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너희는 참 좋겠다

by 한종호 2015. 12. 29.

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44)

 

너희는 참 좋겠다

- 학부모의 편지 -

 

 

2015년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의 잔치, 영원은 진중한 울림을 남기며 마무리되었습니다.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시간속에서 경당 친구들의 성장과 성숙, 더불어 함께함의 놀라운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잔치중에 자신의 딸을 경당에 보낸 학부모님이 경당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생명살림의 교육이 이 땅 가득 편만해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친구들아~

 

작년 겨울 너희 학교는 새들마을학교라는 귀여운 이름에서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이라는 묵직하고 긴 이름으로 바뀌었지. 나눠주신 설명책자를 펼쳐보았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빽빽한 글씨로 무려 한 페이지 반에 걸친 이름에 대한 설명을 보며 그렇게 많은 의미를 담았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단다. 그런데 너무 많아서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더구나.

 

오늘 책장 한 모퉁이에서 그 책자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어.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더구나. 학교라는 기관으로써의 제한된 교육의 장을 넘어 사랑의 공동체적 관계로써 인간의 삶 전체에 걸쳐 이루어지는 가르침과 배움의 길을 창조해 나가고자 하는 정체성과 방향성을 이름에 다 담아내셨더구나. 이름에 담긴 의미대로 이루어지는 배움과 만남들을 지켜볼 수 있었기에 다시 읽는 지금 그 의미가 내 마음에 와 닿는 거겠지?

 

 

 

 

너희들은 참 좋겠다. 요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아주 유명하지. 너희들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회상시켜 주는 그 드라마에서 골목이라는 건 단순히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삶이 공유되는 곳이고 아이들은 그 골목을 누비며 자라나지. “골목은 그저 시간만으로 친구를 만든다”라는 작가의 카피가 그 골목길에서 펼쳐졌을 수많은 사건과 만남을 그려보게 만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너희는 이미 그런 골목을 가지고 있더구나. 골목뿐 아니라 너희의 배움을 지지하며 지켜봐 주는 이모 삼촌들까지 있으니 금요일 토요일 밤이면 TV 앞에 앉아 대리만족 하느라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겠더구나.

 

학교 선생님의 결혼식이 너희의 잔치가 되고 너희는 그냥 손님이 아니라 그 잔치의 또다른 주인공이 되더라. 너희가 배우고 익힌 것을 보여줄 때마다 박수쳐주던 이모 삼촌들은 또 어느새 놀랄만한 솜씨로 너희들을 가르치고 너희들이 먹는 음식을 만드시는 선생님이 되시지. 이 관계의 풍요로움이 참 부럽다.

 

너희는 참 좋겠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은 단순 산술계산이 통하지 않는 곳이더라. 한 친구를 새로 만나는 것이 원래 있던 친구들의 기운에 그 친구의 기운이 단순히 일인분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로 인해 학교 전체가 새로운 기운으로 탈바꿈하는 그런 생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신기한 곳이더라.

 

 

 

 

작년에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 친구들을 보며 선생님들의 세심한 관심과 손길이 그만큼 쪼개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종의 욕심이 담긴 우려를 했었단다. 그런데 너희 학교는 그런 일반적인 나눗셈이 통하지 않더구나. 어엿한 형님이 된 바람빛 학당 친구들의 의젓함과 오랜 시간 관계에 대한 훈련이 깊이 배어있는 친구들이 새 친구들을 맞아 더욱 풍성한 드라마를 만들어 가더구나.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나눗셈으로 쪼개지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 속에서 더욱 단단하고 깊어진다는 것을 보게 되었단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친구들아! 너희는 함께 모여 있지만 각자 너무나 다르지. 어떤 친구는 이 곳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봄비를 만난 씨앗처럼 순식간에 싹이 터서 쑥쑥 자라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겨울눈처럼 기나긴 시간동안 힘을 모으고 모으며 자신의 봄날을 기다리기도 하지.

 

그렇게 다른 너희들이 서로를 끝까지 사랑하고 도우며 함께 어우러지는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때 드라마 속에서만 가능한 골목길의 판타지는 이 비산동에서 현실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 길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양진일/가향공동체 목사, 하나님 나라 신학 연구소 부소장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