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연대

김기석의 새로봄(156)

 

창조적인 연대

 

모세는,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주님께서 그 마음에 지혜를 더하여 주신 기술 있는 모든 사람, 곧 타고난 재주가 있어서 기꺼이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불러모았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의 제사에 필요한 것을 만드는 데 쓰라고 가져온 모든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았다. 그런 다음에도 사람들은 아침마다 계속 자원하여 예물을 가져 왔다. 그래서 성소에서 일을 하는 기술 있는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모세에게로 와서, 이르기를 “백성들이, 주님께서 명하신 일을 하는 데에 쓰고도 남을 만큼 많은 것을 가져 오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진중에 명령을 내려서 ‘남자든 여자든, 성소에서 쓸 물품을 더는 헌납하지 말라’고 알리니, 백성들이 더 이상 바치지 않았다. 그러나 물품은 그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할 뿐 아니라, 오히려 남을 만큼 있었다.(출애굽기 36:2-7)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성막을 지으라 명하신다. 그 명령에 따라 모세는 백성들에게 각자의 소유 가운데서 주님께 바칠 예물을 가져오라 이른다. 성막을 세우는 데는 금, 은,․ 동, 청색 실, 자주색 실, 홍색 실, 가는 모시 실, 염소 털,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 돌고래 가죽, 아카시아 나무, 등잔용 기름, 향품, 홍옥수를 비롯한 각종 보석 등이 필요했다. ‘과연 이런 요청에 백성들이 응답할까?‘ 모세는 반신반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경은 이것을 간결하게 보도한다.

 

 “마음이 감동되어 스스로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 나서서…갖가지 예물을 주님께 가져 왔다.”(35:21)

 

그들은 비상시를 대비해 여퉈두었던 것들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자재 헌납을 보도하는 대목에서 성서 기자가 거듭해서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 원하는 사람들’, ‘스스로 바치고 싶어 하는 모든 남녀’라는 말이다. 백성들은 강요나 체면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그러한 자발성의 비밀은 ‘마음이 감동되어’라는 말 속에 담겨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적인 신명이 그들에게서 이기심의 껍질을 벗겨냈다. 사람은 보람을 먹고 산다. 뭔가 창조적인 일에 동참한다는 기쁨이 인색한 마음을 압도했다. 하나님의 일에는 강제가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감격 때문인지 백성들이 바친 물품은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할 뿐 아니라, 오히려 남을 만큼 있었다”(36:7) 한다. 기적이다. 브살렐과 오홀리압 같은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술과 재주를 바쳤다. 영 연방 최고 랍비인 조나선 색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든 성막과 솔로몬이 세운 성전을 간결하게 비교한다. “자발적 기여로 창조된 성막은 민족을 통합시켰으나 강제 징발된 노동력의 산물인 성전은 민족을 분열시켰다.”(조나선 색스, <<사회의 재창조>>, 298쪽) 솔로몬이 죽은 후 남북 왕조로 분단된 현실을 이르는 말이다. 성전을 세운다는 미명 하에 백성들에게 부과된 세금과 부역이 사람들을 갈라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성막을 세울 때 사람들은 ‘스스로 원해서’ 그 일에 동참했다.

 

성막 이야기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각자가 기여한 바가 다르지만, 모든 사람의 헌신이 하나하나 소중히 여겨졌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가져왔다. 금이나 은을 가져온 사람도 있고, 실을 가져온 사람도 있었고, 나무를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기여의 경중은 가려지지 않았다. 함께 어울려 창조적인 일을 수행했을 뿐이다. 이스라엘은 시내산 언약을 통해 하나의 백성으로 세워졌지만, 그들이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을 절감한 것은 성막 건설을 통해서였다. 함께 한다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기도*

 

하나님, 가끔 외롭다는 생각에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곁에 있는 많은 이들이 마치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느껴질 때, 왠지 모를 스산함이 우리를 확고히 감쌉니다. 각자도생을 요구하는 사회에 살면서 외로움은 더욱 깊어가고 있습니다. 벗들과 함께 창의적인 일, 의미있는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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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남아 있을까 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8)

 

누가 남아 있을까 봐

 

15년차 베테랑 소방관이 순직했다. 안성의 공장 건물 화재를 진압하던 중에 순직을 한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실로 들어갔다가 인화물질이 폭발하여 희생을 당했다고 한다.

 

 

 


 

그가 지하실로 들어갔던 것은 혹시라도 창고 안에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였단다. 누구라도 불속에 남아 있을까 불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누가 남아 있을까 봐’


순직한 소방관을 불속으로 뛰어들게 한 한 마디가 마음을 울린다. 누가 봐도 위험한 불속으로 소방관을 뛰어들게 한 생각이 그러했다면, 목회자의 생각은 더욱 그리해야 하지 않을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까지 찾는 것이 목자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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