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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 출간 책 서평

슬픔의 강, 생명의 강

by 한종호 2017. 7. 5.

슬픔의 강, 생명의 강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다. 교양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읽는다면 모를까, 그 속에서 진정한 삶의 길을 찾고자 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애써 가꿔온 삶의 토대와 자아 정체성을 사정없이 흔들거나 허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위안을 구하는 이들에게 성경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낯선 세계를 향해 자기를 개방하는 일이다. 삶의 방식을 바꿀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야 성경과 참으로 만날 수 있다.


성경은 매끈한 텍스트가 아니라 주름 잡힌 텍스트이다. 인류의 오랜 경험과 시간이 성경 이야기 속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름과 주름 사이의 갈피를 잘 살필 때 성경의 진미가 우러나온다. 이반 일리치는 <텍스트의 포도밭>이라는 책에서 수도사들의 책 읽기에 대해 말한다. 수도사들은 포도밭에서 딴 포도 한 알 한 알의 맛을 음미하듯이 성경을 읽어 거룩한 이해의 달콤함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성경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되었지만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쉽지는 않다. 자칫 잘못하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자기들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전거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미로를 헤치고 나가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보물을 보여주는 좋은 길 안내자를 만나야 한다.



김순영 박사의 원고를 읽으며 여러 대목에서 감탄했다. 남성인 내가 그동안 애써 직조해왔던 인식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았던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처럼 사람은 저마다의 편견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다. 그렇기에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저자가 주목하는 이들은 여성이다. 


김순영 박사는 가부장적인 질서 속에서 ‘그림자’ 혹은 ‘하나의 몸짓’으로 취급받던 여성들의 이름을 호명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 구원 사역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일깨우고 있다. 그들은 힘의 위계 질서가 작동되고 있던 세계에 작은 틈을 만들어 변화의 물꼬를 트곤 했다. “새 일은 늘/틈에서 벌어진다”(김지하). 폭력적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무시 당하던 여성들이 역사 변혁의 주체로 세워지는 과정은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마르크 샤갈의 성서화 가운데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이삭 희생 이야기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 떠올랐다. 벌거벗기운 채 장작더미 위에 눕혀진 이삭의 표정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그를 죽여야 하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얼굴에는 혼란과 아픔, 그리고 안도감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천사가 나타나 그의 행동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의 위쪽에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샤갈은 죄 없이 죽임을 당해야 했던 이삭과 예수를 연결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림의 좌측 하단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다. 숫양 한마리가 걸려 있는 나무 저편에 한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사라이다. 무릎을 꿇고 있는 양손의 손가락은 놀람과 안타까움으로 경직되어 있다. 화등잔만하게 열린 두 눈에는 공포와 슬픔이 담겨 있다.


샤갈은 왜 성경 텍스트의 이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 사라를 굳이 등장시킨 것일까? 아브라함은 이삭의 희생에 대해 사라와 상의한 적이 있을까?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서는 그런 상의 과정이 불필요한 것일까? 샤갈은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의 우측 상단에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비탄에 빠진 여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슬픔과 아픔이라는 인간 경험의 지층을 통해 두 시대가 만나고 있는 것이다.


김순영 박사는 텍스트에 대한 꼼꼼한 주석 과정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시적·역사적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발람의 나귀가 말을 하는 것처럼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마치 저자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신산스러웠던 삶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아픔과 무관하지 않다. 저자의 글 속에서 성경 이야기와 고난당하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합류하여 슬픔의 강을 이룬다. 그런데 그 강은 어느 순간 생명의 강이 되어 흐른다. 그 물을 떠마시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김기석/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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