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4)
절대 고독의 자리
도엽은 지금 긴 잠에 빠져들어 있다. 지난 토요일, 짜장면을 먹고 싶다 하여 어머니와 같이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지만 모든 것을 게워냈다고 한다. 그런 후 좀처럼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누나들과의 저녁 산책을 유독 기다리며 1시간 정도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하루의 큰 낙인데, 이번 주는 한 차례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아침 7시쯤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들고 오후 3시쯤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든다. 그리고 저녁에 누나들이 퇴근했을 때도 잠을 자고 있다. 오늘도 어머니가 영양 보충을 위해 마련한 음식들을 모두 토해 냈다. 이번 주는 하루에 한 끼도 겨우 먹고 있다 했다. 게다가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이라는 졸음과 변비를 호되게 겪고 있다. 어머니는 불안해서 자꾸 그를 깨워 밥이나 죽을 먹여 보려 노력하지만 도엽은 쏟아지는 잠이 참기 어려운 모양이다. “남들의 세 배는 자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도엽에게 전복죽을 끓여 주기 위해 장을 보러 나서면서 힘없이 내게 건네신 말이다. 남들이 8시간을 잔다면 그는 24시간을 잔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 도엽의 잠은 그의 어머니에게 24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다.
적막의 소리
솔직히 이번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마음이 착잡해지면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이었다. 14년 전 이맘때쯤 나의 아버지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죽음을 겪은 사람은 오랫동안 그 경험을 잊지 못한다. 아니, 해가 갈수록 그 경험은 새로운 기억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그것은 문득문득 일상의 휘장을 뚫고 갑자기 침입해 들어와 감정을 교란시킨다. 그 기억엔 해석이 덧붙여진다. 해석은 매년 달라진다. 해가 갈수록 그때 그 장면, 그 기억들이 이전보다 성숙한 관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새로워진 관점이 오히려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그 사람의 아픔을 이제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떠난 사람의 아픔을.
몸이 아픈 사람들의 절대 고독. 14년 전 이맘때 어느 날엔가 아빠에게서 문자가 왔다. 가족들이 모두 잠시 밖에 나가 있었던 시간이었고 아빠만 홀로 침대에 누워 계셨다. 사건은 하필 그런 ‘부재’의 교집합 시간에 일어난다. 어떤 사건이었는가.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 아빠가 늘 누워 계시던 침실에 딸린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물방울이 새고 있었다. ‘똑. 똑. 똑. 똑.’ 처음엔 그러려니 하고 누워 계셨던 것 같다. 그런데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된 말기암 환자에게 적막 속 수돗물 소리는 점차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고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때론 규칙적으로, 때론 불규칙하게.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한낮에 수도꼭지에서 새는 물방울 소리에 예민한 귀를 곧추세우고 있을 사람은 아픈 환자들뿐일 것이다. 그것도 수도를 잠그기 위해 그곳까지 걸어갈 수조차 없는 환자들. 아빠는 수돗물 소리 때문에 잠을 주무실 수가 없었고, 누군가 수도를 잠가 주길 바라셨고, 하지만 우리에게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대개의 건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뒤덮는 다른 것들로 머리가 꽉 차 있기 때문에 미세한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집 앞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 소리도 귀에 걸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노는 소리, 시소가 삐거덕거리는 소리, 크레인이 흙을 뒤엎는 소리, 한낮의 공사장에서 나는 소리, 나무 위의 새소리도 감지하지 못한다. 블라인드가 바람에 날리다 창문에 부딪히는 소리도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하더라도 오롯이 홀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육체의 고통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져 있는 와중에도, 아빠는 그 소리들을 들으셨다. 물속에 잉크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그 입자는 곧 물 전체에 퍼져 들어가 액체의 색깔을 바꾸어 버리듯이,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수돗물이 똑, 똑, 듣는 소리조차 그들 하루의 색상을 좌우하는 압도적인 소리가 될 수 있다. 지루함과 권태로움에, 견디기 어려운 고통까지 첨부되어 마약성 진통제로 하루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이 적막의 소리에 익숙할 것이다. 도엽은 지금 긴 잠 뒤에 잠시 깨어나 이 적막의 소리를 듣고 다시 긴 잠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공감이라는 능력
언젠가 도엽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친한 친구들이, 수술을 막 하고 나온 도엽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시험을 너무 못 봤다, 여자친구가 힘들게 한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는 이렇게 아파서 힘든데 이 아이들은 저런 게 힘들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절대적으로 공감해 줄 수는 없는 거구나. 내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다른 사람이 느끼는 아픔을 조금이라도 안다고 할 수는 없겠구나. 약간 이해하는 정도라고 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람이 타인의 아픔이나 감정을 통째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많은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기대하지 않겠다는 자기방어적인 자세 때문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상대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을 내려놓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 객관성을 회복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친구들에게 고맙고 감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금 후회하는 것이 있었다.
“저에게 좀 안 좋은 버릇이 있었는데요…. 어릴 때 힘든 일을 겪어서 그런지 사람을 무시하는 오만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주 안 좋은 버릇이었죠…. 내가 사귈 만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별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스스로 조숙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철없고 어린 애들, 생각 없는 애들, 재미없는 애들과는 말을 별로 섞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아주 차갑고 이상하게 대한 건 아닌데요.…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몹시 후회돼요. 제가 정말 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는 남자들의 특성상, 자기 서열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속한 또래 그룹에 끼워 주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어린 시절부터 키가 크고 유머감각도 있고 의학 지식도 많이 알고 있으니 친구들을 좀 가렸고, 그랬던 기억이 21살 골육종이 발병한 이래로 내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지금은 제가 제일 바닥 인생을 살고 있잖아요. 제가 뭐라고 그때 그랬을까요. 너무 오만했던 것 같아요. 정말 미안해요. 그 아이들도 참 괜찮은 아이들이었는데…지금은 연락하기가 부끄러워요.”
적막의 공기, 절대 고독의 자리에서 그는 아마 이런 생각들을 하며 지냈나 보다. 남들이 빛의 속도로 살고 있는 것 같을 때 자신은 정지된 삶을 살게 되었고, 이젠 그 빛조차 볼 수 없게 되어 미세한 소리 하나하나를 감지하게 되니, 다른 사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공감하지 못한 것, 사랑하지 못한 것 역시 세세하게 감지되었다. 육신이 통증 있는 부위에 온 초점을 맞추듯, 마음도 건강하지 않았던 내면의 부위에 집중되었다. 그는 그 마음을 꺼내놓고 바라보았다. 후회하고 반성했다. 그리고…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그렇게 적막의 자리에서 그의 마음의 키는 소리 없이 훌쩍 자라고 있었다.
도엽아, 힘내자
아직 써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도엽과 상의하고 농담도 하고 웃기도 하고 빵도 먹으면서 쓸 것이 남아 있다…. 편안하게 모자를 벗어 바람에 민머리를 통풍시키기도 해야겠고, 누나들과 가을 밤공기를 쐬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도 듣고 웃음도 지어 줘야 할 것이다. ‘하.하.’ 그의 웃음소리는 독특하게 분절된 음으로 구성된 것이었다. 책에서 읽는 웃음소리 같은 ‘하.하.’ 하는 도엽의 웃음소리를 얼른 들어야겠다. 기운을 차리고 이 긴 잠에서 헤어 나와 도엽, 네가 나에게 건네 놓은 많은 이야기들--가족 이야기, 가족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들, 친구들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 첫사랑 이야기, 꼭 이루고 싶은 꿈 이야기--을 다시 같이 쓸 수 있기를 기도한다. 도엽아, 힘내자.
이진경/EBS, KBS, CBS 방송작가를 거쳐, IVP 편집부에서 일한 후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EBS 다큐프라임 생사탐구 대기획 ‘죽음’》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