세상에 널리 퍼지리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