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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미쉬파트’와 ‘츠다카’를…

by 한종호 2015. 3. 17.

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10)

 

지금 여기에 ‘미쉬파트’와 ‘츠다카’를…

 

 

우상숭배의 본질은 자기중심성입니다. 우상숭배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자기이익을 중심으로 행동합니다. 신앙의 목적도 자기구원에 있고, 신앙의 뜨거움도 자기 욕망의 실현에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단지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와 수단일 뿐입니다. 이것이 예언자들이 역사 속에 등장하여 이스라엘에게 훈계한 내용,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말씀의 본질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능동적 분투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지상대리자가 되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현해야 하는 그 막중하고도 엄중한 사명을 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원이 구원의 목적을 망각한 것에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가슴속 깊은 감사는 드렸지만, 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셨는가에 대한 목적을 망각했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배타적 선민사상입니다.

 

이스라엘이 선민으로 부름 받은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선민은 만민을 배제하는 선민이 아닌 만민을 위한 선민입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이 땅 가운데 거룩한 제사장 나라를 건설함을 통해, 세계 만민을 하나님 앞으로 견인해내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심이 결단코 세계 만민을 하나님의 구원역사로부터 배제하고자 하심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오판을 합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독점하고, 모든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로부터 배제되어 지옥의 불쏘시개로 사용되는 저주와 심판 가운데 놓이게 된다는 배타적 선민사상에 빠져 버렸습니다.

 

 

 

 

창세기 18장 19절은 구원의 목적에 대해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택한 목적이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기 위함임을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택하셔서 이 땅 가운데 의와 공도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건설해내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한 사회는 하나님께 멸망 받아 사라진 소돔과 고모라와 다른 사회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애굽과 다른 나라입니다.

 

출애굽은 신앙 공동체 이스라엘의 시원적 사건일 뿐 아니라 오늘 우리가 현재화하여 누려야 할 구원의 표본입니다. 출애굽에서 말하는 애굽은 고유명사임과 동시에 보통명사입니다. 고유명사로서의 애굽은 이집트를 가리키는 것이고, 보통명사로서의 애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서의 애굽은 하나님나라 가치에 상반되는 애굽적 가치를 옹호하고 현실화시킵니다. 강자에 의한 약자에 대한 지배와 착취, 억압이 정당화되는 사회,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승자독식, 약자의 자연도태, 빈부의 양극화가 당연시되는 사회가 애굽입니다.

 

애굽적 가치가 편만하게 시행되는 애굽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의와 공도, 공평과 정의, 정의와 공의가 넘치는 공동체를 이 땅 가운데 구현해내기를 기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사건입니다. 바울은 이 구원사건에 대해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구원은 애굽의 백성으로 살아가던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초대해주신 사건입니다. 이 초대

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가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8장 19절에 기록되어 있는 의와 공도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와 ‘츠다카’입니다. 미쉬파트는 ‘사법적 정의의 구현’을 뜻하고, 츠다카는 ‘서로가 서로를 형제로 대함’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자기 욕망에 지배받기 쉽지만 강자는 자기 욕망을 현실화시킬 가능성이 더욱 높습니다. 자신에게 권력과 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강자의 무한탐욕을 적절하게 통제하거나 견제하지 못하면 인간사회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짐승의 세상이 되어 버립니다. 인간사회가 짐승의 세상이 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것이 바로 법이고, 그것을 시행하는 곳이 사법부입니다. 법은 정의를 지향합니다. 법이 지향하는 정의가 충만한 상태, 그것이 바로 미쉬파트입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 언약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만을 믿고 하나님께만 순종을 드리는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서로를 타자로 대하지 않고 형제로 대하겠다고 언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이 형제됨의 온전한 구현상태가 바로 츠다카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형제로 대할 때 거짓, 술수, 살인과 같은 폭력, 기만, 지배와 착취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빈부의 양극화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형제가 굶고 있는데 나 홀로 부귀영화를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그를 형제가 아닌 타자로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서로를 참 형제로 대하는 츠다카가 넘치는 사회를 건설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구원의 목적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유일 분단국가인 이곳, 빠름이 지배하고 욕망과 탐욕이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이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백성 삼아주셨습니다. 이 땅과 교회에 미쉬파트와 츠다카를 이루어내라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구원의 목적에 걸맞게 한 걸음씩을 내딛어야 합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신실한 한 걸음을 내딛고자 애쓰고 계신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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