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155)

 

잠과 식사

 

아합은,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말하였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에게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 아니, 그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그대로 받겠다.”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그런 다음에, 그는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그 때에 한 천사가,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면서, 그를 깨웠다. 엘리야가 깨어 보니, 그의 머리맡에는 뜨겁게 달군 돌에다가 구워 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잠이 들었다. 주님의 천사가 두 번째 와서, 그를 깨우면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인 호렙 산에 도착하였다.(열왕기상 19:1-8)

 

갈멜산에서의 대결 이후 신적 분노에 사로잡힌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의 예언자들을 붙잡아 이스르엘 평원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기손 강가로 데려가 모두 죽였다. 그런 후 엘리야가 비를 내려달라고 일곱 번 기도하자, 바람이 일고 짙은 구름이 몰려와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위엄이 오롯이 나타났다. 하지만 엘리야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갈멜산에서 벌어진 사건의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왕비 이세벨은 이를 갈며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공언한다. 만일 그를 내일 이맘때까지 죽이지 않는다면 신들에게서 천벌이라도 받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갈멜산의 엘리야라면 이런 위협 앞에 흔들릴 리가 없다. 그런데 성경은 엘리야가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고 말한다. 영웅적인 용기를 보여주었던 엘리야에게 적용된 단어들이 낯설다. ‘두려워서’, ‘급히’,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전형적인 약자의 모습이 아닌가? 엘리야는 영웅에서 졸지에 반(反)영웅으로 전락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인간이다. 어떤 일에 혼신의 힘을 다 쏟고 난 후에는 무력감이나 공허감이 찾아올 때가 많다. 그는 쓸쓸한 도망자가 되어 뙤약볕 밑을 터벅터벅 걷다가 로뎀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주님께 하소연한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4절)

 

 

 

 

그런데 혼곤한 가운데 잠이 찾아온다. 잠은 엘리야로 하여금 두려움과 고독의 심연으로 내몰리던 마음에 틈을 만들어준다. 팽팽하게 곤두섰던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그 때 천사가 그를 깨웠다. 엘리야가 깨어 보니 머리맡에 뜨겁게 달군 돌에다가 구워 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엘리야는 그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또 다시 잠에 빠졌다.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를 깨우면서 “일어나서 먹어라.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이른다.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리고 힘을 얻어서,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에 이르렀다.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나는 감동한다. 하나님은 지친 엘리야를 훈계하거나 꾸짖지 않으셨다. 그의 절망과 두려움까지도 품어 안으시고 그에게 꿈조차 없는 단잠을 주셨다. 그리고 그를 위해 말없이 밥상을 차리셨다. 마치 중력처럼 그를 절망으로 잡아당기던 현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다. 그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일은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삶이 힘겨울 때마다 이 장면을 생각한다. 우리를 위해 밥상을 차리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기도*

 

하나님,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은 기세로 우상을 섬기는 이들을 몰아치던 엘리야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습은 낯설기만 합니다.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돌아보면 그게 사람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연약함을 꾸짖지 않으시고 말없이 감싸 안으시는 주님의 사랑이 아니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비록 비틀거리며 걸을지라도 기어코 가야 할 목표에 당도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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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17)

 

예언자파

 

전교인수련회 둘째 날 오후 프로그램은 ‘쉼’이었는데, 괄호 안에 넣은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었다. ‘담임목사와 함께 하는 수다방’이었다. ‘수다방’은 ‘수 다방’이 아니라 ‘수다 방’이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쉬는 시간을 혹 힘들어 하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 마련한 자리였다. 서로 만난 지가 이제 1년이 되었거니와, 교회 정서상 교우들과 담임목사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싶었다.
 

 

 


다리를 뻗고 둘러앉아 그야말로 수다와 같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서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한 교우가 물었다. 지금 일본이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해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대답을 하기 전에 두어 가지 당부부터 하고 싶다고 했다.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교우들 간에 갈등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한 가지 당부를 덧붙였다.


“담임목사인 저도 한 개인으로써, 한 국민으로써 왜 정치적인 입장이 없겠어요. 하지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답니다. 저를 좌파나 우파로 분류하진 말아 주세요. 굳이 제 입장을 밝히자면 저는 예언자파랍니다.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의 입장에 서고 싶답니다.”

 

교우들은 웃음으로 내 이야기를 받았다. 교우들에게 ‘예언자파’라는 말은 낯설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리를 통해 내 입장을 밝힐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되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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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15)

 

빗소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목양실 화장실엔 화분 세 개가 있다. 다육이를 파는 가게 앞을 지나다가 가장 작은 것 세 개를 사서 창가 쪽에 놓아두었다. 하필이면 화장실이라니, 다육이에겐 미안했지만 화장실에 파란 빛깔의 식물이 있다는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었다.

 

오늘 아침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화분 하나가 대뜸 눈에 띄었다. 다육이 줄기가 블라인드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듯했다. 블라인드 칸 사이로 몸을 기대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순간 마음이 안쓰러웠던 것은 밖엔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블라인드에 몸을 기댄 줄기는 마치 창밖 빗소리를 온몸으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빗소리를 듣기 위해 온몸을 귀로 삼아 창 쪽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좁다란 칸 사이로 몸을 들이밀어 비가 오는 모습을 바라보려는 것처럼 보였다.

 

빗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었다. 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것이었다. 그것은 비를 맞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무리 비와 가깝게 있다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생명을 가진 식물에게는 빗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빗줄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는 것이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가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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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의 새로봄(154)

 

예수님도 때론 분노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민다. 그러면서, ‘우리가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마태복음 23:27-31)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보고 하나님 나라의 걸림돌이라고 하신다. 회칠한 무덤, 겉과 속이 다른 이, 잔과 접시의 겉은 닦지만 속은 닦지 않는 사람들. 험한 욕설인 셈이다. 맹자는 ‘남의 선생 되기 좋아하는 것이 탈(人之患在好爲人師)’이라 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가르칠 것만 있고 배울 것은 없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거짓 목자들이다.  예수님은 종교적 독선과 권위에 짓눌린 채 두려움과 죄책을 안고 살아가는 민중들의 아픔을 절절히 느끼셨다. 하지만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도록 도와야 할 종교가 오히려 사람들의 질곡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분노하셨다. 칼릴 지브란은 1926년에 쓴 『모래와 물거품』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옛날에 너무나 남을 사랑하고 그 자신이 너무나 사랑스럽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있었다. 기이하게도 나는 그 사람을 어제 세 번이나 만났다. 처음에 그는 창녀를 감옥에 보내지 말라고 사정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부랑자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세 번째는 교회 안에서 장사치와 주먹다짐을 벌이고 있었다.”

 

 

 

 

지브란의 예수는 연약하고 상처 입은 이들 앞에서는 한없이 친절하고 겸손하지만 자기 의에 사로잡혀 안하무인인 사람들, 사람들의 영혼을 노략질하는 종교인들에 대해서는 폭풍처럼 분노를 터뜨리는 분이셨다. 우리가 예수를 제대로 믿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어떤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위선과 탐욕과 절제를 모르는 권력 앞에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 사회적 루저들에 대한 연민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다. 19세기 유대교 갱신운동의 지도자였던 렙 메나헴 멘들은 불꽃같이 살다간 사람이다. 사람들은 예언자들의 타오르는 분노가 그의 속에서 되살아났다고 말할 정도로 불의에 대해서 엄격했다. 그의 어린 시절의 일화가 하나 전해 내려온다. 

 

“한번은 시장에서 사과를 파는 한 여자를 보았다. 바구니의 윗부분에는 맛있게 생긴 잘 익은 사과를 얹어 놓았고 설익은 것들로 아랫부분을 채워 놓은 것을 보고 아홉 살 된 소년은 바구니를 둘러엎어 그 여자의 장사를 망쳐버렸다. 여자는 화가 치밀어 올라 그를 마구 욕하며 때렸다. 그는 욕설과 매질을 감수하였다.”(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선집7, 『진리를 향한 열정』, 종로서적, 1985, 128쪽)

 

이런 의분이 없어 교회가 무기력해졌다.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미는 것으로 할 도리를 다 했다고 말하면 안 된다. 위선의 굳은 껍질을 깨는 망치의 언어가 때로는 필요한 법이다.

 

*기도*

 

하나님, 경건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마음의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욕망과 욕망이 맞부딪치는 거친 세상에서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요? 고사목만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위선 앞에서 내뱉으신 예수님의 거친 언사가 오히려 우리 마음에 위안이 됩니다. 울어야 할 때는 울고, 웃어야 할 때는 웃고, 분노할 때는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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