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한 사람의 아름다움

김기석의 새로봄(189)

 

직립한 사람의 아름다움

 

할렐루야. 내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정직한 사람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참으로 훌륭하시니, 그 일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두 깊이 연구하는구나. 주님이 하신 일은 장엄하고 영광스러우며, 주님의 의로우심은 영원하다. 그 하신 기이한 일들을 사람들에게 기억하게 하셨으니, 주님은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다(시편 111:1-4).

 

적대감에 가득 찬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참 고달픈 일이다.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넋을 놓고 걷다가 느닷없는 크랙슨 소리에 놀라 질겁을 하듯이 언제 봉변을 당할지 몰라 우리는 전전긍긍하며 산다. 얼굴빛 환한 사람 만나기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다. 함석헌 선생은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탄식하듯 말한다.

 

“영웅심에 들뜬 청년/욕심에 잔주름이 잡힌 노인,/실망한 얼굴,/병에 눌린 얼굴,/학대받아 쭈그러진 얼굴,/학대하고 독살이 박힌 얼굴,/얼굴, 얼굴, 그 많은 얼굴들 속에/참 아름다운 얼굴은 하나도 없구나”(<얼굴> 중에서).

 

참 아름다운 얼굴을 만나야 삶이 바로 선다. 히브리의 시인은 “정직한 사람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 있는 즐거움을 노래한다. ‘정직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샤르yashar’는 ‘곧다’, ‘옳다’, ‘똑바로 서다’라는 뜻으로 두루 쓰인다. 정직한 이들은 바로 선 이들이다. 내면에 기둥 하나가 들어선 이들이라는 말이다. 기둥이 바로 서면 그 위에 어지간한 무게가 얹혀도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신 이들이 그러하다. 김흥호 목사님이 ‘믿음’을 ‘밑힘’이라 해석한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스위스의 조각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아주 길쭉하고 홀쭉한 인물상을 많이 만들었다. 불안과 고독과 취약함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의 궁핍한 상태를 드러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물들의 눈빛은 형형하다. 마치 자기 운명을 직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대개 직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성큼성큼 걷는 그 인물들은 마치 무게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외롭고 고달프지만 불멸을 지향하는 사람의 존엄함을 본다. 직립한 사람은 아름답다.

 

시인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신 이들의 모임에 속한 즐거움이 크다고 고백한다. 그 모임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같은 꿈을 간직한 채 사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이 크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은 실로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경험을 함께 나눌 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다. “주님이 하신 일은 장엄하고 영광스러우며, 주님의 의로우심은 영원하다”(시편 111:3).

 

장엄함에 대한 인식을 잃을 때 영혼은 남루해지고 삶은 왜소해진다. 장엄함 앞에 설 때 인간은 겸손해지고 심성은 확장된다. “주님 앞에는 위엄과 영광이 있고, 그의 처소에는 권능과 즐거움이 있다”(역대상 16:27). 주님 앞에 머물 때 푸석푸석하던 삶이 단단해진다.

 

*기도

 

하나님, 하루하루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숨돌릴 사이도 없이 밀려드는 일들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어렵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우리는 떠밀려 가듯 시간 속에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차갑고 냉랭한 시선, 적대적인 시선을 만날 때마다 우리 가슴에는 퍼런 멍이 들곤 합니다. 이제 정신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장엄한 위엄 앞에 서겠습니다. 내면에 흔들리지 않는 기둥 하나 세우고 살겠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삶의 꿈을 나눌 벗들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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