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 감사합니다. 세상의 결핍은 다 방식이 틀릴뿐 똑같은 것 같습니다.SNS로 표출할 뿐이죠!

    이진구 2019.09.12 10:02

김기석의 새로봄(186)

 

위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고린도후서 1:3-5)

 

우연히 가수 하림이 부르는 <위로>라는 노래를 들었다. 서정적인 목소리의 가수가 “외롭다 말을 해봐요 다 보여요 그대 외롭다는 걸, 힘들다 말해보세요 괜찮아요 바보 같지 않아요”라고 노래할 때 괜히 가슴이 찡해졌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사람 때문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관계’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삶이 참 힘겹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관계關係라는 단어에서 관關은 문빗장을 지른 모습을 그린 것이고, 계係 ‘걸리다, 잇다’라는 뜻이다. 닫아 걸기도 하고 또 잇기도 하는 것이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관계가 순조롭고 원만할 때는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지만 관계가 어그러지면 고통스럽다. 

 

 

 

 

 

현대인들은 저마다 다 외롭다. 그렇기에 관계를 갈망한다. 젊은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누군가와 접속을 유지하려 애쓴다. ‘나 홀로’라는 느낌 속에 방치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 공간에 자기의 근황을 알리고는 누군가가 반응해주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누군가 의미 없는 기호인 ‘ㅋㅋㅋ’나 ‘ㅎㅎㅎ’로만 반응해도 흐뭇해한다. 페이스북에서는 ‘좋아요’라고 반응해 준 사람들의 수나 댓글 수에 민감하다. 문득 지구별에 왔던 어린왕자가 떠오른다. 그는 뾰족산에 올라 외친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누가 나의 친구가 되어줘.” 외로움이 문제이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갈망한다. 사람들은 인정과 배제 사이에서 바장인다. 따돌림 받지 않기 위해 자기 소신과는 무관한 일을 하기도 한다. 영혼을 파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들의 인정에 매달리지 않는다. 물론 바울이 떠난 이후에 고린도교인들이 파당을 짓고, 바울을 깎아내리는 이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는 가슴 아파했다. 자기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는 것 같은 절망감이 그를 짓눌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씨는 때를 만나면 반드시 발아한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어둠의 날이 지나면 밝은 날이 올 것임을 확신했기에 그는 일어설 수 있었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위로의 기초였다. 환난과 핍박이 중첩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가 당당하게 대지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사도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사도행전 5:41)했다. 이처럼 고난을 당하면서도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평안을 누리는 사람들을 누가 이길 수 있을까? 세상의 위로를 구하는 이들은 절망을 거두지만, 하늘의 위로를 얻은 이들은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척박한 대지를 갈아엎는다.

 

*기도

 

하나님,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고, 세상 모든 게 다 시들하게 느껴질 때면, 내가 사람이라는 게 싫어집니다. 어쩌면 그때가 위로가 필요한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다가와 등이라도 툭 쳐주었으며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사람의 위로도 소중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위로야말로 우리를 일어서게 하는 힘임을 말입니다. 척박한 세상에 평화와 생명의 씨앗을 뿌릴 힘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지금 위로의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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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어려운 일

  • 감사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오늘도 글을 올리셨네요.! 저는 오늘도 달렸습니다. 제 입이 모르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진구 2019.09.12 08:53
  • 양손이 모르게 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한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한희철 2019.09.14 08:20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6)

 

 더욱 어려운 일

 

기회가 되면 교우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세상이 놀랄 만한 일을 하되,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조용히 즐기라고. 그것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마태복음 6:3) 하는 것 아니겠냐고.

 

 

 

 

 

 

목사는 불가능한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선수다. 말이 좋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어떻게 왼손이 모르도록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혹시, 어쩌다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해도 그보다 더 어려운 것 하나가 남아 있게 마련이다. 제 입이 모르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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