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68)

 

시험을 기뻐하라고?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야고보서 1:2-4)

 

현대 문화의 특색은 빠름이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은 ‘기다림’의 요소를 제거했다. 욕망하는 것은 돈만 있으면 거의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패스트 푸드’로 점심을 해결하고, 고속도로를 타고 질주하고, 컴퓨터 통신망과 휴대폰을 통해 세상을 헤집고 다닌다. 신자유주의가 허락하는 시간은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다. 결과만이 중요하다. 이것이 진보인가? 사람의 성장이 동반되지 않은 문명의 진보는 진정한 진보일 수 없다. 현대인들의 삶이 불안정해 보이는 까닭은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뜸 들이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가속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아름다움을 향한 역사의 걸음은 느리기 이를 데 없다. 많은 이들이 현실에 절망한다. 하지만 인간의 소명은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가능성을 따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다. 심고 물 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사티쉬 쿠마르라는 평화 운동가의 말이 큰 도전이 된다. 

 

“중국인들이 어떻게 만리장성을 쌓았습니까? 벽돌 한 장을 놓고 그 위에 다시 한 장을 놓았던 겁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 도보여행을 하거나 소설을 쓰거나 인생을 살아가거나 모든 긴 여정들은 끈질기고 지속적인 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시스틴 성당의 천장을 보면 ‘굉장하구나.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지?’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만, 그 답은 매우 단순합니다. 한 번 붓질을 하고 그 다음에 또 한 번의 붓질을 한 겁니다. 매번 여기에는 어떤 색을 넣을 것인지, 어떤 질감을 나타낼 것인지 자문하면서 말입니다. 그게 창조적인 과정입니다.”  

 

작은 시작을 부끄러워하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없다.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기에 어떤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선각자라 한다. 그들은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루쉰은 길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본래 길이 없던 곳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감으로 생겨난 것이라는 것이다. 초대 교회 사람들이 '그 길의 사람'이라고 불리운 것은 참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그 길’을 걷는 이들 앞에 이런 저런 시험이 찾아온다. 당연하다. 불의한 세상의 관행에 따라 처신하기를 거부하는 이들을 세상은 곱게 보지 않는다. 불이익을 안겨주기도 한다. 야고보는 그러한 때 그것을 오히려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야고보서 1:2)하라고 말한다.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낳고,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할 때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굴종의 인내는 우리 속에 그늘을 만들지만 소망의 인내는 품격을 낳는다. 우리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 위에 서 있는가? 

 

*기도*

 

하나님, 가끔 생이 참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알 수 없는 비애감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자기 리듬에 따라 살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타고 살지 못하고 늘 쫓기며 삽니다.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입니다. 곁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이웃들의 신음소리에도 반응하지 못한 채 그냥 앞만 보고 달립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제 새로운 세상을 시작할 용기를 허락해주십시오. 시험을 기쁘게 여기고, 비록 더디더라도 낙심하지 않는 인내심을 우리 속에 심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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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7)

 

50밀리미터 렌즈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송진규 선생님이 있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강원도에서 살며 강원도의 아이들을 가르친 선생님이시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의 모습 속에는 강원도의 이미지가 담겨 있지 싶다. 원주에 있는 육민관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교장으로 은퇴를 하신 뒤, 지금은 고향 호저에서 살고 계시다. 어느 핸가는 동네 이장 일을 보았다고도 들었다. 이장이라는 직함도 잘 어울리신다 싶었다.

 

 

선생님의 성품과 삶과 글과 사진을 나는 두루 좋아한다. 언젠가 선생님께 들은 사진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선생님은 50mm 렌즈로만 사진을 찍는데,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50mm 렌즈가 사람의 눈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렌즈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마음에 둔 렌즈를 구입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사람의 시선과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50mm 렌즈만을 고집하는 선생님의 고집은 의미 있다 여겨지고, 그런 이유로 선생님이 찍은 사진을 대할 때면 다시 한 번 유심히 보게 된다.

 

문득 드는 욕심이 있다. 내가 쓰는 글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사람의 마음이 담기는, 사람의 마음에 가까운 글이 되기를, 깊이나 화려함이 없어도 한 줌 사람의 마음이 담기기를, 50mm 렌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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