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97)

 

사랑할 자유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하면, 피차 멸망하고 말 터이니, 조심하십시오.(갈라디아서 5:13-15)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자유이다. '자유'의 사전적 정의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함" 혹은 "남으로부터 규정·구속·강제·지배를 받지 않는 일"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만난 바울은 자신의 삶이 율법의 강제와 지배 속에서 살아온 삶이었음을 절감했다. 그는 율법 너머의 세계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주님이 눈에서 비늘을 벗겨내시자 그의 눈앞에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무엇을 해도 늘 답답하기만 했던 가슴이 툭 터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늘 율법의 감시 아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던 그가 이제는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얻은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살지 않는다. 배려 혹은 돌봄이야말로 그리스도인됨의 핵심이다. 그는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 자유를 기꺼이 유보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자유는 사랑의 빛깔로 채색되게 마련이다. 힘이 없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뜻을 따라야 할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굴욕감이다. 하지만 사랑 때문에 스스로 종노릇할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기쁨이다. 칭얼대는 손자를 업어주기 위해 무릎을 굽히는 할머니는 굴욕감을 느끼지 않는다. 만해 한용운은 <복종服從>이라는 시에서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라고 노래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의 실체이다. 바울은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갈라디아서 5:14)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613개 조문으로 분류한다. 그 중에서 “∼ 하라”의 형태로 된 계명이 248개이고, “∼ 하지 말라”"의 형태로 된 것이 365개이다. 248이라는 수는 사람 몸을 이루고 있는 부분의 합이고, 365는 일년을 뜻한다. 그러니까 613개의 율법 조문은 하루하루 온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을 실천하라는 요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우리 속에 있는 사랑의 샘물이 말라 버린다면 사랑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복음성가의 노랫말처럼 “사랑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 저절로 되는 사랑이 가장 좋겠지만,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면 '하는 사랑'을 해야 한다. 노력한다 하여 싫은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할 수는 있다. 사랑은 의지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싣고 험한 길을 달린 수레보다 세워둔 수레가 더 빨리 망가진다 한다. 사랑도 훈련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늘의 샘을 우리 마음에 모시는 일이다. 예수님의 마음이야말로 마르지 않는 하늘 샘이 아니던가.

 

*기도*

 

하나님, 우리를 자유의 길로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버리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 속에 공포를 주입하기에 우리는 주저주저하며 옛 생활에 묶인 채 살아갑니다. 이제는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명랑하고 천진하게 생을 대하고, 맑고 깊은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싶습니다. 이런 우리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속에서 사랑의 샘물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늘의 숨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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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59)

 

 

잊을 수 없는 만남  
 

그날 밤 그 만남은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남아 있다. 먼 곳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차에서 급한 전화를 받았다. 권사님의 아들이 다쳐 수술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오는 대신 병원으로 달려갔다. 권사님을 만난 것은 수술실 앞이었다. 순대 만드는 일을 하는 아들이 기계를 청소하던 중에 손이 기계에 빨려 들어간 것이었다. 기계를 멈췄을 때는 이미 손이 많이 으스러진 상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듣는 내가 그러니 어머니 마음은 어떠실까, 수술실 앞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기로 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더디 무겁게 흘러갔다. 어느 순간 중 권사님이 당신 살아오신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 했다. 참으로 신산(辛酸)했던 삶, 권사님은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당신이 살아오신 지난 시간을 모두 이야기했다. 얼굴이 고우셔서 누가 보아도 이 분께 무슨 근심걱정이 있을까 싶은데, 권사님의 인생은 굽이굽이 눈물어린 가시밭길이자 험곡(險谷)이었다. 권사님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눈물에 젖은 내용들이었다.

 

 

 

 

아들이 수술을 받는 동안 수술실 앞에서 담임 목사에게 털어놓는 지난날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나는 권사님께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드렸다.


“부족한 사람을 믿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제 마음에만 담아 둘게요. 그리고 권사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오늘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권사님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권사님은 제게 여전히 소중한 분입니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이어진 이야기,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내게는 화인처럼 남아 있다. 권사님도 그러시지 않으실까 싶다. 이야기 속에는 슬픔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는 법, 이야기를 나눈 그 시간이 부디 상처와 아픔과 회한을 덮는 따뜻한 위로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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