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의 새로봄(157)

 

예언자로 산다는 것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 수많은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겁에 질려 있다. 너희는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합니다. 나와 친하던 사람들도 모두 내가 넘어지기만을 기다립니다. ‘혹시 그가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그를 덮치고 그에게 보복을 하자합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은 내 옆에 계시는 힘센 용사이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이, 힘도 쓰지 못하고 쓰러질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이 실패해서, 그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큰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예레미야 20:7-11)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영광과 찬탄이 아니다. 그들은 일상적 삶의 자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자신이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입을 열어 말할 때마다 폭력파멸을 외치자,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말은 아주 격하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7)

 

번역이 너무 점잖게 되어 있다. ‘나를 속이셨다는 말은 원래 달콤한 말로 자기를 꾀었다는 말이고, ‘나를 이기셨다는 말은 마치 강간을 하듯 힘으로 자기 의지를 관철시켰다는 뜻이다. 불경스러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예레미야는 절박하다. 가깝던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그가 넘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오히려 늘어나는 상황을 누가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다짐한다.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9)

 

하지만 그런 다짐도 부질없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어떤 뜨거움 때문에 그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그는 하나님의 심정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타락한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새로운 길로 이끄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그는 차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지만 차마 포기할 수 없는 길, 그것이 부름 받은 이들의 길이다.

 

 

 

 

 

 

비겁은 안전한지를 묻는다. 편의주의는 정치적인가를 묻는다. 허영은 인기 있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양심은 옳은가를 묻는다. 안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이 옳다고 말하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이 말은 진리라는 중심을 향해 순례 중인 사람들이 언제든 명심해야 할 말이다. 안전과 편의주의, 허영심이 아니라 양심이 옳다고 말하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 때, 그 때는 분명 실존적인 위기의 순간이다. 하지만 우리 영혼이 고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틴 루터는 보름스 제국 의회 앞에 소환되어 그동안 써왔던 모든 주장들을 철회하고 책을 불사르라는 신성로마제국 카를 황제의 명령을 들었을 때 며칠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번민의 시간을 보낸 후 그는 황제의 요구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해서 행하는 것은 위험하며,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도우소서.”

 

그는 자기 확신과 신념을 위해 죽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백척간두진일보, 아스라한 장대 끝에서 허공을 향해 몸을 던졌을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품에 오롯이 안겼다. 우리는 그 길로 초대를 받은 이들이다.

 

*기도*

 

하나님, 예레미야의 탄식을 들을 때마다 그의 말이 거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마음이 시원해지곤 합니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할 생각 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이들은 다 예레미야와 같은 경험을 합니다.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등 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모욕과 상처는 일상이 됩니다. 비록 그런 일을 겪는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잠시 동안의 평안을 위해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꼭 붙들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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