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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호의 '너른마당'

삼성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by 한종호 2016. 7. 25.

한종호의 너른마당(53)

 

삼성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돌아가신 법정 스님을 생각하면 “무소유”의 아름다움이 떠오른다. 이 분 앞에서 한국교회는 “과소유”의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불교와 가톨릭계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른들이 계신 반면에 개신교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 자괴감을 불러일으킨다. 이건 다른 종교와의 관계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철저하게 무소유의 삶을 사셨던 나사렛 예수의 길을 우리가 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자꾸 “거탑(巨塔)”이 되어가고 있다. 얼마나 큰 교회인가로 그 목회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스도의 무소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종교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상숭배가 있다. 말로는, 교리적으로는 우상숭배를 배척하면서 돈이라는 맘몬 우상이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종교가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한국교회는 돈, 금력이라는 우상 앞에서 매일 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가 축복을 마다하겠는가? 그런데 그 축복의 정체가 부자 되기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부자가 되는 것이 이 사회의 정의를 이루는 것보다 높게 평가된다면 그 사회는 이미 불행하다. 힘 있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 그 사회의 고통을 껴안고 아파하는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삶보다 더 좋은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이를 질타하고 스스로 가난해져서 가난한 이들이 부하게 되는 길을 찾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짠 맛을 잃은 소금과 다를 바 없다.

 

신도들이 애써 번 돈을 쉽게 가져가는 곳이 교회라면, 그래서 그 교회가 자기를 살찌우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이미 큰 성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성전을 짓겠다고 하는 교회를 매일 생존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이 땅의 가난한 서민들이 어떤 눈으로 보게 될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은 온데 간데 없다. 으리으리한 성전과 화려한 장식이 믿음을 길러주는 것일까? 거대한 성전의 위용이 신도들을 모으면 그곳에 예수님께서 들어서실 자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국교회가 돈의 종교가 되고 있다하면 지나친 이야기일까? 돈을 벌게 해주기만 하면 모두 용서되는 것인가? 권력도 기업도 그리고 인물도 모두 이 돈을 위한 성공이라는 척도로 평가하면 다 끝나는 것일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로 간 것인가.

 

돈을 번다면 강도 다 파헤치고 산도 허물어버린다. 그 단적인 예가 4대강 사업이었다. 다 돈 때문이다. 이렇게 파괴된 자연을 누가 어떤 수로,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 되살려 놓을 수 있겠는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동영상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묵묵부답이다. 한 때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비리와 불법을 폭로한 적이 있었다. 그가 펴낸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이건희 회장 일가가 얼마나 많은 비리와 불법을 자행하고 그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왔는지가 다 드러난다.

 

삼성은 어떤 기업인가? 한국 최고의 세계적 기업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최악이다. 회사 돈을 자기 돈처럼 물 쓰듯 쓰고, 탈세와 탈법을 쉽게 저지른다. 삼성이 이 사회 곳곳에 처 놓은 그물망과 같은 동맹체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삼성 장학생이 줄지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사회는 부패해지고 온갖 비리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벌어진다. 삼성이 한국사회의 권력이 되고 있고 그 삼성을 향한 이 사회의 신앙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삼성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이런 식의 복음이 퍼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건희 회장 일가의 전유물처럼 전락해버린 삼성은 그 안에 있는 무수히 정직한 이들의 명예를 더럽히고 삼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국민들을 모독하고 있다. 그러면서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부정의한 생각을 유포하고 있다. 2009년 이명박 정권은 이건희 회장을 특별 단독사면했다. 법은 차별적으로 해석되고 적용된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실과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법은 돈과 권력의 기초 위에 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것만 봐도 이는 입증된다.

 

하기사 ‘깨끗한 부자’를 설파한 어느 목사는 한 때 남강 이승훈 선생과 삼성의 이건희 회장을 동격의 차원에서 언급하면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님에게”라는 구구절절한 편지를 띄웠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화려한 거탑을 꿈꾸는 마음으로는 진정한 신앙은 없다. 예수님은 그 웅장한 성전이 민중들의 피를 빨고 돈으로 가득 찬 것을 알아보시고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하셨다. 그런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서민들의 마음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져 내릴 것이다.

 

삼성의 금력이 신앙이 되고 있는 한국교회는 예수의 삶을 다시 자신의 신앙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무소유가 어렵다면, 소박하고 간결하게 살아가는 훈련을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 목회자부터 그리고 지위가 높을수록 비싼 고급 승용차에서 내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삶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면 그곳에서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교회가 진정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깨달아질 것이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돈의 권력이 숭상되는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지 않는다. 십자가도 없다. 삼성과 십자가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니, 도리어 십자가는 삼성의 권력과 맞서는 이들이 지고 가는 표징이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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