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 토요모임, 초등학교 어린이까지 모두 열 명이 모였다. 백지 앞에 서서 감히 붓을 들지 못하고 마침내 울고 만다던, 그런 때가 종종 있다던 어느 노화가의 고백이 생각난다.
나도 지금은 백지 앞에 선 것이다. 맨 처음 시작한다는 것의 가슴 떨림, 성경을 공부한 후 탕자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어서 돌아오오’ 찬송을 가르친다.
‘어서 돌아오오’ 몇 번을 반복하지만 자꾸만 그 부분이 틀린다. 그래, ‘어서 돌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지금은 비록 어린 나이에 이 노래를 배우지만 언젠가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혹 잘못된 길 멀리 떠날 때 ‘확!’ 뜨겁게 이 노래가 되살아오기를. 잘못된 길로 가는 발목 와락 붙잡을 수 있기를.
예배를 마치고 부활절을 준비했다. 둘러앉아 삶은 계란에 ‘축 부활, 예수 다시 사셨네’라 쓰기도 하고 물감을 들이기도 했다.
순님이와 은경이는 ‘축 부활’이란 글자를 제단에 써 붙이기로 했다. 껍질을 깨고 병아리로 새롭게 태어나는 그 신비로운 변화가 우리에게도 허락되기를.
그럴듯한 이 말이 참으로 막연한 말임을 안다. 또 그것이 내게 주어진 엄한 숙제임을 안다.
-<얘기마을>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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