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제단에서 죄가 늘어난다

김기석의 새로봄(188)

 

늘어난 제단에서 죄가 늘어난다

 

에브라임이 죄를 용서받으려고 제단을 만들면 만들수록, 늘어난 제단에서 더욱더 죄가 늘어난다. 수만 가지 율법을 써 주었으나, 자기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여겼다. 희생제물을 좋아하여 짐승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지만, 그들이 참으로 좋아하는 것은 먹는 고기일 따름이다. 그러니 나 주가 어찌 그들과 더불어 기뻐하겠느냐?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고, 그들의 허물을 벌하여서, 그들을 이집트로 다시 돌려보내겠다. 이스라엘이 궁궐들을 지었지만, 자기들을 지은 창조주를 잊었다. 유다 백성이 견고한 성읍들을 많이 세웠으나, 내가 불을 지르겠다. 궁궐들과 성읍들이 모두 불에 탈 것이다(호세아 8:11-14).

 

예언자들의 말은 거칠다. 사람들의 안온한 일상을 뒤흔드는 폭풍이다. 느른한 행복을 구하는 이들의 일상을 괴롭히는 소음처럼 들린다.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사는 이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그렇기에 예언자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환영은커녕 박해를 받기 일쑤이다. 예언자가 된다는 것은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불행한 일이다. 가까운 이들조차 그들에게 등을 돌릴 때가 많으니 말이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예레미야 20:8b)라고 탄식했다. 탄식하면서도 그 일로부터 달아날 수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억센 힘에 사로잡힌 자들이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욕망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이들이 만든 세상에 분노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정언명령은 기각되었다. 사람들은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웃을 도구로 사용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예언자들이 아무리 외쳐도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예언자는 그들에게 엄중한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스라엘이 바람을 심었으니, 광풍을 거둘 것이다. 곡식 줄기가 자라지 못하니, 알곡이 생길 리 없다. 여문다고 하여도, 남의 나라 사람들이 거두어 먹을 것이다”(호세아 8:7).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 데 그럴 리 없다고 믿는다. 신실한 듯 보이지만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자의적 신앙일 뿐이다. 믿음이란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바치는 일이다.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등지는 이들이 많다. 이 전도된 현실이 한국교회 개신교회의 자화상이다.

 

예언자의 말은 가차 없다. “에브라임이 죄를 용서받으려고 제단을 만들면 만들수록, 늘어난 제단에서 더욱더 죄가 늘어난다”(호세아 8:11). 두려운 말씀이다. 교회가 늘어날수록 죄가 늘어난다는 것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생각이 없다면 번다한 예배가 무슨 소용인가? 예배에 참여하고, 헌금을 드리고, 더러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 가증하게 보일 수도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이스라엘이 궁궐들을 지었지만, 자기들을 지은 창조주를 잊었다”(호세아 8:14a).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는 것이 죄가 아니던가. 다 잊어도 잊지 말아야 할 것, 우리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두렵고 떨림으로 기억할 때 죄의 유혹에 속절없이 넘어가지 않는다.

 

*기도

 

하나님, 도심의 밤거리 어디에서나 붉은색 십자가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십자가를 보며 평안과 위로를 얻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공동묘지를 떠올리게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단이 늘어날수록 죄도 늘어난다는 말씀이 예리한 통증이 되어 우리를 찌릅니다. 욕망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꿈을 품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온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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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깎으며

  • 100프로 공감합니다.맞네요. 요즘은 사람들이 뚱뚱해져서 발톱을 잘 못깍는 사람들이 많은데, 발톱 깍는 자세 또한 특별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10 08:48
  • '하물며' 말이지요.

    한희철 2019.10.11 07:39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4)

 

 손톱을 깎으며

 

믿음이나 인격이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만, 시간이 지나며 저절로 자라는 것들은 의외의 것들이다. 머리카락과 수염, 손톱이 그렇다. 잠시 잊고 있다 보면 어느새 자란다.

 

 

 

 

 

대부분의 경우 손톱은 책상에 앉아서 깎게 된다. 손톱이 자란 것을 우연히 보고는 서랍에 있는 손톱깎이를 찾아 손톱을 깎는다. 손톱에 무슨 생명이 있을까 싶은데, 그렇지가 않다. 잘린 손톱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튀어 오른다. 다시는 들키고 싶지 않다는 듯 날아간 손톱은 어딘가로 숨는다. 원고를 쓰는 동안 자판을 눈여겨 봐 둔 것인지 키보드 자판 사이로 숨기도 한다. 그러면 자판을 거꾸로 들고 흔들어대어 손톱을 떨어뜨려야 한다.

 

몇 번 비슷한 경험을 하고선 다른 선택을 한다. 손톱을 깎을 때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앉는다. 그리고는 책상 옆에 있는 쓰레기통을 가져온다. 쓰레기통을 거부하는 손톱들도 있지만 대개는 통 속으로 들어간다. 도망친 손톱을 찾아내는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책상 위에서 깎을 때보다는 훨씬 편하다.

 

어떤 일을 할 때는 그 일에 맞는 자리와 자세가 따로 있다. 하물며 손톱을 깎을 때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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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만 살아계신 하나님

  • 멀지 않다= 가깝다=이르지 않았다 !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산 정상에 올라가기 500m전 ~ 내려오는 사람에게 얼마나 남았나요? 다 왔어요.! 하지만, 그 500m가 아주 멀게 느껴지는 듯!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09 11:46
  • 예수님 말씀이 오늘 우리를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극복해야 할 거리가 남아 있는.

    한희철 2019.10.09 19:13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3)

 

일요일에만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님께 나아와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를 물은 한 율법교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낫습니다.”(마가복음 12:33)라고 새긴다.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은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34절)고 하며 그의 대답을 인정하신다.

 

 

 

 

 

새벽기도회 시간, 그 말씀을 나누다가 하일의 시 한 구절을 소개했다. 우리의 신앙이 말씀의 실천 없이 번제물과 기타 제물을 드리는 종교적 행위에 머물러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오래 전에 읽었지만 낫지 않는 상처처럼 마음에 남아 있는 구절이었다.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일요일에만 살아계신 하나님’

 

어찌 하나님이 일요일이라는 빨간 글씨 안에 갇혀 계실까,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필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하나님이 일요일에만 살아계신 것처럼, 평일에는 잠을 자거나 부재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었다.

 

예수님 말씀이 절묘하다. ‘멀지 않다’는 것은 ‘가깝다’는 뜻, 하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가깝다는 것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교사의 생각과 대답이 매우 훌륭하다고 해도 그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 주변을 서성이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문득 아침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던 것은 단지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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