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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조국>, 재관람은 고등학생 딸아이와 함께

by 한종호 2022. 6. 5.

(CGV 하루 1회 상영으로 조정되다.)



제 발로 영화관을 찾아간 것은 <그대가 조국>이 처음이다. 

일찌기 영화산업과 영상문화에 대하여 스스로 거리두기를 하며 살아온 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심지어는 아카데미 상 수상을 했다는 그 이름 난 영화들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딴 세상 일처럼 대해왔으니...

 

예전에 아이들이 어릴 때 가족들과 또 학부모와 자녀들 모임에서 타의적으로 두세 번 CGV를 찾은 것이 나의 영화관 나들이 이력의 전부가 된다. 그리고 우리집에선 언젠가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영화는 아빠랑, 서점은 엄마랑 공식이 생겼다. 

그때 따라가서 본 영화는 헐리웃 액션물로 기억하는데, 영화 초반부부터 졸음이 밀려와 잠을 잤던 기억 뿐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과 생각을 이어가지 못하도록 그저 눈과 감각의 재미와 자극만을 추구하는 그런 류의 영화는 나 같은 사람에겐 별 흥미와 의미도 가치도 주지 못한다.

영화 뿐만이 아니라 TV드라마와 판타지 소설과 로맨스 소설, 무협지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건 중학생 무렵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어지는 신념과 같은 그 무엇이다.

그 신념이란 조금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그런 류의 영상 매체와 서적들이란, 끊임없이 나와 너를 분리시키고, 나와 세상을 분리시키려 하기에, 어려서부터 체질적으로 저절로 거리두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령 영상 안에서 폭력과 공포가 일어나면, 그 영상을 바라보는 내 몸과 두뇌 속에선 그대로 폭력과 공포로 반응한다. 어릴 적 함께 전설의 고향을 보던 부모님이  두려움에 벌벌 떨던 나를 안심시키려고 하시던 말씀이 "저거는 가짜다. 연기다. 진짜가 아니다."라는 메세지가 내겐 정신의 분열로 다가온 것 같다. 

텔레비젼 속 영상을 보며 그대로 비추어 반응하는 내 몸과 두뇌 사이에, "저건 가짜다."라는 중간 메시지로 최면을 걸려던 시도는 나아가 집단 최면과 광기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내 풀리지 않던 고민이 되었다.

지금도 우연히 영상을 통해서 전쟁과 폭력의 장면이 스칠 때면, 내 몸의 세포들은 실제로 공포에 벌벌 떤다. 불가의 수도승들은 한 생각 일으키는 일의 무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상식처럼 되뇌이곤 하신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란 애초에 한 사람의 한 생각이 일으킨 씨앗으로부터 자라난 악한 열매가 아니겠는가. 영화와 전쟁 놀이를 통해 나와 너를 세상을 분리 시키고 무감각해진 의식에서 그러한 싹이 자라난 건 아닐까.

학창시절 신약에서 본 예수의 메시지 중 "너희가 마음으로 범한 일도 실제로 범한 일과 같다."라는 구절에서 비로소 나의 정신적 분열증은 치유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예수의 시선은 나에겐 길이 되었고, 예수와 가장 닮은 시선으로 <무소유>에서 본 법정 스님의 시선은 구체적인 삶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렇게 내가 지금껏 추구해오고 있는 공부, 그 하나의 지향점이 있다면, 그건 일치다. 나와 너가 다르지 않음을, 나와 세상이 무관하지 않음을. 매일 매 순간 스스로가 깨달으려 하며 그러한 일치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밝히며 걸어가는 지구별 순례길. 

그러한 걸음에 있어서 이 자본의 시대와 함께 성장해온 영화산업이란, 내겐 일치를 위한 공부와 삶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그마저도 맑히고 있는 의식을 단숨에 흐트러뜨리는 방해꾼으로 여겨졌고, 자연히 내겐 아무리 이름 난 영화라 해도 영화관람 그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나 욕망이 일지 않는 것이다.

간혹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의 영화는 집에서 남편이 틀어주어서 보게 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시대적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서 보게 되었다.

이런 나 같은 사람에게 <그대가 조국>이라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일반적인 영상 제작물들의 시선과 노선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영상매체의 시각이 그 지향점을 분리가 아닌 일치에 둘 수 있구나.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충격이 내겐 적지 않다. 지난주에 보았던 <그대가 조국>을 이번 주에 또 다시 보기 위하여 토요일 밤 9시 40분 상영 2장을 예매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서 스스로가 놀라워하고 있으니...

지난주엔 아들과 함께 보았고, 사실 아들은 내 옆에서 영화가 시작 되기를 기다렸다가, 초반부부터 팝콘을 바삭바삭 먹기 시작하더니 바로 잠이 들었고 영화가 끝나자 잠에서 깼다. 별 기대를 한 건 아니었기에, 그래도 어디서 누군가 그 영화 제목을 말하며, 보았느냐고 물어온다면, 아마 아들은 보았다고 대답하겠지. 그걸로 만족한다. 

그리고 오늘 밤엔 딸아이와 함께 보았다. 그래도 딸아이는 팝콘을 바삭바삭 다 먹고서도 잠들지 않고 끝까지 다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넌지시 말을 꺼내니, "나한테만 피해가 가지 않으면 되지 않아?"라며 툭 반문을 해온다. 딸아이의 머릿속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시계를 보니,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이다. 피곤하기도 할 것이다. 공감력에 대한 얘기를 넌지시 꺼내며, "만약 내가 그러한 입장이 된다면," 그렇게 공감을 하려면 힘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해주려다가, 그 물음이 도로 나에게로 돌아왔다. 두 번째로 관람한 <그대가 조국>이 나에게 건네는 물음과 물음들이, 내 안에서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샘물처럼 흐르는 밤이다.

적어도 이 다큐 영화는 나에게 있어서, 일치와 공감과 진실을 지향점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데 대하여, 뭔가 모르지만 그동안 일치와 진실을 추구하며 살아온 나에겐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픈 사건을 재조명 하는 일이란, 그 아픔이 고스란히 몸을 통과하는 일. 그리고 그 아픔을 바라보는 이에게도 그대로 아픔이 전해지는 일. 하지만 이 아픔의 영화 저변에 흐르는 그보다 더 너른 품 같은 깊은 물결 같은 잔잔하고 덤덤한 시선의 흐름이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 아픔을 바라보는 이에게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끌어오르는 분노 한가운데 다독임의 손길이 숨어있음을. 절망 한가운데 햇살 같은 따스한 시선이 숨어있음을. 거짓 한가운데 진실된 목소리가 스며 있음을,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대한민국 검찰과 언론의 추태야 이미 전 세계적으로 눈 밝은 이들에겐 정평이 나 있는 터라,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 늘 맴돌던 우리의 숙제였고 나의 과제였다. 이제껏 풀리지 않던 사회적 역사적 과업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획하고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거듭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길이 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좁은 길에서 큰 대로로 접어든 것 같은 열린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내가 선 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확실한 일이 생겨서 든든하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검찰·언론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나의 답답한 심경을 어렵사리 말과 글로 전하지 않아도 되는 손쉬운 방편이 생긴 것이다. 한 시름 덜었다. 그냥 <그대가 조국>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관람 후의 느낌이야 각자에게 주어진 몫, 나는 다만 팝콘을 사서 같이 보러 가자고 가까운 이들에게 프로포즈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나의 평소와 사뭇 다른 모습이 남편에겐 기이하게 보이는 지 아직은 나로부터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예전부터 수차례 내게 심야 영화를 함께 보러 가자던 벗님들의 요구에 매번 응하지 않던 내가, 어제는 먼저 단톡방에 <그대가 조국>을 보러 가자고 메세지를 남겼더니, 내색은 안 해도 별일이다 싶었을 것이다. 

벗님으로부터 "보고 싶은데... 이번 주는 안 되고, 다음 주는 돼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 내겐 세 번째 관람이 되는 셈이다. 얼마든지 환영한다. 오늘 다시 본 <그대가 조국>은 다시 새로운 깨달음과 물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앞으로 열 번, 백 번을 보아도 다시 새롭게 다가올 그런 살아 있는 물결이란 예감이 든다. '일기일회',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이치처럼. 

벗님이 되는 부부 중 부인이 되는 언니는 김명신과 고교 친구였다며, 처음엔 자기도 못 알아봤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며, 집에 김명신과 같이 찍은 고교 시절 사진도 있다고 하니 그 사연도 들어보면서,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란 참 멀고도 가까운 것 같다. 

<그대가 조국> 다큐멘터리 영화가 지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나의 익숙한 표현으로 비유하자면, 불교 식으로 말하면 문득 관세음보살님의 시선으로 느껴지고,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문득 성령님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그 한 줄기 시선에서 이 혼탁한 세상을 향하여 비추는 위로와 힘이 느껴지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나와 너와 우리와 세상에 대하여, 일치와 연대와 진실과 위로와 힘과 매번 새로운 물음과 희망을 주는 바람결 같은 물결 같은 햇살 같은 시선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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