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벼릿줄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부지런히 일하여라. 어떤 것이 잘 될지, 이것이 잘 될지 저것이 잘 될지, 아니면 둘 다 잘 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전11:4, 6)
좋으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또 한 주가 흘렀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이 어두운 터널의 끝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조바심도 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유쾌하고 즐거운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난감한 이야기만 자꾸 우리 귓전을 어지럽힙니다. 증오와 혐오를 선동하는 이들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거짓 뉴스를 만들어 유포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이들이 사회를 갈등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 웃고 떠들면 속이 좀 풀릴까 싶지만 그럴 수도 없습니다. 안 되는 것 때문에 애달파할 것 없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조금 더 견뎌야 합니다. 믿는 이들은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태풍 마이삭이 지나갔습니다. 큰 피해를 입지는 않으셨는지요? 공원을 걷다가 꺾이고 찢기고 뽑힌 나무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가슴이 저릿해졌습니다. 물기가 없어 회복력을 상실했기 때문일 겁니다. 수확을 앞둔 과일들이 우수수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것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만, 모든 상처는 우리에게 아픔입니다.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는 시편 시인의 고백이 가끔은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아픔과 상실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가장자리에 살면서 중심에 이르는 길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그 길이 끊긴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환한 빛을 갈망하지만 캄캄한 어둠이 우리 영혼에 드리워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성도들이 나누는 온기입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여도 온기를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는 결국 어둠 너머의 빛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만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 곁에 벗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면 고달픈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겁니다.
반얀나무를 아시는지요? 아열대 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이 나무는 뿌리가 얕아서 비바람에 견디기 위한 나름의 전략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가지에서 땅으로 뿌리를 내리는 것이지요. 땅에 닿은 뿌리는 이내 나무줄기가 되어 나무를 받쳐줍니다. 반얀나무 한 그루가 커다란 숲을 이룬 경우도 있다 합니다. 이 나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크게 감동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연결되어 함께 비바람을 견디고, 뭇 생명들을 먹이고 재우고 품어주는 숲이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교회에 대한 조롱과 냉소가 우리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습니다. 부끄럽다고 등을 돌리지 마십시오. 믿음은 절망의 상황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가야 할 길이 멀다고 하여 지레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설날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몇 말씩 뽑아오셨습니다. 말랑말랑한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먹는 맛이야 일러 무엇 하겠습니까? 다음 날 새벽이면 또각또각 떡 써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 가래떡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전에 작업을 마쳐야 했던 아버지는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꾸덕꾸덕하게 마른 떡을 써는 아버지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저걸 언제 다 써나’ 하는 생각에 암담했던 기억이 납니다. 애써 잠을 다시 청한 것도 어찌 보면 그 지루한 시간을 견딜 힘이 내게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얼마 후 창호문으로 새어든 햇빛에 찔려 잠에서 깨어나 보면 아버지는 어느새 떡을 다 썰어놓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계셨습니다. 그 기억은 아득함과 막막함 사이에서 바장일 때마다 나를 지켜주는 등불입니다.
만리장성도 돌 하나를 놓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지 않습니까. 위대한 미술작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수없이 많은 붓질을 통해 형태가 이루어집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 속에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 온축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참을성이 부족합니다. 늘 뭔가 새로운 선택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 이드거니 어떤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늘 새것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종교조차 소비재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이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실 때 그들은 그물을 던지거나(시몬과 안드레), 배에서 그물을 깁고(야고보와 요한) 있었다고 합니다(막1:16-20). 그들은 부르심을 받은 즉시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부름에 따른 즉각적인 응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1세기 갈릴리 어부들의 사회 경제적 상황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갈릴리를 다스리던 헤롯 안티파스는 종주국인 로마에 잘 보이기 위해 갈릴리 호숫가에 당시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딴 도시 티베리아스를 세웠습니다. 물론 그 재원은 다 백성들로부터 나왔습니다. 어부들도 배 혹은 그물의 크기에 따라 세금을 내야했습니다. 세리들은 조황이 좋든 나쁘든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어쩌다 많은 고기가 잡혀도 어부들은 그 고기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었습니다. 헤롯이 외화벌이를 위해 호숫가에 만들어놓은 염장처리 공장에 헐값으로 넘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부들은 그야말로 궁지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뒤집히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기 제자들의 이야기를 저는 늘 이런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름 자체보다 부름 받기 전에 그들이 하고 있었던 일에 눈길이 갑니다. 그들은 바늘코로 한 땀 한 땀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깁는다는 것은 다른 그물눈에 의지하여 새로운 그물눈을 만드는 일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연결’을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란 바로 그런 연결 속으로 들어가고, 다른 이들과 연결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서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기쁨과 슬픔의 연대를 이룰 때 우리는 힘겨운 시간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생명의 중심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이 지루해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삶이란 어쩌면 그런 지루함을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지루함을 무턱대고 견디고 있던 이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지향과 뜻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그물을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은 벼릿줄(a head rope)입니다. 벼릿줄은 그물을 오므리거나 펼 때 쓰는 로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물이 아무리 커도 벼릿줄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우리 인생의 벼릿줄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저는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안다”(요8:14) 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사무치게 좋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알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같을 수 없습니다. 뜻을 아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백로 절기가 시작됩니다.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시원합니다. 그 바람 앞에 서서 여름 내 우리를 사로잡았던 울울함을 떨쳐버리면 좋겠습니다. 교회력으로는 창조절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진부하고 무질서한 삶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삶으로 옮겨가야 할 때입니다. 좋은 날이 오기를 막연히 기다리지 마십시오. 지금 좋은 일을 시작하십시오. 삶은 순례입니다. 순례자는 장소와 장소 사이를 그냥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간을 참회와 치유의 시간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순례길의 동반자라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가끔 바람결에라도 사는 이야기 들려주십시오. 믿음 안에서 걸어가는 나날이 하나님의 마음을 향한 순례 여정이 되기를 빕니다. 새로운 태풍 하이선이 다가오고 있다지요? 잘 대비하셔서 어려움을 이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때일수록 ‘미소 명상’ 잊지 마십시오. 얼굴이 웃으면 마음도 따라 웃는답니다.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2020년 9월 5일
김기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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