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선

  • 새벽 예배 끝나고 나오면서 달도 보이고 해의 노을이 보이고 모두 모두 맘껏 노래하는 듯 한데... 세상은 매일 분투와 씨름과 다툼과 전쟁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09.19 08:41
  • 전쟁터와 공터,
    좋은 생각거리다 싶습니다.

    한희철 2019.09.19 17:06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3)

 

 

 

공터에선

 

노란색 꽃도 피고,

자줏빛 꽃도 피고,

수줍게도 피고,

당차게도 피고,

꽃 아닌 풀도 눈치 볼 것 없이 자라고,

 

 

 

 

 

키 좀 크다 으스대지 않고,

키가 작다 기죽지 않고,

풀도 씨를 받고,

꽃도 씨를 받고,

풀과 꽃 사이 이름 모를 벌레들이 맘껏 노래를 하는,

 어디에도 잘난 것 따로 보이지 않는,

허름한 공터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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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람의 길

  •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이라는 것은 어디서 올까요? 제가 가진다고 오는 것도 아니고, 기도뿐이겠지요...

    이진구 2019.09.19 08:49

김기석의 새로봄(193)

 

참 사람의 길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마태복음 25:40)

 

떼제 공동체의 설립자인 로제 수사는 스위스 사람이다. 스위스는 영세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2차 대전에 휩쓸리지 않았다. 하지만 예민한 젊은이였던 그는 고통 받는 이들을 품겠다는 의지 하나로 떼제에 정착했다. 3년 동안이나 마을의 작은 예배당에서 기도에 매진하던 그의 곁에 형제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약했지만 하나의 질문 위에 자기들의 공동체를 세우기로 작정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절실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몸으로 살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돌본 이들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내려온 유대인들이었다.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이 찾아간 것은 '독일군 포로'였다. 모두의 미움을 받던 이들이었지만 가장 절실하게 이웃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었기에 그들을 만나고 돌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나중에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았다. 이 마음이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최후 심판의 날에 벌어질 한 광경을 우리에게 들려주신다. 보좌에 앉으신 주님은 모든 민족을 당신 앞에 불러 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르친다. 주님은 한편에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복음 25:34) 그 복을 받은 이들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닌 사람들이 아니다. 헌금을 착실하게 하고, 은혜 받는 집회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몸짓으로 찬양을 올린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곤경에 처한 이들의 형제자매가 되어 준 이들이다.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이들은 ‘좋은 교인’이 아니라 ‘참 사람’이다. 물론 좋은 교인과 참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게 결합된 말이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참 사람됨’의 길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누가 참 사람인가? 누군가의 좋은 이웃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배고픈 사람을 보면 먹이고 싶어지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잔 대접해주려는 사람, 외로운 나그네를 보면 따뜻하게 맞아들이려 하는 사람, 헐벗은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입혀 주려는 사람, 병들어 몸과 마음이 다 무너진 사람을 보면 그의 곁에 머물며 힘이 되어 주려는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을 보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넘어 가엾게 여기고 그를 찾아 주는 사람이야 말로 참 사람이라는 말이다.

 

철학자 E. 레비나스는 낯선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고, 끊임없이 그를 향한 사랑을 선택할 때, 그래서 그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볼 때 비로소 인간의 윤리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너'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없다는 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은 하나님께로 우리를 이끄는 소중한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버릇처럼 사람들을 외모로 평가합니다. 사람들이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것은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 때문입니다.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이들은 주변화되고 있는 이들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경쟁을 내면화하고 사는 이들은 ‘패배자’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변화된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십니다. 아니,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십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이웃들을 대할 수 있도록 하늘의 숨을 불어넣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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