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강유철의 '음악정담'

우리의 허수아비 수난 영성

by 한종호 2015. 3. 18.

지강유철의 음악정담(12)

 

우리의 허수아비 수난 영성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는 가톨릭 성지와 개신교 성지가 마주보고 있습니다. 2009년부터 합정동으로 출근하면서 이 양화진을 찾는 참배객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사무실이 개신교 성지인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원 안에 있어 창문을 열 때마다 개신교 참배객을 관찰할 수 있었고, 절두산은 점심 후 산책 코스입니다. 두 곳 모두 사색의 공간이자 역사의 공간이지만 두 종교인들의 차이는 확연합니다. 가톨릭 참배객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반면에 개신교 신자들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이 설명문과 비석을 보기 위해 멈춰 선다면 가톨릭 신자들은 묵상을 위해 그 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절두산 성지는 신자들이 예수님의 일대기를 묵상할 수 있도록 14곳에 예수님의 활동을 조각상이 있거든요. 물론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도 조용한 묵상으로 보는 사람을 숙연하게 하는 분들이 없지 않고, 절두산 성지에도 “가톨릭에 갓 입문하셨나?” 싶을 정도로 묵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참배객이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가톨릭은 깊은 묵상에 들어가는 분들이 많고 개신교는 어디론가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100주년기념교회가 생기면서 묘역 내에서 마이크나 메가폰, 기타나 찬양이나 통성 기도를 금하였는데도 그렇습니다.

 

 

 

 

 

하이든이 평생직장이었던 궁정악장을 그만두고 자유의 몸이 되어 당시 세계 음악의 수도였던 빈으로 떠난 것은 60, 그 역시 새 출발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였지요. 하이든은 60살 이전에도 유럽에 널리 알려진 뛰어난 음악가였고, 주옥같은 작품들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이든은 60살까지 그의 주인이었던 니콜라스 에스테르하지 후작 가문의 시종(侍從)으로 주인이 원하는 곡을 써야 했고, 궁정에서 열리는 모든 연주회를 관장할 뿐 아니라 음악가를 훈련하고 악기의 수선과 유지까지 맡아서 해야 했습니다. 니콜라우스 후작이 음악에 상당한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하이든의 음악을 좋아했던 것은 분명 그에겐 행운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이든이 자기가 쓰고 싶은 곡을 맘대로 쓰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양 음악사는 하이든이 단 하나의 귀족 후원자를 위해 일한 마지막 궁정음악가로 기록합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하이든의 생애도 시대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44살에 미국은 독립선언을 했고, 58살에는 프랑스 혁명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이든이 더 이상 에스테르하지 가문을 위해 봉사하지 않아도 된 것은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1791년에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년 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가 쓴 다수의 중요한 교향곡과 그의 말년을 대표하는 미사곡들을 못 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세상이 자유와 평등을 향해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에 하이든도 그 덕에 자신이 쓰고 싶은 곡을 쓰며 말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이든의 삶과 작품 중에 특별히 제 눈길이 가는 곡들은 그가 말년에 작곡한 종교음악들입니다. 하이든은 <천지창조><사계>뿐만 아니라 <전쟁 미사> <넬슨 미사> <테레지아 미사>를 위시한 6개의 뛰어난 미사곡을 64세부터 70세까지에 걸쳐 작곡했습니다. 그의 모든 뛰어난 종교음악은 모두 그가 말년에 작곡한 것입니다. 보통 자유와 해방, 평등과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기에 사람들은 교회를 멀리합니다. 역사 속에서 풍요와 축복은 거의 거의 영적인 퇴보와 타락으로 연결되었던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하이든은 달랐습니다. 64살에 영국에서의 대단한 성공을 뒤로 하고 빈으로 되돌아가서는 더 이상 교향곡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1796년부터 그가 손에서 작곡을 놓았던 1802년까지 하이든은 미사곡을 위해 생의 마지막을 불태웠습니다. 그의 마지막 곡이 <하모니 미사>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이든이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을 작곡한 것은 1787, 그러니까 그의 나이 쉰여섯 살 때입니다. 하이든은 1785년 경 돈 프란시스코 미콘이란 인물을 통해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을 작곡해 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미콘은 스페인의 항구도시 카디츠에 사는 호세 살루스라는 귀족이자 사제의 부탁을 받고 하이든을 방문하였습니다. 미콘을 통하여 하이든은 이 곡이 카디스에 있는 산타 로사리오 교구 교회의 수난절 때 사용될 것이라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이 없는 순수 기악곡으로 써 달라는 청탁을 받습니다. 사제가 강론을 하고 제단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동안 연주되어야 했기 때문에 음악은 지극히 느리고 경건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이런 요청을 받았을 때 하이든은 대단한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상 칠언 한 말씀마다 10분 정도씩 연주를 해야 했는데, 곡이 모두 느리고 변화가 없는 가운데서도 수난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그 깊은 의미를 전달하되 지루해져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이든의 <십자가의 일곱 말씀>은 총 9곡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 속은 서주이고, 끝 곡은 예수님의 부활의 환희와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유일하게 매우 빠른 템포로 연주되는 지진이란 곡입니다. 나머지 일곱 곡은 예수님의 말씀 하나 하나에 곡을 붙인 곡들입니다. 하이든은 이 곡에 대한 애정이 깊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1787년에 현악4중주곡으로 작곡한 <그리스도의 일곱 말씀>1796년에는 가사가 붙은, 그러니까 오케스트라 반주에 4명의 독창과 합창이 딸린 오라토리오 곡으로 편곡합니다. 직접 편곡한 것은 아니지만 하이든은 다른 사람이 편곡한 피아노와 하프시코드 버전을 추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은 모두 합쳐도 200자 원고지 1매에 못 미칠 정도로 짧습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깨어지는 고통 가운데 남기신 말씀이니 더 길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남긴 일곱 말씀을 두고 많은 설교와 저술이 뒤따랐습니다. 서양의 작곡가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하인리히 쉬츠, 하이든, 세자르 프랑크, 등이 십자가 위에서의 일곱 말씀으로 작품을 남겼습니다.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은 다른 곡이나 설교와 달리 말씀이 없다는 점에서 기막힌 작품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이든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1세기 유대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남기신 것은 분명하지만 저는 언어를 통해 일곱 말씀의 의미에 온전히 도달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이든처럼 언어를 버렸을 때 예수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한 교회에 오래 다니다보면 절기 설교에서 깊은 감동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담임목사 중에는 교인들이 기억하지 못할 만큼 흘렀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제목만 슬쩍 바꿔 절기 설교를 반복하는 분들 적지 않습니다. 장례나 결혼은 본문이 같더라도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재탕 설교가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난이나 부활 설교는 그렇지 않지요. 주님의 부활이나 수난 설교에서 담임목사의 영성과 묵상이 깊어졌다고 느끼기가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건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존 스토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탄생, 생애, 수난, 부활, 승천, 재림 등을 반복하여 숙고하는 가운데 깊어지도록 만들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과 신앙의 중심이어야 할 예수의 탄생, 생애, 수난, 부활, 승천, 재림에 대한 묵상이나 깨달음의 깊이가 담보되지 않은 채 새로운 정보만을 찾아 수평적으로만 넓어지고 있다면 이는 중대한 신앙적 위기가 아니겠습니까.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이란 70여 분짜리 현악 4중주를 좋아하는 저는 그리스도의 수난이 다가오면 속으로 비교 아닌 비교를 종종합니다. 목사가 아니었던 평신도 하이든과 오늘의 한국 개신교 목사들 중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을 두고 토론하거나 설교를 한다면 과연 누가 더 영성의 본질에 가까이 가 있을까를 생각한 것입니다. 설교를 위해 본문을 파는 것 말고, 자신의 일상에서 예수의 수난과 동정녀 탄생을 반복해서 묵상하는 가운데 신앙과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설교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하이든의 70여 분 동안 연주되는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은 작곡된 지 230여 년이 지났음에도, 그렇게 많이 연주되고 있음에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과연 우리 한국 개신교 목사의 어떤 수난 설교가 10번이나 20번 들으면서도 깊은 울림과 줄 수 있을까요.

 

때문에 하이든의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우리 찬양이 너무 소란스러운 게 아닌가 반문하게 됩니다. 저는 하이든의 이 곡 앞에서 스피드 만능 시대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70여 분짜리 곡을 작곡하는 데, 아니 70여 분짜리 악보를 베끼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를 잘 아는 저는 하이든이 이 곡을 쓰기 위해 십자가 언저리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서성거렸을 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에 대해 바닥이 쉽게 드러나는 묵상으로 70분 동안의 음악을 깊이 있게 끌어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소위 평신도 음악가인 하이든의 가상 칠언 묵상이 이러했다면 우리 목사들의 설교는 그 보다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이든의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 영성의 누추함과 가벼움이 오버랩 됩니다. 우리의 찬양이 언어를 넘어 영원의 세계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지강유철/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 장기려, 그 사람 저자

'지강유철의 '음악정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토벤의 짓물러진 엉덩이  (0) 2015.03.31
‘할렐루야’ 유감  (0) 2015.03.23
고맙다, 음악!  (0) 2015.03.11
나이든 송창식의 노래  (0) 2015.03.03
장욱진과 슈베르트  (0) 2015.02.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