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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치명적인 실수

by 한종호 2016. 8. 19.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65)

 

치명적인 실수

 

유다의 남은 자(者)들아 여호와께서 너희 일로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날 너희에게 경계(警戒)한 것을 너희는 분명(分明)히 알라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爲)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祈禱)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에게 고(告)하라 우리가 이를 행(行)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屬)였느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命)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고(告)하였어도 너희가 그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順從)치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가서 우거(寓居)하려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饑饉)과 염병(染病)에 죽을 줄 분명(分明)히 알지니라(렘 42:19-22)

 

한 번 중심을 잃은 팽이는 어지럽게 맴돌다가 결국은 자빠지고 만다. 외발로 서서 잠을 자듯 중심을 잡고 있을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어찌 팽이만 그럴까. 개인도 가정도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 중심을 잃으면 어처구니없는 모습으로 고꾸라지고 만다.

 

나라를 빼앗기고 신앙의 중심이 무너지자 유다는 크게 흔들린다. 바빌로니아가 이스라엘의 총독으로 세운 그달리야와 그달리야 주변의 사람들을 죽인 이스마엘은 미스바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암몬으로 넘어가려 하였다. 끌려가던 이들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요하난에 의해 겨우 구조될 수가 있었다.

 

 

이런 혼란 속에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찾아온다.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예레미야를 찾아와서 부탁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기도였다. 주님께 기도하여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알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묻는 것, 그것이 기도일 것이다.

 

어려운 일을 만나자 그동안 무시하고 괴롭혔던 예레미야를 찾아와 기도를 부탁하는 백성들의 모습은 가볍고 안쓰럽다. 그래도 예레미야는 기도하겠노라고, 주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은 아무 것도 숨기지 않고 모두 알려주겠노라고 대답을 한다. 누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여도 그를 위한 기도를 끝내 멈추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지도 모른다.

 

미안해서 그랬을까, 다급해서 그랬을까, 예레미야에게 백성들은 약속을 한다.

 

“진실하고 신실한 증인이신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맹세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예언자님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예언자님을 보내셔서 우리에게 전하여 주시는 말씀대로 행동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언자님을 주 우리의 하나님께 보내는 것은, 그분의 응답이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가 복을 받을 것입니다.”(42:5-6, 새번역)

 

응답이 좋든지 나쁘든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약속한다. 그것이야말로 기도를 하는 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일 것이다. 응답이 맘에 들면 따르고 맘에 안 들면 따르지 않는, 그것은 기도하는 이의 자세일 수가 없다.

 

백성들이 요구했던 기도의 응답은 열흘 뒤에 임했다.(7) 다급했던 백성들의 심정대로라면 열흘이라는 시간은 무척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럴수록 예레미야는 열흘 동안 기도하며 주님의 응답을 기다렸을 터, 그의 마음은 온통 주님만을 향했을 것이다.

 

기도하는 이들은 기다려야 한다. 영혼의 예민한 안테나를 주님을 향해 곧추세우며 주님이 대답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이 얼마든, 그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럽든 주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 사정이 급하다고, 응답이 더디다고 기다리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응답을 어떻게 받았을까? 약속을 한 대로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든 그대로 따랐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수를 하고 만다.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일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20, 새번역)

 

실수 중에는 얼마든지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실수가 있다. 애교로 보아줄 수 있는 실수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실수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치명적인’이라는 말은 ‘결코 가볍지 않은’ ‘돌이킬 수 없는’ ‘만회할 길이 없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대체 무엇을 두고 치명적인 실수라 하는 것일까?

 

백성들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러분의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들었는데도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21, 새번역)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도 따르지 않는, 바로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기도의 응답을 들었으면서도 결국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그것은 가벼운 웃음으로 넘길 사소한 잘못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 그 응답을 무시하는 것, 그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돌이킬 수 없는, 만회할 길이 없는 치명적인 실수인 것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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