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13)
차라리 소경이었더라면…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기 바랍니까?”
“선생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가복음 10:46-52).
간판에 씌어 있는 글씨를 보고 나는 눈을 의심했다.
“진리를 팝니다. 각종 진리일체!”
판매원 아가씨는 매우 예의발랐다.
“무슨 종류를 사시려고요? 부분 진리를 원하세요, 아니면 완전한 진리를 찾으세요?”
“완전한 진리! 그럼요, 완전한 진리를 보여 주시오. 내게 속임수는 필요 없소! 변명도, 합리화도 필요 없소! 평이하고도 명료한 나의 진리! 그게 내가 바라는 진리입니다.”
아가씨는 가게 안쪽을 가리켰다.
“저쪽이 완전한 진리를 파는 곳입니다.”
그곳 판매원은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값이 비싼데요, 선생님.”
“얼마요?”
값이야 얼마든 완전한 진리를 얻고야 말리라고 마음먹고 나는 물었다
“이걸 가져가시면 여생의 모든 평안을 잃는 그런 값을 치르시게 됩니다.”
“...”
나는 슬픈 마음으로 가게에서 나왔다.
(안토니 드 멜로의 우화 한 토막이다.)
아무리 말려도 소리소리 지르는 바람에 주님 앞에 데려온 소경 걸인! 예수께서는 그를 맞으며 친절하게 물으셨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 주기 바랍니까?” 걸인은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나지는 않았다. 그는 보았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산천초목이 얼마나 눈부신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그만 불의의 병으로 눈이 멀었다. 아름다운 세계를 보지 못하는 답답함을 누가 알아주랴!
“다시 한 번만 저 아름다운 세상을 본다면, 빌어먹고 사는 나한테 시집이라고 온 아내의 얼굴을 본다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내가 어때서? 나는 두 눈이 성하다구! 시력이 2.0이라서 안경을 안 쓰고도 잘 보이는데.”
하지만 주님의 말씀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게다.
“나는 세상에 심판하러 왔습니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게 하고 보는 이들은 소경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복음 9:39).
이 말씀에 돋친 가시를 느낀다면 한 마디 내뱉지 않고 못 견딘다.
“나도 소경이란 말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인즉슨 “당신들이 차라리 소경이었더라면 당신들에게 죄가 없었을 것입니다”(요한복음 9:40).
하기야 하느님의 눈으로 사물을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못 느끼는 바도 아니다. 아버지 재산을 술집 여자에게 갖다 바치고 가문에 똥칠을 한 아우한테 몸 성히 살아 돌아왔다고 잔치를 차려 주시는 아버지! 새벽부터 포도밭에서 땀 흘린 일꾼하고 오후 세시 파장 시간에 얼굴 비친 놈팽이 하고 똑같은 일당을 주신다는 하느님의 경제 정의! 주일이야 하느님께 속한 날이라 미사하고 헌금하고 교회에 봉사해야 마땅하거늘 “사람이 안식일 지키자고 난 게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 하루 쉬라고 생겨난 거다!” 하시는 예수님의 비공인단체적 발언!
그뿐이랴 한 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철야기도하고 기도회다 성령봉사에다 ME에다 비밀결사 ‘오푸스 데이’에다 안하는 것 없이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는 모범 신도들은 주님의 안중에도 없다. 대신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간다느니 어쩐다느니 하시는 예수님의 말투! 우리 맘에 안 드는 예수님 언행을 꼽기로 한다면 한이 없다(“그래 십자가도 싸지 싸!”)
사도 임원에 신심회 활동에 성경 공부에 어지간히 숙달되어 있노라는 신앙심으로 우리는 멋쟁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30년간 매춘 언론과 허위 매스컴이 끼워 준 색안경을 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재물의 신 맘몬이 씌워 준 반공과 안보 이데올로기라는 콘택트렌즈를 남몰래 끼고 있는지 누가 알랴?
그건 그렇고 소경은 눈을 뜨자 집으로 달려가지 않고 “예수를 따라 길을 나섰다.” 소경 걸인의 이름이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고 전해져 온 것은 그가 초대 교회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성염/전 바티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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