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김기석의 새로봄(101)

 

티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사랑이 그지없으시다. 두고두고 꾸짖지 않으시며, 노를 끝없이 품지 않으신다. 우리 죄를, 지은 그대로 갚지 않으시고 우리 잘못을, 저지른 그대로 갚지 않으신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도 크시다. 동이 서에서부터 먼 것처럼, 우리의 반역을 우리에게서 멀리 치우시며, 부모가 자식을 가엾게 여기듯이, 주님께서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가엾게 여기신다.(시편 103:8-14)

 

자식은 부모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걱정거리일 때도 많다. 어쩌면 자식은 세상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는 스승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속상하다고 하여 내칠 수도 없는 것이 자식이다. 하나님은 부모가 자식을 가엾게 여기듯이 우리를 대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갓 티끌임을 잘 아신다. 온갖 지혜를 자랑하고 못할 일이 없는 것처럼 설레발치며 살지만 우리는 잠시 이 땅에 머물다 가는 존재일 뿐이다. 변화에 종속된 것이 인간의 실체이다. 돌아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당할만한 푼수가 되지 못한다. 무지할 뿐만 아니라 욕망의 구슬아치 노릇을 하느라고 자기에게 주어진 생명의 값도 못하고 사는 우리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주님의 긍휼히 여기심 덕분이다.

 

“부모가 자식을 가엾게 여기듯이, 주님께서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가엾게 여기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창조되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한갓 티끌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시편 103:13-14)

 

우리의 있음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하지만 자기를 실현해야 할 과제 앞에 서 있는 인간은 늘 흔들림 속에 있다.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불화는 무겁게 우리 삶을 짓누른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함부로 내치지 않으신다. 우리 존재의 연약함을 사랑으로 껴안으신다. 못난 자식의 슬픔과 아픔까지도 껴안는 부모의 마음처럼.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 남자가 있었다. 어느 수도자가 아무리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수도원에 머물면서 자기 마음을 다스려보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수도원을 떠났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된 후 그는 마지막이라면서 다시 수도원에 돌아왔다. 2주쯤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결국 숨어서 마약을 하고 말았다. 수도자가 그를 꾸짖었다. “자네는 사나이가 아니군. 하려면 정정당당히 하지 그게 뭔가?” 그러자 그는 당당하게 마약을 했다. 그때 그 남자와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 마디 말도 없이 그저 울고만 있었다. 그러자 그 길로 그는 마약을 끊었다. 공허했던 마음이 채워졌던 것이다. 

 

신비하구나, 주님의 사랑.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사랑이 그지없으시다”(시편 103:8).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면 꾸짖기도 하시지만 무엇보다도 슬퍼하신다. 그 마음을 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옛 삶을 지속할 수 없다.

 

*기도*

 

하나님, 진흙에 불안을 더하면 인간이 되고, 인간에서 불안을 빼면 진흙이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습니다. 삶의 비애가 무겁게 우리를 짓누를 때가 있습니다. 나의 있음이 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희망과 절망, 빛과 어둠, 선과 악, 기쁨과 슬픔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우리 인생을 빚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의 신비 안에 머물면서 주님의 영광을 오롯이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빛이 되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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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빠지는 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62)

 

 골 빠지는 일

 

오랜만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였다. 무엇 그리 바쁘다고 자주 연락도 못 드리며 산다. 이런 저런 안부를 묻고 대답을 하는데, 어머니가 물으신다.


“한 목사님, 요즘도 교차로에 원고 써요?”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도 말을 높이신다. 세월의 고개 아흔이 넘자 모두가 고맙고, 모두를 존중하고 싶으신 것 같다. 요즘에도 쓰고 있다고 대답을 하자 무슨 요일에 실리는지, 몇 년째 쓰고 있는지를 다시 물으신다.


“수요일에 실리고요, 원고 쓴 지는 23년쯤 된 것 같은데요.”

 

 


 

길을 가다 만나게 되는 생활정보지 중에 <교차로>가 있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란에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을 쓴다. 전국적으로 발행이 되고, 한국인이 많이 사는 외국의 대도시에도 발행이 되는 정보지로, 일주일에 한 번씩 원고를 쓴지 20년이 넘었다.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신앙과 세상 사이에 다리 하나를 놓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고 이어온 일이었다. 23년이라는 말을 듣고는 어머니는 푸우, 한숨부터 내쉬신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보태신다.


“글 쓰는 게 골 빠지는 일인데...”


아흔이 넘은 어머니에게는 자식들이 하는 모든 일이 다 안쓰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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