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63)

 

장벽 철폐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에베소서 2:14-16)

 

하나님은 혼돈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셨다. 혼돈은 무정형이지만 질서는 형태가 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 하늘과 땅, 물과 뭍, 동물과 식물 세계를 가름으로 모든 것이 가지런하게 자리잡게 하셨다. 모래를 통해 바다의 경계를 정하신 하나님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도 각자의 운행궤도를 따라 돌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죄는 세상을 혼돈으로 되돌리곤 한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는 하나님께서 갈라놓았던 혼돈의 물이 합쳐지면서 빚어졌다. 하늘의 창이 열리고 깊음의 샘이 열리면서 질서 있던 세상은 혼돈의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인간은 파괴한다.

 

하나님은 가름을 통해 혼돈을 극복하셨지만 인간은 가름을 통해 자기만의 왕국을 만들곤 한다.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이분법이 세상을 지배한다. 가름은 차별을 낳고, 차별은 차별당하는 이들의 가슴에 한을 남긴다.  니체가 말하는 르상티망, 즉 원한 감정이 안개처럼 사람 사이에 파고들 때 세상의 평화는 파괴된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은 갈수록 커지고, 그 두려움을 이기려고 장벽을 쌓는다. 장벽을 높이 쌓는 순간 타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 보이지 않기에 상상력이 발동된다. 그들이 시한폭탄처럼 위험하다는 생각을 품게 되는 순간 장벽 너머의 사람들은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 아니라 격리하거나 제거해야 하는 적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은 장벽 철폐 혹은 경계선 가로지르기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의인과 죄인, 거룩함과 속됨,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를 가르는 문화적 장벽을 자유로이 넘나드셨다. 경계선을 넘는 이들은 늘 의혹의 눈길을 받게 마련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런 삶의 귀결이다. 그런데 사도들은 예수님이 몸으로 증언한 바를 깨닫고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셨다(에베소서 2:14)는 것이다. 예수님은 담을 허무시는 분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다. 망치로 깨부수듯 허무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아픔과 눈물 그리고 슬픔과 죄책까지도 다 품어 안는 큰 사랑 안에서 그 둘을 녹이신다. 

 

그 사랑 안에 머물 때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장벽이 무너질 때 비로소 하늘이 열린다. 하나님과의 화해는 그렇게 일어난다. 예수님은 새로운 창조자이다. 인간이 만든 장벽을 허물어 새로운 인류를 낳고 계시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를 믿는다는 이들이 장벽 세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특정한 사람들에게 혐오와 수치를 안겨주면서 그것을 믿음으로 포장한다. 그럴듯한 포장지에 속지 말 일이다. 장벽을 세우는지 철폐하는지를 보아 에수의 제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기도*

 

하나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가르고 나누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찌지를 붙이고는 그들을 조롱하거나 무시하기도 합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붉은색 낙인을 찍는 일은 또 얼마나 자주 일어납니까? 이 땅에 있는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주님, 우리를 꾸짖어 주십시오. 주님은 당신의 몸으로 인간이 만든 장벽들을 허무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고백이 무색해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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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2)

 

 

 하나님의 음성 
   

<어제 밤 늦도록 하고도 모자라 오늘 아침까지 설교준비에 매달려 있었다. 주일 두 번의 설교를 하고 나면 늘 힘이 든다. 주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준비해야 할 설교가 있어 교회에 남았다. 딸은 아빠가 설교준비하는 과정을 안다. 엄마랑 먼저 집에 간다고 나서던 딸이 돌아서서 갑자기 작심한 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아빠!, 진짜 대충하라고. 아무도 설교 안 들어. 다들 스마트폰하고, 졸고, 들어도 이해 못한다고. 그냥 적당히 해도 돼. 그러다 아빠 쓰러지면 딸 대학 가는 것도 못 보고 죽을 거냐고!!"


그러고 갔다. 이거 몇 년 전에 똑같이 들었던 말이다. 그대로다. 갑자기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아직 설교 시작을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오치용 목사님이 페북에 올린 글이다. 오목사님의 성품을 아는지라 충분히 공감이 되는 글이었다. 누군가의 글에 답을 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 그래도 다음과 같은 글을 달았다.

 

<ㅎㅎㅎ, 때로 하나님은 가까이 있는 누군가를 통해 말씀하시기도 하니까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딸의 눈에 아버지는 지나칠 만큼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

 

 

글을 읽고 답을 달며 옛 시간 하나가 떠올랐다. 단강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단강 이후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고 심경을 밝혔을 때, 가까이 지내던 두 선배가 한 말이 있다.


한 선배는 말했다.


“그걸 왜 생각해? 나는 이제까지 백지수표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왔어.”


또 한 선배는 말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음성이 부엌에서 들려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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