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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의 '사람 사람 사람'/이만열의 삶, 신앙, 역사

책임을 면탈하려는 부끄러운 세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by 한종호 2016. 4. 19.

책임을 면탈하려는 부끄러운 세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늘도 같은 위로가 필요해서 그러는 것일까. 오전에 맑던 날씨가 오후 들어 찌푸러지더니 가는 비가 안개처럼 슬픔을 반추하는 듯했다. 세월호 참사 2주기인 지난 4월 16일 오전, 오후의 예정된 스케줄 때문에 이른 아침 시간 밖에는 여유가 없었다. 새벽에 집을 나서서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 안산의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작년 1주기 때에는, 러시아 선교사에서 물러나 안산에 계시는 이형근 목사님 내외분의 안내로 분향소를 찾았다. 그러나 올해는 어제부터 이 목사님을 찾았으나 연락이 닫지 않았다. 사모님께서 얼마 전 귀천(歸天)하신 후 눈마저 어두워 자유롭게 외출도 못하시기에 이 목사님도 방문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반월을 지나면서부터 옆의 승객들에게 ‘세월호정부합동분향소’에 가자면 어디에서 하차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작년의 기억을 떠올려 고잔역에서 하차, 택시로 분향소에까지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초지역에서 하차하면 도보로 10여분간 되는 거리다. 당일 행사 때문에 분향소 앞 운동장에는 식단을 만들어 놓고 수백명 분의 의자도 마련해 놓았다. 아침 7시가 조금 지난 시간, 분향소에는 10여명이 헌화, 분향하며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방문록에 무슨 말을 쓰랴, “잊지 않겠습니다”는 부끄러운 한 마디를 남기고 국화 한송이를 헌화하고 분향의 예를 갖추었다. 아직도 사진 속 그대들의 청순한 모습 때문인지, 기성세대로서 죄책감이 뭉클 솟는다. 저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먼저 가야 했나, 분향소에 안치된 사진들은 나이를 먹고 싶지 않은 듯, 그곳에 찾아와 위로받아야 할 이웃들을 작년과 같은 모습으로 맞고 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친척 친구 친지들이 다녀갔는지, 사진을 안치한 전시대 앞에는 생일 케이크도 있고 갖가지 사연들을 적은 편지들도 있다. 가장 많은 말이 “사랑한다”,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라는 말이다. 어떤 편지는 하트형으로 만들었고 어떤 것은 차곡차곡 접어 네모로 만든 것도 있다. 그 편지의 사연도 ‘사랑한다’ ‘잊지 않겠다’는 말일 것이다. 앞서 떠나 보낸 자식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도 담겨 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이곳을 찾아 눈시울을 적셨는지, 그들의 눈물이 있었기에 아직도 이 분향소가 철거되지 않았고, 세월호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자지러지는 불꽃처럼 꺼질 듯 말 듯하지만 그래도 계속되고 있다.

 

세상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유족의 심정으로 공감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7시간’을 해명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눈치 빠른 관료 정치인들은 거기에 안테나를 맞춰 이젠 700여일이 넘는 시간까지 허송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면서 다짐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관료들은 눈물 속에 든 진의를 간파하고 세월호 진상규명의 방향계를 정해 놓고 행동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진상규명을 묻으려는 역풍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어느날 세월호 뱃지를 단 채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 갔다. 그걸 왜 달고 다니느냐고 면전에서 조롱을 퍼붓는 곱지 않게 늙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고위관직을 지난 친구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여서 그랬을까, 새누리당에서는 세월호사건을 모독한 언설을 퍼나른 분이 비례대표 후보에 당당히 올랐다. 미안하다거나 부끄럽다거나 하는 의식이 조금도 없이.

 

세월호 사건의 본질은 해난사고로 304명이 불의의 사고를 맞았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살릴 수 있었는데도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정부의 무능에 있다. 책임을 묻는다면 바로 그것을 묻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 배후에는 우리 사회에 얽혀져 있는 각종 관행과 부패사슬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여 부패를 근절하는 것도 304명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리라. 그러나 특별법 제정 때부터 삐꺽거리던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마지못해 출범했고, 출범해서도 위원회가 일을 시원스럽게 진행하도록 지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예산을 죄고 조사시한을 단축시키려 하고 있다. 이게 눈치와 아부에 노회한 대한민국의 관료들이다.

 

세월호 참사의 뒤처리는 그 초점이 보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진상규명에 있다. 이것은 유족들이 원하고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형편은 어떻게든 진상조사를 덮어버리려고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때에 유권자들은 절묘하게 여소야대의 정국을 만들어냈다. 한 시민단체는 총선출마 후보자에게 “당신이 국회의원이 되면 세월호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요지로 설문을 던졌고, 야당 후보자의 상당수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약속했다. 여소야대의 새 국회는 ‘세월호특별법’을 개정하고 진상조사도 제대로 시행토록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세대의 잘못과 무능으로 젊은이들을 수장(水葬)했는데, 그 책임을 면탈하려는 부끄러운 세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원인과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여 그런 부끄러운 참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만열/전 국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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