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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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zing548 2019.07.22 20:47 신고

김기석의 새로봄(137)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주님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한창 더운 대낮에, 아브라함은 자기의 장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보니, 웬 사람 셋이 자기의 맞은쪽에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장막 어귀에서 달려나가서, 그들을 맞이하며,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하였다.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손님들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 이 종의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을 좀 가져 오라고 하셔서,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시기 바랍니다. 손님들께서 잡수실 것을, 제가 조금 가져 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에게로 오셨으니, 좀 잡수시고, 기분이 상쾌해진 다음에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정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장막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지고 와서, 반죽을 하여 빵을 좀 구우시오.” 아브라함이 집짐승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서, 기름진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 하인이 재빨리 그것을 잡아서 요리하였다.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만든 송아지 요리를 나그네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나무 아래에서 먹는 동안에, 아브라함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창세기 18:1-8)

 

한창 더운 어느 날 대낮, 아브라함은 장막 어귀에 앉아 상수리나무가 만들어 준 서늘한 그늘을 즐기고 있었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 보니 웬 낯선 사람 셋이 자기 맞은편에 서 있었다. 아브라함은 마치 반가운 손님이라도 맞이하듯 달려 나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며 그들을 영접했다. 낯선 이를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기에 익숙한 우리의 감성으로는 참으로 낯선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가끔 예기치 않게 손님을 맞아야 할 때가 있다. 그들은 우리가 하던 일을 중단시키고, 소중한 시간을 조각낸다. 마음이 분주할 때는 슬그머니 짜증이 난다.

 

 

 

 

아브라함은 자기 앞에 나타난 이들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선인인지 악인인지 구별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다만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들일 뿐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낯선 이들을 마치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들인 양 맞이하고 있다. 환대의 모범이다. 환대란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 누군가가 내 삶에 들어올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낯선 나그네들에게 자기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말고 기분이 상쾌해진 다음에 길을 떠나라고 말한다. 그는 나그네들이 얼굴과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길어 오고, 쉴 수 있도록 시원한 그늘 밑에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음식을 장만했다. 그는 아내 사라에게 고운 밀가루 세 스아(seah)를 가지고 와서 반죽을 하여 빵을 구우라고 말하고, 자기는 집짐승 떼가 있는 곳으로 가서 기름진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맡겨 요리를 하게 한다. 음식이 장만되자 그는 엉긴 젖과 우유와 송아지 요리를 나그네들 앞에 차려 놓고는 나그네들이 먹는 동안 곁에 서서 시중을 들었다. 한 집안의 어른인 그가 마치 하인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당신을 한없이 낮추신 겸비의 그리스도를 흘낏 본다. 

 

목사 시인 고진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읽은 후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라는 시를 썼다. 그는 불행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때, 삶이 타인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할 때, 우리 마음이 이루지 못한 욕망의 진흙탕일 때, 우리의 밤이 사랑의 그믐일 때는 아직 길을 떠날 때가 아니라고 노래한다. 우리가 길을 떠나야 할 때는 “쓰디쓴 기억에서 벗어나/까닭 없는 기쁨이 속에서 샘솟을 때,/불평과 원망이 마른풀처럼 잠들었을 때”, “단 한 벌의 신발과 지팡이만 지니고도/새처럼 몸이 가벼울 때,/맑은 하늘이 내리시는/상쾌한 기운이 그대의 온몸을 감쌀 때”이다. 그 때는 어쩌면 하나님과의 깊은 합일을 경험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지금 우리 곁에 다가온 이들로 하여금 마음이 상쾌해져 떠나도록 한다면 우리는 잘 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기도*

 

하나님,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낯선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에덴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적대적인 세상을 경계하며 살아갑니다. 낯선 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영접한 아브라함의 모습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집니다.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에서 환대의 공간을 만들라는 주님의 요청을 받들겠습니다. 어려움이 예기되는 길이지만 낙심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 속에 힘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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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을 벼린다는 것

한희철의 히루 한 생각(197)

 

날을 벼린다는 것 

 

우연히 접한 이야기가 있다. 한 스승이 두 제자에게 칼을 한 자루씩 주며 날을 벼리라고 했다. 잘 벼리는 자를 후계자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두 제자는 열심히 칼날을 갈았다. 마침내 검사를 받는 날이 되었다. 한 제자가 갈은 칼은 얼마나 예리한지 바람에 스치는 옷깃마저 베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제자가 내민 칼은 전혀 달랐다. 스승이 처음 내줄 때보다도 더 무디어진 뭉뚝한 날을 가진 칼을 내놓았던 것이다.

 

 


 

스승은 무딘 날을 가진 칼을 내놓은 제자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는 칼을 갈다가 칼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를 깨닫고 일부러 날을 무디게 만든 것이었다.

 

얼마든지 더 나갈 수 있지만 스스로를 삼가 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 날을 벼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그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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