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110)

 

지극 정성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바람이 다니는 길을 네가 모르듯이 임신한 여인의 태에서 아이의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네가 알 수 없듯이, 만물의 창조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너는 알지 못한다.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부지런히 일하여라. 어떤 것이 잘 될지, 이것이 잘 될지 저것이 잘 될지, 아니면 둘 다 잘 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전도서 11:4-6)

 

인간은 의미를 묻는 존재이다. 그런데 삶의 의미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옳은 의미는 없다. 저마다 주어진 인생의 재료를 가지고 의미를 창조하는 것이 인간의 소명이다. 인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응답해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나’를 구성한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생전 참 외롭게 살았다. 벨기에의 보리나쥬에서 전도사로 살기도 했지만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기의 천분임을 곧 알아차렸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그렸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마우베라는 사람은 고흐의 작품이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하여 그를 경멸했다. 그때 빈센트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게 화가임을 뜻하는 건가요, 그림을 판다는 게? 나는 화가란 언제나 무엇인가를 찾으면서도 끝끝내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뜻한다고 생각했었죠. 나는 그건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찾아냈다'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나는 화가이다라고 말할 때, 그건 단지 '나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고 노력하고 있으며 심혈을 기울여 몰두하고 있다'는 의미일 따름이죠.”(어빙 스톤,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호>, 최승자 옮김, 까치, 1993, p.211)

 

 

 

 

믿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이미 찾아낸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중용>은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할 도리를 ‘성誠’이라 일컫는데, 誠이란 선을 발견하고 그것을 소중히 붙잡는 것(誠之者人之道 擇善而固執)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거죽이 아니라 골수를 붙잡기 위해 지극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지극한 정성이란 멈추지 않는 것(至誠不息)이다. 

 

삶의 의미가 모호하다 하여 멈추어 있어서는 안 된다. 여건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워도 안 된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천분을 발견하는 최선의 길이다.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전도서 11:4)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다가 결국 아무 일도 못하는 이들이 있다. 나누며 살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는데도 돈이 좀 더 모아지면 좋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기의 다짐대로 하는 이들을 보지 못했다. 오늘 할 수 없는 일은 내일도 할 수 없다.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부지런히 일하여라. 어떤 것이 잘 될지, 이것이 잘 될지 저것이 잘 될지, 아니면 둘 다 잘 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전도서 11:6)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이다. 

 

*기도*

 

하나님,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먹고 사는 존재임을 이제는 확연히 깨닫습니다. 보람 있는 일에 투신할 때는 피로를 느끼지 않지만, 무의미한 일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에 몸서리를 치기도 합니다. 삶이 힘겹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삶의 의미를 구성해야 하는 현장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이들로 바꿔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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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72)

 

미무미

 

갈수록 많은 것들이 자극적이 되어 간다. 맛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일도 그렇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눈물이 날 만큼 매운 맛이 인기란다. 웬만한 말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일까, 상스럽고 거친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난무를 한다. 괴팍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어서 엉뚱한 이가 본훼퍼를 들먹거리며 자신의 병든 탐욕을 숨기고 그런 자신을 순교자로 삼으려고도 한다.

 

 

 

 

이런 세상에 나직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옛말이 있다. ‘미무미’라는 말이다. <老子> 63장에 나오는 말로,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위무위, 사무사, 미무미)에서 온 말이다. ‘하지 않는 것으로 함을 삼고, 일없는 것으로 일을 삼고, 맛없는 것으로 맛을 삼으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크고 작고 많고 적음에 원(怨)을 덕(德)으로써 갚는다는 것이다.

 

맛없는 것으로 맛을 삼으라니,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관심을 갖지 않는 세상에서 ‘미무미’라는 말은 너무 밋밋하게 들린다. 미무미라는 말 자체가 별 맛도 없이 입안을 맴돌지만, 그럴수록 마음에 새길 만한 가르침이다. 마침내 우리를 참된 자유로 이끌어 줄 말은 미무미처럼 모든 자극에서 벗어난 싱거운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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