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속 여성돋보기(28)
왜 여자 예언자 훌다인가?
한 사람의 의인이 패역한 나라에 내려질 재앙을 막을 수 있는가? 올바른 지도자 한 사람이 국가의 위기를 모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가? 일시적이지만, 악행에 대한 심판의 연기는 가능하다. 국가적 재앙위기를 타개할 기회의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주전 7세기 남 유다 땅의 요시야 왕이 그 본보기다. 요시야 왕은 할아버지 므낫세 왕의 악행을 종결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한 왕으로 잘 알려졌다(주전640-609년). 그가 어떻게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을까. 왕의 과감한 개혁의지만으로 가능한가? 요시야 왕 통치시간 동안, 개혁 실행에 결정적 추진력을 제공했던 여자 예언자 훌다가 있었다. 훌다의 기록은 이스라엘 왕국 역사 한 귀퉁이 작은 일화로 존재할 뿐이지만(열왕기하22:14-20; 역대기하34:22-28), 새봄을 알리는 전령처럼 낮은 땅의 풀꽃으로 왔다갔다. 훌다는 구약 성경 전체에서 몇 안 되는 여자 예언자들(미리암, 드보라, 이사야의 아내, 노야다)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가 왕실의 기득권층 틈바구니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요시야 왕은 겨우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어 받았다(열왕기하22:1). 우상숭배를 걷어내지 못한 그의 아버지 아몬 왕이 신복들의 반역으로 암살당한 이후 왕위에 올랐으니 그 길이 쉬웠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여호와 눈에 정직하고, 다윗의 길로 행하며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 없는 행보를 보여준 왕으로 평가받는다(2절). 그의 출생이 남달라서였을까? 실제로 그가 태어나기 약 3세기 전(주전10세기)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왕이 벧엘에 신당을 짓고 제사할 때, 그의 출생은 유다 출신 익명의 예언자에 의해 예고되었다(열왕기상13:1-2).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은 요시야가 통치한 시기, 주변 국가들의 상황은 때마침 북이스라엘을 파멸로 이끈 앗시리아가 제국의 자리에서 바벨론에 의해 퇴출당하는 위기 상황이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가나안 지역의 작은 나라인 남 유다는 일시적인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 통치의 모범이어야 할 이전 이스라엘 왕권의 타락은 국가적 파멸을 향해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었다. 때문에 왕실 권력과 종교권력의 타락을 꾸짖고 고발한 예언자들의 활동은 각종 권력의 중심부와 복잡하게 얽혀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예언자의 출생 예고에 따라 어긋남 없이 태어난 요시야 왕이 20세 갓 넘은 때였다. 그가 서기관 사반을 총책임자로 임명하고 성전 보수공사를 시작했다(3절). 요시야 왕의 지시에 따라 성전 보수공사를 하던 중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 한 귀퉁이에서 “율법책”을 발견한다(8절). 이 책을 서기관 사반이 읽고 충격을 받아, 왕에게 가져가 왕 앞에서 낭독했다(10절). 왕은 사반이 읽어주는 율법책의 내용을 듣고는 자기 옷을 찢으며 애통해 했다(11절). 요시야 왕은 대체 율법책의 어떤 내용 때문에 이토록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을까?
학자들은 이 책의 정체를 놓고 여전히 논쟁 중에 있지만, 이른바 율법서 오경을 일컫는 “그 율법 책”(히브리말, “쎄페르 핫토라”)이라는 표현은 신명기, 여호수아서, 느헤미야서에서 발견된다(신명기28:61; 29:21; 30:10; 31:26; 여호수아1:8; 느헤미야8:3). 책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밝히지 않지만, 모세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성문화된 언약의 가르침이 오랜 동안 준수되지 않고 성전 구석에 방치된 채로 긴 세월 지나온 것만은 확실하다.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책의 가르침에 따라 행하지 않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그는 힐기야 대제사장과 서기관 사반, 사반의 아들 아히감,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왕의 수행원 아사야에게 명령하기를(12절), 그 책 내용에 대해 여호와께 물어보라는 것이다(13절). 그러니까 요시야는 “이 율법책”에 대한 신성한 승인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누군가의 안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여자 예언자 훌다를 찾아간다. 이 일행들 중 아히감은 이후 심판과 회개를 외치는 예레미야 체포와 기소, 살해의 위협에서 구해준다. 이때 악볼의 아들도 이 일에 관여한다(예레미야26:22, 24). 왕의 명령을 받고 훌다를 찾아간 사람들의 기록이 충분하지 않지만, 거짓 예언자들과 싸우며 회개를 외치는 참 예언자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와 지식의 사람들로 보인다.
이들이 찾아간 훌다는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했던 살룸의 아내였다(14절). 훌다의 남편 살룸의 직업이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예복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역대기하34:22).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의복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책무를 맡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왜 그들은 훌다를 찾아 갔을까. 당시 예레미야(예레미야1:2), 스바냐 예언자가 활동하고 있었다(스바냐1:1). 이들이 여자 예언자 훌다를 찾아온 이유가 생략되었지만, 대제사장을 비롯해 왕실의 사람들이 그녀의 학자적이며 예언자적인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일 테다. 남성중심의 권력 엘리트 집단에 속했던 다섯 명의 남자들이 예복 관리인의 아내였던 예언자 훌다를 찾아간 장면을 상상해 보라. 어떻든 자초지정을 들었을 훌다는 자기를 찾아온 대제사장과 왕이 보낸 사람들 앞에서 왕에게 전할 말을 일러준다. 훌다는 말 그대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긴 말씀, 곧 “예언”을 정확하게 전한다.
훌다는 유다의 왕이 읽은 책의 내용대로 예루살렘과 그곳의 거주민들에게 재앙과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한다. 그녀는 이곳을 향해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않을 것과 그 이유를 밝힌다. 그들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여호와 하나님을 격노케 했다는 신탁의 말씀이다(15-17절). 그리고서 유다 왕 요시야에게 줄 신탁의 말씀은 조금 달랐다.
내가....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19-20절)
훌다 예언자는 앞으로 일어날 바벨론에 의한 멸망을 기정사실화했지만, 요시야 왕만큼은 비폭력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러니까 심판의 때가 닥칠 것이지만, 적어도 요시야 통치기간 중에는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위로였다. 훌다가 국가적인 심판이 내려질 것을 전했지만, 국가의 최고 권력을 가진 통치자의 신실함이 심판을 연기시킬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이때 훌다는 하나님 말씀의 대행자요, 성전에서 발견된 책을 판독한 해석자 곧 율법학자였던 셈이다. 그러니까 열왕기와 역대기 저자에 의해 훌다는 요시야 왕이 읽은 책이 거룩한 문서라는 것을 승인한 처음 사람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제 훌다 예언자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전해들은 요시야 왕은 이스라엘의 개혁을 서두른다. 요시야 왕은 제사장들, 선지자들, 유다 모든 사람들, 곧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성전으로 불러 모아 발견한 언약책의 말씀을 낭독한다. 거기 모인 온 회중은 여호와 말씀 앞에서 마음과 뜻을 다해 순종하고 언약의 말씀대로 살 것을 다짐한다(23:1-3). 요시야는 마치 그 먼 옛날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온 회중을 향해 “마음과 뜻을 다해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6:5) 권고한 것처럼 백성들과 함께 마음을 새롭게 했다.
물론 반 가나안적인 개혁을 시도한 왕이 요시야만은 아니었다. 북이스라엘 요아스(열왕기하12장), 예후(9-10장), 히스기야(18장)가 있지만, 성전 재정비와 함께 거룩한 문서의 발견과 승인과정은 남달랐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뜻과 정경의 확실성을 보증한 훌다 예언자의 말을 듣고 백성들과 언약갱신의식을 행하고, 곧바로 종교개혁에 착수했다. 하지만 훌다는 이후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한 시대 개혁의 물꼬를 열어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도구로 쓰임 받았을 뿐이다. 동시대 예언자였던 예레미야와 스바냐처럼 책을 남겼거나 더 이상의 활동기록이 없지만, 요시야의 개혁에 불을 지피고 가담했을 것은 자명하다.
왕실권력과 제사장, 그리고 예언자 역시 남성중심으로 조직화된 사회의 한복판에서 훌다는 낮은 땅에 피는 새봄의 꽃처럼 왔다가 사라졌지만 훌다의 후예들은 멈추지 않고 어두운 시대의 봄꽃을 피울 것이다. 지금도 훌다의 후예들은 남성 중심의 위계적이거나 폐쇄적인 신학의 영토에서 이름도 없고 빛난 영광도 없지만, 조용히 시대의 어둠을 뚫고 작은 촛불로 타오를 것이다. 언젠가 훌다의 후예들을 통해 조국 교회의 치우친 지도력의 불균형이 조정되는 때를 기대해본다.
김순영/구약학, 백석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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