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손

김기석의 새로봄(198)

 

당신의 손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그런데 거기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허리가 굽어 있어서, 몸을 조금도 펼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이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불러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야,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누가복음 13:10-13)

 

열여덟 해 동안 등이 굽은 채 살아온 여인이 있었다. 참 긴 세월이다. 며칠만 아파도 삶의 리듬이 깨지는 법인데 그 긴 세월을 여인은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천형처럼 다가온 질병을 고쳐보려고 백방의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슬픔과 분노, 그리고 절망과 좌절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참 안됐다고, 잘 될 거라고 위로하던 이들도 이제는 그의 고통을 잊은 지 이미 오래다. 가족들은 있었을까? 설사 있었다 해도 가족들조차 여인을 짐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그는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차라리 없으면 좋을 잉여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도 여인은 회당 예배를 포기할 수 없었다. 회당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여인에게 일종의 숨쉬기와 같은 것이었다. 그 운명의 날, 여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당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어떤 뜨거움이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여인의 존재를 꿰뚫었던 것 같다. 예수님도 그 회당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예민하게 알아차리셨다. 허리를 펴지 못하는 그 여인 속에서 하나님은 이미 활동하고 계셨던 것이다. 주님은 18년 동안 한 번도 주목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여인을 앞으로 불러 세우신 후에 말씀하셨다. "여자야,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이 음성이야말로 '빛이 생겨라' 하시던 그 음성이 아닌가? 예수님은 여인의 몸에 손을 대셨다. 강은교 선생의 시 ‘당신의 손’이 떠오른다.

 

 

 

 

 

“당신의 손이 길을 만지니/누워있는 길이 일어서는 길이 되네./당신의 슬픔이 살을 만지니/머뭇대는 슬픔의 살이 달리는 기쁨의 살이 되네./아, 당신이 죽음을 만지니/천지에 일어서는 뿌리들의 뼈“

 

보고, 가까이 부르고, 선언하고, 접촉하는 일련의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 흐름 속에서 생명이 소생되고 있었다. 여인의 허리가 펴졌다. 열여덟 해 동안이나 여인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던 병이 마침내 떠나간 것이다. 여인을 사로잡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죄책감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 대한 혹은 세상에 대한 원망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만남이 그 여인을 부자유에서 해방시켜 주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의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맺힌 것을 풀어 자유롭게 하는 의사이다. 허리를 펼 수 있게 된 여인은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렸다. 누가 들을세라 숨죽여 부르는 찬양이 아니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의 찬송이었다. 우리의 굽은 등을 펴주시는 그 손길이 몹시 그립다.

 

*기도

 

하나님, 모든 이들에게 잊혀졌지만 고단한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이 여인의 슬픔을 주님 홀로 헤아리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늘 그 자리에 있는 풍경처럼 대했겠지만 주님은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로 대하셨습니다. 이웃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우리의 시선을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해도, 아픔에 처한 이들의 입장에 서려는 노력은 게을리 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굳어질 대로 굳어진 우리 마음을 녹여주십시오. 주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는 새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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