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어느 날, 학교가 파하자마자 우리는 월암리로 갔다. 작은 고개 큰 고개 제법 높은 고갤 두 개 넘어야 친구네 집이었다.
친구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가지, 타래박, 양동이, 삽, 채 등을 챙겨 들고 논으로 갔다. 웅덩이를 푸기로 했던 것이다. 우린 그러길 좋아했다. 산 쪽으로 붙어있는 포도밭 아래 제법 큰 웅덩이였다.
조금씩 줄어드는 물을 웅덩이 속 수초로 확인하며 우리는 열심히 물을 펐다. 놀란 고기들과 새우들이 물 위로 튀었다. 한참 만에 바닥이 드러났다.
우리는 바지를 걷어 부치고 웅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미꾸라지, 붕어, 우렁, 새우 등 웅덩이 속엔 온갖 것들이 많았다.
신나게 웅덩이를 뒤지고 있을 때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은은한 종소리였다. 그날이 수요일이었고, 그 종은 교회에서 치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당장 옷을 갈아입고 달려간다 해도 늦은 시간이었다. 할 수 없이 난 웅덩이 옆 논두렁에 무릎을 꿇었다. 친구들은 웃었지만 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종소리, 멀리서 들려온 종소리! 그 앞엔 언제라도 무릎을 꿇고 싶다. 주위에서 뭐라 하건, 무릎 꿇는 자리가 어디라 하건 종소리 앞에서는.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의 가르침 (0) | 2021.11.03 |
---|---|
새들에게 구한 용서 (0) | 2021.11.02 |
나중 된 자 (0) | 2021.10.31 |
얘기마을 (0) | 2021.10.30 |
그리운 춘향 (0) | 2021.10.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