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71)
하나님의 사람 가슴에는 주판이 없다
너는 이 책(冊) 읽기를 다한 후(後)에 책(冊)에 돌을 매어 유브라데 하수(河水)속에 던지며 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앙(災殃) 내림을 인(因)하여 이같이 침륜(枕淪)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들이 쇠패(衰敗)하리라 하라 하니라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마치니라 (예레미야 51:63-64).
오래 전에 <마지막 교실>이라는 제목의 동화를 쓴 적이 있다. 문을 닫게 된 수몰지역의 한 초등학교 이야기다. 문을 닫기 전 마지막 날 학교 운동장, 연단에 선 교장 선생님도, 아이들 앞장에 선 세 명의 선생님도, 쪼르르 줄을 맞춰 선 스무 여명의 학생들도, 마지막으로 교가를 부르다 참았던 울음이 터져 교가를 끝까지 부를 수가 없었다.
아직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5-6학년 교실은 평소와 다르게 조용하기만 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체육시간 운동장 같았을 교실이 머리카락 한 올이 떨어져도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 아이들은 모두 제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동네를 지켜온 학교가 문을 닫게 되다니, 아이들로서도 기가 막혔던 것이다.
그 때였다. 개구쟁이 대석이가 교실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앞문을 열고 나타난 것도 대석이였다. 장난을 치려나보다 생각 했지만 대석이의 표정은 진지했고, 대석이 손에는 깨끗하게 빨아온 걸레가 들려 있었다.
대석이는 천천히 교탁을 닦기 시작했다. 교탁을 다 닦은 대석이가 미리 전학을 가 비어 있는 미경이의 책상을 닦기 시작했을 때,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비와 걸레를 찾아 교실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건성으로 청소를 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유리창이 그렇게 깨끗한 적은 이제껏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교실로 들어서려던 선생님의 걸음이 그만 교실 문 앞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깨끗하게 닦인 유리창을 통해 청소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눈이 마주친 것이었다. 교실 문을 한동안 열려지질 않았다. 교실 문을 사이에 두고 두 눈이 모두 젖은 아이들과 선생님이 서로를 마주 본 채, 다음 일을 아예 잊고 있었다.
마세야의 손자요 네리야의 아들인 스라야가 시드기야 왕을 모시고 바벨론을 찾을 때의 일이다. 어쩌면 유다가 여전히 바벨론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정치적인 행차였는지도 모른다.
예레미야는 스라야 편에 책 한 권을 보낸다. 스라야는 예레미야 곁에서 일을 도왔던 바룩과 형제지간이다. 바룩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름(32:12)이 스라야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름과 같다.
예레미야가 스라야에게 준 책에는 바벨론에 임할 재앙의 말씀들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예레미야50:1-51:58에 기록된 내용이 책에 적혀 있었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스라야에게 바벨론에 도착을 하면 책에 기록된 내용을 사람들 앞에서 소리 내어 읽으라고 명한다. 바벨론에 도착하면 바벨론에 임할 재앙의 내용이 담긴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예레미야는 책을 모두 읽은 뒤에 할 말까지 일러준다.
“주님께서 이 땅을 멸하여 사람이나 짐승이나 거하지 못하게 하며 영영히 황폐케 하리라 하셨다.”
예레미야가 스라야에게 명한 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책 읽기를 다 한 후에 또 할 일이 있었다. 책을 돌에 매어 유브라데 강에 던지라는 것이다. 위험한 내용이 담긴 책을 읽었으니, 읽고 난 뒤에 그 증거를 없애라는 뜻이었을까? 그런 게 아니었다. 책을 돌에 매어 강에 던지면서 할 말을 예레미야는 스라야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바벨론이 나의 재앙(災殃) 내림을 인(因)하여 이같이 침륜(枕淪)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들이 쇠패(衰敗)하리라”
‘침륜’(沈淪)이라는 말은 ‘가라앉는다’는 뜻으로 ‘재산이나 권세 따위가 없어지고 보잘 것 없이 됨’을 나타낸다. ‘쇠패’(衰敗)는 ‘쇠할 쇠’에 ‘깨뜨릴 패’로, ‘쇠하여 패망함’을 뜻한다.
“주님께서 이 곳에 내리는 재앙 때문에 바빌로니아도 이렇게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고 쇠퇴할 것이다” <새번역>
“이처럼 바빌론은 물에 가라앉으리라. 내가 내리는 재앙을 당한 후에,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 <공동번역>
“바빌론도 내가 그에게 내릴 재앙 탓에, 이처럼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지쳐 버릴 것이다.” <성경>
“내가 내린 재앙을 당한 뒤에, 바벨론이 저렇게 바닥으로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 <메시지>
돌을 매단 책이 다시는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하는 것처럼, 바벨론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을 일러주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전하라 하시는지 충분히 알겠다. 책에 적힌 내용도 그렇고, 책을 읽은 뒤에 하라는 말도 그렇고, 그런 뒤에 책을 돌에 묶어 강에 던지라는 것도 그렇고, 책을 던진 후에 하라는 말을 보면 그 뜻 하나하나가 명확하여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따로 없다.
한 가지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 결국 책은 물에 빠지고 만다. 그것도 돌에 매달아 빠지게 됨으로 그야말로 수장이 되고 만다. 나중에 누가 그 책을 꺼내 읽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그 책을 썼다. 물에 던져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말 책, 아무도 귀 기울여 듣는 이 없을 내용, 듣는다 해도 어디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며 웃고 말 내용, 그런데도 바벨론을 향한 주님의 뜻이 담긴 내용을 예레미야는 책에 기록했다.
어쩌면 하나님의 사람이란 내가 하는 일의 영향력을 셈하지 않는 사람일지 모른다. 오히려 내가 계산하는 영향력에 내가 묶이거나 갇히게 될까 조심하며 나 자신을 경계하며 묵묵히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가슴에는 그 어떤 주판도 없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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