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촛불행동 상임대표로 있는 김민웅 목사의 설교 “어리석은 싸움, 진정한 목표”는 이스라엘의 분열이 솔로몬 이후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윗의 통치기에 이미 그 씨앗이 뿌려진 것을 주목하고 있다. 애초에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라는 최고의 사명이 뚜렷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보다는 권력을 관리하고 이를 강화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둔 최고 권력자의 모순을 성서가 폭로하고 있음을 김민웅 목사는 일깨우는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 왕조의 신화적 예찬에 집중하기 쉬운 해석과는 달리, 그는 이들의 본질적인 실패를 주시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예수운동의 진정한 목표를 조명하고 있다. 권력이 진실로 지향해야 할 바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가 택한 본문은 사무엘하 19장 40-43절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 이후 북부의 이스라엘과 남부의 유다가 서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갈등과 대립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는 본문의 대강의 줄거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본문은, 다윗이 자신의 친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왕권을 빼앗긴 이후 요단강 동쪽으로 피신했다가 정세가 바뀌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귀환의 시점에서 한바탕 벌어진 일은 이제 누가 다윗 왕조의 주도권을 쥘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유다는 유다대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대로 각기 자신들의 권리가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것은 다윗 왕조의 미래가 얼마나 험난할 것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한때 통일왕조로 기대를 모았던 다윗의 권력질서가 어찌해서 분열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가?
“통일왕국의 유지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부의 도전, 그것도 다윗의 친아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통일왕국은 일대 정치적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왕권찬탈의 야망을 가지고 먼저 북부 이스라엘의 불만세력을 규합, 이들의 지지를 모아 아버지 다윗을 밀어내면서 남쪽의 유다까지 자신의 지배하에 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압살롬의 체제 아래에서는 그를 옹립하는데 주도권을 행사한 북쪽의 이스라엘이 상대적으로 좀 더 우세한 정치적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이 통일왕국 성립 직후 북쪽 이스라엘의 민심을 아직 완전히 잡지 못한 상황을 이용하여 이들 이스라엘의 정치적 불만을 근거로 자신의 집권을 도모했던 것입니다. 이러면서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도전으로 몰락의 위기에 처할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세는 역전된다. 압살롬 세력이 토벌되고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합은 다시 시도되게 되었던 것이다. 다윗은 권력을 탈환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사태는 그리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다윗의 귀환을 둘러싸고, 남과 북 사이에 서로 다윗의 정치적 기반이 되고자 하는 명분 다툼이 생긴 것이다.
“남쪽의 유다는 다윗의 정치적 근거지가 본래 유다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가 임금님과 더 가깝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윗과의 지연과 혈연을 앞세운 것입니다. 반면에, 북쪽의 이스라엘은 압살롬의 몰락이 분명해진 순간, 다윗의 복귀를 유다에 앞서 먼저 주장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높으신 임금님을 우리가 다시 모셔 와야겠다고 맨 먼저 말한 사람이 바로 우리가 아니었느냐?”하고 따지고 들었습니다. 지연과 혈연에서는 밀리지만 정치적 논공행상의 잣대를 들이민 것입니다. 외형상으로는 다윗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듯 했지만, 실상은 그 하나 됨의 과정에서 이미 분열의 씨앗이 새롭게 뿌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때에 지도자의 대응이 매우 중요해진다. 그런데 다윗은 기회주의적 처신을 한다. 한 쪽에게서는 본래 가지고 있던 지연이 중요하고, 다른 한쪽으로부터는 새롭게 구성된 정치적 충성이 필요했다. 현실정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뛰어넘어 정작에 핵심이 되어야 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자세와 헌신의 언급이 다윗에게서는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압살롬 세력이 다윗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정세가 급변하자 압살롬을 옹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북쪽 이스라엘에 속한 지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롭게 되었음을 느끼고 장래를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격론의 결론은, 다윗에게 남들보다 앞서서 빨리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자는 것이었습니다. … 그런데 이스라엘 지역의 이와 같은 정치적 합의는 남쪽 유다의 민심의 향배가 아직 정해지지 못하고 있던 것과 비견되었습니다. … 사태가 이렇게 되자, 다윗은 불안해졌습니다. … 그래서 다윗은 넌지시 유다 지역에 사람을 보내어, 그 자신의 지연과 혈연을 강조하면서 지지를 표명하는 행동을 촉구하게 됩니다.”
이에 자극을 받게 된 유다의 민심이 다윗에게 확실하게 기울면서, 이스라엘 출신 백성들보다 먼저 요단강에 당도하여 다윗의 귀환과정을 주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처음 그에게 충성을 서약했던 이스라엘 출신의 백성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유다의 대응에 반발한다. 다윗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안정시키겠다고 했던 조처들이 결과적으로는 남의 유다와 북의 이스라엘 사이에 불신과 갈등이 깊게 만들었고 훗날 분열의 기초가 만들어졌던 셈이다. 다윗이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기회주의적이고 정략적인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다윗은 모진 고생을 하면서 불쌍하고 미천한 백성들의 사연과 아우성을 끌어안고 사울의 폭정에 대항, 혁명적 투쟁을 온 몸으로 감당한 영웅적 존재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 아래 새로운 나라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위업을 이루었을 때 그의 감격은 시편에서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권좌에 오른 이후 그의 마음은 차츰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쪽으로 기울어졌고 위기가 닥치자 믿음을 내세우기보다는 정치적 계산에 빠른 자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민중을 배반하고 하나님 나라의 뜻보다는 권력의 논법에 집착한 자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재정비하는 데에는 성공했는지 모르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위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역사를 펼치는 일에는 결정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니 그의 왕조가 아들 솔로몬 대를 지나면서 분열과 붕괴로 치닫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
예수 운동 당시 민중들의 혁명적 모델은 다윗 왕조였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자신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고 그러한 기대를 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까닭은 분명하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루시려는 나라가 다윗 왕조의 정치적 복구로 완성될 수 없음을 분명히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 왕조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망의 시작으로서는 의미가 있었으나, 그 완성된 형태로서 내세울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나사렛 예수와, 그를 따르던 백성들이나 제자들과의 생각의 차이가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떤 원리로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려 했을까? 그런 원리를 바로 세울 때 어리석고 부질없는 싸움은 그치고 정작 몰두해야 할 목표가 바르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면서 새로운 국가건설에 나섰던 다윗이 말년에 직면했던 운명은 하나님 나라의 뜻에 충실하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전적인 믿음을 걸지 않은 존재의 비운(悲運)입니다. 예수운동은 이 한계를 극복하는 방도를 보이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김민웅 목사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사람과 세력들조차도 알량한 기득권을 둘러싼 싸움에 매몰되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이렇게 마무리 짓고 있다.
“어떤 사회도 기득권 쟁탈전이 있고 패거리 정치와 집단적 대결주의가 있기 마련입니다. … 다윗의 첫 출발은 의미 있었으나 그 과정과 결말은 비극이었습니다. 기득권이 특권이 되고 정치적 정략이 본래의 야훼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와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선과 의로움, 사랑과 기쁨을 열망하고 이를 이루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로 우리가 변하고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 이 노력과 자세, 그리고 믿음이 지난 세월의 뼈저린 고난과 희생, 그 어느 것 하나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으로 변화하는 감격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싸움을 피하고, 정작 절실한 목표를 향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지혜, 그리고 힘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실로 무엇을 하건 언제나 돌이켜 성찰해야 할 바는 본래의 출발점이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사명을 망각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리석은 싸움과 추한 권력투쟁일 뿐이다.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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