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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타부의 경계선이 없는 사회

by 한종호 2016. 5. 20.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0)


타부의 경계선이 없는 사회


“타부”라는 말은 본래 폴리네시안 즉,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말입니다. 그 뜻은 “금기”, 또는 “접촉하면 안 되는 대상”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애초의 의미에는, “신성한 존재”, “신적 두려움”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말하자면, “타부”란, 그 어떤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외감이 사회적 금기로까지 확대된 문화인류학적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부”는 그 사회의 정신적 중심에 무언가 성스러운 영역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원시상태에서부터 문명의 상태로 진화해나가는 과정의 현상입니다. 그것이 그 사회의 질서를 나름대로 유지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자신을 보다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스러운 영역을 내세워 금기를 과도하게 부여할 때 그 사회는 억압적이 되고 맙니다.




“타부”가 많은 사회는 그래서 본래 의도했던 바대로 신성한 사회로 발전하기 보다는, 금기를 어길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는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 공포를 권력과 풍속의 도구로 이용해서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는 현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과학적 진실이 별반 발언권이 없을 때에는, 이 타부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은 부당한 타부가 사라지고 진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부와의 전쟁은 달리 말하자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할 진정한 대화의 통로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 감히”, 라든가 “그러면 부정 탄다”라든가 아니면 “성역을 건드리지 마라”식으로 할 말을 못하게 막는 사회에서 그 사회의 정신과 문화가 진보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모세의 예를 들면서 인간에게 두 개의 가족이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자신을 낳아준 가족, 그 둘째는 그를 길러낸 가족입니다. 모세는 고대 이집트 제국의 노예 히브리 족속의 후예로서 죽을 고비에 처해 있을 때, 제국의 왕가의 딸이 그를 건져내 기릅니다. 이 두 가족의 문화와 위상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그러나 결국 모세는 그를 사회적 존재로 길러낸 제국의 가문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본래의 가족관계로 복귀합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에게 그의 성장과정을 지배하는 것은 2차 가족 관계라고 하는 사회적 현실이지만, 그 본심을 움켜잡게 되는 것은 1차 가족이라는 뜻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1차 가족에서 형성된 생각과 자세가 그에게 보다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1차 가족 안에 만일 소통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가족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처벌위주의 타부가 많은 사회의 현실과 동일해지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너무 무질서해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식이 되어 다시 권위를 다잡으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진로를 잘못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금기가 강조되는 타부는 사라져야 마땅하며, 그 대신 그 자리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소통의 자유가 들어차야 합니다. 그 자유를 만끽하면서 자라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자유로운 생각, 그리고 제한 없는 상상력으로 자라나는 사람이 우리의 힘입니다.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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