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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

페이스메이커

by 한종호 2015. 10. 26.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6)

 

페이스메이커

- 전집 5일기 I1934년 일기 -

 

 

어려서부터 나는 유난히 잠이 많았다. 덕분에 청교도적 사명감으로 일분일초를 아끼며 사셨던 아버지로부터는 늘 게으르다는 핀잔을 들었고, 모처럼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초저녁부터 꾸벅꾸벅 조는 모습에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이 40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선천적인 면역계통 이상으로 간과 신장이 안 좋다는 것을. 아하, 그래서 늘 저녁 8시만 넘으면 몸이 붓고 자면서도 끙끙 고열에 식은땀까지 났던 거구나. 어쩐지, 일년내내 감기일 리는 없고 이상하긴 했다. 하여 무조건 쉬는 게 답이라는 의사는 모든 환자에게 하는 조언을 내게도 전했다. 스트레스 쌓이는 일 하지 말고 무리하지 말라는 소리 말이다. 그게 말처럼 쉬운가? 그럼에도,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병명은 나에게 자유평안을 주었다. 뒤풀이에 끌려갈 세라 서둘러 사라지고 대부분의 친교 행사에 불참하면서도 마음은 불편했는데, 병이라지 않나! 놀 기운이 없다지 않나! 죄책감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삶에는 우선순위가 있기 마련이고, 내 체력에 나만의 한계가 있다하니 남들 같지 않음으로 인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선생으로서, 아내요 엄마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최소한 해야 하는 의무방어전만 감당하기에도 내 체력으로는 벅찬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건강 체질이라 생각했던 김교신도 뇌빈혈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접하니, (이러면 안 되지만) 반갑기까지 하다. 1934년의 일기에는 유난히 병석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잦다. 4월 어느 날의 일기다.

 

아침에 뇌빈혈이 재발하여 와상한 채로 수일을 지내다. 의사는 명하기를 독서하지 말고 사색하지 말고 집필하지 말라고 하니, 이는 나에게 거의 사형선고와 근사한 일이다. 허약한 신체는 아니면서도 무리한 학대를 육체에 가하고는 병신노릇 한다. 그러나 소인한거위불선(小人閑居爲不善)이라 하니 우리 같은 소인은 병석에서 쉬는 것이 차라리 감사이다.

 

어느 때인들 성서조선지 발행이 녹녹했겠는가마는, 1934년은 김교신에게 그야말로 힘겨운 한 해였다. 류석동을 비롯하여 그간 주요하게 집필을 담당했던 이들이 대거 글 싣기를 거절했으며, 일제의 검열도 날로 심해져갔다. 66호는 폐기될 뻔하기도 했다. 용산경찰서에 호출당하여 취조를 받고 이게 마지막이구나 싶었던 일들을 겪었다. 경무국으로부터 뒤늦게 범죄의사 없음’(기가 막힐 노릇이다. 도대체 누구 기준의 범죄인 건지)으로 판명되어 속간을 허락받고 주일임에도 종일 인쇄소에 나가 교정하여 겨우 출간하였다. 1934년은 내내 늘 이게 마지막이지생각하며 한 호씩 출간하여갔던 한 해라고 적고 있다. 그 해에만 금단된 신문 잡지가 230여 종, 수입 신문 압수 1,414, 이입 신문 압수 842, 조선문 신문 압수 28, 그 외에 조선 내 발행 잡지의 삭제 402, 단행본 삭제 108”(1212일 일기)이라 하니, 성서조선지가 겪었던 수난을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멀쩡한 사람에게도 뇌빈혈이 찾아올 일이다.

 

 

 

 

몸에 병까지 얻어가며 촌각을 아끼고 사투에 가까운 출간을 담당하다보니 김교신은 지인들의 편지, 제자들의 즐거운 소식에도 동참하거나 회신할 겨를조차 없이 산 날들이 이어졌다.

 

이러한[왕래는 어렵겠으나 교훈의 글월을 보내달라는] 특청(特請)에도 불구하고 축전도 못하고 엽서 한 장도 보내지 못하여 사랑의 부채만 늘어가는 것이 마음에 괴로웠다. 결혼식을 무의미한 것으로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다망하다는 핑계 때문이다. 근래에 원로(遠路)에서 방문한 모 친구가 정거장까지 전송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냉정함을 책()하였으나, 책망을 감수하는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성조지를 발간하기 위하여는 이만한 교만을 용인(容忍)하라고 자가용(自家用) 특허를 맡았다. 서신에 회답이 태만한 것도 동양(同樣)의 특허권으로 인함이니 지우에게는 특히 이 사정을 통찰하여 주기를 기망(企望).

 

1934년이면 김교신이 겨우 삼십대 중반으로 들어설 무렵이다. 물론 그 시절의 서른 중반은 지금과 다르겠으나, 여전히 젊은이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의 뇌빈혈은 구독자들조차 걱정할 만큼 잦게 찾아왔었나 보다. 좀처럼 결근이 없던 김교신이 학교를 못나가게 된 날의 원인도 뇌빈혈에 있었다. 127일의 일기다.

 

피로가 축적된 결과인가 오늘 아침에 드디어 뇌빈혈이 생겨 기상치 못하고 결근 휴양. ‘원컨대 건강이 반석 같아서 주야 불휴(不休)하고 일할 수 있었으면하기는 하지만 또한 게으른 자에게는 허약한 일도 적잖은 행복인 것을 병상에서 배우다. 건강하면서 할 일 다 하지 못하면 그 책임이 나에게 있으나, 하다가 거꾸러져서 못하는 것은 우선 나의 책임이 아니다. 몸은 약하여 누웠으나 마음에는 다할 수 없는 만족과 감사가 용연하다. “내가 약할 때에 강하니라는 바울 선생의 구가 자연히 나의 것으로 되어 입술을 흘러나온다. 밤에 겨우 성조 제 71호를 보낼 절차가 되어서 피봉 쓰기 시작하다. 약 일주간 쓸데없이 지체되었다. 독자에게도 미안하나 주필에게도 미안함은 일반사.

 

이 어찌 미안할 일일까. 물론 혹자는 비웃을 일이다. 성조지 발간이 뭐 그리 생사가 달린 일이라고 몸이 상할 지경으로 친교도 마다 않고 진행한단 말인가. 당시에도 그런 조언 내지는 비난이 없지 않았다. 오해도 많았다. 네 자존심이지, 네 체면을 위함이지. 그러나 이에 대한 김교신의 변은 확고했다.

 

학교에서 당직. 신체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새벽 3시경까지 집필하여 신년호의 준비가 거의 완결되다. 오래 전 일은 망각하여 버렸으나 금년 1년 동안에 한 번이라도 모험적인 연일 과야(過夜)함이 없이 성조지가 되어 본 적은 없다. 이 한 호까지 내놓고는 거꾸러져도 가하다는 결심이 이르지 않고 성조가 되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지극히 안일하다. 세상에 난 것은 사업하기 위함이 아니다. 만일 할 사업이 있다면 학교 교사 노릇이다 충실히 하면 사회에 일원 된 의무는 다하는 셈이다. 성조 발간 같은 일은 누구에게 부탁 받은 것도 아니요, 감독 받는 일도 아니다. 발행일자가 늦어도 할 수 없고 폐간된대야 체면 관계될 것은 없다. 오직 참으려 해도 제지할 수 없는 충동에 의하여 마지못하여 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유희(遊戱)’라는 요소가 다()부분 개재한 일인 것은 사실이다. 고로 초조할 것이 없이, 마치 일요일마다 물에 산에 소요하는 이들처럼 슬금슬금 쉬지 않고 걷고자 할 따름이다.

 

슬금슬금 쉬지 않고 걷고자 할 따름이다.” 아하, 드디어 내게도 페이스메이커가 생겼다. 김교신의 일상이 결코 슬금슬금으로 표현될 만한 페이스는 아니었으나, 소명으로 여기며 삶의 우선순위를 매길 일들이 있었고, 촌각을 아끼며 그 일에 매진하되, 몸져누워 쉬게 되면 그 역시 행복하고 감사하다 여기다가, 회복하면 다시 쉬지 않고 걷는그이의 발걸음이 내게는 내 인생의 걸음을 함께 해주는 페이스메이커의 달리기와도 같이 느껴졌다. 마라톤에 능하던 김교신이 아니던가. 단거리야 스피드가 중요하겠지만, 마라톤의 가치는 완주에 있지 않겠나. 자기와의 싸움이고, 제 몸의 페이스를 익혀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실은 어제 그제 그리고 오늘까지 삼일을 끙끙 앓으면서도 줄곧 스케줄러를 쳐다보던 내 모습이 한심하던 차에 발견한 복음이었다. 머리맡에 두고 읽을 기운이 날 때마다 펼친 김교신의 일기 5에서 슬금슬금 쉬지 않고 걷고자 할 따름이다.”라는 글귀에 감명을 받게 될지, 논문 쓰느라 바삐 읽었던 십 수 년 전에는 상상이나 했을까? 그의 말이 맞다. 병상에 누움도 감사다. “삶은 미정(未定)”이라던 김교신의 지인 류영모의 글귀도 생각나는 날이다. 인간사에 어찌 완성이 있고 완벽이 있으랴. 제 소명 따라 하다가 죽는 것이지. 누군가 그 뜻이 귀하다 여기면 바통을 이어받듯 받아줄 생명을 기대하며(이는 함석헌의 표현이다.)... 김교신이 성서조선에 담아내려 했던 뜻은 158(19423월호)로 그쳤지만, 한국 무()교회 3세대들에 의해서도, 21세기 청년들의 <성서한국> 모임을 통해서도, 또한 이렇게 저렇게 제도 교회 밖에서성서를 스스로 읽는 평신도들에게 용기와 방향성을 주며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져 가지 않나. 슬금슬금 쉬지 않고! 그 정직하고 성실한 걸음이 위로가 되는 날이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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